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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CV-SOG FOB 팀)


고든 데니스턴 작성


월맹군은 월맹과 월남 사이의 DMZ를 성공적으로 침공하는 데 성공하지 못하자 라오스와 캄보디아를 관통하는 보급로를 만들었다. 월맹군은 자신들이 체결한 조약을 위반하고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대량 학살을 저질렀다. 공산군들은 월남, 라오스, 캄보디아에서 수백만 명의 무고한 사람들을 살해했지만 역사가와 뉴스 기자들은 이 전쟁 속 중요한 사실들을 숨기고 있다.


미국은 이러한 침략을 격퇴하도록 월남을 지원했다. 월맹군과 중공군을 공격하기 위해 만들어진 중요한 부대 중 하나가 MACV-SOG(월남 군사 지원 사령부 - 조사 및 관찰단)였다. 이 부대는 라오스와 캄보디아의 적진 뒤에서 작전을 수행하는 비밀작전부대였다. SOG의 팀들은 수천 명의 월맹군 병사들이 밀집해 있는 곳 한 가운데에 투입되었다. 월맹군 병사들은 라오스의 호치민 트레일을 따라 병력, 무기, 탄약, 보급품을 이동시켰고 나중에는 캄보디아를 거쳐 월남으로 이동시켰다. 이 소규모 SOG 팀들은 호치민 트레일을 이용하는 공산군들을 저지하기 위해 헬기로 투입되었다. MACV-SOG는 공산군들을 방해하고 사살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사용했으며, 월맹군 또한 전 세계 공산 국가에서 생산된 무기, 보급품, 탄약을 받았다. 때는 냉전이었고 그린베레는 전 세계에서 공산주의 확산에 맞서 싸우고 있었다.


헬기는 MACV-SOG 임무에 필수적이었다. 헬기 승무원들은 적진 안팎으로 팀을 공수했다. 헬기는 또한 공중 정찰과 건쉽 지원도 제공했다. 미 공군은 전술항공지원과 B-52로 전략폭격을 제공했다. SOG 팀이 포위되어 적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게 된다면 이들은 도움을 요청했다. 그들은 항상 곤경에 처하는 듯했고 대개 건쉽 헬기가 가장 먼저 도착하여 월맹군을 향해 기총 사격과 로켓 공격을 가했다.


MACV-SOG 대원들은 월남전 당시 월맹의 전쟁 노력에 막대한 피해를 주는 동안 가장 큰 위험에 직면한 이들이었다. 이러한 MACV-SOG에는 정찰팀과 해칫포스라는 두 가지 유형의 팀이 있었다. 이 팀들의 대부분의 대원들은 월남 중부 고원 출신이었고 이들은 몽타냐드라고 불렸다. 맨 위에 있는 1번 사진은 그린베레 부사관이 몽타냐드 팀원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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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4월 10일에 아래에서 설명할 임무가 수행된 지역을 보여주는 지도. 이 지도에서는 표시되지 않은 라오스와 캄보디아 지역에서도 MACV-SOG는 작전을 수행했다)




제119 AHC, UH-1C 크로커다일 건쉽, 크록3의 SOG 지원



위 영상을 클릭하여 유튜브 채널 @sfachapter78에서 고든 데니스턴의 영상 "119th AHC in support of SOG Crocodile UH1-C Gunship CROC 3 (Gordon Denniston)"을 볼 수 있다.


이 영상은 1967년에 제119 AHC가 닥토에서 라오스로 향하는 극비 작전을 위해 콘툼 FOB 2의 MACV-SOG를 지원했던 당시를 다룬다. 영상의 대부분은 데니스턴(콜사인 크록 3)이 촬영했으며 승무원인 롤리 휴잇, 돈 고드, 랜디 벤더, 피트 마키시치가 촬영한 영상도 포함되어 있다.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warriorplatform&no=41958

MACV-SOG 그린베레 팀과 함께 라오스에 투입된 건쉽 파일럿(1967년, MACV-SOG 해칫포스의 투입을 준비하는 제119 항공중대)월남전 중, MACV-SOG에 배치된 그린베레와 헬기 승무원들은 유명한gall.dcinside.com


또한 위 링크를 클릭하여 센티넬 2015년 4월호에 실린 MACV-SOG 항공 자산의 기여와 조직에 대한 고든 데니스턴의 글을 볼 수 있다.


