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하와이의 어느날, 포근했던 해수면은 제25보병사단 전투항공여단 소속 CH47 치누크가 12,900피트까지 빠르게 상승하면서 차가워졌다. 헬기가 태평양 상공을 몇 마일 날아가는 사이, 2분 간의 경고가 주어지자 일본 특수작전군 대원 십여명이 일어서서 하강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30초 후 미국 특수부대(SF) 강하조장 2명이 최종 점검을 실시한 후 낙하산을 맨 대원들을 헬기 뒤쪽의 경사로로 인도했다. 그리고 강하조장 2명과 함께 특수작전군 대원들이 낙하했다.



4천피트 상공에서 그들은 주 낙하산을 펄쳐 하와이 오아후 섬의 카네오헤 만에 위치한 해병대 기지에 있는 DZ로 내려왔다. 이번 훈련에서 실시된 자유낙하 훈련Military Freefall (MFF)은 특수작전군에겐 흔치 않은 기회였으며, 미 육군 제1특수전전단과 특수작전군 간의 연합 훈련인 사일런트 이글 2011의 하이라이트였다. 본 훈련은 8월 19일부터 9월 15일까지 실시되었으며 목적은 외국과의 훈련을 통하여 상호운영성을 개선한다는, SF에게 강조되는 요소이기도 하다.




미국과 일본과의 관계는 가장 중요한 태평양 동맹국 중 하나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그러나 이 관계의 깊이를 이해하려면 2차 대전에서 일본이 패배했던 시절로 돌아가야 한다. 1945년 승전 후, 연합국은 일본의 군사력 보유를 금지했다. 전후 점령은 1952년에 끝났지만, 그 무렵 안보 환경은 크게 바뀌었다. 미국이 한국전쟁에 참전하면서 영토 위협에 무방비상태라고 느낀 일본은 1954년에 자위대를 창설했고, 그 후 지금까지 존재한다.




2022년 현재 약 25만 여명의 자위대원들이 내부의 위협에 대응하고 국가 재난에 맞서며 주권 영토를 수호하고 있다. 창설 당시부터 일본 자위대는 정상적인 군대가 아니었다. 2대전 후, 많은 일본인들이 전쟁을 강력하게 반대해왔고, 일본 정부는 1947년 헌법 제9조에 이러한 평화주의 정신을 명문화했다. 전쟁을 외교 정책의 수단으로 쓰는 금지함은 물론 일본이 공격적인 군사력을 유지하는 것도 막았다. 실제로 14년 7월에야 일본은 동맹국을 방어한다는 논리로 해외에 병력을 배치했다. 




일본의 방위력은 강하고, 특히 육자대는 일본 자위대에서 가장 큰 조직인데다 특수작전군은 그 중 최정예 조직이자 국가급 대테러부대이기도 하다. 특수작전군 지휘관인 아오키 신이치(青木伸一, 사일런트 이글 11 훈련 당시 특수작전군 대장) 대원은 공수 훈련을 수료해야만 한다. 따라서 특수작전군 후보자 상당수가 제1공정단 출신이었다. 



특수작전군은 자기들의 까다로운 선발 기준을 미 육군 특수부대 자격 과정(SFQC)를 모델로 삼아 만들었다. 선발 과정의 상당 부분이 그린베레 Q코스를 수료한 특수작전군 대원들로부터 유래했다고 특수작전군 중대장이며 Q코스를 04년 6월에 수료한 Y.H 대위가 설명했다.




대령이 지휘하는 특수작전군은 일반적으로 3개 중대 및 여러개의 소규모 조직으로 구성된다. 특수작전군은 중앙즉응집단(지금은 육상총대)의 일원으로 국제 평화'를 위한 협력 활동과 다양한협력 활동 및 다양한 국내 우발 상황"을 해결하는 것이 임무이다. 재난 구호, 일본인 대피, 해적 퇴치 및 일본 내 공격 또는 게릴라 활동 대응 등2022년 현재에도 후자의 임무는 주변 국가들과 오랜 영토 분쟁을 겪고 있는 일본에게 특별한 관심사로 남아 있다. 



영토 분쟁 중 일본이 신경쓰는 게 첫번째로 북쪽의 쿠릴 열도인데 2차대전 마지막 날, 소련이 일본에 전쟁을 선포하고 쿠릴 열도를 점했다. 이후 모스크바는 일본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쿠릴 열도를 러시아 주권 용토로 통치 중이다. 불법적으로 합병된 쿠릴 열도때문에 일본과 러시아는 공식적인 종전 평화 협정을 체결한 적이 없다.



2대전 후 일본과 러시아는 주기적으로 회담을 진행해왔다.


