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군은 두 개의 축선을 따라 북진하고 있었다. 서쪽에서는 월튼 W. 워커 중장이 지휘하는 제 8군이, 동쪽에서는 에드워드 알몬드 장군의 제 10군단이 진격 중이었다. 두 사람 모두 도쿄에 있던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에게, 한국의 험준한 산악 지형 때문에 "두 부대가 사실상 분리되어 협조가 불가능하다." 고 보고했다. 북진하던 부대들은 지형 때문에 중대급까지 쪼개졌고 상호지원은 어렵거나 전혀 불가능했다. 언론도 UN군의 이동과 진출 상황을 매 단계마다 상세히 보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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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더화이 장군이 지휘했던 중공군은 10월부터 계속 증원이 이루어지며 북한 지역에 투입된 병력은 약 12,000명 정도가 되었다. 11월에 중공군은 미 8군 지역에 약 180,000명을, 동부의 10군단 근처에는 120,000명을 전개시킨 상태였다.

미군은 그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중공군은 완벽한 기만과 함께 지형을 활용하여 침투하는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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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군은 미군의 공중정찰을 회피하기 위해 깊은 계곡으로 이동했다. 그들은 오로지 야간에만 이동했고 주간에는 철저히 위장했다. 은거한 채로 대기하라는 명령을 어긴 자들은 모조리 처형되었다.

UN군은 새로운 적이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 채 계속 북진했다. 10월 말경 진격속도가 무척 빨랐던 제 8군은 중공군과 조우하기 직전이었다. 10월 25일, 중공군은 서측의 한국군과 미군을 향해 파쇄공격을 감행했다. 중공군 보병들은 동시에 온 사방에서 이들을 공격했고 1주간의 전투 후에 다시 사라졌다.

미 8군의 진격은 중단되었고 UN군 사령부에선 혼란이 발생했다. 도쿄에 위치한 사령부는 여전히 중공군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고 결국 개입을 인정했을 때, 그 숫자를 대략 40,000~70,000명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실제로 약 300,000명이 한반도에 들어와 있었다. 맥아더는 진격을 재개하라 명령했고 부하들에게 크리스마스는 고향에서 보낼 수 있으리라고 약속했다. 그는 설령 중공군이 그곳에 있다고 해도 미 공군의 화력으로 제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 사이, 중공군은 최초 전투를 분석했고 미군의 제병합동전투의 강점을 무력화시킬 전술을 개발했다. 지형때문에 발생한 UN군 전선의 간격을 통해 기동하여 UN군을 고립시키고 사방에서 공격하는 방법이었다. 중공군은 미군부대의 후방에 은거하면서 공격에 유리한 기상으로 바뀌길 기다렸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자 추위에 잘 대비한 중공군에게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

11월 25일에서 26일로 넘어가던 밤, 중공군이 공격을 개시했다. 이 2차 공세에서 그들은 종대 대형으로 진격했다. UN군 전선쪽에서는 중공군이 공격하자 UN군이 밀려났다. 그들은 UN군의 간격을 발견하면 그 간격을 이용해 노출된 측방으로 기동했다. 대부분의 한국군 부대는 와해되고 말았다. 후방에 위치했던 터키군 1개 여단의 지원덕에 8군 일부 부대의 철수는 다소 순조로웠지만 그 여단도 이틀 뒤 퇴각했다.

너무 많은 중공군이 UN군 전선 후방까지 진출해 있었다. 중공군 1개 사단이 UN군 철수로상 6마일에 달하는 지역 곳곳에 매복중이었다. 중공군은 미 8군을 습격하여 쉴 새 없이 남쪽으로 밀어붙여 평양을 손에 넣었다.

동부에서의 공격은 27일과 28일 사이의 야간에 개시되었고 미해병대 예하 연대, 대대급 부대들이 포병부대와 함께 훨씬 잘 버텨냈지만 결과는 비슷했다. 다수의 부대들도 지형탓에 분리되면서 완전히 와해되고 말았다. 10군단은 교두보 확보를 위해 동쪽으로 철수했으나 중공군은 거의 모든 지역에 지뢰 등 장애물을 설치했고 부대를 매복시켜 추위에 떨고있던 UN군을 습격했다.

중공군의 공격은 본서에서 제시한 다수의 개념을 실제로 보여준 전술적인 걸작이다. UN군은 북한군을 상대로 완벽한 승리를 거뒀지만 사실상 맥아더의 오만 때문에 작전한계점에 도달하고 말았다. 화력면에서 미군이 압도적이었음에도 중공군은 기동과 수적 우세를 기반으로 발전시킨 전술로 UN군의 화력을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치밀한 기만계획을 실행에 옮겼고 미군의 정보기관들을 완전히 속였으며 UN군에게 완벽한 기습이었고 엄청난 혼란이 야기되었다. UN군의 도의적 단결력은 무너졌고 특히 이제 막 창설된 한국군과 일부 미군 부대에서 그런 상황이 벌어졌다.

중공군이 임무형 지휘의 준칙에 따라 작전을 수행했다는 근거는 없지만, 이들에게 무선 통신장비가 부족했기에, 일단 공격이 시작되면 예하부대 지휘관들이 독단적으로 부대를 이끌 수 밖에 없었다.


B.A. 프리드먼
전술의 정석 15장 환경과 지형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