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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스트라이커 마이어 작성


8년간의 월남 비밀 전쟁 동안 그린베레가 이끄는 정찰팀과 중대 규모의 부대가 국경 너머 캄보디아, 라오스, 월맹에서 극비 임무를 수행했을 때, MACV-SOG 부대가 현장에 투입되기도 전에 많은 임무가 발각되었다. 정확히 얼마나 많은 임무가 발각되었는지, 얼마나 많은 그린베레와 용감한 현지 대원들이 이러한 사악한 짓으로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게 되었는지는 고도로 기밀화된 SOG의 특성, 엄격하게 구분된 지휘 구조, 극도로 좁은 정보 및 방첩 보고 채널로 인해 결코 알 수 없다.


따라서 이러한 백악관으로 정보 보고가 즉시 전달되는 극비 임무를 수행하는 데 숨겨진 공포 중 하나는 어느 정도로 발각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서류가 거의 없으며, 문서화되어 있더라도 결코 알려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었다.


최근 4곳의 출처에서 수집한 정보에 따르면, 이 비밀전쟁에서 가장 치명적인 임무를 수행하며 100% 이상의 사상자를 냈던 SOG 그린베레 대원들의 오랜 두려움은 사실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과거의 전사들에겐 이러한 발각에 대해 아는 것이 중요하며, 미래의 전사들과 지휘 체계에서는 미래의 비밀 작전에서 발생할 수 있는 발각을 방지하기 위해 더 부지런히 노력할 수 있기를 바란다.


현장의 러시아인들


라오스, 캄보디아, 월맹, DMZ에서 러시아인과 그들의 공산주의 친구에 대한 증거는 일찍이 보고되었다. 1968/1969년 SOG FOB 1, 2, 3의 지휘관이었던 로이 바흐 중령은 "1967년부터 러시아인에 대한 보고가 있었다. VC에게는 현장에서 정찰팀을 감시할 수 있는 정교한 장비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런 종류의 지원은 러시아에서 직접 온 것이라고 추정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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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가을, 푸바이 FOB 1에서 열린 훈장 수여식에 참석한 로이 바흐 중령(맨 왼쪽))


1968년 11월, 푸바이 FOB 1의 RT 아이다호는 라오스에서 작전을 수행하던 중 러시아 파일럿이 라오스에 있는 병사 및 월맹 동맹군에게 공중 보급을 실시하는 것을 무전기로 들었다.


1968년 11월과 12월, 팻 왓킨스 중사는 FOB 1 임무를 위해 코비(SOG 전방 항공 관제기)에 탑승하여 라오스와 DMZ 상공을 비행했는데, 그는 당시 작전 FM 주파수에서 영어를 구사하는 월맹군을 자주 접했다.


왓킨스는 최근 인터뷰에서 "AO 상공에 도착하면 적들이 무전으로 날 맞이할 정도로 상황이 나빴다. 나는 그들에게 우리 주파수에서 베트남 음악은 그만 틀고 로큰롤이라도 틀라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가 현장에서 작전을 수행하는 팀과 무전을 나눌 때는 정말 심각했다. 그들은 우리의 무전 송신을 방해했다. 우리가 팀에게 (PRC-25 FM 무전기 주파수 다이얼에서) 두 클릭 올리거나 두 클릭 내리라고 하면 월맹군도 똑같은 행동을 취했다."라고 말했다.


1968년 12월 초, HML-367의 해병대 건쉽 파일럿 조지 "부" 밀러는 SOG 팀 구출 중에 그들의 유명한 호출 부호인 "스카페이스"를 알고 있는 영어 구사자로부터 자신의 UHF 주파수로 보내진 무전을 받았다.


밀러는 2008년 10월에 "그는 FOB 1 정찰팀을 구출하는 동안 여러 번 무전을 보냈다. 그때 나는 탄약과 로켓이 다 떨어져서 도어거너가 계속 사격하고 수류탄을 던질 수 있도록 저공비행을 하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DMZ에서 마지막 기총소사를 하던 중 밀러는 팀의 LZ 바로 동쪽에서 러시아군 장교를 목격했다.


