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는 누구에게서 받는 게 아니라, 아무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여정을 거쳐 스스로 찾아야 한다.
-마르셀 프루스트
1968년 10~11월 팀원 및 동료 KIA/MIA
SP5 게리 L. 맷슨, KIA 10월 30일
하사 아서 E. 베이더 주니어, KIA 11월 30일
병장 게리 R. 라본, KIA 11월 30일
하사 마이클 H. 메인, KIA 11월 30일
중사 클라우스 D. 숄츠, KIA 11월 30일
중위 레이몬드 C. 스택스, KIA 11월 30일
소령 새뮤얼 K. 투미 3세, KIA 11월 30일
CCN에서 브리핑을 마친 후, 나는 푸바이의 FOB-1으로 향하는 다른 신입 SOG 자원자들과 함께 기지 맨 끝에 있는 착륙장으로 걸어갔다. 착륙장은 PSP(perforated steel planks/구멍 뚫린 강철판)로 되어 있었다. 거기서 우리는 문이 없는 CH-34 "킹비" 헬기에 탑승했다. 이후 약 30분 정도 시끄럽고, 바람이 많이 불고, 이리저리 흔들리는 비행을 했다. 푸바이에 도착하자 한 대원이 우리를 FOB-1 기지로 안내했고, 식당으로 가서 점심 식사 전에 간단한 브리핑을 진행했다.
맥킨토시 원사가 FOB-1 시설, 보안, 안전, 규칙 및 일반적인 작전 지역에 대한 브리핑을 해주었다. 그런 다음 모두가 1-0 스쿨에 가서 1주일 동안 동남아 전역에서 극비 임무를 수행하는 SOG 팀을 이끄는 방법을 배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정확히는 나 빼고 모두 간다고 말했다. 나는 왜 안 가냐고 묻자, 원사는 "중위님은 그린베레와 레인저 자격을 갖추었잖습니까. 1-0 스쿨에서 아직 못 배운 것들을 배울 수는 있겠지만, 그리 많지는 않을 겁니다. 그리고 전부 내일 오후에 배정될 팀에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이죠. 중위님을 바로 투입할 예정입니다."라고 말했다.
"오늘 오후에 숙소를 배정받을 거고, 기지를 돌아다니는 방법과 공격받을 경우 어떤 방어 벙커로 가야 하는지 알아두십시오. 그리고 보급창고로 가서 장비, 무기, 탄약 챙기시고요. 보급창고에 있는 동안 존스 하사에게 아침에 업무를 도와줄 장교가 당신이라고 말하면 됩니다."
숙소에 도착했을 때, 나는 새로운 룸메이트로 FOB-1의 보급 장교인 알론조 스미스 대위를 만났다. 우리는 곧바로 친해졌고 그는 나에게 기지를 안내해 주었다. 이후에 1730시 저녁 식사 때 그를 다시 만났다. 그는 오늘이 내 마지막 자유 시간이 될 수도 있으니 영화를 보러 가자고 제안했다. 그 말을 전에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았다! "같이 가실 겁니까?"라고 물었더니, 그는 "아니. 시간 없어."라고 대답했다.
FOB-1은 비가 많이 내렸기에 비가 와도 젖지 않도록 양철 지붕이 달린 작은 극장이 있었고, 거기에 앉을 수 있는 작은 벤치도 있고, 흰색으로 칠한 합판 조각을 스크린으로 사용했다. 그날 저녁에 영화를 보러 갔는데 꽤 멋졌다. 사실 우리는 전투 지역에 있었다. 기온은 화씨 97도, 습도는 96%였다. 밤이었고, 나는 오래된 프랑스군 지뢰밭 옆에 있는 영화관에 앉아 팝콘 없이 영화를 보고 있었다.
