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T 미시간, 사촌 칼과 함께하는 마블 마운틴 경계 임무, 69년 1월 25일
다낭 근처에는 5개의 마블 마운틴이 있으며, 각각 원소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킴(금속), 투이(물), 목(나무), 호아(불), 토(흙). 가장 높은 봉우리은 투이 산으로, CCN 기지 남쪽 철조망에서 약 300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우리가 투이 산이라고 부르던 마블 마운틴은 모래사장에서 거의 수직으로 솟아올라 450피트 이상 뻗어 있다. 양쪽 끝으로 봉우리가 있는 안장 모양이며, 적들이 그 봉우리 중 하나 또는 둘 다에 오른다면 CCN 기지를 향해 직접 사격을 가할 수 있었다. 1968년 8월 23일에 기지가 공격당했을 때 적들이 이를 시도했었다.
그 후, CCN은 항상 각 봉우리에 정찰팀을 배치했다. RT 미시간의 임무는 동쪽 끝 봉우리에 있는 COP 1(Combat Out Post/전투 전초기지)을 10일 동안 지키는 것이었다. 서쪽에 있는 봉우리는 RT 조지아가 약 5일 동안 있다가 5~8일 후에 다른 정찰팀과 교대할 예정이었다.
(CCN 영내에서 본 마블 마운틴(투이). 각 봉우리에 전투 전초기지가 있다)
마블 마운틴 팀 명단
1-0 톰슨 중위
1-1 버지웰 병장
통역 칸투아
M-79 히엥
포인트맨 1 캄바
포인트맨 3 푸아
후방사수 1 아캇
후방사수 2 충
M-79 라푼
포인트맨 2 아이타
스트랩행어 허드슨 병장
COP 1으로 이동
동이 트자마자 우리는 전투 장비를 완비한 채 뒤쪽 출구를 통해 CCN 기지에서 나와 해변을 따라 매우 조심스럽게 이동했다. 산기슭에 도착하기 전에 RT 코랄의 3인조 호위팀이 우리를 맞이했다. 그들의 임무는 우리에게 산으로 향하는 길을 안내하고 주의해야 할 위험 요소(폭탄 함정, 지뢰, 매복 등)를 알려주는 것이었다. 우리는 작은 마을의 가장자리를 지나 승려들이 살고 있는 절과 이어진 고원으로 향하는 트레일을 올랐다. 거기서부터 트레일이 극적으로 바뀌었다. 매우 가파르고 거친 바위가 많았고, 특히 많은 장비를 짊어진 채로 오르는 것은 매우 어렵고 힘들었다.
마침내 정상에 도착하자 RT 코랄의 1-0인 제이슨 하사, 1-1 멀베리 병장, 그리고 코랄의 팀원들이 우리를 맞이했다. 그들은 산에서 내려간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1000시가 조금 지났을 뿐인데 벌써 화씨 100도였다. 산 정상에는 나무가 없었고, 오직 햇살과 남중국해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만 있었다.
제이슨 하사와 멀베리 병장은 COP 경계선을 안내하며 아래 주제에 대한 작전 및 전술 브리핑을 해주었다.
•저격수
•방어 진지
•교전 수칙
•적의 공격 방법/시기/장소
•COP 2와의 조정/소통
•교차 사격
•식량/물/탄약 재보급
•주간 경계 순찰
•IED/부비트랩
•더위 및 습도
•저격수를 잊지 말 것
우리 임무는 COP를 방어하고 베트콩이나 월맹군이 COP로 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2차적인 임무는 적이 다른 봉우리에 있는 COP 2를 점령하려고 할 경우 그들을 지원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RT 조지아 팀원들이 고원을 가로질러 300m 정도를 이동하는 것을 보았다. 제이슨 하사가 RT 조지아의 1-0인 손더스 중사에게 무전을 보냈고, 나는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버지웰은 손더스를 알고 있었고, 나는 CCN 기지에서 그를 보았지만 실질적인 만남을 가진 적은 없었다.
(CCN 근처 마블 마운틴 COP 1에 있는 톰슨 중위와 엘든 버지웰 병장, 1969년)
버지웰은 두 COP 사이에 설치된 유선 전화를 테스트했다. 이 유선 전화는 COP 간의 보조적이고 사적인 통신 수단을 제공해 주었다. 또한 TOC가 우리의 모든 무전 통신을 모니터링했고 CCN 사령관에게 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계속 알렸다. 참고: 가까운 미래에, 전투가 한창 치열한 순간에 나는 CCN 사령관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내가 무전으로 하는 말을 모니터링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했다.
