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스파이, 프로그맨, 테러리스트, 고용된 총잡이들 (2)
2002년 11월 28일, 인도양을 접하는 케냐의 제2도시 몸바사Mombasa의 모이 국제공항에서 승객 261명을 싣고 이륙하는 이스라엘 국적의 항공사 아르키아 항공 582편에 테러리스트들이 SA-7 지대공 미사일 두 발을 발사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한 발은 완전히 빗나갔고, 나머지 한 발은 꼬리날개에 맞았지만 폭발하지 않고 그대로 뚫고 지나갔다. 다행히 이 공격에서 사상자는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20분 뒤에 또다시 몸바사 시내에서 일어난 공격은 그렇지 않았다. 이스라엘인이 소유한 파라다이스 호텔에 트럭 자폭 테러가 일어나 13명이 사망했다. 이 치밀하게 계산된 두 공격을 계획한 것은 동아프리카 알 카에다의 작전 책임자인 파줄 압둘라 모하메드, 또는 미국 정보기관은 하룬 파줄이라 부르는 테러리스트였다.
코모로 태생의 하룬 파줄은 교묘한 자였다. 그는 다양한 가명을 사용했다. 미국 정보당국은 그가 최소 15개의 가명을 사용했다고 추정했다. 그는 영어, 프랑스어, 스와힐리어, 아랍어를 포함한 6개 언어를 구사할 줄 알았고, 컴퓨터 사용에도 능숙했다. 파줄은 2002년 몸바사 동시다발 테러 이전에도 1998년 동아프리카 미 대사관 테러에도 가담한 전적이 있었다.
미국 정보기관은 그를 “가장 위험하고 가장 유능한 알 카에다 지도자” 중 한 명으로 평가했다. 파줄은 오사마 빈 라덴이 고정 1순위를 차지하는 미국의 알 카에다 타겟 리스트에서 오랫동안 최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 * *
2003년 8월 1일, CIA 나이로비 지부장 존 베넷은 케냐에서의 근무를 마치고 그날 저녁에 미국으로 복귀하는 비행편에 가져갈 짐을 싸고 있었다. 그가 지부장으로 있는 동안 블랙 호크 작전은 최소 10명의 동아프리카 알 카에다 조직원들을 체포하거나 제거하는 성과를 올렸다. 하룬 파줄, 아부 탈라 알 수다니, 살레 알/리 살레 나브한 같은 1998년 동아프리카 미 대사관 테러의 주범들은 여전히 잡히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나 그것도 오늘까지인듯 싶었다.
베넷이 미국으로 복귀할 준비를 막 마친 그날 저녁, 나이로비 지부의 CIA 공작관들은 케냐 당국 관계자들과 함께 나이로비로부터 남동쪽으로 480km 떨어진 몸바사의 인터넷 카페에 설치된 컴퓨터 한 대를 감시하고 있었다. 누군가가 그 컴퓨터에 CIA가 동아프리카 알 카에다 조직원들이 사용하는 것으로 파악한 이메일 주소로 로그인을 한 것이다.
거기에 더해 미국과 케냐 정보기관이 파악한 동아프리카 알 카에다 조직원들이 통신을 주고받는 패턴 또한 그 컴퓨터 사용자의 패턴과도 들어맞았다. 나이로비 지부의 한 CIA 공작관은 케냐 당국과 협력하기 위해 몸바사 현장에서 대기중이었다.
마침내 케냐 경찰이 인터넷 카페에 들이닥쳤다. 경찰은 알 카에다의 이메일 주소를 사용하는 것으로 확인된 남성 두 명을 체포했다. 용의자 두 명 중 한 명은 다른 한 명보다 체격이 컸다. 현장의 공작관은 그 과정을 휴대전화를 통해 모두 나이로비 지부에 실시간으로 보고하고 있었다.
케냐 경찰이 용의자 두 명을 경찰차에 태우려던 찰나였다. 순간, 체격이 더 큰 용의자가 더 작은 용의자를 거세게 밀치면서 옷 속에서 수류탄을 꺼내고, 자폭하였다. 이 폭발로 경찰관 한 명이 용의자와 함께 사망하고 현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 틈에, 체격이 더 작은 용의자는 빠르게 도망쳤다.