영화는 약 15분 동안만 상영되었다. 나는 대부분 현지 팀원들로 구성된 12명의 사람들 사이에 앉아 있었는데, 큰 소리로 "탕!"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내 옆에 앉아 있던 몽타냐드가 벤치에서 땅으로 떨어졌고, 사람들은 흩어졌다. 어깨에 부상을 입은 몽타냐드와 함께 나도 땅에 엎드렸다. 왼쪽으로 12인치만 더 갔다면 내 가슴에 맞았을 것이다. 우리가 몽타냐드의 출혈을 멎게 하자 의료진들이 그를 병원으로 데려갔다. 그날 밤 영화는 사실상 끝났다. 나는 한동안 밤 영화에 별로 관심이 없어졌다. 밤 영화에 대해 좋은 경험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포트 브래그에서 훈련을 받을 때 "눈에 띄면 맞을 수 있다. 그리고 맞으면 죽겠지!"라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나는 보이지 않는 것, 즉 공격당하지 않는 것을 중요시하게 되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아침 식사 후 보급창고로 갔다. 창고에 도착하자 보급관인 존스 하사가 며칠 전에 여러 명의 SOG 팀원들이 사망했으며 그들의 개인 소지품을 가족에게 보내기 전에 장교가 이를 목록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바닥에 7개의 더플백이 놓인 방으로 나를 데려가더니 "가방을 하나씩 비우고 내용물을 살펴보십시오. 지도, 작전 사진 등 기밀로 분류될 만한 것이 있는지 찾아보시고요. 서신이 있으면 읽어보고 임무에 대한 내용이 있는지 확인해 보십쇼. 그리고 사진이 있으면 꺼내십쇼."라고 말했다. 나는 그들의 장비를 정리해야 했다. 간단해 보였다.
나는 첫 번째 더플백을 집어 들고, 겉면에 큰 흰색 글씨로 스텐실 된 이름을 읽었다. 레이먼드 C. 스택스 중위였다. 그때 마치 사타구니를 걷어차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SOG에 있다는 게 체감됐다! 레이는 포트 브래그에서 밥과 함께 만난 친구였다. 그는 우리보다 약 한 달 전에 월남으로 떠났다. 레이는 한 달 동안 SOG에 있었고, 나는 그의 가족에게 보낼 그의 개인 소지품을 목록화하고 있었다. 레이는 그린베레와 조국에 전적으로 헌신한 좋은 사람이었다. 나는 그가 SOG에 자원했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 그리고 이제 그는 죽었다. 동남아의 어떤 나라에서 SOG 임무를 수행하던 중 전사했다. 사실, 상황은 그보다 더 심각했다. 그와 6명의 팀원, 4명의 항공 승무원이 실종되었으며 그들의 유해는 수습할 수 없었다. 그들이 탑승한 헬기가 3,000피트 고도에서 대공포에 피격당했고, 아래의 정글 캐노피로 추락한 후 폭발하여 전소되고 말았다.
SOG에 합류하면 블랙홀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SOG에 있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고향 신문에 공고도 나지 않았고, 기사도 없이 그냥 죽는 것이었다. 우편물도 기밀 정보 때문에 사이공의 주소에서 검열을 받고 오고 갔다. 친구와 가족들은 그저 사이공에서 근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우편물만 사이공으로 가며, 사람은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 월남은 동남아 전역의 목표물을 타격하기 위한 작전의 "기지"에 불과했다. 레이와 6명의 팀원처럼 사망한다면 가족들은 월남에서 전사했거나 실종되었다고 듣게 되지, 다른 나라에서 전사했거나 실종되었다는 사실은 모를 것이다.
매일 내가 어디에 발을 들였는 지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는 것 같았다. 나는 어둡고 비밀스럽고 극도로 위험한 세계로 점점 더 깊숙이 빠져들고 있었다. 우리가 20년 동안 SOG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었던 데에는 이유가 있었고 나는 이제 막 진실을 알아가는 단계에 있었다. 그리고 이 책들은 그 이야기의 일부만을 말해줄 것이다.
나는 다른 더플백에 적힌 이름을 재빨리 살펴보며 내가 아는 사람이 있는지 확인했다. 차례대로 SP5 게리 L. 맷슨, 아서 E. 베이더 주니어 하사, 게리 R. 라본 병장, 마이클 H. 메인 하사, 클라우스 D. 숄츠 중사, 새뮤얼 K. 투미 3세 소령, 리처드 A. 피츠 하사가 있었다.
