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작전

다시 겨울이 다가왔다. 11월 중순, 드디어 임무가 떨어졌다. DMZ 인근에서 대기하던 그는 8명의 민정경찰 에스코트를 받으며 군사분계선으로 이동했다.

▼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이런 경우 민정경찰들이 거수경례를 해주던데.

“그런 게 어딨어. 함께 온 선생과 키퍼가 건투를 빈다며 어깨 두드려주고 한번 안아주고는 끝이지. 쇠고기 말린 육포와 찐 쌀 같은 일주일치 비상식량 건네주고, 언제 몇 시까지 어디로 복귀하라, 그때를 놓치면 각자 알아서 살아 돌아오라더라고. 잡히지 않고 제3국으로 탈출했을 때의 접선 방법도 다시 한 번 숙지시키고.”

▼ 기분이 어땠나.

“솔직히 죽네 사네 하는 생각도 안 나. 그냥 뭘로 머리를 한방 맞은 것처럼 띵할 뿐이지. 드디어 침투하는구나 하는 생각뿐이야.”

첫 임무는 황해도 개풍군 풍계리에 있는 남파간첩 침투 부대에 침입해 간첩 침투 루트가 적힌 서류나 사업지시서, 남파간첩 명단 같은 서류를 절취해 오는 것. 군부대 위치와 규모, 막사 구조 등은 눈을 감고도 찾아갈 수 있을 만큼 숙지한 상태였다. 군사분계선에서 타깃인 군부대까지는 빨리 가면 하루거리였다. 그러나 낮에는 은폐장소에 숨어 있어야 했고, 밤에는 험한 산길로 이동해야 했기에 사흘이 걸렸다.

“가는 길에 북한군과 딱 마주친 거야. 북한 통신병이 전선줄 설치작업을 하는데 우리가 엄폐해 있는 쪽으로 오더라고. 우린 인민군 장교복장을 하고 있었는데 임기응변으로 넘겼어. 훈련 내용 중에 북한 사투리 교육도 있거든. 태연하게 ‘님자레 수고하오. 내레 안전부에서 나왔소’ 하고 인사를 건네며 지나갔어. 통신병도 아무 의심 없이 경례를 하고는 계속 자기 일을 하더라고. 그 정도로 어수룩하던 시절이었지.”

군부대 인근에 도착한 두 사람은 하루 동안 동태를 살핀 후 그날 밤 철조망을 끊고 잠입했다. 미리 파악해둔 대로 사무실로 쓰이는 막사에 접근해 한 명은 망을 보고 다른 사람이 들어가 서류를 탈취했다.

▼ 기밀서류인지는 어떻게 알 수 있나.

“그걸 어떻게 일일이 확인해. 그냥 손에 잡히는 대로 배낭에 쑤셔넣고 나오는 거지.”
군부대를 빠져나와 북방한계선까지 오는 데는 하루밖에 안 걸렸다. 뛰고 또 뛰었다. 한겨울인데도 땀이 흥건하게 흘렀다.

▼ 탈취한 서류엔 어떤 내용들이 있었나.

“배낭째 ‘선생’에게 넘겼어. 뭐였는지 얘길 안 해주더라고. ‘고생했다, 쉬어라’ 그걸로 끝이야. 보름인가 있다가 피로 풀러 가자며 문산 시내 한번 데리고 나가고.”

포로가 되다

첫 침투작전에 성공한 지 한 달쯤 지났을까. 산악훈련을 하느라 며칠 하숙집을 비웠다가 돌아와보니 난리가 나 있었다. 그 사이에 집주인 남자(이름이 김영준이었고, 해군 출신이라고 했다)가 목이 잘린 채 살해된 것이다.

“우리가 거기 산다는 걸 북한군이 알았던 거야. 주인집 남자를 우리로 알고 목을 따간 거지. 그 얼마 전에도 전방의 한 분대가 북한군에게 전멸당한 사건이 있었어.”

2월경, 두 번째 작전 지시가 떨어졌다. 이번엔 요인 납치·암살이었다. 민족보위성(현재의 인민무력부) 소속의 상좌(대령)였는데, 그가 개성으로 시찰을 나온다는 것이었다. 그의 사진을 보여주며 얼굴을 익히게 하고는 며칠 몇 시경에 어디, 그다음엔 어디에 나타난다는 동선을 암기하게 했다.

“실패하면 평양까지 가서라도 잡아오든지 죽이든지 하라고 하더군. 그런데 시도도 못하고 잡혔어.”

아직도 작전 실패에 대한 부끄러움이 남아 있는 것일까, 그는 이 임무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하기를 꺼렸다.

