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슨 대위(오른쪽 사진)는 지휘권을 맡은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제5특전단 신임 사령관인 존 스피어스 대령과의 면담에 소집되었다. 스피어스 대령은 1964년 8월 초 통킹만 사건으로 인해 정보 수집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게 되었다고 리처드슨 대위에게 설명했다. 그는 리처드슨 대위에게 프로젝트 델타를 재활성화해 줄 것을 요청했다. 또한, 통킹만 유전을 습격하여 파괴하는 작전 등 다양한 임무를 제안하며 그를 설득하려 했다.
비록 그러한 임무는 실제로 수행되지는 않았지만, 이는 재활성화된 프로젝트 델타에 기대된 요구 역량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에 있던 리처드슨 대위는 프로젝트 델타 지휘관으로의 복귀 조건을 제시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웨스트모어랜드 장군의 지시로 프로젝트 델타의 임무는 리처드슨이 권고했던 대로 월남 현지 작전에 집중되었고, 미군 고문 인력들의 작전 동행이 승인되었다.
리처드슨 대위는 침투 방법을 수립하게 되었는데, 이는 적진에 야간에 낙하하는 무모한 방식을 포기한다는 의미였다. 작전은 월남 국경 지역에서의 감시 및 차단에 초점을 맞춰, 적이 라오스에 들어오거나 나갈 때 포착하는 데 집중될 것이었다. 또한 고문들이 장비와 기술을 개선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연구 및 개발 자산이 제공될 예정이었다.
리처드슨은 사이공에 직접 보고하고, 본인이 직접 선택한 인력으로 프로젝트를 운영할 수 있게 되었다. 미군 대원들은 현장에서 팀과 동행할 것이었다. 요컨대, 이 프로젝트는 새로운 긴급 상황에 걸맞게 모든 관심과 우선순위를 받게 되었다.
8월 중순, 리처드슨은 프로젝트 델타의 지휘를 다시 맡았다. 그리고 그의 오른팔이자 프로젝트 델타의 첫 주임원사였던 폴 페인을 불러들여 팀원을 선발했다. 프로젝트에 최우선 순위가 부여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월남, 미국, 오키나와에서 대원들을 선발할 수 있었다.
이렇게 엄선된 자원자들은 단 며칠 만에 모였다. 그는 요청했던 모든 인원을 확보했다. 그는 새로 구성된 참모진을 모아놓고 단호한 어조로 "이것이 바로 이 프로젝트의 방식이다"라고 연설했으며, 자신의 계획대로 움직이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는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선택권을 주었다. 하지만 아무도 떠나지 않았다.
아쉽게도 델타의 이러한 우선권은 해상 작전 및 요원 작전이 메인이었던 SOG가 추후 월경 지상 작전을 실시하며 밀려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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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어스 대령이 밴드오브더브라더의 그분?
그 사람은 로널드 스피어스(Speirs)고, 이 사람은 존 스피어스(Spears)
형제 관계거나 친척?
@ㅇㅇ(118.235) 성씨부터 다르잖아...
@-ESSEX- ??? 성이 같잖아
@ㅇㅇ(118.235) 게이는 제랑 재가 같은글자냐
@-ESSEX- 아 영어 철자가 다르네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