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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셀의 실제 작전 사례 및 훈련 기법

레드 셀은 활동 기간 중 미군 내 다양한 시설 및 함선에 대해 수많은 가상 습격을 감행했다. 그 내용은 기발하고 대담한 경우가 많아 당시 안보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1985년 봄 - 버지니아주 노퍽 해군기지


레드 셀의 첫 본격 훈련이 진행되었다. 대원들은 기지 내에 잠입하여 제2함대 사령부 빌딩 옥상에 모의 폭약을 설치하는 데 성공했다. 또한 수 주 후에는 다시 기지에 침입, 기지 사령관의 자택을 제압하여 인질로 삼는 동시에, 주기 중인 항공기 및 정박 중인 함선에 대한 파괴 공작도 수행했다. 이러한 결과는 당초 예상보다 기지 경비의 불비를 명확히 드러냈다.



1985년 여름 - 코네티컷주 뉴런던 잠수함기지


미 해군 원자력 잠수함 부대의 거점인 뉴런던 기지에서도 훈련이 실시되었다. 구체적인 수법은 비공개이나, 레드 셀 대원들은 대낮에 아무런 제지 없이 기지에 침입하여 심지어 계류 중인 공격형 원자력 잠수함에 당당히 탑승하는 데 성공했다. 또한 다른 수단으로, 레드 셀은 요트 항구 근처에서 강에 잠수하여 접근, 경계 중인 위병을 기습하여 무력화시킨 후 원자력 잠수함의 방향타에 모의 폭약을 설치했다. 이후 대원들은 함 내에 침입하여 제어실, 원자로 구획, 어뢰고에도 모의 폭약을 설치할 수 있었다. 이러한 행동은 핵무기 탑재함을 포함한 중요 시설의 경비가 여전히 취약한 현실을 보여주었다.



1985년 여름 - 캘리포니아주 포인트 무구 해군항공기지


같은 해 8월, 당시 캘리포니아에서 휴가를 보내던 레이건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원(Air Force One)이 포인트 무구 기지에 주기 중이라는 정보를 입수한 레드 셀은 해당 방호 태세를 시험하는 훈련을 계획했다. 기지 측은 사전에 "에어포스원에는 손대지 않는다"는 조건을 설정했으나, 레드 셀 대원들은 교묘하게 경비의 눈을 피해 500파운드(약 227kg)의 모의 폭탄을 가득 실은 트럭을 대통령 전용기 근방까지 무단으로 이동시키는 데 성공했다. 최종일에는 해당 트럭을 에어포스원 옆에 주차하고 기폭 스위치를 넣은 뒤 유유히 떠났다. 물론 폭발은 발생하지 않았으나, 만약 실행범이 실제 테러리스트였다면 요인 수송기가 파괴되어 대참사가 발생했을 것이다.



1985년 가을 - 이탈리아 나폴리 미 해군기지 지중해 함대 사령부


10월, 나폴리에 주재하던 해군 소장 부부가 레드 셀 대원들에게 "납치"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소장이 기지 클럽에서 강연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 레드 셀은 차량을 강제 정지시켜 부부를 납치하고 인적이 드문 지점까지 연행했다. 소장은 일단 풀려났으나, 다음날 아침 다시 포획되는 치밀함을 보였다. 기지 사령관 클래스의 고위 관리가 두 차례에 걸쳐 '인질'로 잡힌 것은 유럽에 전개한 미군 지휘 계통에도 큰 충격을 주었다.


1985년 가을 - 필리핀 수빅만 해군기지


11월, 당시 서태평양에 배치 중이던 항공모함 USS 키티호크(USS Kitty Hawk)가 입항하는 시점에, 레드 셀은 현지 어선을 전세 내어 항만 경비를 돌파, 대낮에 입항 중인 항공모함에 거의 충돌에 가까운 접촉 공격을 감행했다. 노리던 기지 간부의 포획은 미수에 그쳤으나, 거대 항공모함에 대해서조차 항만 시설의 취약성을 이용한 자폭 보트 등에 의한 공격이 용이하다는 점을 인상 깊게 보여주는 결과였다.


