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부: FRAGO (1)



2006년 말까지, 아프리카의 뿔 작전 지역을 담당하는 JSOC 태스크 포스(이하 나이로비 태스크 포스) 인원은 10명을 넘지 않았다. 씰 6팀, 오렌지, JCU(Joint Communication Unit, JSOC의 통신지원부대), 그리고 이들을 지휘하는 장교 1명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2007년 1월, 오렌지는 실시간 전화 통화 도청 및 트래픽 분석과 지리 위치 추적을 수행하는 특수 장비를 탑재한 SIGINT 항공기 한 대를 아프리카의 뿔 지역에 배치했다. 오렌지는 SIGINT 자산의 대부분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집중시켜 놓았고, 2004년 이후로 오렌지의 SIGINT 항공기들의 절반 이상이 JSOC이 치열하게 알 카에다와 전투를 벌이고 있는 이라크에서 작전 수행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상당히 큰 결정이었다. 


한 해 전에 블랙 호크 팀과 협력하던 소말리아 군벌들이 ICU에 패퇴하면서 잃어버렸던 소말리아 내부의 SIGINT 수집 역량을 오렌지가 복구하기까지는 1년 정도 걸렸다. 그동안 아프리카의 뿔 상공을 8자 비행하면서 SIGINT를 수집하는 오렌지의 비행기는 이전에 오렌지가 소말리아에 설치한 특수 장비를 대체했다. 


이 비행기는 ICU, 알 샤바브, 알 카에다 조직원들이 아이폰이나 휴대용 무전기로 주고받는 통화를 실시간으로 도청하였고, 비행기에 탑승한 오렌지의 언어 전문 계약자들이 주요 테러리스트들의 목소리를 식별했다. 




2007년 봄, 크리스 반샌트는 케냐에 도착했다. 나이로비 태스크 포스에서의 생활은 꽤 새로운 경험이었다. 매일 밤 바그다드 그린 존의 작전 지원 기지에서 출동해 직접 타격 작전을 수 차례 수행하고 돌아오는 이라크 JSOC 태스크 포스에서의 생활과는 상당히 달랐다. 


그는 나이로비 미국 대사관의 JSOC 태스크 포스에서 근무했다. 대사관은 1998년 알 카에다의 테러로 기존의 대사관이 붕괴한 이후에 위치를 옮겨 새로 지어진 철통 요새였다. 


나이로비 태스크 포스는 JSOC이 지휘하지만 정보기관과 법 집행 기관에서 파견한 인원들도 다수 섞여 있는 기관 합동의 성격이 강했다. 나이로비 태스크 포스는 동아프리카 알 카에다 고위 간부들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의 뿔 지역에서 알 카에다가 설치했을 외국인 전투원 훈련 캠프와 밀수 루트를 열심히 추적하고 있었다.


크리스와 함께 나이로비 태스크 포스에서 근무하게 된 동료 델타 G 스쿼드론 대원은 크리스와 C 스쿼드론에서 함께 복무한 델타 오퍼레이터와 형제 사이라서 둘은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두 명은 1993년 블랙 호크 다운 사건 이후 14년 만에 처음으로 소말리아에서 작전을 하게 될 델타 포스 오퍼레이터들이었다. 


크리스와 동료 델타 대원은 나이로비 태스크 포스의 조그만 AFO 요소에 파견된 소수의 오퍼레이터 중 일부였다. AFO 팀의 사이즈는 열 명 정도였다. 크리스를 포함한 델타 포스 대원 두 명, 씰 6팀 대원 두 명, 24th STS의 공정통제사(CCT)와 파라레스큐(PJ) 대원 각각 한 명, 오렌지 공작원 두 명, 그리고 RRC 대원 두 명이 AFO 팀을 구성했다. 


각 부대들의 JSOC 컬러 코드네임이 그린, 블루, 화이트, 오렌지, 레드인지라 모두 모아놓으니 제법 색깔이 다채로워 팀원들 사이에선 레인보우 연합군이라는 농담을 했다. 


JSOC에서 나이로비 태스크 포스의 AFO 팀에 하달한 임무는 두 가지였다. 첫째, 알 카에다 동아프리카 지부와 알 샤바브의 고위 간부들로 구성된 ‘고가치 개인HVI’ 들을 추적하는 것. 둘째, 아프리카의 뿔 지역에서 알 카에다 외국인 전투원 네트워크를 무너뜨릴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그 임무였다. 




