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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처맞기 전까지는.


-마이크 타이슨


딕 미도우즈 대위는 1969년 7월에 CCN을 떠났고 빌 월시 대위가 새로운 정찰 중대장으로 부임했다. 월시는 훌륭한 중대장이었고 우리는 그와 잘 지냈다. 그는 나, RT 버지니아, 그리고 우리가 하는 일을 매우 지지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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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시 대위의 이름이 적힌 정찰 중대 간판)


우리는 RT 버지니아의 SOP, IA 드릴, 장비, 전술, 인간 전투 반응 등에 초점을 맞춰 새로운 팀을 구축하는 것을 계속 이어갔고, 이틀간 몽키 마운틴에서 훈련을 진행했다. 우리는 즉석에서 계획 및 IA 드릴을 조정하는 데 많은 시간을 집중했다. 이후 우리는 몽키 마운틴을 떠났으며, 우리는 며칠 안에 또 다른 임무를 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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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RT 버지니아, 헨리 톰슨 중위, 크레이그 스티븐슨 하사, 시드니 셰이퍼 병장, RT 버지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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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T 버지니아의 패치 중 하나.)


내가 데니스 닐 대위를 처음 만났을 때 그의 SOG CCN에서의 1차 파병은 이미 끝나가고 있었다. 그는 정찰팀 임무에서 다리에 총상을 입은 적이 있었으며 당시 그가 어느 팀에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데니스는 MACV-SOG에서의 파병 기간을 6개월 연장했고, 그 덕분이 전 세계 거의 어디든 여행할 수 있는 30일간의 휴가(무료)를 허가받았다. 그는 미국으로 돌아가 부모님과 쌍둥이 형제를 만나고 약혼녀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데니스가 휴가를 마치고 CCN으로 돌아오자 그는 RT 래틀러에 1-0으로 배정되었다. 그는 또한 정찰중대 부중대장 침실에서 내 룸메이트가 되었다.


데니스와 나는 둘 다 임무를 수행하느라 매우 바빴지만, 임무 후에 시간을 내어 이야기를 나누며 좋은 친구가 되었다. 우리는 서로의 배경과 SOG를 떠난 이후에 무엇을 할 계획인지에 대해 이야기했고, 전투 지식과 전술을 교환했다. 데니스는 전사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분명히 6개의 임무를 마치고 참모 보직으로 가기 위해 CCN에 있던 것이 아니었다. 데니스는 이미 한 번 총에 맞았는데, 이는 합법적인 월남 파병 종료(미국 귀환)를 의미했지만 그는 미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거부하고 SOG 파병을 6개월 연장했다. 그도 많은 대원들처럼 SOG "버그"에 걸린 것이었다. 데니스는 중독되었다. 그는 SOG 대원들이 월경 임무를 수행하면서 느끼는 것으로 유명한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쾌감이 필요했다.


얼마 후, 나는 데니스가 이상하게 행동하고 말하기 시작하는 것을 알아챘다. 7월 중순에 그는 최근에 수행한 임무에 대해 "적들이 거의 나를 잡을 뻔했지만, 내가 놈들보다 훨씬 머리가 좋았지"와 같은 말을 했다. 나는 데니스의 눈빛과 목소리 톤에서 SOG 대원들이 현실 감각을 잃고 있을 때 나타나는 특징을 발견했다. 데니스는 자신이 무적이라고 믿기 시작했다. 데니스에게서 이러한 변화가 나타나는 것을 보면서 나는 그의 생존 가능성에 대해 걱정하게 되었다. 아무리 숙련되어 있어도 생환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어도 월경 임무에서 살아남는 것은 매우 어려웠다. SOG 대원들은 숙련도뿐만 아니라, 매우 운이 좋고, 엄청난 공중 지원과 이들을 지켜보는 어떠한 큰 힘이 있었기 때문에 돌아올 수 있던 것이었다.