(글상자 지정시 오류가 발생하여 최대한 띄우는 것으로 대체함)




대부분의 역사가, 뉴스 기자, 대학 교수, 다큐멘터리 제작자들은 50년 넘게 공산주의 선전과 월남전에 거짓을 조장해 왔다. 이들은 사실과는 전혀 다른 내용을 전파하고 전쟁에 대한 가장 중요한 사실을 숨기고 있다. 월맹이 소련식 독재 정권을 만들어 라오스와 월남을 침략하기 위해 살인과 테러를 자행했다는 것이다.


참고: 공산주의자들은 일관되게 제네바 조약을 자신들의 입장을 유리하게 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한편 무고한 사람들을 공산주의에 복종시키기 위해 자신들이 체결한 조약을 무시했다. 역사가를 비롯한 사람들이 월남전을 일으킨 공산군들의 조약 위반이 상당했다고 설명하는 것을 거의 듣지 못했다. 


인도차이나 - 1954년 7월 21일, 인도차이나 평화 회복 문제에 대한 제네바 회의 최종 선언 中, 


"1954년 7월 21일 자 인도차이나 평화 회복 문제에 관한 제네바 회의의 최종 선언. 캄보디아, 베트남민주공화국, 프랑스, 라오스, 중화인민공화국, 베트남국,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영국, 미국 대표 참여."


라오스 중립에 관한 국제 협정은 1962년 7월 23일 제네바에서 14개국과 라오스 간에 체결된 국제 협정이다. 1961년 5월 16일부터 1962년 7월 23일까지 지속된 라오스 문제 해결에 관한 국제회의의 결과물이다.


이러한 조약들이 협상되고 서명되는 동안 공산국가들은 이미 이 조약의 모든 조항을 대단히 위반하고 있었다. 공산 중국, 소련, 월맹은 엄청난 수의 병력, 무기, 탄약, 물자를 라오스로, 그리고 월남으로 이동시키고 있었다. MACV-SOG 대원들은 이러한 조약 위반의 증거를 수집하고 침략에 맞서 조치를 취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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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을 원격으로 조종하는 미니건 조준기. 아래쪽 손잡이 상단에는 방아쇠가 있으며 하단에는 총을 움직여 표적을 조준하도록 작동시키는 레버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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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렬된 로켓 조준기)


월남전 당시 월맹군은 치명적인 화력을 투사하는 미군의 건쉽 헬기를 두려워했다. 아래는 1967년 4월 10일에 있었던 건쉽 임무의 한 예시로, 이 건쉽들은 치명적인 월맹군의 함정에 빠졌다. 미군들을 구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전술, 종교적 섭리, 그리고 신속한 대응뿐이었다. 이 건쉽들은 무장을 과적한 상태로 최대 약 120노트로 직진 및 수평 비행을 했다. 각 건쉽에는 미니건이 두 개 있었으며 이 두 미니건을 합치면 분당 4,800발을 발사할 수 있었다. 또한 각 기체는 고폭탄두가 달린 2.75인치 폴딩 핀 로켓 14개를 탑재했으며 두 도어거너는 각각 분당 500발을 발사할 수 있는 M-60 기관총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 작은 화력 패키지는 적의 지상 사격에 취약했고, 더 큰 대공포는 아예 이러한 헬기들을 쉽게 날려버릴 수 있었다. 이 헬기에는 엔진이나 변속기를 보호할 장갑판이 없었다. 수천 명의 적군 한가운데서 기체를 몰다가는 아군 시설에서 45마일 떨어진 곳에서 격추당할 수 있었다. 적진 한가운데에 있었기에 기체가 격추된다면 승무원들은 잔혹하게 고문당하고 그 자리에서 고통스럽게 처형됐을 것이다.


이 두 대의 육군 건쉽은 보통 라오스에서 싸우던 MACV-SOG 팀의 근접항공지원을 맡았다. MACV-SOG는 라오스와 캄보디아에 투입되어 월맹군과 싸우던 비밀 팀이었다. MACV-SOG 대원들은 호치민 트레일 지역에 투입되어 월남으로 유입되는 공산군의 무기, 병력, 물자, 탄약의 흐름을 차단하는 위험한 임무를 수행했다. 이날의 임무는 도전적이었지만 독립적으로 월맹군을 수색하고 파괴할 수 있는 자유를 제공받았다. "적을 찾아서 사살하라." 하지만 공산군은 울창한 정글 캐노피 아래에서 작전을 수행했고 위장에 능숙했기 때문에 이는 어려운 목표였다. 우리는 라오스로 날아가 무전으로 FAC와 만나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날 FAC는 월맹군이 이 지역에 물자와 무기를 저장하고 보관하는 듯한 징후를 포착했다고 판단했다. FAC는 적이 목표 지역에 집중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에 우리가 내려가서 자세히 관찰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 지역에는 작은 나무와 코끼리풀로 덮인 개활지가 거의 없었으며, 마치 평온하고 울창한 정글처럼 보이도록 기만한 곳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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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건 조준기를 사용하여 표적이 있는 구역을 향해 개괄적으로 조준한 다음 예광탄을 통하여 신속하게 사격을 의도한 표적 쪽으로 이동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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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히 갖춰진 건쉽의 무장 체계. 2.75인치 로켓 튜브와 7.62mm 피더 슈트가 부착된 미니건이 모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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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약과 로켓을 모두 발사하는 데 몇 분밖에 걸리지 않았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재장전해야 했다. 탄약을 모두 소진한 후에는 서둘러 돌아와 재장전하고 급유를 받아야 했다)


