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스파이, 프로그맨, 테러리스트, 그리고 고용된 총잡이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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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이 시리즈를 읽을 때 유용하게 쓸 아프리카의 뿔 지역 지도>


아프리카 대륙에서 아라비아 해로 삐죽 돌출되어 있는 아프리카의 뿔(Horn of Africa) 지역은 케냐, 소말리아, 에티오피아, 에리트레아 등의 동아프리카 국가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에서 2000년대의 소말리아는 중앙 정부라는 것을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무정부 국가이자 무법지대였다. 소말리아는 1991년 시아드 바레 장군의 군사 정권이 붕괴되고 정부 구성에 실패하여, 소말리아의 여러 부족, 씨족주의에 기반한 수많은 군벌들이 세력 다툼을 벌이는 곳이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UN의 지원으로 2004년 창설된 과도 연방 정부(Transitional Federal Government) 라는 기구가 존재했지만, 소말리아 내부에서의 영향력은 거의 없었다. 


9/11 직후 미군의 대대적인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순식간에 아프간에서 쫓겨난 뒤로 파키스탄 부족 자치 지역에서 숨어 살고 있던 알 카에다 본부는, 이를 놓치지 않고 혼란스러운 아프리카의 뿔 지역에 뿌리내려 재기를 계획했다.


미국 정보당국은 알 카에다의 이런 움직임을 파악하고 있었다. FBI는 아프가니스탄에서 포획한 알 카에다 고위 간부 알/리 압둘 아지즈 알 파크리로부터 알 카에다 지도부는 최종적으로 예멘과 소말리아에 자리를 잡을 것이라는 정보를 얻어냈다. 소수의 알 카에다 간부들이 아프간-파키스탄 전장에서 아프리카의 뿔과 예멘 사이를 자주 이동하는 움직임도 확인했다. 


부시 행정부는 알 카에다가 이 지역으로 자금을 옮기기 시작하자 행동에 나서기로 결정했다. 자금이 이동한다는 것은 알 카에다의 새로운 작전 계획이 진행 중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당시는 2002년,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을 하고 있었고 이라크 침공을 준비중이었다. 아프리카의 뿔 지역에서 또 다른 시끄러운 전쟁을 원치 않았던 부시 행정부는 눈에 띄지 않고 이 지역에서의 테러리스트들에 비밀리에 대항하기 위해 CIA에 이 임무를 맡겼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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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카에다의 테러로 붕괴한 나이로비 주재 미 대사관, 1998년.>


알 카에다는 이미 1998년 8월 7일, 케냐 나이로비 주재 미국 대사관과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 주재 미국 대사관에 동시다발적인 테러 공격을 가하여 수백명을 살상하면서 아프리카의 뿔 지역에서의 존재를 드러낸 바 있었다. 


2000년 10월 12일, 아프리카의 뿔을 마주보는 아라비아 반도 남부의 예멘에서는 보트 자살 공격으로 예멘의 아덴 만에 정박 중이던 미 해군 함정 USS 콜의 선원 17명의 목숨을 앗아가기도 했다.


이에 대응하는 미국의 공개적인 노력은 2002년 11월 미군의 연합 합동 태스크 포스–아프리카의 뿔(Combined Joint Task Force–Horn of Africa, CJTF-HOA)의 창설이었다. 


2성 장군이 지휘하는 CJTF-HOA는, 미국의 4성 장군들이 지휘하는 전구 전투 사령부 중에서 중동 지역을 책임지는 중부사령부(Central Command, CENTCOM)의 지휘를 받았다. 당시는 아직 아프리카 전구 전투 사령부인 아프리카사령부AFRICOM의 창설 이전이어서, 중부사령부가 아프리카의 뿔 지역도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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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TF-HOA는 동아프리카의 작은 국가 지부티Djibouti에 미국이 임대한 군사 기지 캠프 르모니에Camp Lemonnier를 본부로 삼았다. 창설 초기 CJTF-HOA의 임무는 민사 작전, 지역 안정 증진, 안보 역량 구축 등으로 적극적인 전투 작전과는 거리가 멀었다. 


CJTF-HOA의 임무에는 동아프리카 알 카에다 주요 구성원 추적도 포함되어 있었지만, 태스크 포스가 직접 추적하는 것은 아니었다. 동아프리카 알 카에다 조직원을 체포하거나 사살하는 것은 케냐나 에티오피아, 지부티 같은 파트너 국가의 관계당국이 주도하고 태스크 포스가 이들의 작전을 지원하는 방식이었다.