계속하기 전에 나는 존스 하사에게 돌아가서 이 대원들이 무엇을 하다가 사망했는지 물었다. 그는 일급 기밀로 분류되어 있으니 아무도 모른다고 말했다. FOB-1 지휘관조차도 몰랐다.
각 가방에 있는 개인 소지품을 살펴보는 것은 매우 개인적이고 감정적인 작업이 되었고, 나와 각 대원들, 그리고 그들의 유족 사이에 어느 정도 유대감을 형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가방의 내용물을 테이블 위에 놓으면서 나는 이 영웅들의 개인적인 삶을 마치 모자이크처럼 볼 수 있었다. 아내, 자녀, 부모님, 미래 계획, 반려견, 놓친 생일 파티 사진, 휴일, 첫걸음마, 첫 단어, 아이들이 그린 그림, 집에 가기 전까지 남은 시간, 아내 및 부모님과의 잡담 등 말이다. 항상 극도로 위험한 임무를 수행한다는 사실을 숨기고 있었다.
리차드 피츠 하사의 유품을 살펴보던 중, 그의 두 살짜리 어린 아들의 사진과 아들에 대한 대화, 그리고 피츠 하사가 아들을 얼마나 그리워했는지에 충격을 받았다. 그의 아들로부터 왜 그토록 큰 충격을 받았는지는 나조차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 아이를 결코 잊지 못했다. 그로부터 52년 후, 거의 같은 날, 나는 SOG 사이트에서 리차드 피츠 주니어가 SOG에서 자기 아버지를 아는 사람이 있는지 묻는 페이스북 게시물을 보았다. 나는 답장을 보내고 그와 소통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2020년 10월 특수작전협회 모임에서 만나기로 했지만, 당시는 2020년이었고 전 세계가 코로나바이러스로 어려움을 겪게 되어 모임이 취소되고 말았다.
하지만 이 모임은 나중에 가상 회의/모임으로 변경되었다. 리차드 피츠 주니어와 나는 만나지는 못했지만 친구가 되었고 우정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또한 피츠 주니어는 결국 자신의 아버지와 SOG의 이면 속에서 자란 자신의 인생 경험을 다룬 영화 "21 Years and a Folded Flag"를 제작했다.
마침내 개인 소지품 정리를 끝낸 나는 점심을 먹고 새로운 팀을 만나러 나갔다.
교훈
• 눈에 띄면 공격당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다.
• 인생은 짧고, 경고 없이 언제든 끝날 수 있다.
• 주변 상황을 항상 인지해야 했다.
• 적이 실존하고, 총탄도 실존하는 만큼 죽음도 실존하는 존재다.
• 항상 경계를 늦추지 않고 현재를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했다.
• 현재를 살아가는 건 에너지를 소모한다.
• 죽음은 너무 빨리 찾아와서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죽었는지조차 모를 수 있다.
• 영화 감상은 위험할 수 있지만, 영화를 보는 것 자체는 전쟁에서 벗어나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RT 앨라배마
내 사위인 에릭의 아버지는 퇴역 해군 대령이다. 랜디는 덩치가 큰 사람이고 해군에 입대하기 전에 풋볼을 했을 것 같은 외모였다. 실제로도 랜디는 전설적인 베어 브라이언트의 지도 아래 앨라배마 대학교에서 풋볼을 했다. 랜디는 규율, 포기하지 않는 태도, 110%의 헌신, 책임감, 리더십, 팀워크를 잘 이해하고 있다. 나는 베어 브라이언트와 크림슨 타이드에 대한 존경심은 있지만, 팬은 아니었다. 미안합니다, 랜디. SEC에 있는 게 다 그렇죠. 아무튼 돌이켜보면, 내가 속했던 첫 SOG 팀이 RT 앨라배마였다는 것이 흥미롭다. 우연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1968년, 젠트리 덱 하사와 나)
그날 오후 나는 공식적으로 RT 앨라배마에 1-1(발음은 "원-원") 부팀장/통신병으로 배정되었다. 나는 1-0, 즉 팀장인 젠트리 덱 하사를 만나 팀, 다가올 임무, 보급창고에서 어떤 장비를 가져와야 하는지, 향후 며칠 동안의 일정에 대한 개요를 설명받았다. 나는 장교였고 엄밀히 따지면 덱 하사보다 계급이 높았지만, 2인자가 될 예정이었다. 계급에 상관없이 경험 없이는 누구도 SOG 팀을 이끌 수 없었다.
