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7월
173공수여단에서 첫 파병을 수행했을 때, 나는 그린베레 및 173공수여단, 해병대 포스리콘, 82공수사단, 101공수사단의 다른 정찰대원들을 지켜보았다. 정찰대원에게는 뭔가 다른 특별한 것이 있었다. 정확히 집어서 말할 수는 없지만, 나는 정찰대원이 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다. 강렬했지만 항상 농담을 주고받았다. 마치 우리와는 다른 전쟁을 치르고 있는 것 같았다. 모두 그들이 최고 중의 최고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우리는 노스캐롤라이나주 포트 브래그의 그린베레 훈련단 B중대를 나왔다. 처음에는 미 육군이 배출한 가장 훌륭하며 최고의 신체 조건을 갖춘 500명의 군인이 있었다. 1968년 5월에 훈련이 끝났을 때는 70명도 채 되지 않는 사람들만 남아 자랑스러운 녹색 베레모를 받았다. 우리는 최고의 병사들과 함께 일할 자격을 얻었다. 젠장, 우리가 그 최고의 병사였다! "하늘이 내려준 군인들." 미국의 최고 병사들이자, 국가의 영웅들. 지급된 베레모 외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조종사용 선글라스, 스타사파이어 반지, 데몰리션 나이프, 골드 오이스터 롤렉스 시계뿐이었다. 그렇게 필수적인 이미지가 곧 완성될 것이었다.
사실 이 모든 것들은 이미지와는 전혀 상관없었고, 현실적인 문제들 때문이었다. 베레모는 표준 군용 캡과 같이 챙이 없기 때문에 항상 햇빛이 우리 눈에 들어왔다. 이것이 선글라스가 필요한 이유였다. 공군에는 선글라스가 있었는데, 정말 멋진 비행사 선글라스가 지급됐다. 반면 육군에는 선글라스가 없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공군 파일럿들로부터 선글라스를 슬쩍 가져왔다. 롤렉스와 스타사파이어 반지는 알다시피 미끼 용도로 사용했다.
"데몰리션 나이프는 어디다 씁니까?"
"일단 구해와. 야전 장비의 일부로 필요하니까."
"알겠습니다, 병장님. 하지만 저는 폭파에 대해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건 공병 전문 분야잖습니까."
"화기 주특기들도 모두 폭파에 대해 알아야 한다. 하나 구해와! 알겠나?"
나는 입대 시험과 특수전 학교 훈련 자체에 놀랐다. 처음인 1단계에서는 하루 8시간 동안 교실에 앉아 강의를 듣고 메모를 했다. 숙제와 논문을 작성하고, 수업 중과 수업 후에 소규모 팀 작업에 참여했다. 이 1단계에서 그룹의 절반이 탈락했다. "하루 종일 교실에 앉아 있을 거면 공군에 갔을 거야." 또는 "이건 대학 입시도 아니고 무슨 짓거리야!"와 같은 말을 매일 들었다. 1단계를 통과하는 데 필요한 것은 예상치 못한 상황을 기꺼이 견뎌내겠다는 의지의 태도였다. 우리 중 누구도 이 수업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다.
2단계 동안 우리는 작전, 정보, 의무, 공병, 화기 등 다양한 주특기로 나뉘었다. 이제부터 실습 단계였다. 나는 화기 주특기 훈련을 받았다. 예전에 82공수사단 17기병대와 173공수여단 16기갑 D중대과 같은 곳에서 포, 전차, 중박격포, 이동식 로켓 발사기와 같은 중화기를 다룬 경험이 있었다. 나는 보병 분대 전술과 중기관총, 경기관총, 소총, 권총, 휴대용 박격포와 같은 경화기 훈련을 받았다. 이 단계의 막바지에는 시험에 통과한 사람들이 다시 모여 2주간의 현장 훈련을 받았다. 첫 주에 우리는 OCS에 대항하는 게릴라 부대로 활동했다. 둘째 주에는 힘든 장거리 순찰 훈련을 받았다. 시험 후 인원들 수가 줄었다는 사실을 아무도 깨닫지 못했다. 이 남은 인원들은 특별 명령을 받을 소수의 그룹이었다.
수료 직후 우리 네 명은 기뻐하며 데이브 랭의 포드 컨버터블에 올라타 사병 클럽으로 향했다. 그 컨버터블에는 데이브, 나, 밥 굴렛, 스티븐 엥겔케가 타고 있었다. 우리 네 명의 영웅은 그날 오후에 자랑스럽게 술에 취했다. 다음 날 아침 데이브는 30일간의 신혼여행을 위해 위스콘신으로 돌아갔다.
"도대체 누가 위스콘신에서 신혼여행을 하겠어?" 엥겔케가 놀렸다.
"위스콘신을 많이 볼 일은 없겠지." 데이브가 웃으며 말했다. "블랙, 너는 어디 가게?
"내 누이 집이 있는 "민간"에서의 마지막 날을 보내러 시애틀로 간다."