이후에 CIA와 케냐 당국이 파악한 바에 따르면, 자폭한 용의자는 파이살 알/리 나소르라는 이름의 젊은 케냐인이었고, 도망친 작은 체격의 용의자가 바로 하룬 파줄이었다. 그는 당시 동아프리카에서 지명 수배중인 인물이었고, 그의 목에는 500만 달러의 현상금이 걸려 있었다.
케냐 보안군이 빠르게 현장에 출동했지만, 파줄은 케냐 경찰에 이어 보안군의 추적을 피하는데도 성공했다. 근처 모스크로 달려간 그는, 케냐 여성들이 쓴 것을 자주 볼 수 있는 얼굴을 가리는 이슬람식 얼굴 가리개를 집어 얼굴을 싸맨 뒤 여성으로 위장하여 보안군의 추적을 피했다.
파줄과 나소르 둘 중 한 명의 ID를 확보한 케냐 보안군은 두 명이 살고 있던 아파트로 직행했다. 그들의 아파트 호실에서 보안군은 파줄의 여권, 가짜 비자를 만드는데 사용되는 기계, 대전차 로켓 한 발과 여러 개의 여권들을 확보했지만, 파줄이 어디로 도망쳤을지에 대한 단서가 될 만한 것은 없었다.
2003년 8월과 같이 파줄의 체포에 근접한 일은 1년 전에도 있었다. 2002년 7월 12일, 케냐 경찰은 무장 강도 사건에서 훔친 신용 카드로 몸바사의 주얼리 샵에서 보석을 구매한 남성을 체포했다. 당시 케냐 경찰은 몰랐지만, 그가 바로 하룬 파줄이었다. 여전히 그의 진짜 신원을 모른 채, 다음날 중무장한 경찰은 남성이 훔쳤을 것으로 추정되는 다른 장물들을 수거하기 위해 그가 거주하고 있던 집으로 그를 끌고 갔다.
하지만, 그곳에서 경찰은 그들에게 소리를 지르는 세 명의 여성과 정신지체 남성 한 명을 마주쳤다. 경찰관들은 당황했고, 당시에는 수갑을 차고 있지 않던 파줄은 현관으로 도망쳐 계단을 번개같이 뛰어내려가 경찰의 추적에서 벗어났다.
7월 12일 파줄이 체포되었을 때 같이 구금된 또다른 남성도 있었다. 그는 케냐 경찰에 체포되었을 때 파줄의 택시 운전사라고 속인 뒤 풀려났다. 이 자의 진짜 정체는 동아프리카 알 카에다의 고위 간부, 살레 알/리 살레 나브한이었다. 4개월 뒤 다시 만난 파줄과 나브한은 몸바사 테러를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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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호크 팀의 일부로 소말리아를 주기적으로 방문하던 태스크 포스 오렌지 공작원들의 SIGINT 작전은 2003년부터 시작되었다. 이들의 임무의 특징은 NSA의 스파이 위성 같은 국가급 자산들이 수집할 수 없는 SIGINT를 수집한다는 점이었다. 이러한 근접 SIGINT 수집 작전이 오렌지의 전문이었다. 오렌지가 소말리아의 휴대전화 기지국들에 설치한 특수 장비들은 새로운 기지국이 들어서거나 기존의 기지국이 자리를 옮길 때마다 그에 맞춰서 비밀리에 위치가 옮겨져야 했다.
오렌지의 SIGINT 수집 작전으로 CIA 공작관들이 상대하는 소말리아 군벌들의 진의를 검증할 뿐만 아니라 동아프리카 알 카에다 조직원들의 전화 통화를 중간에서 도청할 수도 있었다. 이는 미국 정보당국에게 알 카에다 조직원들이 동아프리카에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는지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주었다.
미국은 2002년 케냐 경찰이 몸바사에서 실수로 풀어준 동아프리카 알 카에다 간부인 살레 알/리 살레 나브한이라던가 알 카에다와 연계된 무장조직 알 샤바브의 지도자 아덴 하시 아이로, 2인자 아흐메드 압디 고다네 같은 소말리아 내의 주요 타겟에 대한 대테러 작전 개발에 착수할 수 있었다. 알 카에다와 알 샤바브 조직원들의 휴대전화 트래픽을 감시한 덕분에 미국 정보기관들은 이 폭력적인 이슬람주의 무장조직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일례로, 파키스탄과 소말리아의 알 카에다 조직원들 사이에서 오간 통화 기록을 찾을 수 있었다. 파키스탄의 알 카에다 조직원은 다시 예멘, 이라크, 북아프리카의 알 카에다 조직원들과도 연결되었다. 알 카에다는 파키스탄을 중심으로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었다.
