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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전 전설에는 두 가지 부류가 있다. 내 SOG 팀(RT 미시간)에서 1-1으로 활약했던 엘든 버지웰 소장처럼 전설이 되는 과정에 있는 사람들과 리차드 (딕) 미도우즈 대위처럼 이미 전설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헨리 L. 톰슨, SOG 1-0


딕 미도우즈 대위: 정찰중대 중대장(1969년 3월~7월)


내 1-1인 엘든 버지웰과 함께 RT 미시간이 라오스 북부에서 힘든 B-52 폭격 피해 평가를 마치고 막 CCN으로 돌아왔을 때의 일이었다. 때는 늦은 시간이었고, 나는 피곤하고 배고프고 다친 상태였다. 나는 의무실에 가서 상처를 치료한 후 몸을 씻고 식당에서 버지웰을 만나 절실히 필요했던 영양을 공급받아야 했다.


버지웰과 나는 식사 중에 간단한 사전 사후검토를 하며 다음 날 아침에 할 팀 사후검토 준비를 했다. 나는 임무에서 돌아온 후 가능한 한 빨리 팀 사후분석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미군 대원들을 비롯한 팀원들은 휴가나 휴식 동안 "느슨해지기" 전에 자신의 감정, 좌절, 두려움을 표현해야 했다. 임무 후에는 누구나 많은 두려움과 기타 심리적 짐을 짊어졌다. 이 짐은 다음 임무에까지 가져갈 필요가 없었다. 또한 사후분석을 통해 팀원 개개인은 물론 팀이 어떤 심리적, 관계적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기회도 얻었다. 이 정보는 다음 임무에 누가 갈지 말지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됐다. 그리고 RT 미시간은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기 전 이틀간의 휴가를 받게 될 것이었다.


버지웰과 내가 식사와 함께 사전 사후검토를 끝마치자, 나는 막사로 돌아가서 CAR-15와 웹기어를 닦고 다시 정비했다. 그러고는 침대에 누워 몇 분간 쉬었다. 잠이 들기 시작했을 때 문을 크게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톰슨 중위님. 안에 계십니까?"하고 누군가가 물었다.


"어. 무슨 일인데?"


"새로운 정찰중대 중대장으로 미도우즈 대위가 왔습니다. 2000시까지 와달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말도 안 돼!"라고 말했다.


"아뇨 진짭니다. 2000시까지 8분 남았습니다. 그리고 말조심하십시오. 바로 옆방에 중대장님이 계십니다!"


"젠장. SOG에서의 또 다른 하루군."


세상에는 자신의 커리어 분야에서 전설적인 멘토와 함께할 수 있을 만큼 운이 좋은 사람들이 있다. 나에게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전설적인 인물과 함께 있으면 그 존재감을 바로 느낄 수 있는데, 그들이 하는 말, 하는 일, 하라고 말하는 것 등이 사람을 겁에 질리게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경험한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무섭기도 하지만 동시에 짜릿하기도 하다. 인생 최고의 순간을 맞이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며, 이를 견뎌낸다면 새로운 사고방식과 행동 방식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딕 미도우즈 대위는 이미 특수전의 전설이었다. 특수전 세계의 모든 사람이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을 것이다. 미도우즈는 최연소 상사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또한 그의 경력 대부분이 극비 작전이었다. 그리고 미도우즈는 군 복무 중 육군이 선택권을 주는 시점에 이르렀다. 그는 원사나 대위로 진급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렇게 미도우즈는 월남전 중에 웨스트모어랜드 장군에 의해 최초로 현지임관한 장교가 되었고 소령으로 은퇴할 수 있다는 보장을 받았다. 곧 알게 되겠지만 미도우즈 대위는 정말 대단한 조용한 프로였다. 그리고 2분 후에 내가 그 딕 미도우즈를 만나게 될 것이었다!


CCN 정찰 중대의 미군 대원들은 작은 목조 건물에서 생활했다. (얇은 합판 벽이 건물의 절반을 나누어 두 세트의 거처를 형성했다) 두 명이 건물의 양쪽 끝을 공유하는 식이었다. 그리고 정찰 중대장이 내 건물 반대편에 있었다. 중대장과 나 사이에는 얇은 합판 벽이 전부였다. 당시 나는 룸메이트가 없었다.


2000시에 나는 미도우즈의 문을 두드리고 그를 만나러 갔다. 그는 나를 안으로 불러들인 뒤 차분하고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수고했어, 톰슨. 자네 기록을 보고 있었네. 마음에 들더군. 자네는 전사야. 자네는 가차 없고 혼전을 두려워하지 않더군. 항상 많은 적 사상자를 냈어. 그게 마음에 들어. 지금부터는 자네가 정찰 중대 XO(Executive Officer-부중대장)야."


나는 "좋습니다만 저는 제 팀을 포기하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미도우즈가 말했다. "걱정하지 마. 다른 팀을 찾아주지. 이제부터 자네가 부중대장이니 이곳의 몇 가지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내게 도움을 주게 될 거야. 우선, 내일 아침에 자네와 나는 정찰 중대의 모든 SOG 대원들과 한 명씩 면담을 가질 거야. 대원들의 기록을 살펴봤는데 몇몇 대원들이 분수에 안 맞는 베레모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아서 내일 그들을 특전단으로 돌려보낼 거야. 그들은 SOG에 있을 필요가 없어. 특전단에서 복무할 수는 있지만, SOG와는 함께 할 수 없다는 말이지."


나는 "무슨 뜻입니까?"라고 물었다.