다만, CJTF-HOA의 작전 요소에는 상당히 흥미로운 하위 태스크 포스도 존재했다. 그중 하나가 합동 특수 작전 태스크 포스-아프리카의 뿔(Joint Special Operations Task Force-Horn of Africa, JSOTF-HOA) 이었다. 그린 베레 대령인 로드릭 터너가 지휘하는 3~400여명 규모의 이 태스크 포스는, 이름과는 달리 JSOC의 지휘를 받지 않는, 전적으로 CJTF-HOA 소속의 태스크 포스였다. 


JSOTF는 CENTCOM 직속의 신속대응요소(Crisis Response Element) 로도 작동했다. CRE의 주요 임무는 직접 타격, 특수 정찰과 인명 구조였다. CRE는 마찬가지로 로드 터너 대령이 지휘했고, CENTCOM 직속이었지만 CJTF-HOA 사령관의 지휘를 받을 수도 있었다. 


CRE는 그린 베레 CIF 중대, 네이비 씰 1개 소대, RHIB 보트 분견대, 그리고 MH-53 페이브 로우 헬리콥터 4대와 MC-130P 컴뱃 쉐도우 터보프롭 항공기로 구성된 공군 특수작전 패키지로 구성되어 있었다.




로드 터너 대령이 지휘하는 또다른 태스크 포스는 CRE 전체와 JSOTF에 속하지 않은 채 독자적으로 터너 대령의 지휘를 받는 SDV 운용 팀과 바닐라 네이비 씰 팀 일부로 구성된 비밀스러운 태스크 포스였다. 이 태스크 포스는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으로부터 직접 임무를 하달받았다. 


2003년 11월부터 12월까지 6주간, 이 태스크 포스는 소말리아에서 특수 정찰 작전을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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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흑같이 어두운 밤, 태스크 포스의 네이비 씰 대원들은 아덴 만 해역에서 작전 중인 미 해군 잠수함 USS 댈러스에서 SDV를 타고 빠져나왔다. 소말리아 해안가까지 도달한 이들은, SDV를 해안가 바닥에 세워 두고 뭍으로 올라왔다. 


네이비 씰 대원들의 목표 장소는 알 카에다 조직원들이 자주 방문한다고 여겨지는 소말리아 해안가 근처나 테러리스트 훈련 캠프가 위치한 것으로 추정되는 지역이었다. 


목표 장소까지 발각되지 않고 도달하면, 대원들은 DIA(국방정보국)가 개발한 특수 위장 카메라를 몰래 설치하고 다시 SDV를 세워놓은 바다 속으로 잠수하여 SDV를 타고 잠수함에 복귀했다. 


나머지 CJTF-HOA 요소가 민사 작전의 일부로 현지 마을에 우물을 뚫고, 도로를 깔고, 학교와 교회를 지어주는 동안 이루어진 작전들이었다.


‘카디널 디바이스’ 라는 이름의 이 비밀 감시 카메라는, 자연적인 물체나 카메라가 아닌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다른 물건처럼 보이도록 위장해 있었다.  


소말리아 북부 해안가에 카디널 디바이스를 설치하는 작전은 Cobalt Blue, 동부 해안가에 설치하는 작전은 Poison Scepter라는 이름이 붙었다. 원래는 소말리아 해안가에 총 17개의 카메라를 설치하는 것이 목표였지만, 최종적으로 코발트 블루와 포이즌 셉터 작전을 통틀어서 12개에서 14개 사이의 카메라만 설치한 채로 임무가 종료되었다. 


이 비밀 감시 카메라들은 12시간마다 자동으로 사진을 촬영했다. 촬영된 사진들은 우주 궤도를 따라 공전하면서 일정 시간마다 아프리카의 뿔 위를 지나치는 미국의 인공위성으로 자동 전송되었다. 




사실, 03년 11월~12월의 특수 정찰 작전은 네이비 씰 팀이 첫 번째 코발트 블루 작전에 돌입하기 24시간 전 취소될 뻔했다. 이 작전에 대해 브리핑을 받은 극소수의 고위 관리들 중 일부가 반대 입장을 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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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냐 나이로비 미 대사관의 CIA 나이로비 지부장 존 베넷과 케냐 미 대사 윌리엄 벨라미가 그 주인공이었다. (소말리아를 실질적으로 통치하는 정부가 없기 때문에 소말리아에는 미국 외교공관이 설치되지 않았다. 따라서 케냐의 미국 외교공관과 CIA 지부가 소말리아에서의 외교 및 정보 업무를 맡고 있었다.)


