1편처럼 사진이 거의 없는 스압글이며 의역이 다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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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갑 학교에 있는 동안, 공수 모집 담당관이 내가 낙하산 강하를 세 번 할 수 있을 만큼 남자답다면 월급 79달러에 추가로 55달러를 더 받을 수 있다고 제안했다. "비행기에서 떨어지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 같네요." 그렇게 나는 두 번째 자원을 했다. 이러한 자원은 습관이 되어가고 있었다. 일병이 옷, 삼시세끼에 침대 한 개와 월급 134달러.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연봉 16,000달러는 한참 멀었고, 아마 대학 교육을 받아야 할 것 같았다.


10년 만에 찾아온 최악의 겨울, 단열재도 없고 난방도 작동하지 않는 2차 대전 시대 막사에서 우리는 조지아주 포트 베닝의 점프 스쿨을 즐겁게 뛰어다녔다. 우리는 야외에서 활동하지 않는 시간 동안 몸을 따뜻하게 유지하기 위해 딥 히트 젤을 몸에 발랐다. 문제는 달리고 땀을 흘리면서 일부는 사타구니에 물집이 생겼다는 것이다. 너무 추워서 막사의 수도관이 얼어붙어 며칠 동안 목욕을 하지 못 한 적도 있었다. 아마 포트 베닝을 다녀온 기수 중에서 가장 악취가 심했을 것이다. 아마도 이것이 중도 포기율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이 공수부대 지망생으로 구성된 엘리트 그룹의 주요 특징은 얼어 죽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교훈을 얻었다. 이번이 내가 군대에서 마지막으로 할 자원 행위란 것이다. 55달러 보너스 때문에 이제 고환에 물집이 생겼고 걸을 때마다 신음이 나온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모두 다 똑같았다.


공수! 왼발, 오른발, 왼발, 빌어먹을 군대 같으니라고.


수료 후 나는 노스캐롤라이나주 포트 브래그에 있는 제82 공수사단, 제17기병연대 배치 명령을 받았다. 기병연대에 배치되자마자 제612 쿼터마스터 항공 보급대에 있는 헤비 드롭 스쿨로 보내졌다. 거기서 나는 이 배치에 자존심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612는 비공수 유형의 사람들이 많은 곳이었다. 나는 이러한 고도로 훈련된 대부분의 낙하산 정비병들보다 월 55달러를 더 벌었지만, 이들은 내게 개인 및 중량물 낙하산 정비 훈련을 시켰다. 낙하산을 직접 챙기고 하네스의 주머니에 들어가는 작은 책에 서명한 다음 C-130에서 낙하산을 타고 뛰어내리며 "이러다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주 동안 정비 훈련을 받은 후 나는 오키나와 스키란에 있는 제173공수여단의 제16기갑 D중대 배치 명령을 받았다.


"이봐! 오키나와는 독일 도시가 아니라고! 내가 원한 건 이게 아니야! 한 달에 55달러 보너스로 유럽 파병과 미술 교육 기회를 날리고, 무거운 보급품과 차량을 고고도에서 투하하는 것만 배웠다. 사회에서 퍽이나 써먹겠다! 블랙! 이 멍청한 놈아!"


내가 시애틀의 레이니어 비치 고등학교를 졸업한 1963년 6월에 제173 공수여단이 창설되었다. 173여단은 당시 일본 바로 남쪽에 주둔하고 있던 류큐 열도 오키나와에 주둔하고 있던 제2공수전투단의 자산을 인수했다. 제173 공수여단은 본부 및 본부 중대, 제503보병연대(공수) 제1대대 제2대대, 제16기갑 D중대, 제319포병연대 제3대대, 제173 공병중대, 제173 지원중대, 제17기병대 E트룹으로 구성되었다. 이 새로운 여단의 병력은 장교 133명, 준위 3명, 사병 3,394명으로 구성됐다.


173여단의 임무는 다른 부대와 협력하여 화력, 기동, 충격 등을 통해 신속하게 접근하여 적을 파괴하는 것이다. 그리고 태평양의 핵심 섬인 오키나와에 주둔하고 있었다. 1963년 6월에 활성화된 이후로 173여단은 엘리스 W. 윌리엄슨 준장의 지휘하에 오키나와, 대만, 이리모테, 필리핀 등 태평양 섬과 한국, 태국에서 광범위한 훈련을 거쳤다.