그는 "여기에는 임무에 자주 나가지 않거나 임무 중 매번 LZ에서 철수하는 사람들이 있어. 헛소리지! 이들은 실제로 임무를 완수하지 못해. 어떤 사람들은 임무에 전혀 나가지도 않아. 항상 아프거나, 서투르거나, 게을러서 배치할 수 없지. 이들은 다른 곳으로 가야 하고, 내일 자네와 내가 그들을 그곳으로 보낼 거야."라고 말했다.


당시 나는 9번의 SOG 월경 임무, 여러 번의 월남 전투 임무, 그리고 수많은 격렬한 총격전에 참여한 이력이 있었다. 월경 임무에 있어서 나는 결코 가벼운 사람이 아니었다. 내가 한 일을 아는 몇몇 사람들은 목덜미에 소름이 돋곤 했다. 하지만 미도우즈는 그런 내 목덜미에 소름이 돋게 만들었다! 그는 하드코어한 전사였다. 그는 사람들을 겁에 질리게 했다. 차분한 목소리였지만, 그가 말할 때면 심장마비가 올 정도로 매우 진지한 것을 알 수 있었고, 그의 치명적인 눈빛이 그의 말을 뒷받침했다.


미도우즈는 "여기, 이 파일 더미를 가지고 가서 오늘 밤 살펴봐. 내일 0700시에 대원들이 정찰 중대 행정반으로 들어오기 시작할 것이고, 자네와 나는 그들의 성과 부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거야. 어떤 대원이 나트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말해줘."라고 말했다. 임무에서 돌아온 첫날 밤을 이렇게 보낼 줄은 생각지 못했다. 하지만 전설로부터 배울 수 있는 기회였기에 나는 진심을 다하기로 했다. 그리고 미도우즈는 다른 팀을 구해주겠다고 말했다. 이는 RT 미시간을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다음 날 아침 미도우즈 대위와 만났을 때, 나는 그가 돌려보내려고 했던 사람들의 명단을 보고는 "이제 아무도 남게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미도우즈는 "상관없어. 자네와 내가 해야 한다면 우리가 모든 임무를 이끌어 가야지."라고 말했다. 그 순간 내 심장이 멈췄다. 그의 목소리에서 그가 얼마나 진지한지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네와 내가 모든 걸 맡게 될 거야."라고 말했다.


나는 "알겠습니다, 대위님."이라고 말했다. 그날 미도우즈는 여러 사람을 나트랑으로 돌려보냈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경고를 보냈다. 그는 그들 중 일부에게 "오늘 1300시에 첫 헬기가 나트랑으로 출발할 거다. 그 헬기를 타고 가도록 해라."라고 말했다.


만약 임무를 미루거나, 임무를 수행하지 않을 방법을 찾거나, 자주 아프거나, LZ에서 자주 철수한 대원이 있다면 곤경에 처하게 될 것이었다. 미도우즈는 대원이 정찰 중대에 있었던 기간, 임무 수행 횟수, 총격전 횟수, 현장에 있었던 일수 등을 살펴보았다. 미도우즈는 어떤 대원을 방출해야 하는지 판단하는 자신만의 알고리즘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매우 강인했다. 나는 이 경험과 그가 내게 가르친 것들을 들으며 선발 과정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다.


미도우즈는 레인저, 특수부대원식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고, 주변을 둘러보며 정리해야 할 것들을 빠르게 파악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우리는 격리 구역이 있었어야 했다. 그린베레 교리에 따르면 팀이 임무를 부여받으면 격리 구역으로 이동해야 했다. 그린베레는 그렇게 해야 했지만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여기서는 왜 그렇게 하지 않았겠는가?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정예화된 부대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미도우즈는 바꿔야 할 것들을 파악하고 바꾸기 시작했다.


다음 날 아침, 아침 식사 전에 미도우즈는 "해변(방어용 철조망 바로 외곽)으로 가서 좀 뛰자"고 했다. 미도우즈는 나보다 16살이나 나이가 많았고 여러 번 총에 맞은 적이 있는 데다 적어도 한 번 이상 칼에 찔렸으며 여러 번 파편에 맞은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와 함께 달리는 것에 대해 걱정하지 않았다. 게다가 나는 90파운드의 장비를 착용할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그가 모래사장에서 7분 페이스로 해변을 달리기 시작하자 나는 깜짝 놀랐다! 물론 오래가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이 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을 리가 없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0.5 마일을 달린 그는 더 빨리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월남에 온 이후로 모래 위에서 빠른 속도로 장거리를 달리는 훈련을 해본 적이 없었고, 조금씩 숨이 차기 시작했다. 


미도우즈는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2.5마일 지점에 이르렀을 때 나는 "중대장님, 저는 처리해야 할 일이 좀 있어서 여기서 돌아가 보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미도우즈는 "그렇게 하게, 중위. 나는 한동안 더 달리겠네."라고 말했다.