다른 영토 분쟁은 류큐 열도 남쪽 끝자락에 있는 센카쿠 열도이다. 센카쿠 주변 경제 구역에는 풍부한 어장과 잠재적인 석유가 매장되어 있다. 일본은 1895년에 센카쿠 열도를 합병했지만, 중국과 한국이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중국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도쿄는 12년 11월 11일에 이 섬들을 개인 소유주들로부터 전부 매입했다.


중국은 일본의 행태에 지속적으로 항의해오고 있으며 정기적으로 군용기와 해군을 섬 근처로 파견하여 일본 영토 주권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일본은 이 두가지 영토 분쟁을 가장 큰 안보 위협으로 간주하고 있다. 따라서 일본 육자대 참모진이 오하우를 사일런트 이글 2011 훈련장으로 선택한 이유는 영토 분쟁이 일어난 장소와 유사한 환경이기 때문이다. 분쟁 지역이 섬이고 그곳을 침입하는 적군을 격퇴한다.



따라서 특수작전군 대원 40여명이 다른 대원들에게 전수해줄 기술들을 배우기 위해 오하우에 도착했다. 그리고 ODA 10명이 왔는데 당시 임시로 편성된 SFG 1여단 제4대대 A중대에서 온 놈들로 이들이 훈련을 주도했다. 자유 낙하MFF(Military Freefall) 자격을 갖춘 이 팀은 사일런트 이글 2011 훈련을 수행하기에 적합했다. 훈련에 참가한 Master Sergeant 로저 H. 맥스윕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많은 SF 대원들이 18X를 통해 들어왔고 특수작전군보다 젊었습니다. 그러나 SF 대원들은 한동안(1명만 빼고) 미국 중앙 사령부(CENTCOM)에 배치되어 있었고, 특수작전군 대원들은 나중에 SF 대원들이 겪은 전투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게 최고의 경험이었다고 토로했습니다'



11년 5월에 시작된 사일런트 이글 훈련은 처음엔 11년 3월 11일에 터진 동일본 대지진 쓰나미 때문에 취소될 줄 았았지만 결국 연기되었습니다' 라고 맥스윕이 설명했다. 규모 9의 대지진, 그리고 그에 따른 쓰나미로 인해 일본인 2만명 이상이 사망했고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재난에도 불구하고 특수작전군은 훈련을 계속하고자 했다. 특수작전군은 특히 자유 낙하와 장거리 사격에 대한 추가 교육을 원했다. 그래서 ODA는 두 가지 훈련을 준비했다. 



사일런트 이글 2011 훈련 시작 전, ODA는 3일 간 장거리 사격 기술을 갈고 닦았다. 그리고 이어서 팀 전체가 애리조나 주 유마 훈련장에서 자유낙하 집중 훈련을 받았다. 마지막으로 하와이에 도착하자 마자 C-17 수송기에서 MFF 점프를 실시했다. 



'그건 제가 경험한 점프 중 최고였습니다. 문이 열렸을 때 제가 본 건 아름다운 하와이 섬 뿐이었습니다' Sergeant First Class (SFC) 빌 J 맥스(18F)가 말했다. 



그 후 ODA는 훈련을 위한 최종 준비를 진행했다. 숙련된 MFF 교관 2명이 훈련 일부를 진행했고, 다른 그룹이 저격 및 총기 훈련의 교관이 될 것이었다. 이 외에도 두 명의 의무부사관(18D)를 배치하고 추가로 18D를 1명 더 데려오고, 낙하산 포장하는 리거(rigger) 2명도 데려와서 주 낙하산 및 예비 낙하산을 검사시켰다. 



ODA는 훈련을 다음과 같이 만들었다. 1. 고급 사격술. 2.  자유 낙하, 3. 앞의 둘을 얼마나 잘 배웠고 활용하는지에 대한 평가. 이러한 과정은 특수작전군이 얼마나 잘 배웠는지 평가하기 위함이었다. 특수작전군은 참가한 부대원들은 두 그룹, 사격술 그룹과 자유낙하 그룹으로 나뉘었는데 각각 10명씩이었다. 남은 20명은 지휘 및 통제 관리 임무를 수행했다.




모든 준비가 끝나고 특수작전군이 도착했다. 훈련의 서막으로 바비큐 파티를 열었고, 사일런트 이글 11 훈련은 다음 날 일찍 시작되었다.




고급 사격 훈련은 특수작전군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 왜나혀면 특수작전군이 일본에서 훈련할 때 사격장의 소총 사거리가 300미터를 넘지 않는데다 소음으로 인해 사격 훈련이 제한되었기 때문이다. 훈련을 극대화하기 위해 ODA는 미 해병대 사격장에서 안전 통제를 맡았는데, 소총 사격장은 제한된 개방 수역이 있었다. 사격장 통제 요원들은 수상 교통을 모니터링하며 주위를 지나는 선박들이 사격장 안으로 못 들어오게 감시했다.