173여단 대원들은 대만에서 낙하산 훈련을 많이 했기 때문에 중국 국민당 군인들의 존경과 찬사를 받았다. 중국인들은 173여단의 공수부대원들에게 깊은 인상을 받아 여단 병사들을 티엔 빙, 즉 하늘의 군인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이 별명은 계속 이어졌다.


173여단에 대한 미 국방부의 기대는 태평양 지역의 어느 곳이든 24시간 이내에 배치되어 72시간 동안 적과 교전하여 적을 억제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자살 작전을 통해 해병대와 같은 "실제 병력"을 배치할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아직은 우리가 배치될 만한 핫스팟이 없는 게 다행이었다! 173여단이 독립 여단이라는 것은 더 큰 상위부대에 소속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모집관인 킹 하사의 말을 빌리자면, 상황이 잘못되면 우리는 알아서 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여단 점호를 서보면 여단 인원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특히 절반이 지원 병력이니 말이다. 72시간 이상 버틸 수도 있을지는 확실할 수 없었다. 하지만 19세에 여기에 있는 나는 불사신이 아니겠는가.


공수부대에 기갑 중대가 있다는 걸 들어본 사람이 있을까? 제16기갑 D 중대는 SPAT(대전차 자주포)라는 전투 차량을 사용했다. SPAT는 M48 전차의 두 배에 달하는 탄약을 적재 가능한 비장갑 궤도형 90mm 주포 플랫폼이었다. SPAT는 최대 시속 60마일의 속도로 굴러갔다. 실제로는 악천후 속 소형 해군 구축함의 피치, 롤, 요잉과 더 비슷했다. SPAT는 운전수, 장전수, 사수, 전차장 등 4명의 승무원이 탑승하여 아프리카 사막전에서 치고 빠지기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설계되었다.


1965년 1월, D중대는 평시 군대의 일반적인 조직 활동을 수행했다. 매일 아침에 공수부대로서 체력 훈련과 스키란 해병대 기지를 지나 5마일을 달렸고, 케이던스를 부르며 자헤드 녀석들을 조롱하며 "공수! 끝까지! 왼발, 오른발, 왼발!"을 외쳤다. 나를 제외하고는 완벽한 리듬으로 달렸는데, 나는 왼발과 오른발이 계속 헷갈렸다. 그달 초, 우리 1소대장인 게리 B. 길모어 중위가 3해병사단 병참학교에 선발되어 입교하게 되었다. 우리는 공수여단이니까 항공기는 말이 됐다. 하지만 해병대가 공수부대와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인가? 우리가 공수라고 외치며 해병대 중대 거리를 달리면 그들은 정말 화를 냈다. 나는 그들의 어머니들조차도 불멸의 하늘의 군인인 우리에게 폭언을 퍼부으면 결코 용납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다. 우리는 그저 무언가를 한 게 아니라, 무언가를 하는 데 참여했다. 참여하는 것이 해야 할 일이었다.


우리는 C-130에 SPAT를 싣고 "레드 얼럿"이라는 훈련에 참여했고, 실제로 필리핀의 이리모테 섬에 투하한 적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이탄 습지에 떨어졌고 우리가 찾기까지 한 달이나 걸렸다. 그냥 그대로 두고 승무원 급여에서 공제하자는 의견이 나와서 잠시 격한 토론으로 이어졌었다. 그들은 남은 인생 동안 비참하게 군에 남아 있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투하는 공군과 함께 이루어졌다. 그냥 해병대 상륙정에 SPAT를 싣지 그러냐 하는 생각이 들었다. 파도를 헤치며 해변까지 가서 적을 공격하는 것이다. 디데이처럼 말이다. 물론 영화에서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죽었지만 말이다. 다행히도 지금은 평화 시대의 군대이고 적이 없었다. 오늘 밤은 동네에서 술 마시고 스트립쇼나 보러 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MG 클럽에 갔을 때는 바텐더와 함께 바에서 일하는 여자들의 월별 건강보험증을 위조했었다. 그날 밤은 공짜로 술을 마셨다. "더 락"에서의 삶은 좋았다. 이는 자헤드 녀석들이 오키나와를 부르는 별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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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130에 SPAT를 싣는 연습)


1965년 2월, 우리 경장갑 중대는 제503 보병연대 1대대와 173여단의 또 다른 독립 중대의 ATT(연례 육군 훈련 시험)를 지원할 준비를 했다. 윌리엄 Y. 로빈스와 콜먼 J. 맥데빗 중위 등 두 명의 신임 장교가 2월 24일에 훈련에 맞춰 도착했다. 중대는 또한 제503보병연대 2대대에 공격대를 제공했다. 이 부대는 제리 V. 레이프 중위 휘하의 3소대로 구성됐다.