그리고 미도우즈는 계속 달렸다. 나는 가끔씩 뒤돌며 미도우즈를 보았고, 그는 비무장 상태로 혼자서 해변을 따라 사라졌다. 그는 아침 늦게 돌아왔다. 그날 나는 미도우즈에게 체력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몸을 단련해야 정신도 단련할 수 있다."라고 말하곤 했다. 그는 내게 체력 훈련 프로그램을 강화할 것을 "장려"했다. 다음 날 아침, 내가 이를 실행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미도우즈가 현장에 나가지 않는 팀에게 오전 PT를 지도하는 정찰 중대 체력 훈련 교관이라는 추가 업무를 부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짧은 시간에 많은 변화를 주었고 나는 정말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일부 팀과 대원들은 이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의 부대 정리(아마도 CCC에서 CCN으로 파견된 이유가 이것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이후 대부분의 대원들은 "네, 하라는 대로 하겠습니다." 같은 태도로 나서게 됐다. 우리는 더 많은 임무를 수행해야 했고, 이를 제대로 수행해야 했다. 미도우즈가 CCC의 RT 오하이오에서 SOG 1-0으로 두각을 나타냈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한 번은 미도우즈가 7~8명의 월맹군이 있는 공터에 들어서더니 완벽한 월남어로 미소를 지으며 "좋은 아침입니다, 여러분. 당신들은 이제 전쟁포로입니다. 무기를 버리십시오."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러고는 AK-47을 버린 쪽과 사살할 쪽을 재빨리 분류했다. 미도우즈는 정찰팀 1-0로서 최다 월맹군 생포 기록(13명)을 세웠다. 미도우즈는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그는 전형적인 조용한 프로였다.


그는 "자네는 두 번이나 가서 임무를 완수하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내가 함께 가서 어떻게 하면 임무를 완수하는지 보여주겠네."라고 말할 사람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임무를 완수하곤 했다. 임무가 무엇이든 그는 임무를 완수한 다음 "이제 나머지 대원들도 이렇게 하길 바란다."라고 말하곤 했다. 나는 매일 그에게서 배움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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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CCN 정찰 중대 중대장/부중대장 막사)


버지웰, RT 미시간 1-0가 되다


미도우즈는 다음 날 아침에 내게 중요한 일을 가지고 왔다. 우리는 아침 식사를 하며 만났는데, 그는 버지웰이 RT 미시간의 1-0이 될 준비가 되었는지 물었다. 나는 왜 버지웰이 팀을 맡느냐고 물었으나 미도우즈는 그저 "버지웰이 준비됐나, 안 됐나?"라고만 물었다. 나는 버지웰이 준비되었다고 답하며 미도우즈에게 무엇을 할 계획인지 물었다. 미도우즈는 극비 단기 임무를 위해 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나는 그날 아침 버지웰을 만나서 RT 미시간의 새로운 1-0가 되었음을 말해주었다. 버지웰은 매우 기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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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봐, 버지웰. RT 미시간 1-0가 되고 싶냐?")


샤일로 작전: 극비 임무(69년 3월)


40년 후, 내 막내 손녀가 태어났고 이름은 샤일로였다. 가족 중 누구도 이 임무나 그 이름에 대해 아는 사람이 없었다. 이는 내 인생의 여정에서 일어난 동시적인 사건들 중 하나였다.


RT 크라이트 팀 명단


책임장교 톰슨


1-0 드리스콜


1-1 바클리


바트먼


정찰병


정찰병


정찰병


정찰병


정찰병


정찰병


배경


1969년, CIA와 기타 정보기관은 월맹에서 월남으로 가는 물자 및 병력의 75%가 무지아 패스를 통해 들어오는 것으로 추정했다. 이 고개는 호치민 트레일의 주요 입구였다. 월맹과 라오스의 국경을 이루는 쯔엉선 산맥의 좁은 틈새였다. 무지아 패스는 양옆이 높은 깊고 좁은 골짜기였다. 마치 깔때기 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았다. 모든 것이 느려졌다. 월남으로 가는 것은 무엇이든 이 깔때기를 통과해야 했다. 미국은 1964년부터 이 고개를 막으려고 수많은 폭탄을 투하했다. 그러나 월맹군이 재빨리 나와서 그 피해를 복구했다. 그렇게 월맹군의 통행을 막기 위해 SOG 특별 팀 임무가 수립되었다.


하지만 단순한 SOG 팀이어서는 안 됐다. 장교가 이끄는 특별한 팀이어야 했다. 임무의 민감성과 작전지 때문에 모든 미군 대원들은 미국 대통령(리차드 M. 닉슨)의 승인을 받아야 했다. 미도우즈는 팀을 이끌 장교로 나를 선택했다. 나는 RT 미시간을 떠나는 것이 달갑지 않았고 RT 미시간이 이 임무를 수행할 수 없는지에 대한 답을 얻지 못했다. 왜 나를 다른 팀으로 옮기는 걸까?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이 임무에 대해 수많은 의문이 있었지만 지금까지도 그 답을 얻지 못했다.


무지아 패스 임무는 우리가 할 일에 대해 자세히 알기 전까지는 멋진 것 같았다. 나는 RT 크라이트에 책임자/1-0로 배정되었다. 아트 드리스콜 병장이 몇 달 동안 RT 크라이트의 1-0를 맡고 있었으며 1-1은 빌 바클리 병장이었다. 기존 팀원들이 아직 있는 상황에서 해당 팀을 이끄는 것은 조금 까다로운 일이었다. 다행히 드리스콜, 바클리와 나는 서로를 잘 알고 있었으며 잘 지내던 사이였다. 팀원들은 드리스콜과 바클리에게 매우 충성스러웠다. 나는 외부인이었으나 그들은 나를 받아들이는 듯했다.


임무


샤일로 작전의 임무는 무지아 패스 위의 고지대에 물리적 주둔지를 구축하고 밤낮으로 공습을 유도하여 월맹에서 무지아 패스를 통해 들어오는 물자 이동을 막는 것이었다.