또한, 2002년 미국 정보당국이 예측한대로, 알 카에다는 아프리카의 뿔을 새로운 안식처로 생각하고 있었다. 오렌지 공작원들의 도청 작전으로 확인된 바에 따르면, 알 카에다는 해당 지역에서 테러리스트 훈련 캠프를 세우려고 하고 있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알 카에다 훈련 캠프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장소 중 하나는 소말리아 남부의 라스 캄보니Ras Kamboni라는 지역이었다. CIA 나이로비 지부는 2001년과 2002년에 케냐 당국이나 소말리아 군벌들과의 협조 없이 단독으로 현지인 요원들을 라스 캄보니에 파견해 해당 지역에 알 카에다 훈련 캠프가 있는지 확인해 보았지만, 성과는 없었다.
2003년 말~2004년 초, 이번엔 현지 요원이 아닌 미국인 공작원이 직접 근접 정찰을 한 결과, 역시 라스 캄보니에는 훈련 캠프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결론내렸다. JSOC이 알 카에다가 라스 캄보니에 훈련 캠프를 조직하고 있다고 확신한 것은 2007년 여름의 일이다.
미 정보당국은 1998년 미 대사관 동시 테러와 2002년 몸바사 동시 테러에 가담한 알 카에다 조직원들의 흔적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분석관들은 알 카에다가 수십, 수백 킬로미터 넘게 떨어져 있는 두 지역에서 거의 동시에 테러를 벌이기 위해 휴대전화를 사용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이들은 해당 기간 동안의 모든 전화연결을 조사하여 테러범들이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휴대전화들을 찾아냈다.
이후, 미국은 일부 정보를 케냐 당국에 공유하여 몸바사 공격에 연루된 하급 알 카에다 조직원들을 체포하도록 했다. 케냐에 파견된 미 국방무관 마이크 개리슨 대령은 모이 국제공항 민항기 격추 시도에 실제로 쓰였던 SA-7 미사일 발사 장치를 입수하는 데에 성공했다. 그러나 파줄과 나브한 같은 동아프리카의 고위 알 카에다 간부들은 찾기 어려웠다.
나브한과 그의 부하들은 숫자와 관련된 메시지를 주고받을 때는 실제 수가 아닌 10의 보수법을 적용한 암호를 사용하였다. 전달하려는 메시지에 포함된 숫자가 539이면 십과 일의 자리에 10의 보수법을 적용해 3 대신 7, 9 대신 1을 사용하여 571이라는 메시지를 대신 보내는 식이었다. 얼핏 보면 간단한 암호화 방식이지만, 정보당국이 이 수법을 알아내는 데에는 꽤 시간이 걸렸다.
* * *
블랙 호크 작전에서 소말리아 군벌들과의 관계를 개발하는 일에는 존경받는 나이로비 지부장 존 베넷의 리더십이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그는 비록 직접 모가디슈를 방문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순수한 의지력과 성격 덕분에 CIA와 소말리아 군벌 지도자들의 관계가 형성되었다.
그러나 2003년 8월, 베넷이 CIA의 특수활동부서를 지휘하기 위해 나이로비 지부장 자리를 떠나고 새로운 지부장이 부임하자, 블랙 호크 작전의 성향이 변했다.
베넷이 나이로비 지부를 지휘할 때 블랙 호크 작전은 동아프리카 알 카에다와 그 연계 세력의 구성원들을 군벌들을 통해 체포하거나 사살하는 대테러 작전의 성향이 강했다. 하지만 새로운 지부장, ‘체스터*’ 의 지휘 아래 CIA 나이로비 지부는 케냐와 소말리아에서의 해외 정보 수집에 더 집중했다.
*’체스터’ 라는 이름은 가명이다. 이 시리즈를 연재하면서 수행한 조사에서 끝내 2003년 8월 1일부터 2006년 중순까지 CIA 나이로비 지부를 지휘한 지부장의 실명을 찾지 못해 부득이하게 가명을 사용했다.
