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왔다

마음의 고향 철원으로 돌아가야 할 계절이

우선 올라가는 와중에 5군단 개념맛집에서 매운갈비 한사바리

몇년이 지나도 바뀌지 않는 안정적인 맛

식후 식혜까지 완벽

각흘봉 초입.

길게 설명하긴 좀 뭐하고 알만한 사람은 알겠지만

각흘봉은 가끔가다가 모종의 이유로 입산통제가 걸릴 때가 있다

그래서

야영 가능여부까지 포함해서 문의하려고
포천시와 철원군에 둘다 문의함 (각흘봉이 딱 두 지자체 중간에 있음)
마침 이번 주말에는 아무런 통제가 없었다


등산중인 모습

다들 알다시피 이번주 토요일에는 강풍과 함께 눈이 내렸다

사실 그 소식을 듣고 여기를 오르기로 결정한 것이기도 하고

아무튼 눈보라가 치는 와중에 등산했다

영상에 눈발이 다 잡히지 않는데 1인칭 시점에서는 제법 많이 옴

겨우겨우 정상 능선에 도달

저 철책은 군대 출입금지구역 그런게 아니라 ASF 방지 철책

즉 멧돼지가 지역을 넘어 이동하지 말라고 쳐놓은 철책이다

인간님은 그냥 철책 중간에 있는 출입문을 열고 이동하면 됨



정상능선에 도착하자 눈발은 좀 줄어들었지만

상당한 강풍이 능선을 따라 불었고
강풍이 능선에 쌓인 눈을 끌고 공격해왔기 때문에 제법 버거웠다

어쨌든...해도 져버렸고

도저히 이런 상황에선 목표인 각흘봉까지 갈 수 없어

큰 바위가 주 바람방향을 막아주는 경사로를 찾아서

삽으로 평탄화하고 눈 위에 텐트를 쳤다

경사로에 치다보니 공간이 부족해서 텐트가 짱짱하게 쳐지질 않았는데

그래서 과연 이 강풍에 무너지지 않고 버틸 수 있을지 조금 의구심이 들었음

그냥 무너지지 않기를 빌면서 텐트 안으로 기어들어가

편의점에서 사간 카스테라를 먹었다

텐트 내부 온도는 영하 15도

잠깐 밖에 나가봤더니 아직도 눈이 내리는 중이고

구름때문에 별도 안 보여서

핫팩 터트리고 침낭속에 누워서 유튜브 보다가

일찍 잠들었다

그러던 새벽 2시

문득 잠이 깨어 잠깐 밖에 나가보니

눈도 그치고 구름도 사라져

그야말로 별이 쏟아져내리고 있었다

헤드램프 야광파츠가 찍히는 찐빠가 있었지만 너그럽게 넘어가주길 바란다 악!

아무튼 졸라 이뻐서 한 1시간동안 줄창 별사진만 찍고

온도가 영하 20도 이하라는 것만 확인하고

다시 따스한 침낭속으로 기어들어가 잠들었다

다음날 아침

다행히 해 뜨기 전 일어났다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곳에 텐트를 쳤는지 알만한 사람은 감이 올 것이다

그래도 나름 편안하게 잘 잤고

강풍과 눈을 모두 버텨내고 한번도 무너지지 않았다

요즘 중국 텐트도 제법 수준이 올라왔지만

결국 좋은 텐트는 미국/일본제다..이거임...

눈에 덮여 정말 아름다운 능선의 모습

...

잠시 몇년전 이곳에 왔던 기억이 났다

그 당시 이곳에서 인원들 등산 속도가 너무 느리다며

지휘부의 판단으로 삽으로 흙계단을 쌓았는데

바로 다음날 폭우로 인해 흙 미끄럼틀이 되었던 기억이...

인원들 작업을 위한 안전 로프가 부족하다며

나와 전사관을 철물점에 보내 안전인증따윈 받지 않은 노끈을 사와 인원들에게 묶어주던 기억이...

아무튼 해가 서서히 떠오른다

퍄~~

1월 1일 산행으로도 좋은 위치인 것 같다

저 멀리 보이는 나의 텐트

아무리 야밤에 급했다지만 정말 경우없이 쳐 놨다

솔직히 그 강풍을 이런 상태로 안 무너지고 버틴게 신기하다

아무튼 빠르게 정리

눈 위에서 잤다 보니 평소처럼 깔끔하게 오지도 않은 것처럼 뒷정리가 되진 않지만

어쨌든 쓰레기 하나까지 모두 주워왔다

해가 중천에 떴지만 온도는 여전히 영하 20도 언저리인 모습

역시 철원, 가차없다.

저 멀리 보이는 금학산 - 고대산의 모습

정말이지 고고하다

어제 내가 올라온 루트를 그대로 따라 하산.

나 말고는 뒤에 온 사람도 없었던 듯 하다.

발목까지 눈이 퍽퍽 차올랐지만

고어텍스 방수 등산화 + 아이젠 + 스패츠의 힘으로 강행돌파하였다

어제 등산 때는 아이젠을 먼저 차고 스패츠는 안 차고 등반하다가

발목이 시리자 그때가서야 스패츠를 찬 찐빠가 있었는데

하산에서는 방심 없이 텐트 걷자마자 풀무장하였다

중간 평평한 지점에서 아침을 먹었다

하산길 끝자락에 있는 아름다운 소나무숲.

산행에 방해되는 낙엽이 적고

무엇보다 멋있기 때문에 좋아한다.


역시 하산길 끝자락에 있던 개울.

영하 20도임에도 물이 미지근하다

어딘가에서 온천물이 솟아오르는게 분명하다, 신기하군

신기한 김에 진짜 온천에 들어가

열탕 -> 사우나 -> 냉탕 -> 야외욕을

3사이클 돌려 피로를 해소하였다

집으로 가는 와중에 독수리들도 보고

마지막으로 눈에 젖은 캠핑장비들을 빨랫대에 너는 것으로

이번 자발적 혹한기 모험은 끝~

이번에 얻은 경험으로는

1. 눈보라가 치는 환경에는 자립식 텐트를 가져가자
2. 눈이 내리는 환경에서는 스패츠 먼저 차자

정도가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