1일 차
우리가 방어 진지에 자리를 잡고 COP 1을 확보했음을 TOC에 알린 후, RT 코랄은 COP를 떠나 CCN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모든 미시간 팀원들은 방어 진지를 강화하고 사선, 겨냥대, 탄약, 수류탄, 조명탄을 확인하며 그날 밤 우리의 결의를 시험할 적군들에 대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팀원들이 가장 흥미롭게 여긴 것은 화장실이었다. 팀원들은 서로가 화장실을 사용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매우 재밌다고 생각했다. 완전히 개방되어 있다는 점이 새로웠기 때문이다. 절벽 가장자리에 변기가 설치된 나무 플랫폼이었는데, 변기가 절벽 가장자리 너머로 뻗어 있었다. 화장실을 사용하면 배설물이 200피트 아래의 바위로 곧장 떨어졌다. 화장실로 오고 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걸렸다. 또한 야간에는 저격수가 노릴 수 있기 때문에 사용하지 않았다.
(1200피트 높이에 설치된 마블 마운틴 COP 화장실)
1500시가 조금 지났을 무렵, 히엥이 저격수의 환영을 받으며 총에 맞을 뻔했다. 두 발의 총탄이 히엥의 머리로부터 약 12인치 떨어진 바위에 부딪히며 튕겨 나갔다. 아슬아슬했고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조금 일찍 공격이 시작됐다. 저격수의 위치는 보지 못했지만 우리 모두 메시지를 받았다. 나쁜 놈들이 저기에 있으며 우리를 죽이려고 한다는 것 말이다! 또한 우리는 돌로 된 산꼭대기에서는 총탄이 도탄 되는 것을 깨달았다.
COP에서 본 일몰은 아름다웠지만, 이는 폭풍 전야였다. 2030시경에 우리는 COP 1과 COP 2 사이의 작은 고원에서 맹렬한 공격을 받았다. 덕분에 나는 M-60 기관총을 사용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나는 7.62mm의 집중사격으로 적과 교전했고 COP 2의 M-60도 우리와 합류했다. 무거운 M-60(23파운드)이나 탄약(30파운드/1000발)을 계속 들고 다닐 필요가 없는 건 다행이었다.
우리가 대응 사격을 하자 각 방어진지가 밝아졌다. 이제 월맹군은 우리 진지가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알게 되었다. COP 1 바로 맞은편에 있던 두 번째 월맹군 무리는 약 40m 떨어진 작은 동굴 입구에서 우리 진지를 공격했다. 이 때문에 우리 모두 엎드려 있다가 히엥이 동굴 입구를 향해 40mm 고폭탄 두 발을 쐈고, 이어서 조명탄을 쏘아 동굴 내부를 밝혔다. 동굴은 조용해졌고 밤새도록 그 상태가 유지되었다. 고원도 마찬가지였다. 아마 영내에서 영화를 보던 사람들은 우리가 "찰리"라 불리는 악당들과 싸우는 동안에도 영화를 계속 즐겼을 것이다.
공격이 끝나고 아드레날린이 사라지기 시작하자 나는 그 경험이 신체적, 심리적으로 어땠는지 정리할 수 있었다. 나는 다음 날 아침에 할 사후검토에서 논의할 목록을 만들었다.
2일 차
사후검토를 하며 우리는 공격 중에 우리 진지 주변의 모래주머니가 잘 버텨내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때문에 버지웰은 점심까지 더 많은 탄약과 함께 50개의 모래주머니를 요청했다. 또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항들을 논의했다.
•우리는 절벽을 등진 채 작은 산 정상에 "고립"됐으며 대부분의 전투 진지, 특히 내 진지가 더욱 그런 경향이 있었다. 내 위치는 주요 교전 경로에 있었으며 전장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었다. 덕분에 사선을 잘 확보할 수 있었지만, 내게 기관총이 있었기 때문에 내 진지는 월맹군의 주요 표적이 되었다. 게다가 적들은 내 진지뿐만 아니라 내가 있는 쪽에 있던 다른 팀원들도 쉽게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어둠 속에서 우리를 공격하기 쉬웠다.