네이비 씰의 특수 정찰 작전이 발각되면 CIA의 자산이 위협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벨라미 대사와 베넷 지부장은 CJTF-HOA 사령관 마스틴 로브슨 준장에게 연락해 작전을 취소해 달라고 했다. 


로브슨 준장은 처음에는 작전이 국방부 장관으로부터 직접 하달된 중요한 작전이라며 취소를 거부했으나, 계속되는 요청은 결국 국방장관 도널드 럼스펠드와 CIA 국장 조지 테넷에게까지 전달되었다. 럼스펠드 장관과 테넷 국장은 부시 대통령과의 상의 끝에, 첫번째 코발트 블루 작전은 그대로 진행하고 차후 카메라 설치 예정 지역들을 다른 곳으로 변경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비밀 카메라 임무는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 특수 정찰 작전은 국방부의 주도로 이루어졌고 같은 시기 아프리카의 뿔에서 작전을 진행하던 CIA와는 별도로 이루어졌다. 


* * *


2002년 초, 조그만 CIA 팀이 소말리아를 드나들기 시작했다. 첫 번째 방문에서 이 팀은 차량을 타고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를 출발하여 소말리아의 제2도시이자 소말리아 북서부 소말릴란드의 수도인 하르게이사Hargeisa에 도착했다. 


두번째 방문부터는 차량이 아닌 비행기를 이용해 소말리아 남서부 도시 바이도아Baidoa로 갔다. 이 시기 소말리아를 방문하던 CIA 팀은 순전히 정보 수집이나 정보 검증의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2003년에는 작전 본부가 아디스아바바에서 나이로비 주재 미 대사관의 CIA 지부로 바뀌었다. 이때부터 이 팀의 작전 목적은 소말리아 내부의 다양한 군벌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이들을 통해 소말리아에 있는 동아프리카 알 카에다 주요 구성원 20여명을 체포하거나 사살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작전의 이름인 “블랙 호크”는 1993년 모가디슈에서 참사로 끝난 JSOC 태스크 포스 레인저의 고딕 서펀트 작전, 일명 “블랙 호크 다운”에서 따온 것이었다.


블랙 호크 팀은 군벌들과 관계를 개발할 CIA 공작관 최소 두 명과, 소말리아 내에서 이들을 경호할 태스크 포스 오렌지 공작원 최소 두 명으로 구성되었다. 오렌지 공작원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소말리아 내부에서 SIGINT를 수집하는 작전도 수행하기 시작했다. 


NSA의 스파이 위성이 잡아내지 못하는 모가디슈의 휴대전화 트래픽 같은 신호들은 오렌지 공작원들이 직접, 비밀리에 설치한 특수 장비를 통해 수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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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베넷, 나이로비 지부장>


블랙 호크 팀을 지휘하는 것은 CIA 나이로비 지부장 존 베넷이었다. 베넷은 블랙 호크 팀이 따라야 할 기본적인 원칙들을 만들었다. 그 원칙들은 다음과 같았다. 


-우리는 군벌들과 협력한다.


-우리는 특정 군벌만 편애하지 않는다.  


-군벌들이 우리를 가지고 놀게 두지 않는다. 


-우리는 소말리아 국적자들을 추적하지 않고, 오직 해외에서 들어온 알 카에다 조직원들만 추적한다. 


(다만, 네번째 원칙은 군벌들과 협력하여 소말리아 안의 알 카에다 조직원들을 사냥하는 작전에만 적용되는 원칙이었다. 미국이 단독으로 또는 케냐와 협력하여 소말리아의 이슬람주의 전투원들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거나 체포 및 제거하는 작전에는 이 원칙이 적용되지 않았다.)


CIA는 소말리아 안의 거의 모든 군벌들과 협력했다. 블랙 호크 팀은 수십만 달러가 들어있는 돈가방을 들고 소말리아의 비행장에 내렸다. 이 돈은 알 카에다 조직원들을 추적하는 작전의 대가로 군벌들에게 제공될 돈이었다. 


CIA로부터 받은 돈으로 군벌 지도자들은 자신의 군벌을 무장시키고, 먼지 쌓인 비행장을 재단장하고, 번듯한 본부도 차렸다. 몇 달 동안 CIA는 모가디슈를 포함한 소말리아의 주요 도시를 통제하는 11개의 군벌과 동맹을 맺었다. 


이 중 다섯 명의 군벌 지도자는 모가디슈에 각자만의 조그만 공항을 소유하고 있었다. K50, 이살레이, 자지라, 조와르, 다이닐레 비행장이 그 공항들이었다. 블랙 호크 팀은 이 다섯 명의 군벌들을 만날 때는 그 군벌 지도자가 소유한 비행장에 내렸다.