2007년 여름까지 미국 정보당국은 300명 가까이의 외국인 전투원들이 소말리아에 도착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JSOC은 비슷한 숫자의 전투원들이 라스 캄보니 근처의 두 캠프에서 훈련을 받는다고 믿었다. JSOC은 중동과 아프리카 일대에 존재하는 외국인 전투원 네트워크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해외 전투원, 또는 외국인 전투원(foreign fighters) 문제는 미국에게 있어서 중요한 사안이었다. 


알 카에다는 아프리카와 중동의 다양한 국가에서 신규 조직원들을 모집하여 선박을 통해 아프리카의 뿔 지역으로 보냈다. 라스 캄보니같은 알 카에다 훈련 캠프에서, 알 카에다 외국인 전투원들은 IED 제작과 운용 기술, 사격술 등의 훈련을 이수하여 미군에 대항하는 반-란전을 수행할 준비를 마친 뒤, 보트를 타고 예멘을 거쳐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을 포함하여 미국인을 죽일 수 있으면 중동 어디로든지 밀입국하여 테러 활동을 벌였다. 


그 중에서도 대부분의 외국인 전투원들이 도달하는 곳은 단연코 이라크였다. 이라크에 유입되는 해외 전투원들의 출신성분은 다양했다. 알제리, 모로코, 말리 등 사막을 건너서 동아프리카까지 와서 훈련을 받는 이들도 있는가 하면 체첸, 보스니아 등의 중앙아시아, 동유럽 출신들이나 수단, 이집트, 사우디 출신들도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이웃한 시리아를 통해 이라크로 밀입국했다. 


크리스에게도 외국인 전투원들은 낯선 존재가 아니었다. 2003년 두번째 이라크 파병에서도 이미 외국인 전투원들과 전투를 벌인 적 있었고 그의 부대가 2001년 이후 입은 제일 큰 손실 중 하나도 외국인 전투원 타겟을 쫓으면서 발생했다. 그에게는 이제 외국인 전투원 네트워크의 심장부를 노릴 기회가 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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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로비 태스크 포스가 에티오피아의 침공을 위장삼아 소말리아로 오퍼레이터들을 파견하기 시작한 것은 07년 3월 말에서 4월 초쯤이었다. 씰 6팀 골드 스쿼드론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24th STS 대원들이 몇 포함된 십여 명 정도의 오퍼레이터들이 두세 명씩 팀을 이뤄 에티오피아 보병 부대와 특수작전부대에 따라붙었다. 


이렇게 적은 수의 병력을 파병하는 작전 마저도 워싱턴에서는 상당한 골칫거리였다. 상부에서는 여전히 1993년 모가디슈 전투의 참사가 반복될까 두려워하는 분위기였다. 특수작전부대원들의 소말리아 파병은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했고, 부시 대통령에게도 해당 사실이 브리핑 되었으며 그의 동의까지 필요했다.


JSOC의 관심은 수천 명의 ICU 병사들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알 카에다와 연루된 몇 명의 HVI들을 체포하거나 사살하는 것에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적은 수의 오퍼레이터들을 파병해도 충분했고 이들 마저도 직접 타격 작전보다는 에티오피아군 부대들의 작전에 자문을 제공하고 지원하는 역할에 가까웠다. 


에티오피아군 지원 임무 외에는, 오퍼레이터들은 푼틀란드Puntland 지방의 북부 해안가 마을 보사소Bosaso에 아웃스테이션을 차렸다. 이 아웃스테이션은, 오퍼레이터들과 지원 병력들 몇 명이 현지 동맹 무장세력들과 함께 작전을 나갈 때 사용하기 위해 세워졌다. 


JSOC 오퍼레이터들이 소말리아에 파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에티오피아군이 병력을 철수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오퍼레이터들이 에티오피아군과 함께 보낸 시간은 몇 주 밖에 되지 않았다. 소말리아 남쪽의 케냐 국경 지역까지 몰린 ICU 간부들이 케냐로 도망칠 때를 대비해 이들을 체포하기 위해 국경에 무장한 채로 대기한 JSOC 인원들도 직접 타격 작전을 수행하기 보다는 케냐 당국의 작전을 지원하는 것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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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동료 씰 대원, 우: 크리스, 2008년 인도양에서.>


AFO 팀에 함께 있던 씰 6팀 블랙 스쿼드론 대원 두 명은 크리스와 구면이었다. 둘은 매크리스털 사령관의 지시로 아프가니스탄의 씰 6팀과 이라크의 델타 대원들이 몇 명씩 서로의 작전 지역에 교환 파병을 가던 시기에 씰 6팀에서 이라크로, 그것도 크리스가 복무하던 트룹에 파견 온 대원들이었다. 