육안 정찰


공군 FAC(전방 항공 관제기)가 F-4의 공습을 유도하는 동안 나는 FAC에서 작전 지역의 육안 정찰을 수행했다. 공습을 유도하는 5시간 동안, 우리는 무지아 패스 지역 상공을 여러 번 비행했다. 나는 해당 지역을 계속 바라보며 누군가가 저 능선에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전략적 요충지를 무방비 상태로 두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적 활동의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VR 비행은 무자비했는데, 백린 로켓으로 표적을 표시하기 위해 급강하를 거듭하는 동안에는 예광탄과 총탄이 끊임없이 날아들었고, 급강하를 끝마치는 동안에는 중력이 우리를 짓눌렀다. 기절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쯤 비행기가 상승을 마치자 내 뱃속에 있던 모든 것이 내 목구멍을 거쳐 기내로 쏟아졌다! 말 그대로 정말 끔찍한 경험이었다. 한 번은 상승하던 중 F-4와 부딪힐 뻔한 일이 생겼다. 해당 전투기는 폭격을 가한 후 방향을 돌렸는데, 우리가 있는 것을 보지 못했다. 우리한테 너무 가까이 접근하는 바람에 F-4의 난류로 우리 비행기가 뒤집혔다. 나도 겁에 질렸으나, F-4가 시속 수백 마일의 속도로 3~4피트의 차이로 우리를 지나쳤기에 파일럿이 정말 큰 충격을 받았다. 우리는 거의 죽을 뻔했다. 나는 다낭으로 돌아갈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아직 정찰해야 할 또 다른 목표가 남아있었다.


VR을 마친 후 나는 드리스콜과 바클리에게 작전 지역의 사진을 보여주고 임무에 대해 알고 있는 바를 논의했다. 나는 상부에서 우리에게 뭔가 말하지 않은 것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상황이 좋지 않은 것 같았다. 우리는 작전 연습과 내가 팀이 어떻게 임무를 수행하는지 배우기 위해 몽키 마운틴에 잠깐 다녀와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하지만 먼저 샤일로 임무 브리핑을 위해 사이공으로 가야 했다. 나는 사이공에서 돌아온 다음 날에 몽키 마운틴으로 떠날 계획을 세웠다. 드리스콜과 바클리가 팀의 출발을 준비시키기로 했다.


SOG 사령관 미팅 #1(사이공)


다음 날 나는 이 임무를 지원하는 MACV-SOG 팀과 SOG 최고 사령관인 스티븐 E. 카바노 대령과의 회의를 위해 사이공으로 날아갔다. 나는 이 임무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얻고 싶었다. 팀은 내 배경과 경험을 검토했으며, 이 임무의 민감성과 기밀성이 여러 번 강조되었다.


어느 순간 나는 듣지 못한 사항이 있다고 생각하며 고개 위 절벽 주변의 정글 지역이 적의 점령하에 있는 것 같다고 팀에게 말했다. 내가 이 얘기를 꺼내자, 그들은 재빨리 "아뇨, 정보에 따르면 거기에는 아무도 없다고 합니다. 그 지역에서는 적의 사격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내가 말했다. "거기에 있다는 것을 숨기고 싶으면 총을 쏘면 안 되죠. 거기에 누군가가 있을 겁니다." 현장에 무엇이 있고 적의 교통을 어떻게 막을지에 관한 믿음에 대한 내 답변이 그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나는 떠나기 전에 그들이 팀 담당장교를 나 대신 다른 사람으로 교체하지 않은 것에 놀랐다. 나는 임무를 수행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지만 그 방법에 대해서는 현실적으로 생각하고 싶었다.


MACV-SOG의 투입 계획은 매우 정교했다. 마치 영화 같았다. 무지아 패스에서 떨어진 지역으로 야간 더미 낙하산 투입을 실시할 예정이었다. 사람 대신 얼음 블록을 쓰기로 했는데, 낙하산이 펼쳐지기에 충분한 무게의 얼음 블록을 사용할 것이었다. 낙하산은 나무에 매달려 얼음만 녹게 될 것이고, 월맹군이 이를 발견했을 때는 팀원들이 이미 떠났다고 생각하여 멀리 이동하게 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아무도 거기에 없을 것이라는 이론이었다. 나는 월맹군이 바보가 아니라는 사실부터 시작해서 이것이 미친 짓이라고 생각하는 여러 가지 이유를 나열했다. 나는 사이공에서 열리는 다음 회의에서 SOG 사령관과 내 생각을 공유할 계획이었다. 마치 CIA가 할 법한 일처럼 들렸다. (몇 년 후 나는 CIA가 월맹에서 낙하산과 얼음 블록을 이용한 작전을 일부 수행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작전에서도 효과가 없었다)


임무 사전 훈련: 몽키 마운틴의 태풍


사이공에서 돌아온 날 오후, AST-N(Area Support Team-North/북부 지역지원팀) 작전 장교가 악천후(태풍의 일부)가 오고 있다고 알려주었다(CCN 임무는 AST-North와 AST-South의 두 지역으로 나뉘었다. 각 지역에는 해당 지역의 작전을 지원하는 팀과 담당 장교가 배정되었다). 우리는 다음 날 아침 일찍 갔다가 점심에 돌아올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하여 우리는 이를 받아들였다. 드리스콜과 바클리는 작전본부의 브리핑룸에서 나를 만났다. AST-N의 작전장교인 존슨 대위는 우리가 검토할 수 있도록 무지아 패스 지역에 대한 모든 정보를 가져왔다. 또한 바클리는 사진실에서 VR 중 촬영한 사진을 가져왔다.