1-1, 1-2 또는 스트랩행어(팀의 추가 멤버)로 활동하며 SOG 1-0에게 확인(인증)을 받을 때까지 팀을 이끄는 방법을 배워야 했다. 따라서 덱 하사가 "톰슨 중위는 1-0가 될 자격이 있다. 이제 팀을 지휘할 수 있다."라고 말해야, 다음 팀을 지휘할 1-0 명단에 오르는 것이었다. 또한 나는 팀에서 1-0가 며칠 만에 여러 번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SOG는 월남에서 사상자율이 가장 높았기 때문이다. 모든 작전팀원들이 전사(KIA), 부상(WIA), 실종(MIA) 중 하나를 당했다.
이와 관련된 이야기로, 포트 브래그에서 만난 절친인 리치 토드는 CCC에 배치되었다. 그와 나는 그린베레 Q코스에서 같은 팀에 있었고, 보병 장교 고급 과정(IOAC)를 함께 나왔으며, 프리폴 낙하산 강하도 여러 번 함께 완수했다. 리치는 도착하기 전날에 중대장이 사망한 해칫포스(HF) 중대의 중대장이 되고 싶어 했다. 하지만 CCC 사령관은 전날 밤에 그 자리가 채워졌다며 그에게 너무 늦었다고 말했다. 따라서 리치는 다른 임무를 받게 될 것이었다. 그날 저녁 식사 시간, 사령관은 리치를 자신의 테이블로 불러 여전히 중대장이 되고 싶은지 물었다. "그 자리는 이미 채워진 것 아니었습니까?" 리치가 물었다. 하지만 CCC 사령관은 "그랬지만 다시 공석이 됐다. 중대장이 되고 싶은가, 되고 싶지 않은가?"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리치는 중대장이 되어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이후 리치는 1984년에 다시 활동하게 된 제1특전단 3대대 지휘관이 되었고, 1990년에는 제1특전단 사령관이 되었다. SOG 이후에도 리치는 다음과 같은 일련의 특수전 임무를 맡았다: 70~73년, 바트톨츠, 10특전단 1대대 ODA-3, HALO 팀장/78~80년, 제5특전단 작전장교/87-88년, SWCS 그린베레 부서장/89~90년, SWCS 훈련 및 교리 책임자/USSOCOM 제1 사령부 작전본부장. 이후 리치는 군에서 은퇴하고 크로아티아, 이라크, 태국, 우간다, 소말리아, 니제르, 베냉, 토고에서 20년간 컨트랙터로 근무했다. 이런 식으로 일에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들도 있는 법이다.
임무 준비
덱 하사는 또한 나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팀 준비에 있어서 내 부팀장으로서 해야 할 일은 이거다. 국경을 넘을 때, 총격이 시작될 때, 그리고 총격이 시작되리라는 것을 알았을 때 내가 찾는 건 이거다. 여기가 우리가 갈 곳이고 도청을 할 거다." 같이 말이다. 팀은 이미 며칠 동안 임무를 준비했고, 임무를 준비하던 중에 내가 합류했다.