"그 순간을 절대 잊지 못할 거다. 어깨에 붉은 견장이 달린 회색 유니폼을 입은 큰 백인 남성이 있었다. 그는 팀 바로 동쪽에 있는 작은 공터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내 부조종사도 그를 봤다. 우리는 우리가 본 것을 확인하기 위해 다시 해당 지역 상공을 비행했다." 밀러가 말했다.


그러나 밀러가 그를 "쏘기 위해" 돌아왔을 때, 러시아인은 "사라져" 있었다. 팀을 성공적으로 구출한 후, 밀러는 반더그리프트 기지의 해병대 장군에게 목격 사실을 보고했다. 그는 이 목격에 대해 그 이상의 얘기는 듣지 못했다.


약 6개월 후, 라오스에서 임무를 수행하던 중 RT 아이다호 1-0(팀장)인 린 M. 블랙 주니어와 그의 1-1(부팀장)인 더그 "프렌치맨" 르터노는 큰 산의 아래쪽 개울에서 여성 몇 명과 함께 목욕하고 있는 백인 남성을 목격했다. 무기로 쏘기에는 그 러시아인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고, 블랙이 전술 항공 자산을 소집하는 데에도 실패했다.


한 달 후, 또 다른 DMZ 목표에서 르터노는 FM PRC-25 무전기로 평생 잊지 못할 무전을 받았다. 한 남자가 억양이 섞인 영어로 "RT 아이다호. RT 아이다호 나와라."라고 말했다.


정오 무렵이었기 때문에 르터노는 코비가 일상적인 통신 점검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당시 작전 지역에 코비가 없었다는 점이었다.


49년이 지난 오늘날, 르터노는 "여러 가지 이유로 그 무전을 잊지 못할 것이다. 갑자기 무전 침묵을 깨고 영어를 구사하는 목소리가 들려왔고, 그는 우리 팀 이름과 나, 블랙의 이름 및 호출부호도 알고 있었다. 정말 놀랐다... 게다가 그는 이전에 RT 아이다호에서 몇 가지 임무를 수행했으나 해당 임무 며칠 전에 미국으로 돌아간 SOG 의무병의 이름은 언급하지 않았다. 그 대원이 우리와 함께 없다는 것도 그 빨갱이 자식이 알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블랙은 어리둥절해하는 르터노를 바라보았고, 이어서 수화기를 잡고 "누구인가?"라고 물었다.


그 수수께끼의 남자는 블랙에게 팀의 위치를 알고 있으며, 그와 그의 친구들이 RT 아이다호 대원들을 찾아서 죽이거나 생포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RT 아이다호가 있는 6자리 좌표를 지도에 확보했다고 말했다.


블랙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내가 도와줄게, 개새끼야. 여기 8자리 좌표가 있다. 바로 여기에 내가 있다."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안다, 블랙잭. 그리고 프렌치맨도 잡을 거다. 친구들을 데리고 당신을 잡으러 가겠다."


블랙은 잠시도 멈추지 않고 맞받아쳤다. "난 네 애미도 알아, 등신아. 네 KGB 임무를 따내려고 러시아 돼지 새끼 수백마리와 떡쳤지만 네가 애미 닮아 멍청해서 미국 대신 DMZ로 보내진 거잖아."


바로 그 순간, RT 아이다호는 매우 가파른 산 정상 근처에 있었다. 아무리 멍청한 러시아인이라도 높은 지대에 있는 중무장한 SOG 정찰팀을 공격하면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리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적의 공격은 시도되지 않았다. 명백히 발각됐기에 RT 아이다호는 고도로 숙련된 용감한 월남 파일럿들이 조종하는 H-34 킹비 헬기에 의해 LZ에서 철수했고, 철수 중 적의 집중 사격을 받았다. 블랙은 사이공으로 날아가 모든 것을 보고했다. 그의 보고에 대해 어떤 조치가 취해졌는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 있다.


바흐 중령은 "우리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얻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당시 그는 콘툼에 있었지만, 그 사건에 대한 소문은 그의 작전 본부에도 전해졌었다. "우리 팀이 극한의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SOG의 통신 보안이 얼마나 심각하게 침해되었는지는 깨닫지 못했다."