뜨거운 햇볕 아래 몇 시간 동안 노출되어 있으면 누구나 미쳐버릴 수 있다. 정신이 나갈 수도 있었다. "다음에는 위장망을 가져오던가 해야지." 차량 지휘관이 불평했다. 그리고 옛날 옛적부터 군에 있었던 부사관 중 한 명이 우리에게 90mm 공포탄에 GAA 그리스와 인분을 채우는 방법을 가르쳐줬다. 그렇다. 사람 똥 말이다. 대항군을 맡은 2대대가 다가오자 우리는 그 한 발을 쐈다. "맙소사!" 90mm 포신 끝에서 직경 20피트의 똥 덩어리가 터져 나와 우리를 포함한 모두를 놀라게 했다. 땅개들은 공포탄으로 M14 소총의 꼬질대를 쏘며 반격했다. 우리는 히스테릭하게 웃으며 궤도가 달린 SPAT로 그들을 쫓아가다가 일본인의 녹차밭을 찢어발겼고, 어쩌다가 불까지 질러버렸다. "이런 씨발!" 레이프 중위는 이런 일이 전혀 웃기지 않다고 생각했다... 공개적으로는 말이다. "남자애들은 남자애들이지." 사적으로는 그도 웃었다. 심지어 직업 군인들도 정말 웃긴다고 인정했다.


3월 9일, 우리 중대는 제503 보병연대 2대대의 FTX를 지원하기 위해 스키란에서 출발했다. 훈련은 이틀간 진행되며, 11일에 오키나와 북부 훈련장에서 스키란으로 돌아오는 중대 규모 행군이었다. 주행 중 다시 한번 지루함을 느낀 부사관 한 명이 손을 뻗어 내가 운전하는 SPAT의 엔진 점화 토글을 껐다가 바로 켰다. 큰 소리와 함께 측면에 장착된 배기 장치에서 불꽃이 뿜어져 나와 지나가던 농부의 사탕수수 수레에 불이 붙었다. 이로 인해 미 육군이 차, 사탕수수, 수레, 말, 그리고 기타 잡다한 멍청한 물건에 대해 일본 정부에 막대한 벌금을 지불하는 등 군법 제15조 조항이 전면적으로 적용됐다.


"언젠가 일본이 이것 때문에 우리를 섬에서 쫓아낼지도 몰라."


1965년 3월 14일은 내 남동생 중 한 명인 휴 로버트 블랙의 19번째 생일이었다. 그날 아침, 그는 미래의 3소대 지휘관인 리차드 H. 골드스미스 중위와 함께 오키나와에 도착했다. 일병인 휴는 173공병중대에 배치되었다. 동생을 보니 기뻤다. 학교를 다니는 동안 휴의 학업 능력에 감탄했고, 높은 학점 평균과 쉬운 학습 스타일이 부럽기도 했다.


"공병이라... 똑똑한 녀석이네."


나는 문제에 대해 지나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사실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지만 말이다. 나는 그저 일병일 뿐이었다! 우리는 형제이지만 친구이기도 하고, 남은 18개월의 군 복무 기간 동안 집의 일부가 나와 함께하는 것 같았다.


"18개월 후면 프리덤 버드를 타고 큰 PX가 있는 본토로 돌아갈 거야... 나도 이젠 직업군인처럼 말하고 앉았네."


우리 둘 다 의무를 다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입대했고, 그런 다음... 본래 삶을 살기 위해 돌아가야 했다.


"왜 그냥 미대에 가지 않았을까? 그놈의 의무 때문이지, 병신아. 닥치고 그냥 일이나 해. 그리고 바보처럼 보이니 혼잣말 좀 멈추고."