내가 돌아온 저녁에 팀은 짐을 꾸리고 주간 감시 기술을 연습할 준비를 마쳤다. 스타라이트 스코프, 카메라의 장거리 렌즈, 최첨단 쌍안경을 사용한 연습은 몽키 마운틴에서 돌아온 후에 진행하기로 했다. 기본적인 팀 작전과 관계 구축에 초점을 맞춘 짧은 여행이 될 것이었다.


밤 동안 바람이 심하게 불었고 바다도 거칠었다. 다행히도 거친 비행이 예상됐기 때문에 아침은 가볍게 먹었다. 우리는 킹비 두 대에 탑승하여 출발했다. 무언가에 부딪히지 않고 기지를 떠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이륙한 후, 우리는 해안선을 따라 몽키 마운틴까지 갔다가 산의 반대편으로 돌아서 이동했다. 파일럿은 "늦지 마. 태풍이 온다. 1200시까지 여기 와. 늦지 마. 네가 여기 없어도 난 간다."라고 하며 작별 인사를 했다. 우리가 착륙한 작은 모래사장에 파도가 덮치기 시작했다.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우리는 재빨리 정글로 이동하여 경계 정지, RON 구축 등의 팀 프로세스를 실행하기 시작했다. 정글로 이동한 후에는 훨씬 조용해졌다. 바람은 대부분 캐노피 위쪽에 머물렀고 우리가 있는 지상에서는 그다지 많이 불지 않았다. 팀원들은 잘하고 있었고 나는 RT 크라이트와 함께 임무를 수행하는 것에 대해 기분이 좀 더 나아졌다. 드리스콜과 바클리가 팀원들을 잘 훈련시켰기 때문이었다.


1000시 직전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약 15분 후 바클리가 내게 무전기 수화기를 건네며 "중위님, 존슨 대위가 할 말이 있답니다."라고 말했다. 존슨 대위(AST-N)는 태풍이 예상보다 훨씬 빨리 이동했다고 말했다. 킹비 헬기들은 발이 묶였고 우리를 구출할 방법이 없었다. 우리는 이곳에서 태풍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며칠이 걸릴 수도 있었다! 그리고 팀의 상황과도 잘 맞지 않았다. 팀원들이 식량이나 우천 대비 장비를 챙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일부는 라이스 캔디바, 육포 조각 등의 작은 간식을 가져오긴 했다. 나는 양고기가 든 작은 주먹밥과 라이스 캔디바를 가지고 있었다.


니는 드리스콜과 바클리에게 몽키 마운틴에서 여러 번 훈련한 적이 있으며 산등성이에 등대가 있다는 사실을 말했다. 거기서 피난처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식량은 우리가 직접 찾아야 했지만 말이다. 우리는 산에 베트콩도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등대로 출발했다.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했다.


등대에 도착한 우리는 등대지기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친절하게 거의 비어 있는 작은 창고 건물로 우리를 안내해 줬다. 건물은 콘크리트 블록으로 지어졌고 능선 꼭대기에서 약간 아래에 있었기에 폭풍의 영향을 온전히 받지 않을 수 있었다. 건물 안에 있는 것이 훨씬 나았지만 우리는 젖는 것을 감수하고 밖에서 교대로 경계를 서기로 했다.


몇몇 팀원들은 태풍이 본격적으로 도착하기 전에 원숭이와 다람쥐를 찾고 싶어 했다. 드리스콜은 팀원들이 무언가를 찾도록 두자는데 동의했다. 팀원들은 약 30분 만에 익사한 쥐처럼 보이는 원숭이 두 마리와 다람쥐 한 마리를 가져왔다. 우리는 등대지기에게 나눠주겠다고 제안했다. 등대지기는 폭풍의 최악의 부분이 오기 전에 맛있는 식사를 준비해 주겠다고 말했다.


다람쥐는 미국이나 월남에서나 똑같은 다람쥐였다. 하지만 원숭이는 달랐다. 고기에서 독특한 냄새와 맛이 났다. 사람을 먹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나는 느억쩜 소스와 매운 향신료를 많이 뿌려야 했다. 이 식사는 다음 날 아침에도 제공됐다. 나는 드리스콜과 바클리에게 팀원들이 다음 사냥에서는 원숭이보다는 다람쥐를 더 많이 잡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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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몽키 마운틴에 태풍이 몰아치는 동안 RT 크라이트의 식사를 위해 큰 원숭이의 가죽을 벗기는 등대지기)


밤으로 접어들면서 폭풍은 계속 강해졌다. 아침이 되자 우리는 남은 원숭이 고기를 먹으며 태풍이 가장 강한 순간을 맞았다. 저녁 무렵에는 바람과 비가 크게 줄었다. 그러나 늦은 오후까지 팀원들을 보내 다람쥐 사냥을 할 수 있기를 바랐지만 그렇게 되지는 못했다. 다행히 등대지기가 밥과 향신료, 야채를 나눠줘서 저녁을 버틸 수 있었다.


아침이 되기 전에 태풍이 끝났고, 존슨 대위는 우리에게 1200시까지 철수 LZ에 도착하여 철수를 준비하라고 말했다(나는 존슨 대위에게 등대지기 가족에게 줄 수 있도록 50파운드짜리 쌀 두 포대와 기타 음식을 킹비 헬기와 같이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팀은 우리가 CCN으로 돌아간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했다. 우리는 철수 전 몇 시간을 이용해 더 많은 연습을 했다. 전반적으로 격렬한 총격전과는 달랐지만 그래도 좋은 유대감을 쌓을 수 있는 좋은 경험이었다


CCN으로 돌아온 우리는 4일간 훈련했고, 나는 다시 사이공으로 날아가 두 번째 샤일로 임무 회의를 해야 했다. 이때 존 잭슨과 론 레온이 별도의 미팅을 위해 나와 함께 사이공으로 갔다.