•나는 공격이 시작되면 대부분의 시간 동안 내 진지에 갇히게 됐다. 내가 사격을 시작한 후 내 위치에서 벗어나려면 15~20m 동안 완전히 노출되어야 했다. 게다가 어떻게든 봉우리의 다른 지점으로 이동한다면 전투를 보고 지휘할 수 있는 능력이 크게 떨어졌다. 때문에 나는 전장 전체를 볼 수 있는 일종의 링사이드 좌석에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 쏘고 움직이는 것에 익숙해졌다 보니 내 진지와 봉우리는 거의 폐소 공포증에 가까운 느낌이 들었다. 애초에 기동할 수 없었다. 집중 사격을 받으며 모래주머니 위로 고개를 들 수 없는 상황은 마치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밤에 물속에 있는 것과 같았다. 나는 며칠 동안 이 진지에 머물며 상황을 지켜보기로 결정했다.
•우리가 해결해야 할 또 다른 문제는 팀원 간 소통이었다. 버지웰과 나는 둘 다 PRC-25를 가지고 있었다. 이를 통해 서로, COP 2, TOC, 헬기, 건쉽과 대화할 수 있었지만 팀원들과는 대화할 수 없었다. 총성, 폭발 등으로 매우 시끄러웠기 때문에 팀원들에게 소리를 지르는 방법뿐이었다. 우리는 버지웰을 봉우리 바로 뒤편에 배치하여 그가 이동하며 각 전투 진지로 다가가 상태를 확인하고 지시를 내릴 수 있도록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들의 의사소통 방식은 더 나아졌다.
•우리는 매일 아침 사후검토를 통해 공격자를 격퇴하고 팀원들을 안전하게 지키는 능력을 배우고 향상시켰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런 고정적인 진지에 있는데도 헬멧과 방탄조끼를 착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팀의 M-79는 방어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봉우리에서 40mm 유탄을 쏘면 사거리가 상당히 늘어났다. 게다가 고정된 진지에 있었기 때문에 CS 가스와 연막탄 및 많은 양의 고폭탄을 비롯한 40mm 유탄을 비축할 수 있었다. 덕분에 공격 중에 히엥과 라푼은 월맹군을 향해 40mm 유탄을 폭우처럼 퍼부었으며, 버지웰은 다음 날 더 많은 유탄을 더 요청했다.
•우리는 산에서의 모범 행위에 대해 배울 것이 아직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다른 모든 것들을 배우려는 팀처럼 공격적으로 접근했다. 그리고 나에겐 버지웰이라는 최고의 1-1이 있었으며 우리는 50년 지기 우정의 초기 단계에 있었다.
(마블 마운틴 COP 1 전투 진지, 오른쪽에 있는 것은 트랜지스터 라디오다)
2일 차는 덥고 느린 하루였다. 다행히도 COP에는 자체 트랜지스터 라디오가 있었다(위 사진 오른쪽 참조). 덕분에 우리는 DJ 팻 세이잭(이후 1981년에 유명한 "휠 오브 포춘" 진행자가 됨)이 진행하는 사이공의 AFVN 방송을 청취할 수 있었다. 팻 세이잭은 1968년 10월부터 1969년 12월까지 AFVN 진행을 맡았으며 평일 0600시에 그 유명한 "구우우우우우웃모닝, 베트남!"이라는 말을 외치곤 했다. 그 방송 덕분에 사기가 북돋워졌고 미국의 최신 음악을 따라잡는 데 도움이 됐다.
한편, 1630시경에 저격수들이 돌아와 1800시까지 우리에게 사격을 가했다. 저격수들은 총구 섬광을 보이는 것을 피하고자 어두워지기 전에 공격하는 것을 선호했다. 그 후 우리는 몇 시간 동안 휴식을 취하다 월맹군이 우리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작은 공격을 한 차례 받았다.
3일 차
또 다른 아름다운 일출과 시원한 바람 그리고 오후에 또 다른 큰 놀라움이 선사됐다!
3일 차 1100시경에 TOC로부터 정찰 중대 TOC로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방문객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이다. 그게 그들이 한 말의 전부였다. 나는 칸투아와 히엥을 데리고 산을 내려갔다. 누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지 보고는 완전히 충격을 받았다. 내 사촌 칼이었다. 1장에서 언급된 톰슨즈 레인저를 기억하는가? 그가 월남에서 세 번째 파병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내가 CCN에 있는 동안 그를 볼 줄은 몰랐다. 특히 SOG 관계자 외에는 그 존재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극비 SOG 기지 내부에서 그를 볼 줄은 몰랐다. 칼은 내가 거기에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고, 어떻게 제한된 기지로 들어갈 수 있었을까? 칼은 항상 나를 놀라게 하는 능력이 있었다.