우리 둘과 막내인 브루스는 건설업에 종사하는 가정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은퇴하기 전에 오리건과 워싱턴 사이의 컬럼비아강에 수력발전댐을 짓는 주요 건설업체 중 하나인 가이 F. 앳킨슨 건설의 급여 책임자였다. 우리는 댐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강을 옮겨 다니며 자랐다. 건설 노동자들은 그들만의 커뮤니티를 가지고 있었고, 우리 셋은 모든 아이들과 그 아이들의 아버지가 하는 일을 알고 있었다. 건설업계 집시처럼 우리는 길을 한 곳에 3년 이상 머물지 않고 매번 새로운 친구를 사귀었다. 군대와 비슷했다. 수많은 곳을 돌아다니는 것 말이다.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셨고, 어린 시절부터 두 남동생을 돌보고 보호해 달라고 내게 의지했다.


휴의 오키나와 배치는 나뿐만 아니라 로웰 T. 무니와 게리 B. 길모어, 조지 A. 개먼 같은 중위들에게도 기쁜 날이었는데, 그들은 초과 근무로 인정되어 CONUS로 돌아갈 계획을 세울 수 있게 되기 때문이었다. CONUS가 무엇인지 모르는 분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미국 본토를 뜻하는 약어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내가 군에 대해 쓰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길 바란다. 자신이 속한 군종의 언어를 배우다 보면 정상적인 영어를 말하는 법을 매우 빠르게 잊어버리게 된다.


"와, 숏타이머가 돼서 정말 좋네. 집에 돌아가서 제대로 된 햄버거를 먹고 싶다고." 무니 중위가 그리워하며 말했다.


그게 뭔데? 숏타이머가 도대체 뭔데?


"일단 네 얘기는 아니지." 길모어가 웃으며 말했다. "나는 하도 줄어들어서 침대와 바닥 사이 거리가 계속 늘어나는 거 있지. 일주일 더 지나면 침대에서 낙하산 타고 나와야 필요할 지경이야."


*"short"-timer를 두고 한 개드립, 숏타이머의 본래 뜻은 본토 귀환을 목전에 둔 사람을 말한다.


"공수!" 무니 중위가 소리쳤다.


"아멘, 형제여." 개먼 중위와 길모어 중위가 대답했다.


3월 22일, D중대의 일부는 캠프 핸슨의 북부 훈련장으로 이동하여 공격 임무를 맡은 503보병연대 1대대 A중대를 지원했다. 다음 날, 중대의 나머지는 스키란을 떠나 503보병대대 2대대와 합류했다.


그 후 며칠 동안 우리는 "귀중한 기갑-보병 훈련"을 받았다. 실제로 중대 서기가 본부로 보내는 아침 보고서 중 하나에서 이 문구를 사용했다. 이러한 말을 썼다는 사실을 기갑 승무원들이 알게 되자, 그들은 그 서기를 무자비하게 놀려댔다. 16기갑 D중대는 503연대에 공격 부대를 제공하면서 "귀중한 기갑-보병 훈련"을 받았다. 우리에게는 확실히 귀중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보병처럼 땅을 달리지 않고 궤도로 땅을 달렸다. 땅개들이 무덤을 파고 누울 동안 우리는 한낮의 더위 속에서 시원한 위장망 아래에 앉아 있었다. 훈련 중에 각 승무원은 맥주로 가득 찬 더플백을 가져왔고, 우리는 이를 CO2 소화기로 차갑게 했다. 이 평화로운 시대의 군대에서의 삶은 좋았고, 보병처럼 걸어 다니는 것보다는 장비를 타는 것이 훨씬 더 좋았다. 기갑으로 가서 전차병이 되는 게 평시의 군대에서 해야 할 올바른 일이다.


냄새나는 사격과 일상의 지루함 속에서 나는 차량 정비병인 SP5 데이브 웨스터맨과 또 다른 운전병인 SP4 마이크 안토스코프와 친구가 되었다. 우리 셋은 카데나 공군기지 외곽의 2번 게이트 도로에서 클럽을 돌아다니거나 지역 A급 레스토랑에서 일식을 맛보는 법을 배우는 등 많은 시간을 보냈다. 안토스코프는 가라테 검은띠 유단자로, 관심 있어 하는 모든 사람에게 수업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수업은 재미있었고 좋은 운동도 됐다. 게다가 술집과 식당에서 돈을 다 쓴 후 서로를 흠씬 두들겨 패는 일이 있기도 했다.