SOG 사령관 미팅 #2(사이공)


나는 SOG 사령관과 샤일로 임무 기획자들을 만났다. 그들은 내게 임무 현황을 알려주었고, 나는 그들에게 RT 크라이트의 임무 준비 훈련 계획에 대한 개요를 설명했다.


회의 도중 나는 팀 전체가 무지아 패스에 보내졌다간 투입 중 또는 투입 직후에 발각될 가능성이 있으니 나 혼자만 투입할 것을 제안했다. 내가 RT 다이너마이트(내 코드네임)의 담당장교가 되겠다고 말이다. 더 빠르고, 더 쉽고, 더 안전할 것이고, 발각되기 훨씬 더 어려울 것이었다. 나는 이 일을 해낼 수 있으며, 상황이 잘못되더라도 기껏해야 한 명만 잃을 뿐이었다. 나는 사령관에게 혼자서 기꺼이 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내 말은 비꼬는 말로 받아들여졌다. 결국 나는 SOG 사령관에게 내가 진심이라는 것을 확신시켰다. 나는 다시 말했다. "저만 보내 주십시오."


하지만 사령관이 말했다. "자네 혼자 내보낼 일은 절대 없을 거야, 톰슨." 사령관은 더 이상의 논의 없이 내 제안을 일축했다.


회의가 끝난 후 나는 잭슨, 레온과 합류하여 뭐라도 먹은 후 호텔에서 몇 블록 떨어진 곳에 있는 술집으로 갔다. 이 술집에는 미국 히트곡을 연주하는 밴드가 있었는데, 이 밴드들은 쉬지 않고 연주했고, 시간이 되면 천천히 다음 밴드와 멤버를 교체했다. 2300시경에 나는 잭슨과 레온에게 시끄러운 음악과 술을 충분히 즐겼으니 호텔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그들은 좀 더 있으라고 했지만, 나는 조용히 휴식을 취하고 싶었다. 나는 술집에서 나와 번화한 거리로 걸어 나갔다. 소음은 상당히 줄었지만 여전히 시끄럽고 혼잡했다.


작은 오토바이를 탄 월남인 남자가 곧바로 내게 다가와 "어디로 가, GI?"라고 물었다.


나는 "호텔 캘리포니아"라고 말했다. 내 정신은 약간 몽롱했고, 그가 택시처럼 행동하는 것이 이상하게 보였다. 하지만 판단이 흐려진 나는 그의 뒤에 올라탔고, 그는 재빨리 출발했다. 나는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긴장감이 커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그는 브레이크를 밟더니 어두운 골목으로 우회전하려고 했다! 그때 내 스파이더 센스가 발동했다. 이대로 가다간 납치당하거나 강도를 당하게 될 것이었다! 나는 허리에서 브라우닝 9mm를 꺼내 운전자의 머리 아래에 총구를 세게 들이밀며 큰 소리로 "증 라이 호악 쳇(Dừng lại hoặc chết/멈추지 않으면 죽는다!)"라고 외쳤다. 그리고 골목 끝에 서너 명의 월남인 남자들이 보였다. 나는 총구를 더 세게 들이밀며 다시 훨씬 더 큰 소리로 "증 라이 호악 쳇."이라고 외쳤다. 그는 재빨리 멈췄고, 나는 뛰어내려서 왼쪽 골목 벽으로 달려가 무릎을 꿇었다. 월남인 남자들이 나를 향해 달려오자 오토바이는 방향을 바꾸고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의 머리 바로 위로 경고 사격을 세 발 가했고, 그들은 쥐새끼처럼 흩어졌다. 그런 다음 나는 무기를 숨긴 채 다시 거리로 달려 나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행동했다. 이번에는 진짜 택시를 잡아 호텔로 갔고,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조용한 시간을 보냈다. 다음 날 아침에 우리는 CCN으로 돌아갔다.


우리는 2주 동안 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훈련했다. 그러나 그때 SOG 사령관이 임무가 취소되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더 이상의 설명은 없었다. (몇 달 후 존 스트라이커 마이어의 팀이 같은 임무를 맡게 되었다. 그의 임무는 팀이 헬기에 탑승하는 동안 취소되었다. 이 역시 자세한 설명은 없었다)


스네이크바이트 팀 훈련(1969년 3월)


미도우즈는 임무가 취소된 것에 실망하며 나에게 팀으로 보내주겠다고 말했지만, 우선 그는 내가 스네이크 바이트 작전에 집중하기를 바랐다. 당시 오키나와의 제1특전단은 2인 1조로 구성된 4개의 미군 팀을 CCN에 임시 파견하여 SOG 임무를 수행하도록 했다. 미도우즈는 "현지 팀원들과 함께 자네가 이들에게 SOG 임무 수행 방법을 훈련시켜 주길 바라네. 그런 다음 각 팀과 함께 임무를 수행하며 그들이 어떻게 수행하는지 평가해 주게. 자네 없이도 월경 임무를 수행할 준비가 된 팀이 있으면 알려줘. 그러면 그들에게 SOG 임무를 주기 시작할 테니까."라고 말했다. 그는 기본적으로 내게 제1특전단 TDY(Temporary duty/임시근무) 대원들을 위해 원제로 스쿨을 운영하라는 임무를 부여했다. 덕분에 나는 내 방식으로 팀을 훈련시킬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나는 RT 미시간에서 사용했던 것과 동일한 장비, SOP, 의료, 위장 및 경계 조치를 적용했다. 그리고 세 가지 다른 언어(영어, 월남어, 몽타냐드어)로 동시에 수업을 진행해야 했다. 나는 팀의 통역사를 훈련 통역병으로 활용했다.