"누이 집? 같이 지낼 여자 친구 없어? 여자랑 같이 지내는 것보다 이 둘을 택할 거야?"
"엿 먹어, 랭," 내가 미소를 지었다. "내 누이도 여잔데 뭘."
"내가 말이 바로 그거야. 그 여자는 네 누이잖아, 바보야. 월남으로 가기 전에 섹스도 없이 가겠다는 거야?"
누이인 칼라의 뒷마당에서 마지막 오후를 보내던 중, 내 두 남동생 중 한 명인 휴가 우리와 함께했다. 오늘은 민간 사회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이었다. 휴는 탱크탑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한쪽 무릎에서 엉덩이까지 이어진 흉터가 드러나 있었다. 맥주를 몇 잔 마신 후 휴는 박격포 포격으로 다리 부상, 갈비뼈 및 팔 골절, 얼굴과 몸통에 파편상을 잔뜩 입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러고는 매디건 육군 병원에서 회복하면서 있었던 몇 달간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밥과 스티브는 그 부상을 보고 눈에 띄게 충격을 받았고, 부적절한 치료 및 월남에 자원한 사람들을 어리석다며 경멸한 병원 직원들의 이야기에 더 큰 충격을 받았다. 오후의 분위기는 어두워졌고, 술 소비가 늘어났다.
"마지막 날이네." 굴렛이 부드럽게 중얼거렸다.
"그래. "맥주 한 잔 줘", 엥겔케가 공감했다.
칼라가 가벼운 저녁 식사를 일찍 내왔다. 마지막 만찬을 먹으면서 휴는 퉁명스럽게 "도대체 망할 월남으로 돌아가서 뭐 하려고?"라고 물었다.
나는 잠시 놀란 채로 휴를 멍하니 쳐다봤다. "복수 때문이지." 나는 조용히 대답했다.
"무슨 복수?" 휴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무슨 뜻인지 깨달았다. "이 멍청아. 넌 더 이상 내 보모도 아니고, 형도 아니야. 나 대신 싸울 필요는 없어. 나는 의무를 다했고, 복무도 다 했고, 이제 대학에 가면 끝이야. 이제 내 인생을 살 때라고. 나라에서 3년 동안 다녀오라고 했고, 이미 다녀온 사람들 외에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걸 장담할 수 있어. 가끔 대부분 신경 쓰지도 않는 것 같지만. 이제 그만해야 해, 형. 이제 잊을 시간이고 쿨러에서 맥주 한 잔이나 꺼내 줘. 이 멍청한 바보야."
이 말은 내가 월남으로 돌아갈 공개적인 이유를 확실히 없애버렸다. 나는 물어본 사람들한테 전부 내 남동생을 다치게 한 찰리에게서 가죽을 뜯어올 것이라고 말해 왔다. 하지만 이제는 그 동생이 영원히 동생으로 살 것도 아니니 철 좀 들라고 하고 있다. 이런... 씨발. 왜 내가 재입대하기 전에 이 말을 하지 않은걸까?
난 혼자 웃으며 생각했다.
나는 그린베레다. 나는 정찰대원이 될 것이다. 그래서 월남에 돌아가려고 하는 것이다. 나는 어떤 분야에서 최고가 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고 싶다.
3일 후, 굴렛, 엥겔케, 나, 데이브 랭은 나트랑 제5특전단 본부에서 환경 적응을 하며 The Club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30일 동안 이 기후에 익숙해지고 가능한 한 많은 수분을 섭취해야 해. 나는 확실히 할 수 있지." 랭이 미소를 지었다.
"니들은 내일 새벽 0030시에 가게 될 거다." 엥겔케가 REMF 사무원의 남부 사투리를 따라 하며 말했다.
"난 아니야, 인마. 너희들은 어디로 가는 거냐?" 데이브 랭이 물었다.
"북쪽에 있는 다낭." 내가 대답했다. "너는 우리하고 같이 안 가냐?"
"나는 여기서 복무하라고 하더라. A팀이나 같은 곳에 배정될 것 같아. 우리 넷이 헤어지는 건 싫은데 말이지."
"랭, 네가 죽으면 네 차를 내가 가져가도 되냐?" 엥겔케가 농담했다. "물론." 랭이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내 아내와 아이도 같이 데려가."
다낭 세이프 하우스 22에 도착한 우리 셋은 한때 마차 숙소였던 작은 별채에서 극비 브리핑을 초조하게 기다렸다. 길고 넓고 두꺼운 판자 테이블 뒤에 중사가 서 있었다. 그의 뒤에는 초록색 베레모와 빳빳한 제복을 입은 대위가 조용히 앉아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린베레 특유의 여유로운 몸짓으로 중사가 우리에게 앉으라고 손짓했다.
대위가 의자에서 일어나 말했다. "브래그에서 훈련을 받는 동안 너희들은 월남 군사 지원 사령부, 조사 및 관찰단에 잠재적으로 선발되었다."
조사와 관찰. 그게 도대체 뭔데? 젠장! 난 정찰대원이 되려고 돌아왔는데 우리를 사무쟁이로 만들려고?!
