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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들만이 전쟁의 끝을 본다.


-플라톤


RT 미주리의 1-0인 스티브 채니 대위와 나는 그가 CCN에 있는 동안 좋은 친구가 되었다. 스티브는 군에 입대하기 전에 노터데임에서 풋볼을 했고, 미래의 피츠버그 스틸러스의 스타인 록키 블라이어와 백필드 역할을 분담하기도 했다. 노터데임에 재학 중이던 스티브는 학교를 그만두고 2차 대전과 한국 전쟁 참전 용사인 아버지의 뒤를 이어 군에 입대하기로 결심했다.


9월 20일 저녁, 그는 내게 찾아와 다가올 임무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임무에 대해 떨쳐낼 수 없는 "나쁜 예감"이 든다고 말했다. 이전에 이런 느낌을 느껴본 적이 없었고 이것이 자신의 "마지막 임무"라는 신호가 아닐까 두려워했다. 스티브는 놀라운 전사의 "모습"과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고, 세상으로 돌아가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훌륭한 인간이었다. 그에게 그럴 능력이 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우리는 그의 기술, 경험, 팀의 능력, 당시 그가 가진 선택권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그를 격려하고 다양한 전술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노력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나는 로켓과 네이팜탄이 항상 예상한 곳으로 가지 않기 때문에 이중 또는 삼중 캐노피 아래에서는 항상 긴장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그와 나누었다. "근접 항공 지원 조심해." 나는 스티브에게 경고했다. 그리고 나는 계속해서 그의 능력에 대한 확신을 표현했다.


결국 우리는 제대 후 하고 싶은 일로 화제를 전환했고 약 45분 동안 이 주제에 대해 이야기했다. 스티브가 떠나자 나는 그에게 "몸조심해, 스티브."라고 말했다. 그때쯤 나도 친구를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끔찍한 기분이 배에서 나타났다.


3일 후인 9월 23일, 스티브는 팀을 이끌고 적과 격렬한 교전을 벌이던 중 "아군" 건쉽 헬기가 발사한 로켓의 파편으로 사망했다. SOG에서 복무하는 동안 계속해서 느낀 것은 총탄, 파편, 로켓, 폭탄, 네이팜탄은 아군과 적군을 구분하지 못하고, 그저 살상 반경 내에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만 구별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또 다른 좋은 친구가 발할라로 떠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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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T 미주리 1-0, 스티븐 J. 채니 대위, 1969년 9월 23일 전사)


SOG 대원에서 CCN 작전장교(AST-S)로


도나휴 중령이 CCN 사령관을 맡은 직후, 나는 많은 레인저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 비작전직에서 일하고 있으며, 레인저는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도나휴 중령은 9월 말에 나를 RT 버지니아(대원 임무)에서 해임시키고 비 대원 직책인 CCN 작전본부의 AST-S(South)의 작전 장교로 임명했다. 나는 그린베레, 레인저, SOG 대원이었기에 이 새로운 역할에 만족하지 못했다. 나는 파병을 6개월 연장하고 CCN에 대원으로 남는 것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었다. 그러나 도나휴 중령의 결정으로 나는 6~10개월 동안 미국으로 돌아갔다가 도나휴 중령이 떠난 후 CCN으로 복귀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이 새로운 임무는 내 인생의 사명을 월맹군 제거에서 CCN의 남부 작전 지역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정찰팀에게 이전 임무에서 얻은 해당 지역의 모든 작전 정보와 최신 정보를 제공하고, 정찰팀의 작전 임무 요구 사항을 지원하고, AST-South에 배치된 모든 정찰팀을 모니터링하고 지원하는 것으로 바꾸었다. 나는 1-0 대원에서 REMF로 바뀌었다. 이 역시 매우 중요한 일이었고 목숨을 더 오래 부지할 수도 있었지만, 월남에 왔을 때 내가 바라던 것은 이런 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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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헨리 톰슨 중위, RT 버지니아 1-0, 1969년 9월)

(우: 헨리 톰슨 중위, AST-S, CCN 작전본부, 1969년 10월)


나는 이 일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AST-N을 담당했던 짐 스토터 대위와 같은 뛰어난 장교들을 만나 함께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짐은 내게 업무를 가르쳐주거나 나를 도와주는 등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동안 우리는 좋은 친구가 되었다.


또한 빌 엔젤 소령과도 만나 친구가 되었고, 그와 함께 NKP와 태국 방콕으로 기밀 출장을 여러 차례 다녀왔다. 그는 나를 보호해 주었고, 국가 간을 비행하는 일급비밀 배달원이 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마침내 미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해야 할 때가 왔다.


1969년 9월 친구/팀원 KIA


SP5 앨런 B. 세실, KIA 9월 21일


대위 스티븐 J. 채니, KIA 9월 23일


대위 로널드 M. 굴렛, KIA 9월 26일


하사 마이클 A. 피아센티노, KIA 9월 28일



역자 주



• 위 영상 1:26:10에서부터 존 S. 마이어가 언급하는 부분에 따르면 도나휴 중령은 본인의 상훈을 위해 다른 장교의 사인을 위조한 죄로 군에서 불명예 전역 당했다고 한다.


• 여러 대원들의 언급에 따르면 도나휴 중령은 애초에 대원들 복지에 관심이 없었으며 상훈 추천 목록에 본인의 이름을 직접 쓰는 파렴치한 인간이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