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해전술의 허구성에 대한 이야기는 최근엔 많이 알려지곤 했지만 실질적으로 당시 중공군 병사들이 미군이나 UN군보다 질적으로 우새했다는 분석은 흥미롭내
2머전 이후 미군은 뛰어난 산업력과 핵무기로 적을 누르면 된다는 생각에 매몰되었고 그 여파로 병사들 개개인의 사격술을 향상시킬 수 있었던 2머전 시기의 뛰어난 프로그램들은 대부분 없어진 상태였다고 하며 총알이 방한복을 뚫지 못한다는 다수의 현장 보고들은 당시 미군이 얼마나 최악의 사수들이었는지를 증명하는 자료중 하나라고
또한 자원병으로만 구성된 중공군 보병들은 더 많은 장비를 운용했고 그걸 분대에 따라서 높은 화력을 유동적으로 사용 가능했다고 함
당시 중국군 소총병이 평균적으로 갖고있던 장비는 80발의 탄약, 5개의 수류탄, 1~2개의 TNT나 박격포탄, 그리고 경기관총이나 기관단총사수를 위한 여분탄창 몇개였다고
동계 피복에 있어서도 전쟁 끝날시기엔 미군은 뛰어난 동계피복을 만들었으나 그건 모든 병사들에게 지급되지 않았고 중공군은 참전 첫날부터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인 피복을 갖고있었음
중공군은 대규모 공새를 사용하긴 했으나 이는 과거부터 게릴라전 경험이 많던 야전지휘관들에 의해 신중하게 계획되고 단순히 전면에 꼴아박는게 아닌, 전선을 침투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고
한국전은 미군에게 높은 숙련도의 보병의 필요성을 전훈으로 남겼지만 이긴 전쟁이었기에 안타깝게도 미군은 그 전훈을 바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고 그것이 받아들여지는데에는 시간이 걸렸다고 함
하긴 베트남전 초기때까지도 미군 사격술훈련은 개판이었다고 하기도 하고 당장 한국전 이후에 나온 SPIW의 개념만 봐도 얘내 조준하고 쏠 생각 안했다는게 보이는지라...
SPIW 가 머임
1952년부터 미군이 하던 소화기 사업, 거기서 추구하던 차기소총의 형태를 요약하자면 2000RPM짜리 소총에 60발짜리 플리셰트 탄창을 달고 거기에 유탄발사기까지 기본으로단걸 제식소총으로 쓰자는 뿌리고 기도 매타의 극한
아 그리고 그 유탄발사기도 3연발임...
쏘는데 재밌긴 했겠네ㅋㅋㅋㅋ 뒤지게 무거울듯
궁금한게 있는데 맞춤법 일부러 틀리는거임?
당시 중공군이 국공내전 거친 애들이라 베테랑들이긴 했을거
아마 간편한 동계옷은 누비옷 예기하는 걸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