여기에는 빨대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우리 셋은 밀크셰이크를 주문했고, 용기에서 종이로 감싸진 빨대를 꺼냈다. 우리는 태연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각자 종이 포장지의 한쪽 끝을 찢어내어 빨대 아래로 약 1인치 정도 밀어 넣었다. 무언의 신호가 떨어지면 우리는 빨대에서 종이를 불어내 다른 두 명 중 한 명을 맞추려고 했고, 맞은 사람은 돈을 내야 했다. 한 번은 빨대에서 종이를 불어내다가 빗나간 적이 있었다. 매우 조심스럽게 빨대를 바닐라 셰이크에 넣었는데, 안토스코프가 나를 맞추려고 했다. 나는 돈을 내지 않으려고 몸을 숙이다 코에 빨대를 쑤셔 넣고 말았고, 동시에 얼어붙은 밀크셰이크의 절반을 코로 들이마셨다. 당황한 나는 테이블을 넘어뜨리며 일어섰다. 그렇게 안토스코프의 빨대에서 나온 종이는 나를 지나쳐 지나가던 해병대원의 귀에 박혔다.


어느 날 아침 PT와 구보를 마치고, 조던 대위가 SP4 래리 로그스던과 함께 나를 그의 사무실로 불렀다. 그의 책상 위에는 우리의 인사 파일이 있었다. "너희의 파일을 읽었다."


왜? 그 수레가 불타버린 건 내 잘못이 아니라고! 물론, D11 트랙에서 똥을 쏘긴 했지만, 이미 군법 제15조는 치렀다고...


"너희 둘 다 화가라고 하더군. 로그스던, 너도 화가인가?" 중대장이 물었다.


"화가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제 파일에 만화가라고 적혀 있을 겁니다. 맞습니까?"


"무슨 차이인데? 화가야, 아니야?" 대위가 물었다. "블랙, 너는 화가야? 네 서류에 화가라고 나와 있더군."


"저는 화가입니다. 텔레비전과 연극 디자인, 풍경화를 그리는 일을 생업으로 삼았습니다. 선물용이나 판매용으로 풍경화와 초상화도 그렸습니다. 저는 만화가가 아닙니다. 그게 알고 싶으셨습니까?"


"좋아. 블랙, 식당에 그림 몇 점 그려줘. 여길 좀 더 밝게 해야겠어. 좀 더 집처럼 만들라고.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지?"


집 같은 곳? 좀 과장된 표현이 있는데...


"알겠습니다. 각 주에서 알아볼 수 있는 랜드마크를 그린 일련의 풍경화는 어떻습니까?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그림 말입니다. 하지만 페인트, 붓, 캔버스 등 그릴 재료도 필요하고 물론 액자도 필요합니다. 지금 당장 그런 걸 살 돈이 없습니다. 시간이 좀 걸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남은 파병 기간 내내 이걸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거로 일과에서 벗어날 수도 있겠어. 감옥에서 무료로 풀려나는 카드가 따로 없네. 다시는 주방에서 일할 필요가 없을지도 몰라.


"일과 후와 주말에 추가 근무로 해야 해. 필요한 물품을 말해 주면 보급병을 보내서 가져오게 할게. 식당에 걸 첫 번째 그림은 언제 나올 것 같나?"


상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잖아! 클럽에서 노는 건 포기해야겠구먼.


"아마도 조사하고 밑바탕을 그리는 데 한 달 정도 걸릴 것 같습니다. 색칠은 그 뒤에 할 수 있을 겁니다. 어떻습니까?"


"블랙, 이건 일과에서 빼주는 일이 아니야. 알아 듣겠어? 난 가능한 한 빨리 식당에 그림을 걸고 싶다고." 이 대화로부터 4주 후에 첫 번째 그림이 걸렸고, 그다음 3주 동안은 매주 한 점 씩 걸어 총 4점의 그림이 걸렸다.


나는 고향 그림 대신 우리 대부분이 잘 알고 있는 오키나와 풍경을 그리기로 했다. 고향 풍경은 향수를 불러일으킬 것 같았다. 오키나와 풍경 중에서도 특히 이발소가 사람들이 많이 들르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림 오른쪽 위에 있는 창문을 보면 매음굴이 있었다.


"대위님, 물감이 다 떨어졌습니다."


"잘 했어, 블랙. 더 필요 없을 것 같아."


