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무장경찰 신장 총대의 시점으로 촬영 된 보도 영상)
'상황은 매우 위험했다, 그들은 탈취한 95식 소총과 92식 권총을 소지하고 있었고 동굴 바깥으로 쏘아댔습니다. 탄환이 우리들의 머리 위로 마구 빗발쳤어요. 목숨을 걸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습니다.'
-당시 작전에 참가한 무장경찰 부대 지휘관-
시기는 2015년 9월 18일. 중국 신장구 아커수현 톈산 산맥 남부에 위치한 한 탄광에서 대규모 폭력 사태가 발생하였다.
흉기와 둔기로 무장한 폭도들이 탄광을 습격하여 작업 인부들을 포함, 현지 보안을 위해 배치 된 보안 요원과 공안 경찰관들을 폭행하고 사망자들까지 발생한 상황이였는데 신고를 받고 후속으로 출동한 경찰관을 상대로도 매복 공격을 가했는데 석탄을 적재한 트럭으로 경찰 차량들을 들이박아 제압한 뒤, 공안 경찰관들이 소지 중이던 무기들을 탈취했다.(위구르 전투원들이 무기들을 확보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경찰들을 공격했다는 주장도 있다.) 또한 습격자들은 탄광에서 보유중이던 폭발물도 탈취하였다.
사건 초기 중국 언론은 사망자가 16명이였다고 전했지만 일부 현지 소식통은 50명이 사망한 것으로 보도하였고 이 50명중 5명이 공안 경찰관이였다고 밝혔다.
중국 측은 해당 공격을 가한 세력이 아프간에서 전투 훈련을 받은 위구르 무장 단체 KBFZ의 공격이라 주장 했다. 하지만 ETIM(동튀르키스탄 이슬람 운동)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KBFZ에 대한 공개적 정보도 부재한 것을 보면 중국 측의 일방적인 주장으로 추정 된다.
그 ETIM이라고 주장하던 세력의 실체도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알 카에다 연계 조직인 튀르키스탄 이슬람당(TIP)이였던 것을 감안하면 이번 공격을 주도한 조직이 TIP와 연계 되었을 가능성은 높다.
신장 자치구 측은 공안 경찰관마저 사망한 이 상황을 결코 가만 둘수가 없었고, 상황 직후 도주한 이 공격자들에 대한 초강경 대응을 선언, 현지에 주둔한 무장경찰 신장 총대와 아커수시 공안국을 동원해 그들이 도주한 지역으로 추정 되는 톈산 산맥 남부를 포위했고(대략 1300 평방km 였다고 함.),지형에 익숙한 목동들에게 협조를 얻기 시작했다. 또한 인민 해방군은 신장 군구 항공대 제3항공여단에 속한 헬기들을 동원하며 무경과 공안들의 수색 작전을 지원하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수색 작전이 진행 되었다.
이 지형은 험준한 돌산이였고 동굴과 위험한 골짜기들이 분포해 있어서 차량으로 진입하기도 어려웠기에 도보와 기마대를 활용한 순찰이 주로 진행 되었고, 작전에 협조한 현지 민간인들인 목동들은 지형에 익숙할 뿐더러 시력도 매우 좋았기에 작전 부대원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당시 작전에 투입 된 무장경찰 아커수 지대 보병들)
1300 평방 킬로미터가 넘어가는 험준한 산악 지형에서 테러리스트들을 수색하는 것에는 큰 어려움이 있었고, 장기적인 수색 작전은 경찰관들이나 무경대원들을 매우 지치게했다.
심지어 밥을 지으러 잠시 하산한 공안 경찰관 두명은 다 된 밥과 물 등의 식량을 말에 싣고 다시 올라가다가 말이 벼랑에서 떨어지는 악재까지 겪었으며, 극심한 기온차와 쉴 새 없이 떨어지는 비와 눈, 우박은 작전 부대의 발목을 계속 붙잡았다.(작전에 참가한 공안 특경대원 디리샤티는 자신의 코 앞에서 말이 추락하는 상황을 보았다고 한다.)