러시아의 "비밀 전쟁"


12년 전 러시아 투데이의 제임스 브라운 기자가 동남아에서 소련의 비밀 전쟁에 참전했던 3,000명의 러시아인들의 첫 공개 전우회를 취재하면서 월남 내 러시아인에 대한 두 번째 확인이 인터넷에 처음 드러났다.


모스크바 외곽 자리야에서 열린 이 전우회는 1965년부터 1973년까지 이어졌던 러시아의 비밀 전쟁, 즉 월남에 공식 참전한 지 35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였다. 이들은 정부가 거의 20년 동안 참전을 부인했던 전쟁에 참전한 소련의 "잊혀진 군인"이었다.


1991년에 구 공산 정권이 붕괴된 지 한참이 지난 지금에서야 러시아와 월맹 관리들이 3,000명 이상의 소련군이 월남에서 미군과 싸웠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러시아 투데이에서 니콜라이 콜레스닉이라는 이름으로 확인된 러시아 참전자 중 한 명은 "우리는 군사 전문가 집단으로 알려졌다. 사령관이 선임 전문가였다. 따라서 기술적으로는 월남에 러시아인이 없었다. 우리가 아는 것들은 우리가 소련인이며... 소련 군인이며... (미국의) 공습을 막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해야 했다는 것뿐이었다."라고 말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러시아인들 또한 적지에서 활동하던 SOG 대원들처럼 나름대로 그럴듯한 부인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베트남 측 월남전 참전자인 리 콩 니엠은 러시아 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월맹의 공산주의자들이 "... 러시아 장비와 러시아 전문가들에게 많은 존경을 표했다"고 말했다.


관련 공산주의자들의 확인


익명을 요구하며 15년 이상 자신이 일한 정확한 기관의 명칭 또한 밝히지 않은 미 정보 커뮤니티의 한 관계자가 이반 녀석들의 SOG 작전 무선 통신 침투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제공하며 동남아에 러시아인들이 있었던 세 번째 증거를 확인했다. 2019년 7월 26일에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SFA 챕터 78 회원인 더그 "프렌치맨" 르터노가 몇 년 전에 독자적으로 이 요원의 이야기와 고용 이력을 확인했다.


이 요원은 인터뷰에서 정보기관에 근무하던 초기에 냉전 말기 유럽에서 동독인 및 체코인과 긴밀히 일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러시아의 동남아 비밀 전쟁 시기에 베트남에서 복무했던 러시아인들과 함께 일한 적이 있었다. 이 요원은 80년대 중후반에 동독,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비밀 작전을 은밀히 수행하며 적진 뒤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고, 결국 여러 공산주의자들과 친분을 쌓게 됐다.


당시 비밀 작전의 핵심 요소는 동구권/바르샤바 조약군과 협력하여 손에 넣을 수 있는 거의 모든 것들을 물물교환하고 이를 팔 수 있는 물자로 교환하는 것이었다. 그 동안 이 요원은 자신의 기계 공학 기술과 경험을 활용하여 공산주의자들과 긴밀히 협력하면서 신뢰와 인정을 얻었다.


"당시 동구권 국가에서는 화폐가 쓸모없었기 때문에 암시장은 화폐로 거래되지 않았다."라고 그 요원이 말했다. 그는 화폐 대신 미국산 청바지, 레이싱 고글, 장갑, 티셔츠, 밝은 색상의 로고 스티커를 무전기, 화학 보호 장비, 가이거 계수기, 레이더 비트, 조종사 헬멧, 러시아 스타라이트 스코프 등 기밀로 취급되는 매우 민감한 물품과 같은 FORMAT(Foreign Material/외산 물품)과 교환했다.


그의 최우선 순위는 "데이터 기록 장치, 블랙박스, 비행 차트, 훈련 및 평가 매뉴얼, 그리고 기술에 관한 모든 것 등"과 같이 항공기와 관련된 모든 것을 입수하는 것이었다.


이 요원의 말에 따르면 80년대 후반에는 국경 경비대가 사람들을 막기 위해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동구권 국가에 침투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가 FORMAT 하드웨어 및 물품과 교환할 물자를 가지고 침투하여 국경 근처의 안전 가옥으로 가져가면 러시아 요원들이 대가를 받고 모든 물품을 서독으로 밀수해 주었다. 그런 다음 그곳에서 우리는 전리품을 미국으로 운반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해당 요원은 공산주의자들과 친분을 쌓았고, 결국 러시아가 베트남에서 "옐로 몽키"라 불린 베트남인들을 도운 제한적 비밀 대리전에 대해 듣게 됐다.