이 씰 대원들은 델타의 크리스와 마찬가지로 특수 작전 경력이 완숙기에 이르러 부대의 AFO 스쿼드론에서 복무하고 있던 터라, 이들 사이에서 공감대가 형성되기도 하였다. 이런 점들이 합쳐져 AFO 팀원들은 소말리아에서의 복잡한 임무를 원활하게 수행하기 위해 서로에게 적응하는 데에 시간을 쓸 필요가 없었다. 


그럼에도 문제는 있었다. 크리스가 근무하는 JSOC의 아프리카의 뿔 담당 태스크 포스에는 하늘을 커버할 자산이 거의 없었다. 한 달 전 까지만 해도 있었던 AC-130은 에티오피아 정부의 요청으로 철수했다. 


AC-130같은 CAS(근접 항공 지원) 가 아니더라도 ISR 커버리지를 제공할 자산도 없었다. 이는 블랙 호크 작전이 한창일 때에도 있었던 문제였다. 미국의 수중에 ISR 무인기가 2천대나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그 자산들이 전부 이라크에 들어가도 모자랄 정도로 이라크에서의 무인기 수요는 대단했다. 타 지역에서 ISR 커버리지를 요청하면, 들려오는 대답은 “이라크에 더 높은 우선순위가 있다” 였다. 


이런 탓에 나이로비 태스크 포스의 유일한 항공 자산은 얼마 전에 배치된 오렌지의 SIGINT 항공기였다. 오렌지의 비행기를 제외한 정보 수집 자산은 인간 정보, 즉 HUMINT이었다. 


AFO 팀원들은 직접 사람들을 만나러 돌아다니면서 정보를 수집했다. 이들은 한동안 대사관에서 출퇴근하면서 나이로비와 몸바사를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한편 차후에 함께 작전을 할 현지인 민병대원들의 훈련을 위해 소말리아 북부의 자치 지역들을 자주 방문하기도 했다. 


* * *


5월 말, 몸바사에서 심상치 않은 알 카에다 조직원들의 움직임이 태스크 포스의 감시망에 잡혔다. 


최초 출처는 HUMINT이었다. 곧바로 SIGINT 항공기가 몸바사의 상공으로 날아가 지역의 신호를 탐색했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소말리아 남부에서 하룬 파줄과 살레 알-리 나브한이 외국인 전투원들의 이동을 지휘하고 있는 흔적이 발견된 것이다. 


두 명은 모두 미국의 알 카에다 타겟 리스트의 최상위를 차지하던 알 카에다 간부들이었고, 나브한은 특히 2002년 초부터 JSOC이 추적하고 있던 인물이었다. 태스크 포스의 부족한 인적, 물적 자산을 핑계로 놓아주기에는 너무나 중요한 기회였다. 


그러나 아직까지 태스크 포스에 근무하는 인원은 다 합쳐도 수십 명 규모였다. 또한 AFO 팀이 케냐에서 나이로비 다음으로 큰 인구 120만 명의 제2도시 몸바사 시내 한복판에서 화기를 사용한 HVI 타격 작전을 수행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이로비 대사관의 태스크 포스가 고심하고 있을 때, 몸바사의 하늘을 돌고 있는 오렌지의 비행기에서 새로운 첩보가 날아들어왔다. 소말리아 남부(아마도 라스 캄보니 근처의 캠프)에서 알 카에다 외국인 전투원들이 보트에 탑승했고, 북쪽으로 항해하면서 중간에 키스마요, 모가디슈를 거치고 더 많은 외국인 전투원을 실은 뒤에 최종적으로 18명에서 20명 사이의 알 카에다 조직원들이 예멘의 사나로 향할 계획이라는 것이었다. 


몸바사 시내에서와 마찬가지로 태스크 포스에게 소말리아 앞바다에서 해상 차단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은 없었다. 그럼에도, 크리스와 AFO 팀원들은 성급하게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불행 중 다행이었던 것은, 나이로비 태스크 포스에서 AFO 팀이 가지는 특이한 위치 덕분에 이들에게 주어진 작전적인 자율성이 굉장히 높았다는 것이었다. 이들이 계획을 세워서 상부에 보고하기만 하면, 통과될 확률이 높았다. 태스크 포스는 단지 자산이 부족했을 뿐이었다. 