"일련의 브리핑을 할 건데. 그 중 첫 번째는 이 브리핑을 계속 진행할지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브리핑을 이어가기 전에, 지금부터 듣게 될 내용은 극비로 분류되어 있으며 각자 앞에 있는 비공개 양식에 서명하길 바란다. 양식을 읽어봐라. 서명할 생각이 없다면 일어나서 방을 나가라. 질문은 받지 않는다."
양식을 읽으라고? 좋아. 양식에 서명하고 중사에게 넘기면 되겠지. 사무쟁이가 아니어야 할 거야. 극비 사무쟁이도 마찬가지고.
나는 양식을 읽은 후 하단에 서명을 하고 우리 사이를 돌고 있던 중사에게 건넸다.
"이 브리핑을 진행하는 동안 궁금한 게 있으면 자유롭게 질문해라. 시작 전 질문 있나? 없나? 먼저 약간의 배경 설명이다... FDR은 인도차이나 지역을 프랑스 식민지로 되돌려 놓기보다는 독립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처칠은 이 아이디어를 거부했는데, 식민주의를 유지하기를 바라던 영국과 프랑스에게 있어서 식민주의 문제에 대한 선례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호치민은 베트남의 민주적 독립을 위하여 프랑스와 미국 양국과 협력하기 위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시도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노력이 결실을 보지 못하자 호치민은 러시아와 공산 중국에 도움을 요청했다. 이 두 식민지 강국으로 인해 트루먼 대통령은 1950년 당시 공산 세력이었던 베트민에 대한 프랑스의 전쟁 비용을 부담했다." 대위는 태연하게 물 한 잔을 꺼내 한 모금 마셨다.
"베트남은 인도차이나로 알려진 이 지역의 6개 국가 중 하나다. 다른 5개국으로는 버마,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 말레이시아가 있다. 대다수의 미국 지도자들은 프랑스의 베트남 식민 지배를 지지하지 않았지만, 베트남에 새로 들어선 공산주의 정부는 더더욱 반대했다. 미국의 관점에서 프랑스의 식민 지배는 두 가지 중에서 차악이었다. 최악은 외세의 지배로부터 자유로운 독립 베트남을 주장하던 호치민이 구성한 공산주의 세력인 월맹이라고 판단했다. 호치민은 여러 차례에 걸쳐 미국의 혁명을 영감으로 삼았고, 방금 언급한 것처럼 그의 대의를 위해 미국에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호치민이 공산주의자가 된 이후로 미국은 프랑스 편을 들었다. 불행히도 프랑스의 통치는 4년 후인 1954년에 디엔비엔푸에서 패배하면서 끝났다. 이후 50~60년대에 걸쳐 남쪽인 월남과 북쪽인 월맹이 불안정해지자 미국은 인도차이나에 대한 정치, 경제, 군사적 개입을 강화했다. 이 모든 일은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케네디 대통령하에서 일어났다. 디엔비엔푸 전투 4년 후인 1958년, CIA는 월남 비밀정보국에 자금을 지원하기 시작했고, 이는 1963년부로 특수부대 사령부로 재지정되었다. 4년 전인 1964년 4월, 월남 정부는 월남 특수부대 사령부를 대체하기 위해 특수공작국(SES/Special Exploitation Service)을 창설했다. 동시에 CIA는 미 합동참모본부가 새로 운영하는 월남 군사 지원 사령부, 조사 및 관찰단, 즉 MACV-SOG로 자문 역할을 이관했다. 또한 작년에 월남은 SES의 명칭을 전략기술국(STD/Strategic Technical Directorate)으로 변경했다." 목을 가다듬은 대위는 물 한 잔을 집어 들고 한참을 마셨다.
이것들을 도대체 왜 알아야 하는데?
"질문이 있나? 없어? 좋아, 본론으로 들어가지. 너희들은 FOB에 배치될 것이다. 전진 작전 기지, 즉 FOB는 1964년부터 존재해 왔다. 푸바이, 케산, 캄득, 다낭에 위치해 있다. 이 FOB들은 월남 밖에서 기밀 작전을 수행한다."
기밀 작전! 사무쟁이가 아닌 건 확실하네. 점점 흥미로워지는걸.
"뭐?" 놀란 일행이 중얼거렸다. 그는 놀라움을 감추려고 "하와이 같은 곳에서 R&R 보내는걸 말하시는 겁니까?"라고 말했다.
대위는 미소를 지으며 "그게 임무라면 나도 자원했겠지."라고 말했다. 우리 모두 웃음이 터졌고, 대위는 계속해서 브리핑을 이어갔다. "라오스로의 작전은 1965년 9월 샤이닝 브라스 작전의 일환으로 시작되었으며, 최근에는 프레리 파이어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월남 밖에서의 작전은 스파이크팀이라 불리는 정찰팀이나 해칫포스, SLAM 중대가 수행한다."
-to be continued...
이 이후는 책이 올 때까지 보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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