팀은 덱 하사, 나, 데이비스 하사, 그리고 7명의 월남 현지 용병으로 구성되었다. RT 앨라배마가 임무 준비를 계속하는 동안, 우리는 팀을 FOB-1 기지 밖의 사격장으로 데려가서 모의 및 실사격으로 즉각 대처 훈련(IAD)을 하며 임무 수행에 대비했다. 임무를 시작하기까지 6일밖에 안 남았기 때문에 나는 팀원들을 알아가고 즉각 대처 훈련과 팀의 표준 작전 절차(SOP)를 모두 익힐 시간이 거의 없었다. 프로 풋볼팀에 들어갔는데 플레이북을 모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도 통역사인 카우보이는 영어를 아주 잘했다. 다른 팀원들은 "엎드려, 멈춰, 접촉"과 같이 항상 쓰던 일반적인 단어와 구절은 이해했지만, 카우보이를 제외하고는 누구와도 실질적인 대화를 나눌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모든 수신호를 알고 있었으며, 임무 중 적과 접촉하기 전에 말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데이비스 하사는 나를 보급창고로 데려가서 임무에 필요한 모든 장비를 챙겨주었다. 엄청 무거워서 놀랐는데, 아직 탄약 35파운드, 5일 치 식량, 물 4쿼트가 남아있었다!
소독(sterile)
SOG 팀은 "소독" 상태로 투입되었다. 즉, 팀원을 미국과 연관 지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는 소리로, 이름표, 인식표, 신분증 등 아무것도 없었다. 물론 이것은 제네바 협약 위반이었다. 전투원은 신분증을 휴대해야 했으며 신분증이 없으면 포로로 잡힐 경우 제네바 협약에 따른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우리는 스파이였고 그 자리에서 처형될 수 있었다. 소독 상태로 들어가는 것은 미국의 그럴듯한 부인 가능성을 위한 것으로, 미국은 해당 국가에서의 우리의 임무나 존재에 대한 모든 것을 부인할 것이었다. 우리는 알아서 모든 것을 해야 했다.
나는 이 시점에서 이게 현실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완전히 집중했다. 내 목숨은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배우는 데 달려 있었다. 내 마음속에는 오직 그 생각뿐이었다.
나는 장비를 생존, 임무 필수, 특수 장비로 총 세 가지 "레벨"로 분류했다.
(내가 일반적으로 휴대했던 장비들(보다시피 매우 무거웠다))
(CAR-15 기관단총과 내장 소음기가 있는 하이 스탠다드 .22 LR 권총)
(배낭의 기본 구성. 임무에 따라 수정됐다)
장비의 전체 무게는 매우 무거웠다. 예를 들어, 내 LBE(웹기어)는 일반적으로 35파운드 이상이었고 내 배낭은 약 75파운드였으며, CAR-15와 권총을 포함한 내 개인 생존 장비는 15~20파운드였다. 당시 내 체중이 140파운드(체지방이 매우 낮았다)였는데, 내 장비가 약 125파운드였다. 나는 훌륭한 신체 상태로 월남에 도착했지만 내 어깨는 그렇게 많은 무게를 지탱하는 데 익숙하지 않았다. 내 LBE 스트랩과 배낭 스트랩이 말 그대로 내 어깨를 파고들어 살을 벗겨냈다. 모든 장비를 착용하자마자 바로 근력 및 균형 단련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고, 그날 바로 시작했다.
우리 팀의 배낭 구성에 대한 두 가지 기본원칙은 다음과 같았다.
1. 가장 자주 사용하는 것들은 쉽게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예) 무전기, 크레모아, 탄약, 발목지뢰 등
2. 신관은 크레모아, 수류탄, C-4와 분리하여 보호를 위해 금속이나 나무로 된 안전용기에 넣어야 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특정 유형의 임무와 지형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서 팀원들과 내가 휴대하는 장비가 바뀌었다. 또한 일부 장비를 수정했다. 예를 들어, 수통 파우치의 금속 단추를 나무 단추로 교체하거나(소리 없이 물을 마실 수 있도록), 접촉 전에 소음을 유발할 수 모든 것들을 조정하는 등 일부 장비를 수정했다. 최종 전투 점검(항공기 엔진이 가동되기 전) 동안 나를 포함한 각 팀원들은 위아래로 뛰며 소리가 나는지 확인해야 했다. 소리가 나면 발각될 수 있으며 이는 팀의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으니까 말이다. 우리 목숨은 침묵에 달려 있었다.
내 전투 중 규칙 중 하나는 가능한 한 지면에 붙어있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임무에서 내 배낭은 늘 총에 맞았다. 내가 지면에 붙어있지 않았다면 배낭 대신 내가 총에 맞았을 것이다.