1986년 초 - 일본 내 주일 미군기지


1986년 상반기에는 일본 내 미군기지 3곳에서 1개월간 훈련이 실시되었다. 일본 내 한 기지에서는 대원들이 농성하여 인질 역할을 맡은 기지 관계자 약 40명을 아이스크림 가게에 감금하는 시나리오를 통해, 기지 의료팀의 대량 부상자 대응 즉, '매스 카줄티(Mass Casualty)' 절차를 시험하기도 했다. 또한 다른 기지에서는 현지 고속보트를 빌려 항만 내 경계정을 따돌리고 정박 중인 원자력 잠수함에 모의 폭약을 설치하는 데 성공했다. 이들 극동에서의 훈련은 주일 미군기지뿐만 아니라 동맹국에게도 교훈적인 사례가 되었다.


1986년 가을 - 푸에르토리코 미군기지


1986년 말, 푸에르토리코에 주둔하는 해병대 보급함을 표적으로 한 훈련에서는 레드 셀이 소형 항공기를 이용해 기지를 강습하려 했으나, 방어 측의 지대공 미사일 훈련 부대에 발견되어 '격추' 처리되었다. 이 사례는 레드 셀 측이 드물게 실패를 겪은 예이지만, 그럼에도 방어 측의 고도한 즉응 태세를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유의미하게 평가되었다.


1987년 초 - 미령 괌섬


1987년 상반기에는 태평양상의 전략 요충지인 괌섬에서도 훈련이 실시되어, 기지 내 무기 저장 시설 공격 및 인질 탈취 훈련이 진행되었다. 이 시기 레드 셀의 규모는 당초의 약 2배 이상으로 확대되어 30명가량의 팀 편성으로 여러 소대로 나뉘어 각국 및 각지를 전전할 태세가 갖춰진 것으로 알려졌다.



레드 셀의 훈련 기법에는 이러한 대담한 작전 시나리오를 성공시키기 위한 치밀한 준비가 수반되었다. 대원들은 표적 기지의 사전 정찰을 통해 지형도 및 시설 배치를 상세히 조사했을 뿐만 아니라, 필요에 따라 렌터카, 민간 선박, 항공기 등 외부 물적 자원도 비밀리에 조달했다. 또한 기지 내 잠입 시에는 변장 및 위조 신분증 사용도 서슴지 않았으며, 민간인이나 보수업자로 위장하여 정문을 통과하는 등 실전과 같은 수법이 자주 사용되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기지 내 협력자를 매수하거나, 협박 전화 및 폭파 예고로 방어 측을 의도적으로 혼란시키는 양동 작전까지 강구되었다. '기습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는 철저한 가상 적군 사고방식이 레드 셀 훈련의 특징이었다.





우선 대원들은 전원 전직 씰(SEAL) 및 포스 리컨(Force Recon) 출신의 최고 수준 전투 기술을 갖춘 전문가들이었으며, 테러리스트의 시점에서 방어 측의 맹점을 찌르는 데 능통했다. 이들은 해중 잠입을 위한 전투 수영, 공중 강하, 민간인 위장 육로 침투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통상적으로 상정되는 이상의 경로 및 방법으로 공격을 시도함으로써 방어 계획의 예측 불허 상황을 파고드는 데 주력했다. 이를 통해 일반적인 훈련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보안 취약점, 예를 들어 노후화된 울타리, 수변의 무경계 구역, 경비원의 습관적인 사각지대 등을 밝혀낼 수 있었다.


평가 절차로는 훈련마다 사전에 공격 시나리오를 입안하고, 레드 셀 상층부와 해군 고위 관계자의 승인을 얻어야 했다. 라이온스 제독은 레드 셀의 폭주를 막기 위해 상세한 행동 지침을 제시하는 '가이드라인'을 작성하고, 팀에 해군 법무관(JAG)을 붙여 불법 행위를 저지르지 않도록 감시했다고 알려졌다. 또한 훈련 시나리오는 공격 대상 시설 및 요원의 개요에 대해 사전에 관련 기지 사령관에게 통지되었다. 사령관 및 표적 역할의 간부는 "조만간 레드 셀이 귀관의 기지를 습격할 것"이라는 경고를 받아 저항 및 대처 행동을 준비할 기회를 부여받았다. 그러나 구체적인 공격 일시, 수법, 규모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아 실제 테러 습격과 같은 돌발 상황에 즉각 대응해야 했다.