이 지역을 더 잘 보려면 속도를 줄이거나 200피트까지 올라가는 방법도 있었다. 이는 시야를 확보할 수 있는 좋을 방법이었을지 모르지만, 목숨을 잃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살기 위해서는 지면에 아주 가까이(지상에서 3~4피트 정도) 내려가거나 최고 속도를 유지하며 나무 사이를 비행해야 한다. 이것이 기본적인 건쉽 생존 규칙이다.


아래 사진은 정글의 아름다운 계곡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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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없는 아름다운 푸른 정글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우리는 공산군을 찾기 위해 이 지역으로 고속으로 강하를 시작했다.


FAC는 우리에게 내려가서 월맹군의 활동을 찾을 것을 요구했다. 빨간색 점선으로 표시된 능선이 요주의 이 계곡을 둘러싸고 있었다.


노란색 점선은 월맹군 병력이나 장비가 집중된 곳을 찾기 위해 우리가 비행한 경로를 보여준다. 우리는 계곡을 네다섯 차례 저고도로 비행하며 공산군들을 탐색했다. 그러나 계곡 주변을 3~4회 돌았지만 적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FAC는 우리에게 그 지역을 한 번 더 살펴볼 것을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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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쉽 팀 리더, 크로커다일 6: 케빈 오설리번 대위 – 기체 지휘관, 조지 개럿 준위(CW2) – 부조종사, 피트 포치니 – 크루치프, 드와이트 스트라한 – 도어 거너.


윙맨 기체(SN: 0588), 크로커다일 3: 고든 데니스턴 준위(CW2) – 기체 지휘관, 돈 고드 준위(CW2) – 부조종사, 랜디 벤더 – 크루치프, 러셀 리드 – 도어 거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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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월남 - 왼쪽부터 피트 마키시치, 라이먼 "돈" 고드, 랜디 벤더, 고든 데니스턴)


평소 우리의 도어거너는 피트 마키시치였지만 그날은 휴가 중이었다. FAC는 A-1E 2대와 더 많은 F-4 팬텀과 함께 지역 상공을 선회하며 우리가 대규모 월맹군이나 보급 창고를 발견할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기다렸다. 계획은 우리가 적을 발견하면 TAC가 공산군을 폭격하는 것이었다.


우리의 전술은 생사를 가르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우리에게는 건쉽 규칙이 있었다.


"데드맨 존"에서 비행하지 말 것. 트레일 대형(180°)으로 비행하지 말 것. 항상 선두 기체와 떨어져 있어야 하며, 능선, 강, 도로와 같은 지형지물과 평행하게 비행하지 말 것. 지상의 같은 지역을 다시 비행하지 말 것. 공격한 대상을 확인하거나 무언가를 다시 보려고 돌아가지 말 것. 아군이 해당 지역에 있는 경우 적과 아군 사이의 사선에서 90°로만 적과 교전할 것. 라오스에서 우리는 전자동 AK-47과 수많은 대형 대공포를 가지고 있는 엄청난 수의 월맹군과 맞섰다. 위험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월맹군은 강력한 대공포를 가지고 있었고 사용법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아래는 4연장 14.5mm의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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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아래는 12.7mm 무리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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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사진은 러시아제 37mm 대공포다. 37mm 대공포탄은 빨간색 또는 녹색 예광탄이 있었고 항공기 근처를 지날 때 "펑" 또는 "우웅"하는 소리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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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수천 명의 적군이 있는 지역에 진입해야 했고, 우리에게는 과적된 건쉽 헬기 2대와 8명의 병력만 있었다.