나와 팀원들이 LBE에 휴대한 장비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진화했다. 왼쪽에는 각각 탄창 6개가 든 수통 파우치 4개, 오른쪽에는 5개의 수류탄이 든 파우치 1개, 뒤쪽에 수통, 구급 키트, 때로는 벨트 앞쪽에 백린 연막탄이나 연막탄을 달았다. 앞쪽에 붕대 1~2개, 오른쪽 어깨에는 CAR-15 슬링용 검은색 스냅 링크, 목뒤 하네스 뒤쪽에는 링거 용액 캔, 왼쪽 어깨에 스트로보 조명, 그 아래에 수류탄이나, 때로는 연막탄을 달았다. 또한 스위스 시트 등을 묶을 때 사용할 수 있도록 검은색 스냅 링크에 12피트 길이의 나일론 로프를 감아 휴대했다.
또한 나는 유니폼에 다음과 같이 생존 장비를 착용했다. 탄창 4개(각각 20발들이)가 들어가는 밴돌리어, 벨트에 KA-BAR 나이프(내가 직접 만든 서바이벌 손잡이가 있었다), 앞면 왼쪽 바지 주머니에 나침반(끈으로 묶음), 왼쪽 카고 포켓에 지도, 오른쪽 바지 주머니에 데모 나이프, 왼쪽 소매 주머니에 작은 노트와 펜, 빨간 렌즈가 달린 펜라이트, 오른쪽 소매 주머니에 펜 플레어건과 플레어, 왼쪽 셔츠 주머니(심장 위)에 URC-10 생존 무전기(랜야드 포함), 오른쪽 카고 포켓에 물을 넣은 LRP 식량 1개, 왼쪽 다리에 M-17 방독면, 군화 윗부분 바짓자락을 말아 넣고 검은색 전기 테이프로 테이핑, 소매를 내리고 소맷부리를 테이핑, 목에 올리브색 삼각건(일명 람보 머리띠), CAR-15 총구에 검은색 전기 테이프, 손가락 세 번째 마디 부분이 잘린 검은색 가죽 장갑, 소매 아래에 시계, 필요에 따른 기타 장비 등이 있었다. 이것이 표준 장비 휴대에 대한 SOP가 됐다. 이 덕분에 팀원에게서 무언가를 가져와야 한다면 전투가 한창인 어둠 속에서도 우리는 어디를 봐야 할지 알 수 있었다.
M-16은 월남에서 잦은 기능 고장, 특히 탄창을 가득 채웠을 때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그 평판은 CAR-15로도 이어졌다. 이 때문에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은 탄창에 17~18발만 삽탄했다. 나는 탄창을 가득 채웠지만 임무 3일 전까지 삽탄된 적 없는 새 탄창만 사용했다. 대부분의 임무에서 500~800발을 쐈지만 기능 고장이 발생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래도 총탄이나 탄피로 기능 고장이 생길 경우를 대비해 CAR-15에 연장한 꼬질대를 부착하고 다녔다. 물론 나는 팀원들에게 탄창을 가득 채울지 말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를 제공했다.
처음 몇 번의 임무에서 나는 식량으로 장거리 순찰용 식량(LRP)을 휴대했다. 음식은 괜찮았지만 소음이 많이 발생하고 물이 많이 필요했다(건조 상태였으니 말이다).
LRP 구성
메뉴 #1 쇠고기 해시
메뉴 #2 칠리 콘 카르네
메뉴 #3 미트 소스 스파게티
메뉴 #4 쇠고기 볶음밥
메뉴 #5 치킨 스튜
메뉴 #6 돼지고기를 곁들인 가리비 감자
메뉴 #7 쇠고기 스튜
메뉴 #8 닭고기 볶음밥
나중에 나는 LRP를 현지 PIR 식량으로 바꿨다. 여는 데 소음이 덜 발생하고 먹기도 더 쉬웠기 때문이다.