또한 SF팀은 사격장 양쪽에서 감시하며 뭔가 사격장 안으로 표류한다 싶으면 무전으로 알렸다. 그러면 보트가 그 지역을 떠날때까지 사격 훈련은 중단되었다고 SGT 제임스 K 기네스는 설명했다. 이 훈련은 고급 저격 훈련이 포함되었다. 사격장 경계에 있는 가장 높은 산등성이에 올라가서 SF 교관들이 MK17과 M110 소총을 사용해서 특수작전군에게 장거리 사격술을 선보였다.



그리고 특수작전군은 7.62mm M24 저격 소총을 사용하여 400미터 넘는 거리에서 고각 정밀 사격 연습을 했다. 특수작전군 저격수들은 이를 훈련의 하이라이트로 여겼다.


특수작전군은 CQB도 훈련했다. CQB에 이미 능숙했던 특수작전군 대원들의 실력은 탁월했다. SSG 토마스 소파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일본 특수작전군은 자기들이 뭘 해야하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SOP는 그린베레와 비슷하지만, 그들은 '우리가 뭘 다르게 해야 좋겠냐'며 의견을 묻곤 했습니다. 


SSG 월슨 세가(18C)는 '특수작전군이 쏜 탄작점이 너무 빡빡해서 벽에 구멍이 나지 않도록 끊임없이 표적을 이동시켜야 했습니다' 라고 말했다.


ODA 지휘관 앤더스 H 다우 대위는 훈련을 칭찬을 섞어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이 친구들은 경이로운 슈터(shooter)들입니다'



특수작전군에게 자유 낙하 교육을 제공하는 건 원래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어려웠다. 다우 대위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특수작전군이 이 훈련을 원했던 이유는 일본 항공청이 우리보다 훨씬 더 빽빽하게 제한을 두기 때문입니다'



자유 낙하를 하려면 우발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넓은 지역 내의 항공 교통을 중단해야 하는데 일본의 인구 밀도가 높고 비행 통로도 많아서 자유 낙하를 하자고 항공 교통을 중단시키는 건 거의 불가능했기에 훈련 기회가 거의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ODA가 하와이에서의 훈련도 비슷한 어려움을 겪었다. 



우선, ODA는 연방 항공청과 영공 사용을 위해 조율을 했다. 계획 당시 특수작전군은 2만 5천피트 상공에서의 자유 낙하를 요구했다. ODA는 그 높이에서 점프하는 건 여러 미군 기지에서 일상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동의했다.



하지만 일본과 마찬가지로 오하우에도 상업용 항공 교통량이 많았다. 점프할 때마다 최대 20분 동안 공역 내 모든 항공 교통을 중단시켜야 했다. 공중 충돌 가능성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다행히 MSG 맥스윕은 훈련 중인 조종사여서 연방항공청의 언어를 구사할 줄 알았다고 캡틴 다우는 말했다. '저는 신이 내린 선물이라는 말을 들었죠' MGS 맥스윕은 당시를 회상하며 말했다.



마침내 연방항공청이 훈련 일정을 승인했지만 그때부터 비행을 취소할 수 있을 뿐 새로운 비행을 추가하진 못하게 되었다. 그 시점부터 ODA는 항공기 확보에 나섰다. 가장 큰 장애물은 25000피트에서 점프할 수 있는 군용기를 찾는 일이었다. 그 고도에서 비행하려면 점프하는 놈, 승무원, 승객까지 모두 산소 마스크를 착용해야 했다. 해안경비대가 C-130을 제공하기로 했지만, 막판 가서 그놈이 기내 산소가 부족하고 1만피트 상공에서 낙하산을 뛸 물건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ODA는 적절한 항공기와 승무원을 찾으려고 미국 내 모든 고정익 운용하는 곳에 전화를 걸었지만 돈과 승무원이 문제였다고 맥스윕이 설명했다. 어쩔 수 없이 자유 낙하는 포기해야 하나 하고 낙담하던 찰나, 공교롭게도 하와이 스코필드에 주둔하는 제25전투항공여단이 파병 준비중이었고, 당시 파병 전 훈련 요건 중에 특수부대와의 숙련된 팀워크도 있었다.



그리고 25항공여단은 치누크를 사일런트 이글 2011 훈련에 지원하기로 합의했다. 비록 기체가 13000피트(ASL)밖에 점프할 수 없는 놈이었지만. 



일본도 처음엔 실망했지만 ODA가 모든 똥꼬쇼를 했다는 걸 깨닫고 대안책에 합의했다. 30번의 점프가 예정되어있었으나 그 중 10번은 취소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낙하훈련은 특수작전군의 경험 수준을 극적으로 향상시켰다고 MFF 팀리더는 말했다. 