대치 상황은 계속 이어지며 10월 중순에 이른 무렵 검거 작전에 투입 된 마이맛티쟝 아커수현 공안국 부국장은 직접 목동으로 위장해서 직접 산으로 들어가 단서를 수집했다. 공안 측 공개 정보에 따르면 수사관 출신으로 평소에 실적과 역량이 입증 된 걸로 알려진 마이맛티쟝은 모 미탐사 구역의 절벽 아래에서 2개의 동굴이 위치한걸 파악 했는데 그쪽에서 테러 분자들이 숨어들었을 가능성을 계산한 부국장은 경찰관과 목동 4명을 이끌고 직접 수색에 나섰지만 흩어져서 낙오 된 일부 인원들이 테러리스트들에게 붙잡히는 상황이 발생했고, 부국장은 혼자서 동굴로 들어가 인질을 자처하며 자신을 인질로 잡는 대신 목동들을 풀어 주는 조건으로 협상을 시도 하였으나 결국 살해 당했다(공안 측에서 밝히길 부국장이 살해 당한 해당 동굴에 상당한 혈흔이 남아 있었고 이를 근거로 고문을 당했다고 주장한다.)
(당시 사망한 마이맛티장 부국장의 생전 모습, 그는 위구르인 경찰관이였다.)
하지만 마이 부국장의 사망은 수색 작전의 전환점이 되었다. 공안과 무경들은 부국장이 선별한 지역을 중심으로 포위망을 좁혀 나갔고 공안 특경대원 40명을 2개조로 편성해 매일 부국장이 지목한 위치를 수색했다.
그 과정에서 일부 목동들이 언덕에서 사제 운동화 몇켤레를 발견하게 되었는데 무경과 공안은 해당 증거를 기반으로 바위 언덕 기슭의 협곡 지형에 은신한 테러리스트들의 위치를 특정, 진압 작전에 돌입했다.
(협곡 지대에서 식별한 테러리스트들과 교전 중인 공안 특경대와 무경)
11월 3일 첫 교전 당시 바위 협곡과 산 중턱간의 각도 문제로 교전 환경은 매우 열악했다. 울퉁불퉁한 돌출 부위가 많아 산 정상에서도 테러리스트들을 사선에 넣기 힘든 수준이였다.
무장 경찰들이 지상에서 협곡을 압박하는 동안 인근 공항에서 대기중이던 공안 특경대원들이 헬기를 이용한 공중 강습으로 무경과 합세해 소탕전을 실시 했으며, 테러리스트들은 공안에게서 탈취한 QBZ-95 소총과 QSZ-92 권총 등 개인 화기들을 이용해 격렬하게 저항했고, 중국 군경은 화염 방사기와 최루탄, 수류탄 등을 이용해 협곡에서 농성하는 위구르 전투원들을 전원 사살하는데 성공했다.
이 당시 사살 당한 위구르 전투원들은 대략 11명에서 13명으로 추정 되었다.(일단 공식 발표에서는 협곡 전투에서 사살 당한 위구르인들은 13명이라고 한다.)
협곡 내부에서 농성하다 사살 당한 위구르 전투원들.
협곡에서 농성하던 테러리스트들은 격멸 당했지만, 다른 곳에 은신하고 있었던 전투원들은 공범들과의 연계하에 깊은 산속으로 도피를 이어갔다.
무경과 공안은 열흘이 넘는 추격 끝에 테러리스트들의 오랜 발자국과 흔적을 확인 했고, 중국 군경은 막판으로 압박을 실시하며 테러 분자들이 도피한 위치를 조여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 날 공안 특경대원이였던 '디리샤티'와 4인의 수색팀은 테러리스트들의 은거지와 가까운 위치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테러리스트들의 매복 공격을 당했다. 위구르 전투원들의 기습 사격에 디리샤티가 피격 당해 쓰러졌고, 위구르 잔당들에게 공격 받기 시작한 SWAT들은 교전을 이어가며 위치를 보고하였고 구조를 요청했다.
(기습 사격에 피격 당해 쓰러지는 디리샤티.)