래리 로그스던은 HALO 클럽의 밴에 만화를 디자인하는 작업을 맡았는데, 마감일을 맞추기 위해 내게 그림을 그리는 것을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일은 일과 후 밤에 이루어졌다. HALO 클럽은 맥주를 제공했고, 많이 마실수록 그림이 더 잘 그려졌다.


1965년 4월, D중대는 첫째 주를 차량 유지관리에 할애했다. 4월 6일, 레이프 중위는 부중대장 임무를 맡았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그가 말하는 것이 들렸다. "1소대의 멍청이들 때문에 리븐워스에 가게 될 뻔했습니다."


4월 중순쯤에 이상한 소문이 여단의 중대들 사이에서 난무하기 시작했다. "이봐, 최근에 PX에 가봤어? 해병대 마누라들이 무리 지어 다니면서 정말 친절하게 대하고 있어. 오늘 아침에 한 명이 자기 남편이 록다운 걸렸다고 했어. 그녀와 그녀의 친구들이 오늘 밤 부사관 클럽에 올 거야."


"사병들 클럽에는 안 올까 궁금하네." 안토스코프가 웃으며 말했다.


"그러다 해병대한테 쥐어 터지려고?" 웨스터맨이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왜 그래, 웨스. 걔들은 록다운 걸렸다고. 어떻게 알겠어? 마누라들이 사실을 털어낼 일도 없잖아."


웨스터맨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여긴 고등학교가 아니니까 미국에 있을 때처럼 이미 임자 있는 여자하고 사귀어서는 안 돼. 알겠어?"


그리고 본부에서는 모든 훈련을 중단하고 "마운트 아웃 연습"을 실시하라고 지시했다. "마운트 아웃이 뭔데?" 웨스터맨에게 물었다. "직업군인이니 이런 건 알 것 아니냐. 또 다른 FTX야?"


"아니, 그냥 STRAC(전략 군단) 활동의 일부야."


"짬찌가 알아봤자 얼마나 알겠냐."이라고 나는 혼란스러워 하며 물었다.


"블랙, 넌 직업군인은 못하겠다." 웨스터맨이 웃으며 말했다. "그림 그리면서 테레빈유라도 마셨어? 해병대가 하는 일을 우리가 지원하게 될 것 같다는 말이야."


곧 중대는 실탄과 함께 군장을 챙기고 모든 차량의 전투 점검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젠장, 이 탄은 더럽게 무겁네." 새로운 장전수 중 한 명이 불평했다. 이 활동은 모든 사람에게 그저 또 다른 준비 훈련으로 보였다. 동으로 된 건 다 닦고, 군화도 거울처럼 윤이 나게 닦고, 전투복은 최대한 풀칠해서 날카롭게 주름을 잡았다. 우리는 속옷, 티셔츠, 양말, 손수건에도 풀을 먹였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다 다림질한 후에는 풋락커 진열을 위해서 골판지 구조물과 말아서 보관했다. 이렇게 하면 검열용 옷과 작업용 옷이 따로 나뉘었다. 중대장은 검사하는 날에 모든 작업복은 더플백에 넣어서 두돈반의 짐칸에 두라고 말했는데, 이 트럭은 검사가 끝날 때까지 오키나와를 돌아다닐 것이었다. "감찰관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를 거야. 분명 농담이겠지." 나는 웨스터맨에게 불평했다.


"농담이 아니야." 안토스코프가 대답했다. "그냥 군대일 뿐이지. 직업군인들은 더 할 것도 없어. 우리가 할 건 훈련하고 검열 뿐이지."


병영 바닥은 거울처럼 광이 나도록 닦았다. 금속제 관물대도 조명에 빛나도록 3-in-1 오일을 도포했다. 무기도 분해해서 모든 금속 부품을 가솔린에 담근 다음 세척하고 가볍게 오일을 발랐다. 모든 차량도 위장색으로 칠하고 새로운 번호와 이름을 붙였다. "데이브, 이 차량에 칠하고 있는 건 일반적인 군용 녹색이 아니야." 내가 관찰하며 말했다.


"나도 진지해. 그런데 너 정말 관찰력이 뛰어나네." 웨스터맨이 웃으며 말했다.


"왜?"