특수작전군은 자유 낙하 팀과 지상 훈련 팀을 테스트하기 위해 익명의 침략군이 일본 섬을 공격하는 가상 훈련을 실시했다. 시나리오에서 적군은 어선을 타고 침투하여 섬의 어느 시설을 점령했다. 이에 특수작작전군은 적군에 대응하기 위해 먼저 야간 낙하산으로 선견대가 투입되고, 그 팀이 나머지가 치누크를 타고 침투하도록 유도했다. 두 팀은 함께 섬을 정찰했다. 



엄격한 FAA 일정때문에 자유낙하 팀은 9월 12일 저녁, 카네오헤 만 상공에서 야간 점프하여 섬에 낙하한 후, 헬기 투입을 위한 준비를 했다. 야간 투시경은 두 팀이 서로 연결되는데 큰 역할을 했다. 두 팀은 함께 수풀 속으로 수백야드를 이동하면서 정찰 기지를 설치했다.



특수작전군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발견했다. 적이 버려진 미 공군 나이키 미사일 기지에 있단 것이었다. 혼동을 피하기 위해 자위대는 침략군을 맡은 미군에게 화려한 유니폼을 입혔다. ODA 모두는 마리오 브라더스 게임에 나오는 마리오처럼 생겼었다고 브래드 K 오말리 중사는 말했다.



수백야드 떨어진 은폐된 장소에서, 특수작전군과 ODA 대원들은 목표물을 감시하고 적군의 수와 활동을 관찰했다. 적군은 3시간마다 차량 순찰을 실시했다. 엄폐물 아래에서 특수작전군은 적군 수를 확인하기 위해 사진을 찍으며 공격을 위한 충분한 정보를 수집했다.



0300시, 야간 투시경을 착용한 미일 연합군은 적군이 점령한 시설의 정문까지 근접했다. 저격수가 정문 경비병을 제거하고 다른 대원이 자물쇠를 절단했다. 그 후 어설트 팀이 시설 건물을 쓸어버리며 수비측을 놀라게 했다.



'우리들은 공격당할 거란 통보를 받았지만, 경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놈들이 가까이 올때까지 방에 누가 있는지도 모르고 있다 옆방으로 가려다 총에 맞았습니다' 적군을 연기한 기네스 중시가 말했다. 



최종 훈련 후 사후 검토에서 추가적 혜택이 있었다. 현장에서 ODA를 관찰한 특수작전군들은 ODA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관심이 많았다. 그들은 우리들의 전술과 장비에 관심이 많았다고 맥스 중사는 언급했다.  특수작전군이 데려온 의무관들은 ODA의 메디컬 키트를 보고 공중제비를 돌았다. 



의무부사관 샘 파크스는 '10년 동안 전쟁을 치르면서 우리는 트라우마를 처리하기 위해 장비를 갈고 닦았습니다' 라고 말했다.



훈련이 끝나자 일본 파견대는 작은 돼지를 사서 땅속에서 익히는 칼루아 스타일로 구워먹었다. 파티가 진행되는 동안 양 그룹은 국기나 휘장같은 선물을 주고 받았다. ODA는 일본에 훈련 기념 나무 명판을 선물했고, 특수작전군은 부대 모자랑 금속 사무라이 투구를 선물했다.



특수작전군과 함께 훈련하면서 ODA는 그들의 역량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SSG 소파는 '훈련이란 기거나, 걷거나, 뛰거나 셋 중 하나인데 일본과의 훈련은 달리기였다' 라고 평가했고



SFC 맥스는 최고의 칭찬을 남겼다. '특수작전군과 실제 작전을 수행한다면 정말 편안할 것입니다'



사일런트 이글 2011과 같은 훈련은 일상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중요하다. 훈련은 개인적인 관계 구축, 능력을 향상시키고 연합국 특수부대와의 상호 운영성을 개선하면서 태평양 지역의 전반적 안보 사항을 개선한다. 이러한 훈련은 동맹국과의 경험을 공유하고 상호 존중을 준다. 실제 분쟁이 발생했을 때, 이런 상호 운옹성은 서로의 역량을 더 빨리 파악할 수 있게 해주며 서로 작전을 잘 풀리게 하는데 도움이 된다. 




https://arsof-history.org/articles/v19n1_silent_eagle_page_1.html




내용은 반만 믿으면 된다. 



번역기 돌리는데 그린베레가 훈련 준비하는 부분에서 입에서 개쩌네 시발 소리 나옴.. 그리고 일본 쪽은 립서비스 거르고 판단하면 총을 허벌창으로 못 쏘진 않는 것 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