블랙 호크 작전도 이에 영향을 받아, CIA 공작관들은 군벌들을 통해 소말리아에서의 해외 정보를 수집하는 것에 더 집중하고, 대테러 작전의 성향은 줄어들었다. 또한 작전에서 CIA 측의 위험에 대한 선호도도 함께 줄어들었다.
체스터가 지부장으로 부임하고 2년 동안, 모가디슈에 착륙하는 CIA 공작관들은 케냐에서 대여한 소형 전세기에서 군벌 지도자들과의 만남을 가지고, 절대 비행기에서 내리지 않았다. 이러한 만남 중 한 번은, 군벌 지도자가 비행기 창문 밖에서 자신들의 할 일을 하고 있는 4명의 백인 여성 기자들을 가리키며 지적했다. 그의 요점은 분명했다:
“저 비무장한 서방 여성들은 소말리아에서 일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소—그런데 당신네들은 왜?”
JSOC은 2005년부터 나이로비 대사관에 씰 6팀 대원들을 파병했다. 이제 블랙 호크 작전에 참여하는 JSOC 오퍼레이터들은 2명의 씰 6팀 대원들과 오렌지의 노브 터너* 한 명으로 구성되었다. 오퍼레이터들은 CIA가 빌린 전세기에 함께 타고 소말리아를 방문했지만, 윌리엄 벨라미 주 케냐 미 대사의 명령에 의해 비행기 안에만 있도록 격리되었다.
*'노브 터너' 는 태스크 포스 오렌지의 SIGINT 스쿼드론 소속 대원들을 부르는 용어이다.
아이러니하게도, CIA는 JSOC 오퍼레이터들을 “고용된 총잡이들(hired guns)” 로 취급했지만, 이들이 임무에 소총을 반입하는 것을 금지했다. 오렌지 공작원은 휴대전화 감시 장치를 군벌들이 통제하는 모가디슈의 비행장들에 배치하거나, 에이전시의 정보원이 이 장치를 배치하게 할 것이었다.
2005년 늦여름, 체스터는 블랙 호크 팀이 비행기에서 내려 다시 모가디슈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허가했다. 그러나 CIA는 씰 6팀과 오렌지 대원들이 비행기 내에서 소총을 휴대하지 못하도록 하는 규칙을 모가디슈 내에서의 블랙 호크 작전에서까지 확대하려고 했다. CIA는 군벌 지도자의 군대가 충분한 보호를 제공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소말리아 비행장에서 일어난 한 사건은 곧 그 약속의 공허함을 드러냈다.
두 명의 씰 6팀 대원들을 포함한 블랙 호크 팀이 군벌 지도자와의 회의를 위해 비행기에 앉아 있었을 때 RPG 탄두가 활주로를 가로질러 날아갔다.
미국인들을 보호하기로 되어 있던 군벌 지도자의 군대는 사라져 버렸다. 라이플을 분해한 채 짐 속에 넣어 두었던 오퍼레이터들은 재빨리 화기를 조립한 뒤 비행기에서 내려 이들이 선점할 수 있는 가장 고지대였던 비행장 근처의 언덕을 장악했다. RPG를 발사했던 사람은 사라졌다.
이후로 CIA 공작관들은 무기에 대해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았다.*
*자세한 내용은 이전 글 "Hired Guns," 를 참고할 것.
아프리카의 뿔 지역에서 CIA와 JSOC 사이의 갈등은 최고위층까지 번졌다. 2005년, 매크리스털 사령관은 나이로비 주재 미 대사관을 방문했다. 키는 작지만 자아는 비대한 인물이었던 CIA 나이로비 지부장 체스터는 매크리스털의 방문 전에 그가 “무릎이라도 꿇을 준비를 하고 와야 할 것” 이라고 언질을 주었다.
회의가 열리자, 체스터는 JSOC 사령관 앞에서 거들먹거리기 시작했다. 레인저 연대장으로 복무 당시 연대의 근접 전투 교범을 통째로 개편한 바 있는 매크리스털은 잠자코 그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지부장이 말을 마치자, 매크리스털이 입을 열었다.
“이봐, 당신이 또 나한테 그런 식으로 말한다면, 난 자네 데스크 바로 앞에서 당신을 존나게 패버릴 거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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