아래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설계된 최대 총 중량보다 500파운드가 초과된 상태에서 이륙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고 헬기는 호버링조차 할 수 없었다. 따라서 활주로를 따라 미끄러지듯 이륙하여 충분한 속도를 얻어 양력을 냈다. 우리가 연료를 태워 무게를 줄일 때까지 공중에 머무르는 것은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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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치민 트레일 상공 비행의 위험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내 임무 중 한 번은 내 앞에 있던 건쉽 두 대가 모두 격추된 적이 있었다. 라오스는 우리 모두에게 위험한 곳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지상이 아니라 헬기에 타고 있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우리의 전술은 생존에 필수적이었다. 항공 승무원으로서 우리는 적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각도와 지형을 고려해야 하며 지형은 우리에게 도울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다. 우리는 적들이 우리를 맞추기 어려울 정도로 낮은 고도로 비행하며 계곡 아래로 내려갔다. 초저고도로 비행하면 적들이 우리가 어디에서 오는지 파악할 수 있는 시간이 짧아지고 준비, 조준, 사격까지 몇 초밖에 주어지지 않는다. 쏘더라도 자주 빗나갈 것이다. 하지만 고도를 높이면 피격당할 가능성이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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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 옆의 산을 오르려고 하면 "데드맨 존"에 있게 된다. 이때는 발각과 함께 적들에게 조준할 시간이 주어지기 때문에 계곡 옆 산을 오르는 것은 치명적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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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설리번 대위는 적을 찾아 돌아다녔지만 운이 따르지 않자 기발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그는 수류탄을 던져서 "적들의 우리를 뒤흔들 것"이니 자기 뒤쪽으로 이동하라고 내게 무전을 보냈다. 나는 사고로 터질 수 있기 때문에 기내에 수류탄을 싣지 않았다. 우리가 몰랐던 것은 저 아래에 숨어서 우리에게 발각당하지 않기를 바라는 월맹군 1개 사단이 있다는 것이었다. 적들은 우리를 보고 우리가 사격을 개시하는 순간 격추시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월맹군은 우리가 사격하지 않는 한 먼저 발포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렇게 월맹군은 저 밑에서 헬기 두 대를 격추할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수류탄은 마법과도 같았다. 폭발하자 수백 명의 월맹군이 AK-47로 우리를 공격했다. 그들은 사방에서 우리 헬기를 향해 총을 쏘기 시작했다. 근거리에서 AK-47을 쏘는 것을 보면 분명히 총성이 먼저 들리고 나중에 총구 섬광이 보인다고 확신할 수 있다. 월맹군은 은폐 상태에서 나왔기 때문에 매우 가까운 거리(25피트)에 우리를 향해 총을 쏘고 있었다. 적들이 개활지로 나왔기 때문에 우리는 이제 이들을 명확히 볼 수 있었다. 적들은 다량의 탄약을 가지고 있었고 모두 하늘로 쏘고 있었다. 우리는 사방에서 자동 사격을 받았다.


윈스턴 처칠 왈 "날아온 총탄이 빗나가는 것만큼 짜릿한 일은 없다."라고 했다. 처칠은 이를 짜릿하다고 했을지 모르지만 나는 끔찍하다고 표현하고 싶다. 마치 우리가 스테이트 페어 속 사격장의 과녁이 된 것 같았다.


우리는 근거리에서 날아다니며 미니건으로 많은 수의 월맹군을 사살했다. 2.75인치 로켓은 공산군 무리를 죽이고 있었다. 도어거너는 근거리에서 적을 쓰러뜨리고 있었다. 우리 도어거너들은 공중에서 지상의 적을 향해 사격하는 데 매우 숙련되어 있었다. 25야드 거리에서 자동 사격을 하며 AK-47을 나에게 겨누고 있던 월맹군 병사를 내 도어거너가 제압했을 때 나는 안도했다. 그러다 FAC로부터 계곡 아래에서 수백 개의 총구 섬광을 보았다는 무전을 받았다. 우리가 FAC의 연락에 응답했는지조차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우리는 선회하느라 바빴고 적을 쏘느라 미니건 탄약이 금방 떨어진 데다 오설리번 대위는 로켓이 완전히 떨어져서 떠날 때가 되었다. 우리 도어거너들은 탄약을 모두 소진했고 마지막 수단으로 M-16과 권총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 지역을 재빨리 떠날 시간이 되었으나 계곡을 둘러싼 산 위를 감히 넘어갈 수는 없었기에 크록 6는 계곡 입구의 틈 중 한 곳으로 향했다. 계곡 양쪽 끝에 있는 두 개의 틈이 유일한 출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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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닉이 시작되고 크록 6가 계곡 끝의 틈에 접근하자 상황이 심각해졌다. 월맹군이 이를 대비해 계획을 세웠기 때문이었다. 적들은 대공포를 설치하여 우리가 지나갈 곳을 노리고 부채꼴 모양의 화망을 만들었다. 우리는 바로 앞에 예광탄으로 이루어진 장막이 있는 것을 분명히 볼 수 있었다. 이 장막을 통과하면 즉사했을 것이다. 두 헬기 모두 즉시 유턴을 하여 계곡의 반대쪽 끝으로 향했지만 이 역시 또 다른 장막으로 막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계곡에서 빠져나갈 길을 찾아 날아다니는 동안 계곡의 월맹군은 사방에서 계속 우리를 향해 사격을 가했다. 우리는 계곡을 날아다니며 수백 명의 월맹군으로부터 총격을 받았지만 반격할 방법이 없었다. 이제 우리는 그저 표적일 뿐이었다.