먼저, 몸바사 상공을 감시하던 SIGINT 항공기는 수집된 첩보에 따라 소말리아 동부 해안으로 날아갔다. 그동안 나이로비 태스크 포스의 AFO 팀원 6명이 대사관에서 나와 근처 공항에서 C-130 수송기를 타고 날아가 지부티의 캠프 르모니에로 향했다. 


그곳에서, PJ 대원과 팀장을 포함한 오퍼레이터 세 명이 내렸다. 이 세 명은 캠프 르모니에에 남아서 나머지 AFO 팀원들이 소말리아에서 알 카에다 타겟들을 쫓을 때 발생할 수 있는 CASEVAC(Casualty Evacuation, 부상자 긴급 후송) 상황이나 CAS 요청에 대비해 사용할 수 있는 항공 자산을 조정하는 역할을 맡았다. 나머지 팀원들은 지부티에서 다시 소말리아 푼틀란드 주의 보사소 아웃스테이션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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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사소에 내린 AFO 팀원은 씰 6팀 블랙 스쿼드론의 필, 델타 G 스쿼드론의 크리스, 24th STS의 CCT 브래디 세 명 뿐이었다. 만약 이 셋이 어떻게든 소말리아 앞바다에서 항해하고 있는 알 카에다 전투원들을 체포하거나 사살하는데 성공한다면 1993년 고딕 서펀트 작전 이후 처음으로 미군이 소말리아에서 교전을 치르는 것이었다. 


따라서 AFO 팀의 알 카에다 외국인 전투원 체포 및 사살 작전 계획은 영관급 장교가 지휘하는 나이로비 태스크 포스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높은 1성 또는 2성 장군이 지휘하는 태스크 포스에도 보고되어야 했다. 2007년의 경우에는 JSOC 태스크 포스 88이 나이로비 태스크 포스의 상급 태스크 포스였다. 




보사소의 아웃스테이션에는 나이로비 태스크 포스와의 통신 연결을 담당하는 JCU 등의 서포트 인력이 있었지만 이들까지 작전에 데리고 가는 것은 부적절했다. 알 카에다 테러리스트들을 추적하는 것은 보사소에 내린 오퍼레이터 3명, 그리고 미국과 협력하는 푼틀란드 방위군의 병사들 십여 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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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색 셔츠에 검은 선글라스를 쓴 사진 맨 오른쪽 인물이 바쉬르이다>


보사소가 위치한 소말리아 북부의 반 자치 지역 푼틀란드 주에는 푼틀란드 방위군(Puntland Defense Force, PDF) 이라는 CIA의 지원을 받는 민병대가 존재했다. PDF의 리더는 바쉬르 라그헤 쉬이라르라는 자였다. 소말리아의 많은 조직들이 그렇듯이 그는 세속 군벌이자 사업가 출신이었다. 블랙 호크 작전에서 CIA와 동맹을 맺은 군벌 중 하나였고, 2006년에 짧게 존재했던 ARPCT의 일원이기도 했다. 


바쉬르만의 특이한 점이 있었다면, 돈으로 협력을 이끌어낸 다른 세속 군벌들과는 다르게 그는 외국인 테러리스트들이 소말리아 땅에 와서 설치면서 훈련 캠프를 운영하는 행태를 굉장히 못마땅하게 생각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가 미국인들과 협력을 하게 된 동기에는 물질적인 요인뿐만 아니라 이념적인 요인도 같이 존재했다. 


케냐로 파병을 오기 전 크리스는 PDF가 CIA의 자금과 훈련을 제공받았다고 브리핑 받았지만, 실제로 보사소 현장에서 만난 PDF 병사들의 능력은 별로 인상깊지 않았다. 크리스는 급한대로 바쉬르와 그의 병사들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소말리아 근해를 따라 북쪽으로 항해하는 알 카에다 보트를 어떻게 막을지 같이 고민하고 있었다. 


수집된 첩보에 따르면 보트는 예멘에 도착해 사나로 향할 것이었으므로 아라비아 해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꺾어 보사소가 맞닿아 있는 아덴 만을 지나치게 되어 있었다. 이제 AFO 팀이 할 수 있는 것은 보트의 위치에 대한 후속 첩보가 태스크 포스 본부에서 보사소로 날아오기를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