칼은 제75 레인저 연대, 골프 중대에서 며칠 휴가를 나와서 나를 보러 왔다고 말했다. 나는 내 팀이 COP 1을 지키고 있어서 다시 산으로 올라가야 한다고 설명했지만, 그는 휴가 중에 총에 맞아도 괜찮다고 말했다. 덕분에 나는 칼에게 좋은 경험을 선사할 수 있었다. 그는 전적으로 동의했다. 우리는 식당에서 식사를 한 다음 보급창고로 가서 CAR-15, 전술 장비, 배낭, LRP, 탄약, 링거 용액, 판초, 라이너 등을 받았다. 칼은 헬멧과 방탄조끼를 가지고 가는 것을 거부했고 우리는 산으로 향했다. 어렸을 때처럼 그와 함께 전투에 임할 수 있어서 기뻤다. 그가 헬멧과 방탄조끼를 가져갔다면 기분이 더 좋았을 것이다. 이번에는 적들이 AK-47과 RPG로 반격할 테니까 말이다.
적들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적들은 밤새 여러 차례 공격을 가했다. 마치 산에 새로운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사촌 칼이 투이 산에 온 것을 환영하고 싶었던 것 같다.
4일 차
우리는 아침을 먹으며 평소대로 사후검토를 했다. 칼이 관찰한 것과 추천 사항에 대한 그의 관점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사후검토가 끝난 후, 4일 차의 지루함이 시작되었다. 직사광선 아래 직경 40피트의 산 정상에 갇혀 화씨 100도의 기온 및 높은 습도에 시달리다 보니 금세 지루해졌다. 무언가를 해야 할 때가 되었다. 나는 칼, 칸투아, 캄바, 푸아를 모아서 버지웰에게 우리 맞은편에 있는 동굴부터 시작해서 몇 개의 동굴을 소탕하자고 말했다. 하지만 캄바와 푸아가 가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아서 칸투아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칸투아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그들은 동굴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결국 그들은 동굴로 갔다.
우리 맞은편에 있는 동굴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말라붙은 피가 많이 발견됐다. 아래쪽에 있는 동굴 중 하나로 들어가자 우리는 두 명의 월맹군을 발견했다. 칼이 그중 한 명을 바로 쓰러뜨렸지만 우리는 우리가 쏜 총탄을 피해야 했다! 우리는 돌로 된 동굴에서 총을 쏘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깨달았다. 총탄이 튕겨진다는 것이다! 각 총탄들은 두세 차례 벽에 튕기다가 멈추었다. 몇 분 후에 우리는 요령을 터득하고 다른 한 명을 제거했다. 우리는 그들을 수색한 뒤 시체를 동굴 밖에 두고 COP 1로 돌아갔다. 캄바는 다른 월맹군에게 경고를 주기 위해 그들의 머리를 말뚝에 박아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나이프를 다시 집어넣으라고 말했다.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었다. 캄바와 푸아는 이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초저녁에 저격수로부터 저격을 받긴 했지만 그날 밤에는 공격이 없었다. 덕분에 우리는 평소보다 조금 더 잠을 잘 수 있었다.
5일 차
사후검토에서 우리는 돌로 된 동굴에서 사격과 도탄을 유리하게 활용하는 방법을 논의했다. 팀원들은 또한 1968년 마블 마운틴 총격전에 대해 들었는데, 댄 톰슨 중위가 해칫포스 소대를 이끌고 산 정상으로 올라가 부상당한 채 탈출구가 없는 동굴에 갇힌 미군 3명과 현지 특공대원 6명을 모두 구하고 데이비드 렌치너 중위의 시신을 수습하는 임무를 맡게 되었다. 댄 중위는 동굴과 이어진 구멍을 찾아 부상당한 9명을 구출하고 렌치너 중위의 시신을 수습하는 데 성공했다.
캄바와 푸아는 이 사건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전날 동굴에 들어가기를 원치 않아 했다. 내가 칸투아에게 물었을 때는 이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때문에 나는 모든 것을 말해줘야 하는 것의 필요성에 대해 칸투아와 둘만의 대화를 나눴다.
한편 버지웰은 더 많은 모래주머니, 탄약 및 식량을 요청했고, 킹비가 점심 직전에 보급품을 공수했다.