평가받을 준비가 된 팀이 생기면 그들을 해병대 포스리콘의 AO인 엘리펀트 밸리로 데려갔다. 해병대 팀이 현장에 머물 수 있는 최장기간은 일반적으로 1~2일이었다. 월맹군에게 발각되고 접촉이 발생하면 팀을 철수시켜야 했으며, 스네이크바이트 팀은 3~5일 동안 머무르는 것을 목표로 했다. 임무 수행 중 어느 시점에서 우리는 적과 접촉할 것이었다. 나는 이들이 사격, 이동, 반격에 어떻게 대응하는지 보고 싶었다. 국경 너머에서 경험하게 될 것보다 훨씬 가벼운 접촉이더라도 적의 사격을 경험하는 것이 중요했다. 이들이 위험한 지역에서 며칠 동안 발각되지 않고 팀을 이끌고, 접촉하고, 적과 교전하고, 철수할 수 있을까? 그들이 임무를 잘 수행하면 나는 그들의 코비 역할을 맡으며 그들에게 두 번째 2일 차 임무를 부여했다. 이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면 훈련을 마치고 SOG 임무를 부여받았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그들이 준비될 때까지 계속 훈련시켰다.


스네이크바이트 작전은 실제 적을 대상으로 하는 훈련 작전이었다. 적들과 실제 총격전이 발생했고 미군 두 명이 임무에서 부상을 입었다. 하지만 이들은 제1특전단의 하드코어한 대원들이었다. 그들은 항상 훌륭히 일을 해냈다. 엄밀히 말하면 나는 여전히 팀과 함께 나갔지만 SOG 임무는 아니었고 "내 팀"도 아니었다. 이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실제 SOG 임무를 원했다. 흥미롭게도 이번 일은 내가 미국으로 돌아갔을 때 레인저 교관으로서 하게 될 일을 예고하고 있었다.


월남을 떠난 이후에 나는 미 육군 산악 레인저 캠프의 레인저 교관이 되었다. 나는 레인저 훈련생들과 함께 다니며 순찰대원들을 채점하고 평가하는 일을 했다. 다만 표적은 공포탄을 발사했다. 적어도 조지아 북부 산맥에서 낙하산 강하를 하다가 밀주업자들 근처에 착륙했을 때를 제외하곤 말이다. 밀주업자들이 나를 잡으려고 수많은 총탄을 쏴댔다. 나는 살아남았고 다시 그런 상황이 발생한다면 반격할 준비를 했다.


RT 다이너마이트


스네이크바이트 임무는 훨씬 더 작은 규모의 SOG 팀을 활용하면 많은 SOG 임무를 더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으며 항공 자산과 대원들의 손실도 줄일 수 있다는 내 믿음을 더욱 확고히 해주었다. 대부분의 임무에서 헬기 한 대로 혼자서 투입/철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미도우즈와 "RT 다이너마이트"에 대한 논의를 하며 내 주장을 입증하려고 했다. 이전에 샤일로 임무에서 SOG 사령관에게 1인 투입을 제안했으나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나는 1인 SOG 팀인 RT 다이너마이트로 활동하면 더 은밀하고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는 확신이 점점 더 커져갔다. 엘리펀트 밸리에서 마지막 스네이크바이트 임무를 마친 나는 미도우즈에게 가서 계획을 설명했다. 중요한 인원들 서너 명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최고 수준의 극비 임무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 개념은 3~4일 안에 완수할 수 있는 SOG 정찰 임무를 선정하는 것이었다(적과의 접촉은 사실상 가정하지 않았다). 1~2마일 떨어진 지점에서 교란이 시작됨과 함께 고속, 무광, 저고도(500피트 미만), 무 예비 야간 낙하산 강하를 통해 투입될 것이었다. 당시에는 기술이 충분히 발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유형의 임무나 지형에서 HALO 투입은 최선의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는 30초도 안 돼서 캐노피 아래로 내려가 낙하산을 숨기고 정글 깊숙이 들어갈 것이었다.


휴대할 무전기는 URC-10 생존 무전기뿐이다. PRC-77은 너무 크고 무거웠다. 무전 송신은 스퀠치뿐이며 암호 송신은 사전에 계획된 무작위 일정에 따라 이루어질 것이었다. 철수 시간과 위치 또한 사전에 정한다. CAR-15 대신 소음화기(스텐 기관단총, .22구경 권총 등)만 휴대할 수도 있으며 배낭 없이 LBE만 휴대할 것이다. 식량은 4일의 임무 동안 한두 번만 먹어야 했다.


미도우즈는 내 말을 최대한 오래 듣고는 "씨발 자네 미쳤는가, 톰슨!"이라고 말했다.


나는 "모든 팀원들이 그렇게 말하더군요. 저도 그 말에 동의합니다. 그래서 제가 이 일을 해낼 수 있는 겁니다."라고 대답했다.