"그 당시 나는 SOG에 대해 잘 몰랐다."라고 그 요원이 말했다. "내가 미국인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내게 인상을 주고 싶어 했고, 그래서 그들에게 이야기를 해보라고 했다. 대개 그들은 미국인들에게 동남아에 있던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 했다. 그들은 소련 대원들의 상당수가 대공 방어와 하노이 주변의 레이더 운용을 전문으로 하는 우크라이나 출신 포병대원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남쪽으로 더 내려가 월맹의 통신 전문가와 함께 일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레그혼과 히코리의 SOG 무전 교신을 모니터링했다고 말했다."


레그혼은 1967년 초 라오스 남부의 산 정상에 개설된 최초의 무선 감청/중계지였다. 처음에 이글스 네스트라고 불린 이 중계지는, 1972년에 비밀 전쟁이 끝날 때까지 콘툼 FOB 2의 SOG 대원들이 운영했다. 히코리는 FOB 1, 3, 4의 정찰팀이 프레리 파이어 AO 또는 DMZ 목표에서 FM 주파수를 통해 연락할 수 있는 무전 중계지였다. 1971년 6월에 월맹군이 이곳을 점령했다. 당시 존 카바이아니 하사가 이 기지를 방어한 공로로 명예 훈장을 수훈했다.


그 요원은 "러시아인들은 SOG 대원들을 엄청나게 존경했지만, 미국이 월남에서 왜 더 정교한 통신 장비나 최소한의 암호화 통신 장비를 사용하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 요원은 적진 뒤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월남, 앙골라, 쿠바, 이집트 등의 국가에서 근무했던 소련 대원들과 일한 최고위급 특수 작전 교관을 비롯하여 더 많은 고위급 공산당 관리들을 만나게 되었다. 이 고위급 소식통은 그에게 특수 작전 훈련을 받은 소련 장교 한 명이 외국 군사 고문으로 활동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소련 장교는 SOG 무전 주파수를 청취하고 스파이크 팀이 공개 주파수에서 기본 암호어를 사용하여 공습을 요청하는 것을 들었다고 말했다. 또한 이 소련 요원은 SOG 팀과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통신 전문가로 라오스에 배치되기 전 쿠바에서 훈련을 받은 그는 스페인어와 영어를 구사할 수 있었다. (이 소련 요원은 나중에 앙골라에서 쿠바군을 지휘하다가 1979년경 그곳에서 사망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들려준 미국 정보 요원은 이렇게 말했다. "결론은 다음과 같다. 러시아인과 월맹군은 SOG 정찰팀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또한 팀의 LZ가 어디에 있는지도 알고 있었다. 얼마나 많이 알아냈는지는 다 말할 수도 없을 정도다. 특히 콘툼, 다낭, 푸바이, 케산의 팀이 월경 임무를 수행한 라오스에서는 여러 SOG 정찰팀의 코드명까지 알고 있었다."


2018년 말에 르터노가 이에 덧붙였다.


"얼마나 심각했는지 말하자면, 그들은 우리에 대한 파일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 정보원이 나와 RT 아이다호에 대한 파일을 봤다고 했다. 상상이 되는가?! 일례로, 내가 RT 버지니아의 1-0인 건터 월드와 함께 라오스의 강을 따라 떠내려가는 연료통에 폭발 장치를 설치하는 임무를 수행했었는데, 우리가 로프에 매달려 철수하던 중 드럼통이 터지며 강력한 폭발이 발생했었다. 그 충격파가 우리와 철수 헬기를 강타했을 정도였다. 이 임무에 관한 내용이 러시아인들이 가진 내 파일 속에 있었다. 그들은 또한 린과 내가 쿠바 빨갱이와 대화를 나눈 사건에 대한 언급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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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가을, ST 버지니아의 현지 대원과 촬영한 더그 르터노)


사이공의 스파이


미국 정보 장교는 또 다른 정보를 하나 더 알게 되었다. "사이공의 SOG 최고 사령부에 적 요원이 있다고 들었다. 그들은 너무 깊은 곳에 있어서 월남전 중 한 번도 노출되지 않았다."