1400시경, 히엥과 캄바가 마을로 다녀와도 되는지 물었다. 히엥은 한 시간 후에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이 곤경에 빠지지 않도록 나와 칼이 동행했다. 우리는 마을을 조금 둘러보았고, 마을 사람들은 놀라움에서 두려움까지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마을 사람들은 SOG 대원을 가까이서 보는 데 익숙하지 않았다. 우리는 작은 식당에 들러 간식을 먹었다. 칼은 월남어를 꽤 잘 구사했다. 우리가 무엇을 먹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매우 뜨거웠다! 칼은 이게 뭔지 알았지만 나에게 말해주지 않았다. 한편 우리가 식사하는 동안 히엥과 캄바가 사라졌다. 그들은 깃털이 없는 생닭을 가지고 돌아왔다.
우리는 산으로 돌아가서 이른 저녁으로 닭고기와 쌀밥을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산 정상에서 마지막 경계 점검을 하던 중 저격수들이 저녁 인사를 했다. 저격수들이 있었지만 석양이 정말 아름다웠다.
2200시경에 적들이 돌아왔고, 주로 COP 2를 공격했다. 우리는 COP 2에 화력 지원을 제공했다. 우리에게는 비교적 쉬운 밤이었다. 반격 없이 약간의 사격 연습만 했으니까 말이다. 그 탓에 칼이 실망했던 것 같다.
6일 차
정말 덥고 지루한 아침이었다. 하지만 얼마나 흥분되는 일이 다가올지는 알 수 없었다.
1300시경에 히엥과 캄바가 마을로 다녀와도 되냐고 물었다. "걱정마." 그들이 말했다. 히엥은 한 시간 후에 돌아올 거라고 말했다. 버지웰이 동의했고, 나도 동의했지만 무전기와 함께 칸투아, 푸아도 데리고 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들이 떠난 지 20분 후에 우리는 두 차례의 CAR-15 총성을 들었고, 칸투아가 무전기로 "문제없다. 돌아가겠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버지웰은 "뭔가를 저질렀군. 칸투아의 목소리에서 느껴져."라고 말했다.
약 15분 후에 그들이 트레일의 가장 가파른 마지막 부분을 오르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무언가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이 정상에 오르자, 나는 그들이 무거운 무언가가 들어 있는 피 묻은 모래주머니를 들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주머니 바닥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버지웰은 칸투아에게 주머니 안에 무엇이 있는지 물었다. 그리고 칸투아는 히엥과 이야기를 나누다 화를 냈다. 칸투아는 버지웰에게 돌아서서 "승려들의 개야. 먹겠다고 하는군."이라고 말했다. 버지웰은 거의 이성을 잃을 뻔했다. 버지웰은 칸투아의 통역을 통해 히엥과 매우 격한 말을 나눴다. 버지웰은 이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승려들의 개를 죽이고 그걸 먹으려고 했으니 말이다!
저녁은 개고기와 쌀밥이었다. 하지만 버지웰, 칼, 나는 LRP를 먹었다. 사실 칼과 나는 팀원 간의 유대감을 위해 LRP와 함께 개고기와 밥도 조금 먹었다. 당장은 순조로웠다. 개고기로 배를 채우고 미국에서 온 최신 히트곡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저격수가 우리를 향해 총을 쏘고 있었고, 우리는 이것이 그날 밤에 일어날 일에 대한 워밍업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공격이 가해졌다. SOG에서의 또 다른 하루였다.
7일 차
사후검토: 우리는 막대기에 머리를 꽂거나 승려의 개를 잡아먹지 않기로 논의했다. 월남인들은 개를 일상적으로 개를 먹었지만 RT 미시간은 이제 주인이 있는 개를 먹지 않을 것이었다. 오늘 우리는 다시 동굴로 들어갈 것이고 사격을 주의하기로 했다. 총탄이 크고 화려한 불상에 날아들지 않기를 바랐다. 승려들과 더 이상 문제를 겪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하루 중 가장 더운 시간대에 동굴들, 특히 큰 불상이 있는 큰 동굴들을 수색하기로 했다. 승려들은 우리가 그들의 주요 구역에 들어가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불행히도 적들은 없었지만 햇볕 아래 있는 것보다는 훨씬 시원했다.
저녁에 미군들이 LRP를, 현지 대원들이 PIR를 취식하기 직전에 저격수 친구들이 돌아왔다. 그런 다음 작은 공격이 이어졌다. 그다지 신나는 일은 아니었다.
