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말 쯤 얘기다


당시 입대하자마자 코로나 터져서 훈련소 외출 취소되고


그대로 휴가 제한에 잔뜩 꼬인 군번이라 중대 자체에 내 밑으로 신병이 한명도 없어 수개월간 쌓인 막내 생활에 


나는 마치 여름방학 남자 중학생의 성적 욕망과 같은 

단전서부터 끓여올라오는 깊은 빡침을 안고 살았다.



당시 나는 전입하고 한달만에 지뢰제거로 중대 전체가 모 공군 방공포대로 파견을 가는 바람에 

공군이 내어준 창고에서 생활하며 지뢰를 제거했는데



뜨거운 더위와 산 중에서 고된 작업, 

보호 바이저에 습기가 차 이슬이 되어 흘러내릴 때쯤엔


내 발 밑에 혹시 있을지 모를 지뢰가 터진다면 

난 이곳을 나갈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지곤했다.




애@미 뒤진 나날들을 보내며 ㅈ같은 일들만 있던 건 아니었다.


간혹, 동기가 뒤에 대대장 있는 줄도 모르고 대가리 깨진 대대장이라며 욕을 하다 걸린 날은 

우리 동기 사이에서 7.xx대깨대절로 불리며 연중행사로서 

전역 전까지도 그 날은 케잌에 초를 불며 보내는 즐거운 날도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외출을 허가해준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입대하고 약 5개월, 처음으로 외출을 가능케 해준 것이다.



다른 동기들은 분대원들과 함께 나갔는데 


니미 시@발 우리 분대는 서로가 서로를 싫어하는 병신 분대라 

그런거 없이 잘 모르는 선임들이랑 같이 나가서 꽤 외로웠으랴


선임들과 크리스피 도넛에서 도넛까지 먹고 돌아가던 차에 


다이소를 들렸다.


딱히 살 건 없어서 에어컨 바람이나 쐐는데 

옆에 식물코너가 보였다. 

나는 홀린듯이 토마토 씨앗을 들었고 결제했다.


마치 남미 불체자가 마@ㅇ을 밀수하듯이 몰래 출타백에 넣고 들어왔다. 


돌아와 석식을 먹고 개인정비시간, 

나는 작전지로 들어가 작전용 호미와 낫으로 토마토를 심었다.


이 토마토가 자라 열릴 때면 이 생활도 끝이리라 생각하며 



매일매일 자라는 토마토를 보는건 즐거웠다. 



어느덧 같이 심어놓은 해바라기와 토마토가 내 무릎까지 자랄때쯤은 

왠지모르게 입꼬리가 실룩이며 생활했던 것 같다.



주말이었다.



중대장이 나와 동기를 불러

작전지에서 물자를 가져오라 시켜 작전지로 가고있었다.



위-잉




멀리서 제초기 소리가 들렸다.

공군 병사들과 행보관이 잡초를 베고 있었다.

그런데 그 제초기 앞에

내 토마토 줄기가 서 있었다.


한 줄기, 두 줄기—

무자비한 칼날 아래 잘려나갔다.


그 순간,

내 안에서도 무언가가 함께 끊어져나가는 기분이었다.


나는 그저 서 있었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지뢰밭에도… 토마토는 열리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