미도우즈는 "자네 혼자 월경 임무를 보낼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그러실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모든 상황을 고려해 봤습니다."


"도와줄 사람도 없는데 총에 맞으면 어떻게 할 건가?"


"제가 총에 맞아봤자 최악의 시나리오는 미친 SOG 대원 한 명 잃는 것뿐입니다. 브라이트 라이트 팀도 필요 없고, 제가 신호를 보내지 않는 한 절 데려올 사람도 없죠. 저한테서 연락이 안 온다면 제가 죽었거나 걸어서 국경을 넘었다고 보시면 될 겁니다."


"자네는 너무 오랫동안 땡볕에 있었어. 다시 팀에 배치시켜 주겠지만 그 팀에는 사람들이 있을 거야."


"저만 미국인인 팀은 어떠십니까?"


"내일 아침에 다시 얘기하지."


"알겠습니다."


미도우즈의 말을 알아듣기는 어려웠지만 뭔가 돌아가는 게 보인다고 생각했다. 그는 내가 SOG에 온 지 몇 달밖에 되지 않았지만 1년 이상 근무한 대부분의 대원들보다 더 많은 임무를 수행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아침에 그의 결정이 "예스"에 조금 더 가까워지기를 고대했다. 나는 내 방으로 돌아가 더 많은 세부 사항을 생각했다.


다음 날, 나는 내 친구이며 밥 셰리던의 친구이기도 한 녀석에게서 편지를 받았다. (밥은 내 가장 친한 친구였다) 편지는 "이미 들었을 거야. 밥이 3월 26일에 죽은 건 정말 유감이야."라는 말로 시작되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SOG 대원들은 다른 FOB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거의 듣지 못했다. 나는 밥이 죽었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 나는 밥의 유해가 미국으로 보내지기 전에 즉시 CCC로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미도우즈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럴 수는 없네! 그리고 자네가 가더라도 그의 시신은 CCC에 없을 거야. 그리고 영현 등록반에서도 그를 볼 수 없게 하겠지. 설사 볼 수 있게 해주더라도 자네 인생에서 가장 큰 실수 중 하나가 되겠지. 그를 마지막으로 본 때의 모습으로 기억해야지, 지금의 모습으로 기억해서는 안 된다. 게다가 내일은 자네에게 새로운 임무를 줄 거다. 클럽에 가서 그를 기리며 술 한잔하고 잠이나 자게. 내일 0700시에 볼 수 있도록." 그가 옳았으나 나는 그의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서야 미도우즈가 내게 해준 조언이 정말 훌륭한 조언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후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 조언을 여러 번 사용했다.


나는 버지웰을 찾아 클럽으로 가서 밥을 위한 건배를 여러 번 했다. 버지웰은 내 생각을 듣고, 다음 날 나와 함께 가서 모든 월맹군을 함께 죽이겠다는 데 동의하며 나를 달래주었다. 버지웰이 나를 진심으로 위로해 줬지만, 나는 모든 임무에서 주요 목표를 달성한 후 가능한 한 많은 월맹군을 죽이리라는 결심을 굳히게 됐다.


참고


• 미도우즈와 나는 친구이자 동료가 되었고, 1995년 7월 29일에 그가 사망할 때까지 26년 동안 그 관계를 유지했다. 내가 월남/SOG 임무를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온 지 몇 달 후, 미도우즈는 레인저 교관으로 복무하던 내게 손타이 레이드에 함께 갈 것을 요청했다(물론 나는 가지 못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미도우즈는 포트 브래그에 있는 내 집에 찾아와서 델타포스의 창설 대원이 되어 델타포스의 선발 과정을 만드는 것을 도와달라고 했다(나는 개인적인 이유로 거절해야 했다).


• 몇 년 후 나는 CIA가 월맹에서 낙하산과 얼음을 사용하여 일부 작전을 수행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작전에서도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어느 순간 SOG 1-0 존 스트라이커 마이어(코드명: 틸트)가 이 임무를 맡았으나, 헬기가 시동을 걸 무렵에 착륙장에서 임무가 취소되었다.


• 아트 드리스콜은 2024년 1월 23일에 세상을 떠났다.


• 1969년 3월 17일, 내 절친한 친구인 리카르도 G 데이비스 중사가 다가오는 임무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했다. 그는 여러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해 왔지만 이번에는 안 좋은 예감을 느꼈다. 그는 이번 임무에 두려움을 느꼈고 그의 마지막 임무가 되리라는 것을 느꼈다. 나는 그를 격려하려고 했지만 그는 정말 침울해 있었다. RT 코퍼헤드가 NKP(태국) 발진기지로 날아가기 전, 데이비스는 라모트(그의 1-1)에게 편지와 반지를 주며 임무가 끝난 후 특정인에게 전달해 달라고 부탁했다. 결국 RT 코퍼헤드는 3월 20일에 적에게 압도당했고 데이비스의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다.


1969년 3월에 전사한 팀원/친구들


3월 5일 얼 W. 하임스 병장


3월 20일 리카르도 G. 데이비스 중사


3월 26일 로버트 E. 셰리던 중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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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에드워드 "레인저" 셰리던 중위: 1948 8 8~1969 3 26)


역자 주


• 셰리던 중위는 2장~3장에서 딕 톰슨과 훈련, 임관, 수료, 배치를 모두 함께 했던 톰슨의 절친이었다.


• 존 스트라이커 마이어네 팀의 임무가 취소된 이유는 작전 투입 직전에 관측기가 무지아 패스에서 격추되는 사태가 발생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