8일 차
사후검토: 우리는 동굴에서 월맹군을 찾지 못했지만 승려와 월남인들이 의심스러운 행동을 하는 것을 알아챘다. 버지웰과 칸투아는 이를 즉시 알아챘다.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었다.
일출 약 1시간 전부터 바람이 불고 폭우가 내렸다. 건조하거나 따뜻하게 지낼 방법이 없었다. 그날 우리는 동굴로 돌아갈 계획이었지만 COP에 머물기로 했다.
저격수들은 그날 오후 일찍 나타나 우리를 놀라게 했다. 첫 번째 총탄이 푸아의 팔에 맞았다. 심각한 부상은 아니었지만 분명 아팠을 것이다. 나는 TOC에 연락하여 헬기를 불러 푸아가 치료를 받고 오게 했다. 푸아는 몇 시간 만에 돌아왔다.
우리는 최대한 엄폐하려고 했지만 엄폐를 계속하면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볼 수 있는 능력이 떨어졌다. 악기상과 함께 저격수 활동이 늘어났고, 버지웰과 내 스파이더 센스가 작동했다. 나는 유선 전화로 COP 2에 연락하여 손더스 하사에게 CCR의 Bad Moon Rising처럼 나쁜 일의 조짐이 느껴진다는 우려를 전했다. 손더스 하사도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또한 나는 TOC로도 연락하여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내 우려를 전했다.
어두워지기 직전에 저격이 멈췄다. 바람과 비를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조용해졌다. 두 COP 모두 완전 경계 태세를 갖추고 움직임의 흔적을 살폈다. 나는 칼에게 밤에 집중 공격이 있을 테니 정신적으로 대비하라고 말했고, TOC에도 같은 정보를 전달하고 박격포로 조명탄을 쏠 준비를 하라고 요청했다. 버지웰은 이미 팀원들에게 여분의 조명탄과 수류탄을 나눠주었다. 1930시경에 비가 그쳤고 바람도 약간 약해졌다. 칸투아가 스타라이트 스코프를 사용하여 주변을 살폈지만 밤이 너무 어두워서 멀리 볼 수는 없었다.
2100시 직후, 고원 뒤쪽에서 대규모 월맹군들이 AK-47과 RPG로 두 COP에 사격을 가했다. B-40 로켓 두 발이 우리 COP를 넘어 CCN 기지로 떨어졌지만 철조망에 맞았다. 나는 박격포병들에게 조명탄을 요청했다. 그와 동시에 마을 반대편에 있는 해병대 기지가 공격을 받았다. 우리는 격렬한 총격전을 목격했으며 해병대는 방어를 위해 155mm 포격을 요청했다.
조명탄으로 COP가 밝아지자 저격수들이 합류했다. 그런 다음 두 번째 월맹군 무리가 우리와 훨씬 더 가까운 곳에서 총격을 가했다. 그들은 어두운 밤을 이용해 평소보다 더 가까이 다가왔다. 우리는 확실히 적들과 격렬하게 싸우고 있었다. 약 20분 동안 COP 2의 손더스 하사와 무전을 주고받다가 나는 맥주 한 상자만 있다면 여기서 진짜 파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을 슬쩍 내뱉었다.
몇 분 후 155mm 쇼트 라운드가 해병대 막사 중 한 곳 옆에 떨어졌고, 막사가 즉시 평탄화됐다. 다행히도 모두가 경계선에 위치한 전투 진지에서 있었다. 포대와 표적 사이 일직선상에는 절대 있고 싶지 않을 것이다. 특히 155mm의 경우에 말이다! 155mm 포탄은 정기적으로 표적에 못 도달하는 사거리가 짧은 탄이 발생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헨리 톰슨 중위와 칼 허드슨 병장, CCN 인근 마블 마운틴 전투 전초기지 #1에서, 1969년)
두 COP 사이에 많은 월맹군 시체가 흩어져 있었다. 한편 COP 2에서 총상을 입은 팀원 2명이 발생했는데, 이들은 다음 날 아침에 후송될 것이었다. RT 미시간에는 심각하지 않은 파편상을 입은 팀원 3명이 있었다. 나머지는 괜찮았다. 우리는 밤새도록 경계했지만 더 이상의 활동은 없었다. 적어도 그렇게 생각했다!