나는 최근 힘든 수색 및 파괴 임무를 마치고 돌아와 포로 구출 임무를 빠르게 준비하고 있었다. 데니스는 이틀 후 극도로 위험한 지역인 오스카-8로 임무를 떠날 예정이었다. 내가 잠을 자고 있던 0200시경,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강한 느낌을 받았다. 천천히 눈을 떠보니 내 침대 옆에 서서 나를 내려다보는 인물이 보였다. 너무 무서웠다. 나는 본능적으로 벽에 걸린 CAR-15를 집어 들고 조정간을 연사로 돌렸고, 방아쇠를 당기기 직전에 그가 데니스라는 것을 깨달았다. 대체 뭐 하고 있냐고 내가 묻자, 그는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말하며 침대로 돌아갔다. 다시 잠들 수 있을 정도로 아드레날린 수치를 낮추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하지만 나는 밤새도록 한쪽 눈을 뜨고 CAR-15를 품에 안은 채 잤다. 데니스에게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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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 옆에 걸려 있는 CAR-15)


다음 날 아침, 나는 데니스에게 다시 물었다. 그는 다가오는 임무에 대해 "나쁜 예감"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그 느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 그냥 떨쳐낼 수 없는 "느낌"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전에 이런 기분을 느껴본 적이 없었지만 아무튼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브루스 롬바드 대위도 데니스의 1-1인 마이클 번즈와 비슷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 임무가 마이클을 정말 두렵게 했기 때문이었다. 브루스는 데니스가 매우 경험이 많은 대원이기 때문에 데니스만 잘 따르면 일이 잘 풀릴 것이라고 마이클에게 상기시켜 주었다.


SOG 파병 중 이 시점에서 나는 돌아오지 못할 임무를 앞둔 다른 여러 친구들과 이러한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고, 이 이후에도 돌아오지 못할 다른 친구들과 비슷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이러한 대화는 이번에는 돌아오지 못할 것 같은 "매우 나쁜" 일이 일어날 것 같다는 생각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내 절친한 친구인 밥(1969년 3월 26일 사망)이 CCC로 향하는 것을 보면서도 이런 느낌이 들었다. 밥, 데니스, 마이클 외에도 나는 좋은 친구인 리카르도 G. 데이비스 중사(1969년 3월 20일 사망), 피터 H. 맥머레이 중위(1969년 8월 27일 사망), 스티븐 J. 채니 대위(1969년 9월 23일 사망)와도 이러한 대화를 나누었다. 각각의 대화는 단 한 번만 이루어졌다. 모두 마지막 임무가 시작되기 1~3일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감했다.


나는 종종 앞으로 일어날 일을 미리 알 수 있다고 확신했다. 특히 죽음 말이다. 또한 종종 운명을 선택할 수 있다고도 믿었다. 나는 데니스에게 이 임무를 수행하지 않을 방법을 찾아보라고 제안했다. 물론 SOG 전사에게 그런 제안을 하는 건 시간 낭비였다. 그래서 나는 위험을 줄이기 위해 할 수 있는 일, 예를 들어 CCN으로 돌아오기 전까지는 임무가 끝난 게 아니라는 등의 이야기로 주제를 바꿨다. 철수 LZ에 도착했다고 해서 임무가 끝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왠지 이 점을 강조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진 기지로 떠나는 데니스와 마이클에게 "몸조심하라"고 말하자 문자 그대로 속이 울렁거렸다. 가장 친한 친구인 밥 셰리던에게 같은 말을 한 기억이 떠올랐다. 그리고 밥과 마찬가지로 데니스나 마이클을 보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이었다.


ST 빅터 인디아: POW 구출 임무 SOG #17a(1969년 7월 31일)


스파이크 팀 빅터 인디아 팀 명단


1-0/PRC-77  톰슨 중위


1-1/M-60  스티븐슨 하사


1-2/KY-38/KY-28  셰이퍼 병장


통역  빈


예비 후방사수  헝


포인트맨  킴


M-79  바오


M-60  칸


예비 포인트맨   친


후방사수   다오


M-79  디엔


예비 포인트맨  단


1-0/PRC-77  롬바드 대위


월남군  무이 대위


M-60  지아


통역/PRC-77  히엔


M-60  드엉


M-79  후이


후방사수  낫


예비 포인트맨  푹


예비 후방사수  신


M-79  두


브루스 롬바드 대위와 나는 CCN에서 절친이 되었다. 우리는 비슷한 성장 배경과 군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브루스는 사자의 심장과 용기를 지닌 일류 전사였고, 큰 곤경에 처했을 때도 침착한 태도를 유지했다. 키가 내가 1인치 더 컸지만, 체구는 비슷했다. (그는 여전히 이 부분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다) 브루스는 이전에 RT 인트루더의 1-0였다. 69년 4월에 내가 RT 버지니아로 옮겨진 것과 비슷하게 브루스는 69년 7월에 RT 인디애나로 재배치되었고, 내가 RT 버지니아에서 했던 것처럼 팀을 월남인 팀장이 지휘하는 팀으로 만들 준비를 했다. 그리고 브루스의 검증이 끝나며 월남군 대위인 무이 대위가 인디애나의 새로운 1-0로 확정되었다.