이때 현장의 안전을 확보하면서 훈련을 진행하기 위해 교전 규칙이 쌍방 간에 합의되었다. 예를 들어 발포 대신 비살상 레이저 장치나 공포탄을 사용하고, 격투 시에는 정해진 신호로 항복 판정을 내리는 등의 약속이다. 또한 필요에 따라 제3의 심판 역할을 배치하여 격파·사망 판정 및 피해의 공정한 판정 및 평가를 내렸다.



레드 셀은 공격 측으로서 기습에 전력을 다하는 한편, 방어 측 부대에게도 훈련 후에 상세한 평가 피드백을 제공했다. 이를 위한 중요한 수단이 비디오 기록이었다. 레드 셀은 전직 씰(SEAL) 대원 출신의 전문 촬영팀 3명을 고용하여 각 작전에 동행시키고 야간 투시 카메라 등으로 전 과정을 촬영하게 했다. 이를 통해 훈련 종료 후 보고회에서는 영상을 통해 구체적으로 기지 경비의 미숙함을 지적할 수 있었고, "얼마나 선명하고 쉽게 침입 및 파괴될 수 있었는지"를 관계자들에게 강렬하게 각인시켰다. 실제로 마친코 본인은 "우리는 훈련 내용을 모두 기록하여, 종료 후에 그 영상을 보여주어 관계자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다"고 공언했다. 이러한 기록 영상과 상세한 사후 분석 보고서는 외부 컨설턴트도 참여하여 작성되었으며, 최종적으로 각 기지의 경비 개선 계획에 활용되었다.


레드 셀의 평가 기법은 기존의 탁상 검토나 형식적인 훈련과는 차별화되었다. 그 "참신함"과 "비대칭 사고"는 높이 평가되었으며, 전직 씰(SEAL) 대원 중 한 명은 "레드 셀 대원들은 파격적인 발상으로 임무를 완수하는 재능을 타고났으며, 그 유연한 착상이 본 부대의 무엇보다 큰 자산이었다"고 언급했다. 실제로 레드 셀의 기상천외하다고 할 수 있는 수법들 중 '여성 및 아이를 가차 없이 인질로 삼아 동요를 유발하는 것', '기지 장성 부인에게 사적으로 접촉하는 것' 등은 방어 측에 기존의 상식을 뒤엎는 대책을 강요했으며, 결과적으로 미군 시설의 경계 태세를 전반적으로 향상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레드 셀 해체의 직접적인 요인은 앞서 언급된 1986년 3월 캘리포니아주 실 비치 무기 보급 기지에서 발생한 '납치 사건 스캔들'이었다. 이 훈련 중 레드 셀 대원들은 기지 경비 주임이었던 민간 경비원 로널드 셰리든(당시 52세)을 가상 적군으로 납치했다. 심야에 자택에서 호출된 셰리든은 차량으로 출근 도중 무장한 대원들에게 습격당하여 머리에 봉투가 씌워진 채 구속되었다. 이를 본 그의 아내가 황급히 권총을 들고 뒤쫓아갔으나, 남편이 "괜찮아! 훈련이야!"라고 외쳐 발포는 면했다. 그러나 연행된 모텔에서 레드 셀 대원들은 예정된 범위를 벗어난 과격한 '심문'을 가했다. 이들은 셰리든을 30시간 이상 감금하고, 나체로 만들고 구타 및 발길질을 가했을 뿐만 아니라, 변기에 머리를 집어넣어 물고문을 하는 등 '지나치다'고 할 정도의 과도한 학대 행위를 자행했다. 이 모든 과정은 카메라로 촬영되었으며, 피해자 본인도 부상을 입어 1년간 재활 치료를 받아야 했다.


훈련 후 셰리든 부부는 해군을 상대로 약 600만 달러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이 사건은 신문에서도 대대적으로 보도되어, 레드 셀 대원들이 "훈련 중이라 할지라도 지나친 실력 행사를 했다"며 세간의 비난을 받았다. 해군은 즉시 본 사건을 조사하고, 이후 레드 셀의 훈련 관련 규칙을 대폭 엄격화했다.