이 사실은 많은 SOG 본부에 첩자, 즉 스파이가 있다는 여러 1-0들의 의심이 사실이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또한 조지 "스피디" 가스파드 소장은 1996년 하노이 텔레비전 쇼에서 자신이 아는 "프랑수아"라는 인물이 SOG에서 수년간 스파이로 복무한 공로로 하노이 최고 군사 훈장을 받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월남과 SOG에서 여러 차례 파병 임무를 수행했던 가스파드는 "프랑수아"를 알고 있었고, 그 프로그램을 보며 "충격"을 받았다. 프랑수아는 미국에 고용되어 있는 동안 매우 민감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었다.


작가이자 SOG 정찰대원이었던 존 L. 플라스터는 가스파드가 사이공에서 "프랑수아"와 함께 서 있는 사진을 가지고 있는데, 당시 가스파드는 이 스파이가 월맹군을 위해 무슨 일을 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가스파드와 "프랑수아"의 사진은 플라스터의 책 SOG: A Photo History of the Secret Wars의 463페이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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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사진, 왼쪽에 체크무늬 셔츠가 "프랑수아" 요원이다)


가스파드는 "그가 SOG 작전에 피해를 줬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라고 말했다. "다시 말하지만, 이 모든 것을 어떻게 판단할 수 있겠는가? 비교를 통해 STRATA 팀의 성공률을 살펴보면 STRATA 팀이 성공한 이유를 알 수 있다. 우리는 사이공과 단절되어 있었고, 따라서 월맹군과 러시아인이 우리를 상대로 공작을 펼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가스파드는 1967년 10월에 STRATA 작전을 맡아 1968년 9월까지 월맹에서의 임무를 지휘했다. OP-34B 예하에서 작전을 수행한 STRATA의 독특한 점은 태국에서 공군 헬기를 타고 출격했다는 점이다. 이 공군 승무원들은 사이공에 사전 임무 보고를 하지 않고 모든 투입 및 퇴출을 수행했다. 가스파드가 STRATA에 재직하는 동안 24개 팀이 다양한 정보 수집 임무를 위해 월맹에 투입되었다. 그 기간 동안 단 1.5개 팀만 손실되었고, 150명 이상의 STRATA 팀원들이 투입 후 성공적으로 철수했다.


가스파드는 2008년 나와의 인터뷰에서 "다시 말하지만, 우리들의 성공의 핵심적인 부분은 별도의 지휘 체계를 갖춘 것과 사이공으로 보고를 하지 않은 것이었다. 우리는 알아야 할 것만 알려주는 식으로 공군과 함께했다."라고 말했다.


제일 중요한 것


마지막으로 정보 전문가들이 현장에서의 SOG 통신은 물론 당시 해군 및 육군 정보암호통신에 의한 대부분의 일급 기밀 통신을 침해하는 데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인정하는 두 건의 해군 보안 침해 사건이 있다.


1968년 1월 23일, 대마도 해협에서 소련 해군 활동을 감시하고 북한의 신호 및 전자 정보를 수집하는 특정 명령을 수행하던 첩보함인 "배너급" 환경 연구선 USS 푸에블로가 북한에 의해 나포되었다. 한 해군 정보 장교는 러시아가 푸에블로호를 나포하도록 북한을 압박했고, 나포 후 북한에 정박하자마자 러시아 요원이 선박에 탑재된 암호화 장치를 압수했다고 말했다.


또한 당시 미국 해군 준위인 존 앤서니 워커가 러시아 당국과 접촉하여 암호화 장비와 함께 사용되는 필수 코드를 제공함으로써 소련이 미국 당국도 모르게 수년 동안 모든 기밀 통신을 읽을 수 있게 한 악명높은 "워커 스파이 링"의 활동이 시작되었다.


이 글을 마무리하며, 월남에서 두 차례 파병을 다녀온 전 그린베레이자, "솔저 오브 포춘"지 발행인인 로버트 K. 브라운은 "SOG 대원들은 정말 대단했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임무가 노출되었지만 어떻게든 임무를 완수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지금, SOG의 전설이 더욱 놀랍게 느껴진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