미군 포로를 찾아 구출하는 것은 SOG의 최우선 임무였다. 7월 중순에 MACV-SOG는 10~15명의 미군 포로가 라오스 북부를 거쳐 월맹으로 옮겨지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이것이 우리의 임무가 되었고, 격렬한 전투 임무가 될 것이었다. 우리는 해칫포스 소대(중무장한 특공대 40명)의 화력과 정찰팀(특공대 6~8명)의 민첩성이 필요했다. 그래서 우리는 RT 버지니아와 RT 인디애나를 하나의 스파이크 팀(ST)으로 합쳐서 스파이크 팀(ST) 빅터(버지니아) 인디아(인디애나)를 만들었다. 두 팀의 미군과 현지 대원들이 함께, 특히 격렬한 전투 및 갑작스러운 상황에서 한 팀으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많은 요소들이 정확히 맞아떨어져야 했다.


월시 대위(정찰 중대장)는 RT 버지니아와 RT 인디애나가 임무를 수행할 차례라는 것과 브루스와 내가 이번 임무에 앞서 팀원들과 함께 합동 훈련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월시 대위는 우리에게 임무에 대해 이야기하며 팀을 합치고 "포로를 구하라"고 지시했다. 준비할 시간이 일주일도 남지 않았다.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리고 이 임무를 둘러싼 보안은 특히 엄격해야 했다.


우리는 작전 보안을 강화하기 위해 그날 오후에 팀을 격리 구역으로 이동시켰다. 미군을 포함한 팀원들조차 발진 기지에 도착할 때까지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 어떤 임무를 수행하는지 알 수 없는 극비 임무가 될 것이었다. 우리는 다른 팀의 1-0 또는 팀원에게도 우리의 임무가 무엇인지 말하지 않았다. 또한 RT 버지니아와 RT 인디애나는 월남인 팀으로 전환될 준비를 위해 함께 "훈련"하고 있는 것으로 위장했다. 임무가 노출될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었다. "포로"라는 언급만 해도 기지 전체에 빠르게 퍼질 수 있었다.


임무 배경


무이 대위와 그린베레 의무병까지 포함하면 인원은 23명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포로를 구출하는 것을 막기 위해 월맹군들이 죽을힘을 다해 싸울 것이기 때문에 사상자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다. 또한 포로들에게 다양한 의료적 문제가 있을 것이고, 전투 중 일부 포로들도 부상을 입을 수도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심지어 구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월맹군에 의해 일부 사망할 수도 있었다.


이 임무를 수행하려면 투입에는 5개의 킹비가, 포로와 함께 철수할 때는 7~8대가 필요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오랜 시간 동안 노출될 것이었다. 정찰팀이 한 개일 때는 헬기 한 대, LZ가 산에 있다면 두 대 정도에 익숙했다. 대부분의 경우 투입 헬기가 빠르게 진입하여 지상 바로 위로 플레어를 한 뒤 곧바로 이륙을 시작했으며, 팀은 5초 이내에 헬기에서 내렸다. 이번 투입은 브루스와 내가 익숙해져 있던 방식에 비하면 매우 느릴 것이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장비들을 준비했다. M-60 기관총 4개(각각 약 23파운드)와 사수용 탄약 600발(36파운드), 각 팀원당 150발(9파운드, 연사 시 16.3초). M-60 삼각대나 여분의 총신은 챙기지 않았으며 스티븐슨이 우리의 주요 M-60 사수였다. 또한 M-79 유탄 발사기 4개, 많은 여분의 탄약, 수류탄, 백린 연막탄, 크레모아, C-4, 연막탄, 여분의 의료품(특히 링거, 포로들이 탈수를 겪을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에)과 팀원당 6~12발의 40mm 유탄(7~14파운드)을 휴대했다. 우리의 임무는 포로를 찾아 데려오는 것이었다.