게다가 다른 추문도 잇따랐다. 레드 셀 대원 중 일부는 공무 중의 불량한 품행으로 음주 문제나 폭행 사건이 이전부터 지적되었으며, 기강 해이가 문제시되었다. 또한 한 훈련에서는 레드 셀 대원이 기지 사령관 부인의 가슴 부위를 난폭하게 만지는 부적절한 행위까지 발생하여, 이는 상층부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처럼 거듭된 불상사로 인해 '아무리 유용한 임무를 수행하는 부대라 할지라도 조직으로 존속시키기 어렵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레드 셀은 미군 내외에서 찬반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한편에서는 "기존에 간과되었던 중대한 경비상의 결함을 폭로했다"며 그 공적을 인정하는 목소리가 있었고, 해군 고위 관계자 또한 "레드 셀의 활동은 유익했으며 해군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레드 셀의 성과 보고를 계기로 여러 기지 사령관이 경비 책임 문제로 문책당하고 전보 조치된 사례도 있었다. 또한 레드 셀이 제시한 "창의적인 기습에 대한 대비"라는 발상은 이후 미군 전체의 훈련 방침에도 영향을 미쳐 대테러 전략 재검토 및 전문 부대 설립, 구체적으로는 육군 특수작전사령부 내 대테러 훈련팀 창설에도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다른 한편에서는 레드 셀의 수법과 마친코의 지휘 태도에 대한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었다. 해군 내부 일부에서는 "훈련이라는 명목뿐, 지나치다", "부대 통제가 안 돼 위험하지 않은가"와 같은 비판이 나왔고, 특히 에스컬레이션된 납치 사건 이후에는 레드 셀 자체의 존재 의의를 의문시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앞서 언급된 터벅스 대령도 상관에게 "부대명 변경 및 재정비 제안"을 하는 등 이미지 쇄신에 노력했으나, 결국 조직 전체가 소멸되는 길을 밟았다.



부대 해산 후, 마친코 본인은 1989년 군납 계약 관련 부정 행위 혐의로 기소되어 1990년 연방 교도소에서 21개월 복역 판결을 받았다. 이는 레드 셀 시절 관여했던 군수품 조달에서 리베이트를 받은 혐의 때문이었으나, 마친코는 "자신은 레드 셀로 해군 고위층에 망신을 준 보복으로 표적이 되었다"고 일관되게 무죄를 주장했다. 그의 체포 및 투옥은 당시 큰 뉴스가 되어 "전설적인 SEAL 대원의 몰락"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마친코는 출옥 후 자서전 『로그 워리어(Rogue Warrior)』를 출판하여 이것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오히려 이색적인 영웅으로 이름을 남기게 되었다.


레드 셀의 존재는 픽션 및 대중문화에도 영향을 미쳐 동명의 소설, 영화, 비디오 게임의 소재가 되었다. 그러나 실제 레드 셀이 보여준 가장 큰 교훈은 '어떤 조직이든 내부에서 자신의 약점을 파고드는 자기 점검의 중요성'일 것이다. "기책이라 할지라도 성공하면 그것이 현실의 위협이 된다"는 레드 셀의 지적은 많은 관계자에게 충격을 주었으며, 이후 군사·보안 계획 수립에서 "예상 밖을 상정하는" 접근 방식이 중요시되었다.


관계자들의 증언도 찬반이 나뉜다. 한 당시 SEAL 대원은 "딕(마친코)에게 상사로서 많은 것을 배웠다. 부하들의 사기를 북돋우는 능력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며 그의 리더십을 칭찬했다. 반면 다른 전직 대원은 "개념 자체는 훌륭했지만, 결국 지휘관의 서툰 방식으로 모든 것이 망가졌다. 교훈 자체는 귀중했지만, 그 개인적인 문제로 인해 가치가 손상되었다"고 신랄하게 평가했다.


이처럼 레드 셀은 탁월한 발상과 성과가 있었던 반면, 지휘관의 카리스마와 독단적인 행동이 양날의 검이 되어 조직이 오래 지속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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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전역 후 의문사 안당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