"위장 말이야, 세 가지 녹색을 무작위로 칠하면 차량 윤곽이 흐려져. 우리는 STRAC의 체리보이들이라고. 전쟁에는 준비가 안 되었을지 몰라도, 감찰관 상대로는 준비가 되어 있어." 데이브 웨스터맨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새로 페인트칠하는게 참 좋은데 안 그래?"


어느 날 아침, PT와 아침 식사 후 우리는 무기 검사를 하러 무기고로 갔다. 중대장이 대열을 따라 걸으며 .45구경 그리스건을 든 사람과 M14를 든 사람에게 무기를 반납하라고 지시했다. 우리는 각자 한쪽에 Colt Arm Manufacturing Company가 인쇄된 골판지 상자를 받고 무기고에 있는 테이블로 이동하라고 하라는 얘기를 들었다. 테이블에서 나는 상자의 한쪽 끝을 열고 플라스틱과 가벼운 금속으로 이루어진 조각 두 개를 꺼냈다.


아머러 한 명이 핀으로 조립하는 방법을 보여줬고, 나는 "샷건과 비슷하네."라고 말했다.


그러자 아머러가 "이건 M16이라고 한다."고 대답했다.


"장난하냐," 부사관이 불평했다. "이건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졌잖아! 22구경이나 쏘고 말이야. 이건 그냥 엽총일 뿐이야. 이걸 어디서 만든 거야? 마텔? 처음에는 그 빌어먹을 M14였고 지금은 이거냐! 차라리 M1 개런드를 가져가련다. 적어도 강하할 때 부러지지는 않잖아." 방 안팎에서 많은 불평과 투덜거림이 터져 나왔다. 우리는 M16의 훈련과 시험을 위해 사격장으로 끌려갔다. "이 빌어먹을 총은 무게감도 없어! 사방으로 다 튀네!" 한 부사관이 불평했다. "쓸모없는 똥 덩어리. 빌어먹을 플라스틱 무기. 빌어먹을 새끼들. 진짜 공수부대는 어떻게 되어 먹은 거야! 이거 하나 때문에 전역까지 고민해야 하나."


1965년 4월 22일, 나는 데이브 웨스터맨, 래리 로그스던, 마이크 안토스코프와 함께 2번 게이트 도로의 여러 클럽을 드나들며 20번째 생일을 축하했다. 이틀 후, 우리 모두 "A", "B" 가방, 그리고 "C" 상자를 포장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달의 남은 기간 동안은 중대에서 경계 태세를 유지하며 STRAC 검사를 기다렸다가 그다음에는 엄격한 현장 테스트를 기다렸다. 이는 모든 부사관들이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세심한 준비 테스트였다.


5월 2일, 핵심 인력이 알 수 없는 목적지로 선발대로 간다는 명령을 받았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또 다른 훈련을 위해 필리핀이나 대만으로 가는건가? 뭐가 어쨌든 우리는 확실히 준비가 되었지만." 늦은 오후에 선발대에 레이프 중위와 제임스 윈젤 하사가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그들은 다음 날 아침에 출발할 예정이었다. "이제 장소는 몰라도 시간은 알겠구먼." 웨스터맨이 농담했다.


5월 3일, 중대장인 조셉 C. 조던 주니어 대위가 마침내 목적지를 발표했다.


"방금 윌리엄슨 장군의 아침 브리핑을 듣고 왔다. 지금부터 말하려는 것은 우리의 파병으로까지 이어지는 사건의 순서다. 4월 24일, 장군은 웨스트모어랜드 장군으로부터 월남 사이공의 MACV 본부에서 만나자는 극비 메시지를 받았다. 이 월남이란 곳에서 게릴라전이 벌어지고 있는 듯하다. 173여단은 미 공군이 해당 국가의 기지에서 진행하는 롤링 썬더라는 작전에 참여하게 된다. 오늘 아침 들은 바에 따르면 월남 육군이 공군 기지에 대한 보안과 롤링 썬더 공습을 지원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월남군은 또한 베트콩이라고 알려진 게릴라에 대한 공세 작전을 수행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리고 윌리엄슨 장군은 몇 달 안에 여러 미군 사단을 월남에 배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173여단의 임무는 나중에 도착할 부대의 베이스캠프 예정지에 위치한 베트콩을 정리하는 것이다. 아마 60일 이상 지속되지는 않을 임시파병일 것이다. 선발대는 월남 공화국 비엔호아로 출발한다. 173여단은 경계 임무를 수행할 것이다. 사령관이 크리스마스까지 우리 모두가 오키나와로 확실히 돌아올 것이라고 발표했다. 우리의 첫 번째 임무는 우리 베이스캠프 지역인 비엔호아 공군 기지를 보호하고 순찰하며 모든 위협을 무력화하는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사항은 여기까지다. 부소대장, 보급소에서 녹색 염료 상자 가져와."