9일 차
해가 뜨자 시체가 보이지 않았다. 밤 동안 모두 끌려 나가거나 옮겨졌는데, 이는 월맹군에게 흔한 일이었다. 시체가 사라진 것을 지켜보던 중 TOC에서 현황 보고 요청이 왔으며 내게 0800시까지 CCN 사령관 사무실로 오라고 했다. 전날 밤에 우리가 잘 싸웠다고 말하려는 게 아닐까 생각했지만,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짧은 사후검토를 했고, 나는 칸투아, 히엥, 칼을 데리고 산을 내려갔다.
내가 아이슬러 중령의 사무실에 도착하자 그는 내 COP에서 음주와 파티가 벌어진 것에 대해 나를 질책했다. 나는 그건 사실이 아니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이슬러 중령은 내가 "맥주 한 상자가 더 있었으면"(if we had another case of beer)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말했다. 나는 그냥 "맥주 한 상자가 있었으면"(if we had "a" case of beer)이라고 했고, 전투 진지에 갇혀서 반격할 수 없는 상황에서 농담으로 한 말이었다고 말했다. 나는 손더스 하사와 내가 주고받은 정보에 수많은 "대화"가 섞여 있다는 것을 중령이 알아차렸으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령의 마지막 말은 "산에서 파티는 안 된다!"였다. 나는 "알겠습니다, 중령님"이라고 말하고, 칼, 칸투아, 히엥과 함께 식당에서 제대로 된 식사를 하고 산으로 다시 향했다. "잘했다"는 말을 한 번도 듣지 못했다.
그날 밤 저격수나 공격은 없었다. 잠을 잘 수 있어서 좋았다.
10일 차
아름다운 일출이 있었다. 오후에 새로 오는 팀에게 브리핑을 한 후 기지로 돌아갈 예정이었기에 모두 들떠 있었다. 그리고 1600시에 임무 브리핑을 받을 것이라고 들었다.
나는 CCN으로 돌아가는 중에도 간단한 사후검토를 했다. 이번 논의 내용은 무전으로 하는 말에 주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칸투아는 "중령도 월맹군하고 비슷하구만. 항상 엿듣지."라고 덧붙였다. 나는 떠나기 전에 팀원들에게 쓰레기를 주워서 가지고 가라고 말했다
CCN으로 돌아온 우리는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칼의 장비를 반납하고, 칼이 부대에 복귀할 수 있도록 교통편을 마련해주었다. 칼과 액션 모험을 함께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사촌과 함께 "실사격" 액션 모험을 할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으니까 말이다.
교훈
• 고정된 방어 진지에서 싸우는 것은 팀이 싸우고 기동하는 것과 다르다. (적들이 내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다)
• 모래주머니가 매우 빨리 찢어졌다. 왜 콘크리트를 사용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 저격수는 주의를 끈다!
• 무전기를 쓸 때는 말조심해야 한다.
• 헬멧 및 방탄조끼 착용을 고려했어야 했다. 고정된 진지에서는 착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 우리는 낮 동안 월맹군이 관찰할 수 있는 고정된 위치, 그것도 엄폐물이 제한된 작은 봉우리에 갇혀 있었다.
• 우리는 탄약을 휴대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많은 탄약을 가질 수 있었다.
• M-79는 방어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월맹군이 저지대에 있었기 때문에 평소보다 더 먼 거리를 쏠 수 있었다.
• COP 1은 매우 더웠고 인공 그늘도 거의 없었다.
• 사촌 칼의 방문은 결코 잊지 못할 멋진 액션 모험이었다.
• 돌로 된 동굴 안에서 사격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 작은 봉우리에 갇혀 있어서 팀원들이 지루해했다. 우리는 동굴 소탕, 마을 여행 등 지루함을 잊기 위한 작전을 제공해야 했다.
• 승려들의 개를 먹은 탓에 승려들은 언짢아했다.
• 낮에 COP 1에서 바라본 경치는 환상적이었다.
우리의 휴식/치유 시간은 끝났다. 그날 오후에 우리에게 새로운 임무가 주어졌다. 이후에 나올 이야기들은 내가 RT 미시간의 1-0로서 마지막으로 수행한 세 가지 임무의 요약이다. 모두 훌륭한 임무들이었고, 나는 엘든 버지웰과 함께 전장 안팎에서의 보낸 시간이 정말 즐거웠다. 버지웰은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잊지 못할 내 특수 작전 멘토 두 명 중 한 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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