일주일의 준비 시간이 주어졌다. 브루스와 나는 재빨리 초기 보급품 목록을 작성하여 팀의 서열 3위인 크레이그 스티븐슨 하사에게 전달했다. 그와 시드 셰이퍼 병장은 보급품 수령(대부분 탄약과 30발 탄창)을 조정하고 보급 창고로 팀원들을 데려가 초기 보급품을 받아왔다. RT 인디애나의 팀원들은 휴대해야 할 탄약의 양에 놀랐다. 반면 RT 버지니아는 익숙했다.


보급품을 수령하고, 탄창을 장전하고(예광탄만 삽탄된 30발 탄창 1개와 일반 탄약이 삽탄된 30발 탄창 4개), 장비를 점검하는 동안 브루스와 나는 다음 며칠 동안의 임무 사전 훈련 계획을 수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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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 임무 사전 훈련 계획 1969년 7월)


공군이 이미 해당 지역의 촬영을 마친 상태였기 때문에 실제로 VR을 수행하여 월맹군에게 우리가 온다는 것을 알릴 필요는 없었다. 덕분에 우리는 하루 동안의 훈련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우리는 수요일 저녁에 발진 기지로 이동하여 다음 날 투입을 위한 최종 준비를 했다. 안전한 장소에 팀원들을 모아 실제 임무에 대해 이야기했다. 팀원들은 우리의 임무가 포로 구출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매우 흥분했다(빈은 우리가 했던 훈련 때문에 포로와 관련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우리는 임무 세부 사항, 각 단계에서의 각자의 역할, 가능한 결과에 대해 논의하는 데 시간을 보냈다. 그동안의 훈련이 모두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임무는 복잡하고 어려울 것이었다. 우리는 식사를 마치고 비교적 일찍 잠들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조던 대위의 해칫포스(42명의 몽타냐드 특공대)가 이미 발진 기지에 있었고, 그들은 동이 트자마자 발진될 예정이었다. 우리는 약 2시간 후에 발진될 예정이었다. 발진 기지에서는 바쁜 하루가 될 예정이었다.


우리 팀은 일찍 일어나 아침 식사(제한된 향신료로)를 하고, 수분을 보충하고 0630시 전투 전 장비 검사와 0700시 최종 임무 검토/단계별 점검을 준비했다. KY-38 보안 무전기(배터리 포함 54파운드)는 KY-28 코드 건과 목요일의 암호화 코드를 사용하여 수동으로 로드했다. 셰이퍼 병장이 이 무전기를 휴대할 예정이었다. 세 개의 PRC-77 무전기 또한 그날의 주파수로 설정되었다. URC-10을 포함한 모든 무전기가 테스트 되었다. 그런 다음 모두가 마음의 준비를 했다. 임무가 시작되는 날 아침에는 항상 흥분과 불안이 가득했다.


게임 당일이었고, 승자는 대개 경기가 끝날 때 살아남은 사람에 따라 결정되었다. 모두 흥분한 마음으로 임무를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포로를 구출하는 것은 큰일이었다. 이번 임무는 팀의 규모가 커서 평소보다 약간 더 스트레스가 많았다. 포로를 구출하는 것이 힘든 싸움이 되리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브루스, 다른 미군 대원들, 나는 임무의 세부 사항을 면밀히 살폈다.


0800시, 조던 대위의 해칫포스가 마지막 발진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한편 RT 래틀러(데니스 닐의 팀)는 라오스나 캄보디아를 통틀어 가장 위험하고 치명적인 지역 중 하나인 오스카-8에 있었으며, 1-0로 데니스 닐 대위, 1-1으로 SP4 마이클 번즈, 그리고 4명의 몽타냐드와 함께 있었다. 그들은 발각되지 않은 채로 임무를 마치고 미리 계획된 철수 LZ로 이동하여 정상적인 임무 종료 철수를 요청했다. RT 래틀러가 철수할 때까지 ST 빅터 인디아의 발진 시간이 지연될 수 있다는 소문이 들렸다. TOC 바로 바깥에 있는 작은 스피커에서 무전 교신이 들렸다. RT 래틀러가 철수 LZ에 있다는 것을 알고 기분이 훨씬 나아졌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 계속 반복되는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CCN으로 돌아가기 전까지는 끝난 게 아니라고 말이다. 내 불안감은 빠르게 커져갔다. 데니스가 떠나기 전에 어떤 "느낌"을 느꼈을까? 내가 느끼고 있는 느낌은 무엇일까? 이 느낌이 어디서 온 걸까? 확실한 것은 내 임무에서 온 것은 아니었다.