날씨는 우리 임무에 있어 중요한 고려 사항이었다. 월경임무 중 문제가 생겼는데 악천후까지 겹치면 아무도 우리를 구하러 오지 못할 테니까 말이다. CCN, CCC, CCS에는 자체 공군 기상학자들이 있어서 기상을 추적하고 하루에 여러 번 지휘부에 브리핑을 했다. 팀들은 투입 전에 기상 브리핑을 받아 어떤 날씨가 예상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팀들은 며칠 동안 날씨가 좋을 것 같지 않는 한 임무를 시작하지 않았다. 현장에 도착했는데 갑자기 항공 자산을 사용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또한 대원들은 곧 다음 날에 이루어지는 기상 예보가 가장 정확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기상학자들은 훨씬 더 정확했다.
대부분의 경우 CCN 팀은 라오스 북부, DMZ 또는 월맹의 산악 지대에 투입되었다. 대부분 열대 우림이었기 때문에 매일 비가 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비가 오면 구름이 산 바로 위로 내려와 능선이 완전히 가려지곤 했다. 이중 및 삼중 캐노피 정글 아래에 있을 뿐만 아니라 비가 오면 캐노피 위에 두꺼운 구름이 덮여 있었다. 이 구름으로 인해 항공 자산이 우리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할 수 있었다. 캐노피를 뚫고 플레어를 쏴도 구름이 플레어를 가렸다.
당직 총격전
FOB-1에서의 둘째 날에 나는 당직 장교 명단에 이름이 올랐다. 일요일 저녁/밤이라 모든 것이 매우 조용할 것이라는 브리핑을 받았다. 무슨 일이 생겼을 때의 모든 답변은 당직 장교의 파일에 있었다. 그 말은 경고 신호였지만 내가 놓쳤던 것 같다. 당직 장교는 탄약고와 같은 특정 장소의 "기지 점검"과 함께 방문한 시간을 기록해야 했다. 이 점검은 밤 중에 여러 번 해야 했다. 그리고 첫 점검을 할 때가 됐다.
나는 행정반에서 중대 도로로 걸어 나갔다. 약 40야드 전방에 기지 정문이 있었고, 사격장에서 돌아오는 팀을 태운 3/4톤 트럭이 문을 열어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 우리 기지는 작은 월남군 기지와 울타리 하나를 맞대고 있었다. 나는 몽타냐드 팀이 들어오려고 한다는 것을 알았고, 그 순간 고함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세상에, 맙소사! M-60 기관총을 든 몽타냐드가 월남군 기지를 향해 사격을 가했는데, 각도 때문에 총알이 나에게 날아왔다. 첫 총탄은 나한테서 약 2피트 떨어진 행정반 모퉁이에 맞았고, 나머지는 행정반 옆을 가로질러 날아들었다.
월남군이 반격하자 나는 지면에 엎드렸다. 나는 최대한 큰 소리로 "사격 중지!"를 외치기 시작했고, 팀장과 월남군 기지에 있던 다른 여러 사람들도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몽타냐드가 총격을 멈추었고 상황은 조용해졌다. 내가 일어나서 정문으로 향하자 FOB 사령관이 나와서 고함을 질렀다. 나는 몽타냐드가 월남인을 정말 싫어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마찬가지로 월남인들도 몽타냐드를 싫어했다. 이 때문에 우리는 그들을 기지에서 분리해야 했다. SOG에서 또 다른 흥미로운 것을 배운 날이었다.
교훈
• 소리를 내면 발견될 수 있고, 발견된다면 팀의 죽음으로 이어진다.
• 임무 장비(장비, 탄약 등)는 매우 무거웠다(80-100파운드).
• 월남인과 몽타냐드는 서로에 대해 강력하고 치명적인 혐오감을 가지고 있었다.
• 나는 배울 게 많았다(적, 전술, SOP, 절차, 팀 소통, 즉각 대처 훈련, 현장 외상 절차, 장비 등). 하지만 첫 임무 전에 배울 시간이 거의 없었다.
• 나는 짬찌였지만 임무에 대한 책임이 컸다.
• 우리 현지 대원들이 매우 강인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 돌이켜보면 RT 앨라배마가 내 첫 SOG 팀이었다는 것이 흥미롭다.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SOG 이야기는 언제나 개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