나는 항상 로켓을 몇 개 아껴두는 것을 좋아했기에 아직 발사하지 않은 로켓이 두 개 있었다. 총격을 받으며 계곡을 비행하는 동안, 나는 크록 6에게 무전을 보내 내가 로켓 두 발을 가지고 있으며 화망으로 향할 것이라고 알렸다. 이어서 화망에 구멍을 낼 테니 내 뒤로 바짝 붙으라고 말했다. 우리는 계곡 끝으로 곧장 향했고, 월맹군이 대공포를 쏘기 시작했다. 예광탄을 통해 적들의 위치를 확실히 볼 수 있었고 나는 적의 대공포에 접근했다. 대공포를 운용하는 병사들이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빠르고 가깝게 접근했고, 그들이 내가 화망으로 날아오기를 기다리며 공중으로 곧장 사격을 가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로켓이 발사되면 일정 거리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터지지 않는다. 신관이 몇 초 동안 가속도를 감지한 다음에야 작동했다. 가까이서 발사할 수는 있지만 너무 가까이 있으면 로켓이 터지지 않는다. 나는 적들의 대공포를 확실히 맞힐 만큼 가까이 있어야 하는 동시에 적들이 내 공격에 반응할 수 없을 만큼 빨리, 내 로켓이 작동할 만큼 충분히 멀리 있어야 했다. 내가 쏜 로켓은 터졌고, 완벽하게 명중했다. 순식간에 병사들과 대공포를 파괴하고 파편, 흙, 나무, 적들을 공중으로 날려버렸다. 내가 화망 속 구멍을 통과하던 중 흙과 파편이 공중으로 높이 튀었는데, 어찌나 높이 튀었는지 내가 지나간 후에야 떨어졌다. 크록 6는 바로 내 뒤에 있었기 때문에 우리 둘 다 무사히 빠져나왔다.


우리는 무장도, 연료도 다 떨어졌기에 탈출하자마자 바로 닥토로 향했다. 한편 FAC는 A-1E와 F-4에게 그 지역으로 향하여 계곡의 모든 것을 파괴하라고 지시했다. 우리는 성공적인 하루를 보냈다.


그날 엄청난 적의 대공포화 속에서 두 헬기가 모두 살아남은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추락했다면 가장 좋은 결과가 즉사하는 것이었다. 살아남았다면 포로로 잡혀 고문당하고 끔찍한 경험을 한 후 살해당했을 것이다. 월맹군은 정보를 얻기 위해 고문하는 데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고문을 즐겼고 오락거리로 여겼다. 역사가들이 이러한 현실을 설명하는 것을 들은 적이 거의 없다.


THE VIETNAM POW VETERAN: IMMEDIATE AND LONG-TERM EFFECTS OF CAPTIVITY, 에드나 J. 헌터 박사


동남아 전쟁에서 귀환한 포로의 수(766명)는 한국(7,140명)이나 2차 대전(130,201명)과 비교하면 매우 적은 숫자였다. 동남아에서 귀환한 포로들(1976년 12월 31일 기준)은 이전 전쟁의 포로와 비교하면 매우 엄선된 집단이었다. 대부분이 장교였으며, 집단적으로 나이가 많고 교육 수준이 높았다.


월맹에 억류된 포로들은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항공 승무원이었다. 1973년 초봄, 25명의 민간인을 포함한 591명의 미국인들이 송환되었다. 추가로 36시간~5년 반 동안 억류되었던 84명이 1973년 이전에 탈출하거나 석방됐었다. 1973년에 귀환한 군인들은 공군 325명, 육군 77명, 해병대 26명, 해군 138명으로 이루어졌다. [다른 모든 포로들은 살해당한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