갑자기 척추에 오싹해지는 무서운 소리들이 들렸다. 총성과 폭발음을 배경으로 당황한 미군의 목소리가 무전기 수화기를 통해 들려왔다. "여기는 탱고 알파! 프레리 파이어 비상사태! 프레리 파이어 비상사태! 압도당하고 있다!"


그런 다음 침묵만이 이어졌다. 아무 대답이 없었다. RT 래틀러는 계속된 연락 시도에도 응답하지 않았다. 데니스의 팀과 무선 교신이 끊어졌다! 프레리 파이어 비상사태를 경험해 보지 않았다면, 가서는 안 될 나라에서 6인조 팀이 완전히 포위된 채 수백수천 명에 달하는 월맹의 최정예 병사들을 상대로 목숨을 걸고 싸우거나 달리는 것이 어떤 것인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ST 빅터 인디아에 있는 팀원 모두 최소 한 번 이상의 프레리 파이어 비상사태를 경험했다. 당시 나는 14번이나 경험했다. 데니스가 예견한 사태가 발생했지만 그래도 어쩌면 그는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때, 그 지역에 있던 코비가 URC-10 무전기(모든 항공기가 모니터링하는 "보안" 비상 주파수)로 송신되는 무전을 들었다. 그는 패닉에 휩싸인 채 높은 음조로 "도와줘! 도와줘! 도와줘! 제발, 누가 나 좀 도와줘!"라고 말하는 미국인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러다 다시 교신이 멈췄다. 무전기에서는 침묵만이 흘러나왔다. 이 코비는 닐이나 번즈를 개인적으로 알지 못했고, 둘 중 누가 무전을 보냈는지 알 수 없었다.


데니스의 팀은 프레리 파이어 비상사태일 뿐만 아니라 이제 실종 상태였다. 발진 기지의 모든 것이 즉시 프레리 파이어 비상 모드로 전환되었다. 데니스의 팀은 이제 동남아 전체에서 최우선 목표가 되었다! 힐스보로(공중 전장 지휘 통제기)는 프레리 파이어 비상사태 무전을 모니터링하고, 마지막으로 알려진 RT 래틀러의 위치 근처에 있는 무장을 탑재한 항공기를 찾아 프레리 파이어 비상사태 현장으로 이동하도록 통보하느라 분주했다. 조던의 발진과 브루스 및 나의 발진은 무기한 보류되었다.


그러던 중 코비가 URC-10 무전기에서 또 다른 무전을 수신했다. 몽타냐드 팀원 중 한 명이 구출을 요청한 것이었다. 하지만 진짜 팀원이었을까? RT 래틀러의 생존 팀원이었을까? 아니면 월맹군이 구조 헬기를 그 지역으로 유인하여 격추하기 위해 사용한 "미끼"였을까? 이는 일반적인 월맹군의 전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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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니스 닐 대위(RT 래틀러 1-0)와 SP4 마이클 번즈(1-1)의 마지막 사진(69년 7월).


RT 래틀러의 구출팀은 신속하게 상황에 대한 브리핑을 받고 발진 허가를 받았다. 나는 데니스 팀의 구출을 위해 이륙을 준비하고 있는 구출 헬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 머릿속에서 "구출 헬기에 타야 해. 저들과 함께 가야 해!"라고 말하는 매우 큰 소리가 들렸다. 나는 즉시 헬기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달리는 동안 '하지만 몇 시간 후에 본래 임무를 지휘해 포로들을 구출해야 해. 그냥 이 헬기에 올라타서 다른 임무를 수행할 수는 없어. 그러면 안 된다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속도를 늦추며 헬기 앞에서 멈추었고, 헬기는 곧바로 이륙했다.