"잠깐만. 경계 임무 하는 데 녹색 염료를 쓴다고? 성 패트릭의 날까지 거기에 있어야 한다는 거야 뭐야? 위장크림 스틱이 다 떨어지기라도 했나?" 안토스코프가 웃으며 말했다. "크리스마스까지 돌아온다면, 붉은 화환과 전구만 둘러싸서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 수도 있겠네. 녹색 인간들의 침공도 아니고 뭐야."


"레프러콘의 침공처럼 들리네." 내가 웃으며 말했다.


"조용히 해." 포지 일등 상사가 명령했다.


"여기 있는 사람들 전부 파병에 대비해 모든 흰색 속옷을 녹색으로 물들여야 한다." 중대장이 명령했다. "내일 아침 전까지 이 작업을 완료해야 한다. 중대 해산."


"군에서 이런 짓거리를 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 웨스터맨이 코웃음을 쳤다. "일본 구두닦이 소년이나 그 어머니를 불러서 대신 시킬 수도 있잖아. 일주일 정도는 손에서 녹색 물이 빠지지도 않겠네."라며 불평했다.


"이게 뭐야, 게릴라랑 싸우는 거야? *시애틀 우드랜드 파크 동물원에 있는 보보와 피피 같은 게 있다면 우리도 당하겠지. 그 녀석들은 엄청 크고 강하잖아. 그리고 월남군은 뭐야? 반바지는 갈색으로 염색해야 하나?"


*게릴라와 고릴라의 발음이 비슷해서 한 소리


"알 게 뭐야." 로그스던이 대답했다. "그나저나 이발소가 문을 닫았다는 소식 들었어?"


"아니, 진짜야?" 안토스코프가 물었다.


"그래, 장사가 안됐어. 돈이 존나게 빠져나갔으니까." 그는 웃었다.


"로그스던, 네가 아직도 아다라는데 내 한 표 건다." 안토스코프가 짜증 내며 쏘아붙였고, 로그스던은 더 크게 웃었다.


5월 4일, 중대는 9대의 SPAT를 없애고 M113 장갑차로 교체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5월 5일, 중대는 다음 날 선적될 차량을 준비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5월 6일, 우리는 선적 담당관인 길모어 중위의 지휘하에 차량이 적재된 오키나와 항구인 나하항으로 향했다.


"그가 이 일에 대해 잘 알고 있을거라고 생각해?" 나는 웨스터맨에게 물었다.


"도대체 누가 알겠어." 웨스터맨이 대답했다. "진심으로, 그는 너보다 어리고 아무것도 모르잖아. 게다가 그는 장교야. 도대체 뭘 알겠어?"


"똥. 그리스와 함께 공포탄에 처넣을 때만. 내가 아는 건 이게 전부야." 나는 웃었다.


1965년 5월 7일 1000시, 제16기갑 D중대는 USS 제너럴 W. A. 만(T-AP112)에 승선하여 오키나와의 나하항에서 월남 공화국으로 향했다.


"데이브, 나는 오늘까지 해서 오키나와에서 12개월 12일을 보냈어."


"벌써 말년 시간 계산하고 있냐? 사병 마치려면 1년 더 남았어. 숏타이머 짓거리는 하지마. 지금보다 더 미칠 테니까. 게다가 넌 어차피 재입대할 거잖아." 웨스터맨이 웃으며 말했다. "이제 네 핏속에는 군대 녹색이 흐르고 있다고. 네 손을 봐. 속옷 염색하고 손 안 씻었어?"


"좀 진지해지라고! 나는 3년 복무에 지원했고 그게 전부야. 군은 나 같은 놈이 있을 곳이 아냐. 계획은 입대하고 복무하고 나가는 것뿐이었는데 게릴라들 상대할 줄은 몰랐다고."


173공수여단은 월남에 배치된 최초의 미 육군 부대였다. 5월 12일 1216시, 16기갑 D중대가 동남아의 파리라 불리는 사이공의 항구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