"영화에서 총에 맞아 쓰러지는 사람들을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때 충격을 받았어요. 스트레스와 자기 방어라는 전술적 행동 때문에 일단 땅바닥에 쓰러졌습니다. 동지들도 연달아 뒤로 물러나 반격했죠. 그 직후 제 앞의 하늘이 검은 장막처럼 닫혀졌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정말 충격이였죠. 옆에 있는 동지들은 사실상 제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10분쯤 동지들이 제 주변에 자리 잡아 반대편으로 반격 사격을 했고, 갈증을 느끼며 동지들에게 얘기했습니다. [나 못 나갈 수도 있겠으니 그냥 자게 해줘..], 그러더니 동지들은 무전기에 대고 구조 요청만 반복 했습니다."
-작전 참가 SWAT 대원 디리샤티.-
해당 전투에서 중상을 입었던 공안 SWAT '디리샤티', 그의 상처는 5년이 지난 지금도 남아있다.
디리샤티는 옆구리와 견갑골 쪽에 피격 당해 출혈이 심한 상태였고, 가슴까지 정통으로 관통 당한데 이어 갈비뼈 3개가 부러져서 그중 하나는 폐에 꽂히는 등 상태가 매우 위중했다. 하지만 주변의 동료들이 그를 끝까지 엄호했고, 때마침 도착한 산악공안 대원들과 무장경찰 대원들이 교전에 합세해 위구르 전투원들을 제압 해가며, 그들을 격멸 시켰고, 디리샤티는 헬기로 후송 되었다.
(헬기로 후송 되는 디리샤티.)
그리고 이번 전투에서 완전히 수세에 몰린 위구르 전투원들은 결국 무경과 공안들의 공격에 격멸 당했고, 50일 이상 이어진 대테러 작전은 종료 되었다.
마지막에 사살 당한 위구르 전투원들.
공안에게서 탈취한 화기들로 무장하고 있었다.
결국 투항한 전투원 한명을 제외한 나머지 위구르 전투원들은 28명 전원이 사살 당했고, 중국 측은 민간인 11명과 경찰관 5명이 사망(이중 3명은 인질을 자처한 마이맛티쟝 부국장을 포함해 수색 과정에서 낙사 등으로 희생 된 특수경찰 간부와 위구르인 경찰관이였으며 순교자에 가깝게 취급 받는다.) , 부상자는 민-군-경 포함 18명으로 집계 되었다.(하지만 사건 초기 50명 이상이 사망 했다는 보도도 있는걸 감안하면 이 부분은 추가적인 확인이 필요하다.)
해당 사건 이후 위구르 민간인과 경찰관까지 살해한 위구르 무장단체의 만행에 현지인들을 분노하였고 위구르의 무장 독립 여론은 사실상 와해 되었으며, 중국의 감시망을 피해 조직 된 전투원들과 세력까지 끝내 격멸 당해 미래가 불투명하게 되었다.
일부 내용 출처
https://mil.news.sina.com.cn/china/2021-11-03/doc-iktzscyy3324733.shtml
ㄷㄷ 이런일도 있었네
왜 테러리스트임 동튀르키스탄 독립운동가들인데 - dc App
얘넨 조선족이 서울에어 총기 난사해서 수천마리 뒤져도 저런거 못 하니 중국인은 독립운동가긴 해 곧 죽일예정
짱깨새끼들 다 뒤졌어야했는데
애미 애비 할애비 일제시대 몸팔다 지 나라 쳐들어온 중국군 국부군 군홧발에 밟혀 져뒤진 빵퀴 좆벌레 새끼 ㅋㅋㅋ 혐중 혐대만 댓글 싸던 자식새끼도 똑같이 잔인하게 쳐죽여보리기~ ㅋㅋ
현리전투에서 분대하나에 연대하나 파멸 ㅋㅋ 반면 항미원조 참전 프랑스군 2개 대대가 북한군 2개사단 막아보리기~ 항구적 자유작전으로 외인부대 1개급 공적만 세워도 느그 병신 유사군대는 쌈 싸먹어 병신아 ㅋㅋ 연평도 북한군 진지 요격 하나도 제대로 못 한 버러지 좆밥들이 주절주절 ㅋㅋ
이래서 게릴라전할 때 민간인을 건들면 안 되는거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