돌이켜보면 그날이 내가 죽었어야 했던 날 중 하나였던 것 같다. 내 고향에 있는 화강암 추모비에도 내 이름이 있어야 했을 빈 공간이 있다.


구조팀은 10피트 높이의 코끼리풀이 우거진 작은 공터에서 철수 신호를 보내는 판과 코멘(RT 래틀러의 팀원)을 발견했다. 구조팀은 현장까지 대공포화를 뚫고 날아가야 했을 뿐만 아니라 현장에서도 거센 지상 사격을 받았다. 구조 작업 내내 헬기에 집중 사격과 피격이 이어졌다. 한편 파일럿은 풀이 너무 높아서 로프를 사용하여 철수시키기로 결정했고, 맥과이어 리그 4개가 코끼리풀로 떨어졌다. 크루치프는 풀숲에 세 사람이 있는 것을 확실히 보았다고 말했다. 그중 한 명은 미군이었다. 헬기가 상승하기 시작하자 세 개의 로프가 팽팽하게 당겨졌으나 그중 하나가 갑자기 느슨해졌다. 헬기가 계속 상승하는 동안 크루치프는 로프에 현지 대원 두 명이 매달려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나머지 한 명의 대원인 미군이 맥과이어 리그 중 하나에 타려고 시도했음을 확신했다. 헬기는 엄청난 총격을 받으며 철수했고, 다른 구조 헬기는 거센 화망 때문에 LZ에 접근을 시도하지 못했다. 구출된 두 팀원은 발진 기지로 돌아왔다.


의료진들이 두 팀원들을 치료하는 동안 그들은 즉시 사후보고를 진행했다. 판과 코멘은 모두 부상을 입었고 겁에 질려 있었다. 그들은 데니스의 팀이 철수를 기다리는 동안 한 팀원이 5명의 월맹군이 기어 오는 것을 보고 사격을 가했다고 말했다. 그때 대규모 월맹군 부대가 즉시 AK, 기관총, RPG로 엄청난 집중 사격을 쏟아부었다. 월맹군은 5명보다 훨씬 많았다. 판과 코멘의 말에 따르면 RPG 하나가 팀의 경계선 안쪽으로 날아와 두 사람 모두 부상을 입었으며 닐, 번즈, 다른 두 팀원이 사망했다고 한다. 그들은 URC-10 생존 무전기를 챙기기 위해 닐의 시신을 뒤집었고 그때 그의 흉부에 큰 상처가 난 것을 확인했다. 곧 번즈도 확인했고, 그는 심각한 머리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그들은 닐과 번즈 모두 의식을 잃었으며 아마도 사망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판과 코멘은 월맹군들을 피해 약 500m를 이동하는 동안 집중 공격을 계속 받았으며, 철수 과정에도 집중적인 사격을 받았다고 진술했다.


브루스와 나는 그들의 보고를 들었지만, 발진 기지에 있던 다른 대원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이야기를 믿기 어려웠다. 그들의 탈출, 특히 그들이 얼마나 멀리 도망쳐왔는지 지도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지역에는 월맹군이 많았기 때문에 경험 많고 노련한 전사이자 내 친구인 글렌 조던 대위가 지휘하는 해칫포스(40명 이상)를 브라이트 라이트 팀으로 투입하기로 결정됐다. 조던이 탈 예정이었던 킹비들이 이미 착륙장에 있었기 때문에 거의 즉시 투입할 수 있었다.


그들은 목표 지역에 가까워지자 중형 대공포의 공격을 받았다. 다행히도 헬기가 추락하지는 않았다. 결국 해칫포스는 판과 코멘이 구출된 곳에서 약 2000m 떨어진 곳에 투입되었다. 조던의 해칫포스는 투입 내내 공격을 받았으며, 기관총, RPG, 박격포로 무장한 대규모 월맹군 부대에 의해 LZ에 즉시 고립되었다. 그들은 수목선으로 겨우 들어갈 수 있었지만 상당한 공중 지원에도 불구하고 거기까지가 그들이 갈 수 있는 한계였다. 조던은 전사였다. 그런 그가 해칫포스를 움직이지 못한다면, 지상 상황은 나쁘다는 뜻이었다! 화력과 월맹군들의 수로 인해 해칫포스는 현장에 있는 동안 24시간 내내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없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