비행장에서 블랙 호크 팀의 CIA 공작관들은 군벌 지도자들을 맞이하여 돈가방을 건네고 군벌 지도자들은 체포한 알 카에다 조직원을 팀에게 넘겨주었다. 


그러한 군벌 지도자 중 한 명인 모하메드 칸야레 아프라는 매달 블랙 호크 팀으로부터 10만 달러에서 15만 달러 사이의 금액을 받았다. 그는 모가디슈 남부의 다이닐레를 통제하는 유력 군벌이었다. 


CIA는 11개의 군벌들과 동맹을 맺었지만 정작 이 군벌들 사이에서는 각자가 CIA로부터 요청받은 알 카에다 조직원을 찾아서 체포하는 데에 있어 어떠한 조정이나 협력도 없었다. 각 군벌들은 각자가 배정받은 타겟을 쫓을 뿐이었다.




2003년 초부터 블랙 호크 팀은 모가디슈를 2주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방문했다. 모가디슈에 올 때마다 CIA 공작관들은 군벌 지도자들에게 알 카에다 조직원들의 신병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업데이트 해주고 새로운 지침을 내렸다. 


공작관들은 절대로 이들에게 무기나 다른 군사 장비를 제공해 주지 않았다. 블랙 호크 팀이 소말리아에 내려서 군벌들에게 정보와 빳빳한 현찰 더미를 주면, 군벌들은 이를 기반으로 알 카에다 용의자들을 잡아서 넘겨주었다.




군벌들과의 협력은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했다. 이들이 CIA와 협력을 하는 이유는 오로지 돈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CIA 공작관들은 군벌 지도자들에게 자신들을 배신하면 미국의 공습이 뒤따를 것이라는 암시를 은연중에 주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모든 미군과 정보기관들의 항공 자산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의 엄청난 수요를 소화하고 있었기 때문에 미국의 공습은커녕 블랙 호크 작전에서 이들을 지원해 줄 항공 자산 하나 없었다.


블랙 호크 팀을 구해줄 수 있는 유일한 자산은 로드 터너 대령이 지휘하는 JSOTF이었다. JSOTF가 블랙 호크 팀이 위기에 빠졌을 때를 대비해 출동하는 인명 구조 작전에는 Mystic Talon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블랙 호크 작전 기간 동안 미스틱 탈론 작전이 실제로 실행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관계자들은 블랙 호크 팀에게 가장 가까운 JSOTF마저도 지부티의 캠프 르모니에에서 MH-53 헬리콥터를 타고 출동하여 소말리아에 도착하기까지는 몇 시간씩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그렇기 때문에, 블랙 호크 팀의 오렌지 공작원들이 수행하는 SIGINT 수집 임무도 중요했다. 이들은 때때로 CIA와 협력하는 군벌 지도자들의 집에도 도청 장치를 비밀리에 설치했고, 이는 군벌들이 블랙 호크 팀에게 전달한 정보들을 검증하는데 사용되었다. 다행히 군벌들이 블랙 호크 팀에게 한 이야기들은 대부분 사실로 검증되었다.




블랙 호크 팀과 소말리아 군벌들 간의 관계가 깊어지면서 팀이 소말리아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졌다. 초창기에는 하루만에 케냐에서 소말리아를 방문해 군벌들을 만나고 다시 케냐로 돌아갔지만, 이제는 일주일에 한 번씩은 소말리아를 방문했고 몇 번은 군벌들의 보호 아래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날 케냐로 돌아갔다.


2003년 말에는, 이런 발전된 관계가 훌륭한 결과를 가져왔다. CIA 공작관들이 모하메드 파라 아이디드의 아들인 후세인 파라 아이디드를 설득하여 그가 이끄는 군벌로부터 37대의 SA-7과 4대의 SA-18 휴대용 지대공 미사일을 구매하는데 성공한 것이었다. 


네 대의 SA-18은 상자에서 꺼내지도 않은 완전 새것이었다. CIA가 구매한 지대공 미사일들은 캠프 르모니에로 옮겨지고 난 뒤, 공군의 C-17 수송기에 실려갔다. 지대공 미사일의 대가로 CIA는 후세인에게 36만 달러를 지불했다. 


이 돈은 아프리카의 뿔 지역에서 유통되는 지대공 미사일의 위험성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지대공 미사일 한 발로도 민간 여객기를 충분히 격추시킬 수 있었다. 불과 1년 전에 바로 그런 시도가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