“1차 침투 때와 같은 루트로 북한에 침투했는데, 진눈깨비가 내리는 몹시 추운 날이었어. 갈대밭에 숨어 있는데 속옷까지 다 젖어 얼어 죽을 것 같더라고. 이현방이 ‘얼어 죽어도 죽고 잡혀 죽어도 죽으니까, 불이나 쬐고 죽자’고 하는 거야. 나도 너무 추워서 그러자고 했지. 고형연료로 갈대를 태우는데 눈에 젖었는데도 불길이 확 올라오더라고. 불 옆에서 이현방은 자고, 나는 보초를 섰지.”

졸음이 몰려왔다. 꿈결에 갈대 스치는 소리가 났다. 바람에 스치는 소리와 동물이 지나가는 소리, 사람이 지나가는 소리는 다 다르다. 번쩍 정신이 들었다. 이내 갈대 스치는 소리가 사방에서 촤악 하고 퍼졌다. 올 게 왔구나 싶었다. 마른침을 삼키며 가만히 총을 들려는 순간, 뒤통수에서 ‘찰칵’ 노리쇠 장전 소리가 들렸다. “동무, 움직이지 말라요.”

눈을 가린 채 끌려갔다. 돼지 울음소리가 나는 곳을 지나 진흙이 푹푹 빠지는 곳을 지나 끌려간 곳은 어느 창고. 이현방은 다른 곳에 감금됐다.

“단발머리 여군이 심문을 하더군. ‘동무, 솔직하게 말하면 김일성대학도 보내줄 수 있고, 영웅칭호도 받을 수 있다’며 숨김없이 말하라고 회유하는 거야. 좋은 음식도 주고. 난 그냥 남조선이 싫어서 이곳에 온 거라고 버텼어. 이름을 쓰라고 하면 글씨를 몰라서 못 쓴다고 하고. 그런데 이틀인가 있다가 조사관이 내 앞에 지도를 펼쳐놓는데, 보니까 내가 태어난 동네야. ‘동무 이곳이 어딘지 잘 알지?’ 하며 손가락으로 가리키는데 내가 태어난 집이야. 깜짝 놀랐어. 다 알고 있으니까 숨김없이 말하라는 거지. 그래도 계속 오리발을 내밀었어.”

계속 진술을 거부하자 고문이 시작됐다. 잠을 안 재우고, 구타가 이어졌다. 잠을 못 자는 게 맞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웠다.
“며칠 고문을 하더니 큰 부대로 이송을 하더라고. 그런데 우리 둘을 이송하는 데 3명밖에 안 따라오는 거야. 포승에 묶인 채 차를 타고 가다 꾀를 내 배탈이 나서 죽을 것 같다고 연기를 했지. 처음엔 그냥 바지에 싸라고 하다가 하도 급해 죽겠다고 난리를 피우니까 마지못해 차를 세워. 손으로 바지를 내릴 수 있어야 할 것 아니냐고 하니까 한 명이 포승을 느슨하게 해주려고 가까이 오더라고. 그때 이현방과 눈짓을 주고받고는 단숨에 목을 꺾어버리고, 나머지 둘을 한 명씩 맡아 공격했지. 걔들이 기절했는지 죽었는지도 몰라. 곧장 현방이와 서로 반대쪽으로 튀었으니까.”

이중간첩 혐의

쉬지 않고 남쪽으로 달렸다. 하늘이 도왔는지 그날따라 보름달이 환해 도망치기 쉬웠다. 북한쪽 비무장지대 철책선을 넘어 군사분계선을 향하다 산비탈에서 미끄러져 몇 십m를 구르는 바람에 머리가 깨지고 사금파리에 팔목이 크게 베었다. 나중에 응급처치를 받았지만 그 후유증으로 지금도 그는 손가락 3개를 못 움직인다.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방한계선까지 온 것도 기적이었다. 당시는 군사분계선에서 인기척만 나면 암구호 없이 무조건 총을 쐈다. 그런데 마침 근무교대시간이어서 경계병이 없는 틈을 타고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지뢰를 안 밟은 것도 기적이었다.

“여기선 이미 우리가 북한군에 붙잡힌 걸 알고 있었어. 그런데 살아서 돌아오니까 이중간첩으로 의심한 거지. 응급처지만 하고는 조사를 하더라고. 7박8일 동안 똥오줌 받아내면서 진술서를 쓰게 해. 토씨 하나 틀리면 왜 다르냐고 추궁하고…. 그런데 3일 뒤 이현방도 살아 돌아왔어. 그가 쓴 진술서와 내가 쓴 내용이 일치하니까 살았지, 아니었으면 이중간첩으로 몰려 죽었을 거야. 정보사에서는 내가 인민군 차를 타고 북한군 배웅까지 받으며 남쪽으로 내려왔다면서 간첩으로 몰았거든. 다 거짓말이지. 보상 안 주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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