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저녁, 나는 정찰 클럽에 있었다. 나는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취해있었다. 그때 "우리는 소수다"라는 헨리 왕의 대사가 떠올랐다. 이는 헨리 왕이 사기가 꺾인 채 수적 열세에 놓인 병사들과 귀족들에게 했던 연설이다. 그들은 프랑스군을 피해 도망치고 있었는데, 이는 군에서 '퇴각'이라고 부르는, 즉 전투적 철수였다. 그와 그의 군대는 이름 모를 프랑스의 한 마을 근처에 멈춰 섰다. 프랑스 황태자가 주변 지역을 초토화하라는 명령을 내린 탓에 사람이나 말이나 모두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해 굶주림으로 지쳐 있었다. 게다가 그의 병사들은 이질에 시달렸으며, 당시 일부 아일랜드 보병들은 아랫도리를 모두 벗고 싸워야 할 정도였다. 그들에게는 그 자리에서 버티며 싸우거나, 불어나는 프랑스 대군에게 갈기갈기 찢길 운명뿐이었다. 전리품과 짐의 무게에 더해,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던 헨리 왕은 적들과 맞서기 위해 돌아섰으며, 성 크리스피누스 축일에 그는 다음과 같이 연설을 시작했다. "우리, 비록 수는 적으나 그렇기에 행복한 우리들, 우리는 모두 한 형제이니라..." 그게 바로 우리였다. 죽음과 끔찍한 춤을 추는 동료들, 바로 '형제(band of brothers)' 말이다.
클럽은 우리의 사적인 공간이었다. 우리가 제정신을 유지하는 곳이었으며, 외부인들은 계급에 상관없이 이곳에 올 수 없었다. 여기 있는 이들은 모두 정찰 중대 또는 해칫포스 대원들이었으며, 모두 우리들만의 작은 세상에서 대가를 치렀거나 치르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항공 자산을 조종하는 파일럿들처럼 손님을 데려오기도 했다. 그들은 우리와 다르긴 했지만, 동시에 우리와 닮은 점이 있었기 때문에 환영을 받았다. 다른 프로젝트 사람들도 가끔 들렀지만, 초대받지 않은 사람이 올 수는 없었다. 이곳에서 죽을 수도 있었고, 확실히 다칠 수도 있었다. 우리끼리도 그렇게 했다. 클럽의 규칙은 간단했지만, 우리는 자주 날이 서 있었고 누군가가 말실수라도 하면 바로 정면충돌이 발생하곤 했다.
이곳은 또한 우리가 애도하러 오는 곳이기도 했다. 이곳은 장례식, 저승으로의 송별식이 열리는 곳이었다. 내가 카론의 배를 타고 스틱스강을 건너는 동안, 내 가장 가까운 친인척들과도 같은 이 강철 같은 사내들이 이곳에 모여 술을 진탕 마시며 나를 기릴 것이었다.
육군에서는 그 유해를 고향으로 돌려보낼 것이고, 가능하다면 그 시신을 보기 좋게 단장해 줄 것이다. 이는 예의와 존경심의 차원에서 행해지는 것이었다. 의장대와 나팔수까지 올 것이며, 의장대는 관을 덮었던 성조기를 잘 접어 가장 가까운 친척에게 전달할 것이다. 그리고 예총을 쏜 다음 매장 절차를 진행하면, 한때 나였던 싸늘한 시신 위로 흙이 채워지고 묘비가 세워질 것이다.
하지만 이곳 정찰 클럽에서 나는 기억될 것이다. 밤새도록 내가 행했던 저질스러운 장난, 대담했던 용기, 지독한 실수, 아주 사소한 친절까지 모두 대원들에 의해 기억될 것이었다. 이는 우애에서 비롯되는 것이었다. 그들은 나를 욕할 것이고, 날카로운 위트로 내 무용담을 늘어놓을 것이며, 부끄러움 없이 나를 위해 공개적으로 울 것이다. 나 역시 그들 중 하나였으니까 말이다. 특별했지만 이제 떠나버린 존재니까 말이다.
클럽은 영내에서 가장 화려한 곳은 아니었다. 반대편 끝에 장교들의 클럽이 있었고, 참모들을 위한 고참 부사관 클럽도 따로 있었다. 그리고 해칫포스 중대들은 자기들끼리 술을 마시는 전용 숙소가 있었다. 하지만 장교든 사병이든, 팀에 속해 있다면 이곳에서 형제 같은 괴짜들과 함께 술을 마시고, 카드 게임을 하거나, 함께 당구를 칠 수 있었다. 술은 넘쳐났으며, 햄버거와 감자튀김, 칠리 등도 먹을 수 있었다.
클럽 매니저는 보통 부상을 입고 요양 중이거나 더 이상 임무를 수행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한 부상을 입은 정찰대원 출신이 맡았다. 클럽을 거쳐 가는 돈이 워낙 많았기 때문에 반드시 우리 중 한 명이 클럽을 맡아야 했다. 우리 중에 동료들의 돈을 떼먹겠다는 생각을 하는 녀석은 아무도 없었다. 우리는 최고의 술을 비롯하여 최고의 물품들을 갖추고 있었고, 심지어 비상금도 있었기에 휴가를 가게 되었는데 돈이 없을 경우 재정 지원도 받을 수 있었다.
RT 하부와 RT 크루세이더, RT 인디고, RT 파이튼, RT 맘바처럼 일부 팀들은 항상 같이 움직였다. 그리고 1-0와 1-1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맥과 나도 마찬가지였다. 만약 누군가가 실수로라도 맥을 건드린다면 나는 망설임도, 고민도 없이 그 누군가를 죽일 것이었다. 그는 내 쌍둥이이자 내 존재의 반쪽이었다.
우리는 우리 및 적군의 전술에 대한 정보를 주고받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추적병들과 마주쳤을 때 그들이 월맹군이었는지, 몽타냐드였는지, 몇 명이었는지, 우리가 '낚싯바늘' 기동을 했을 때 어떻게 반응했는지, 그들이 낚싯바늘 기동을 눈치챘는지 등의 새로운 정보들을 비롯하여, 목표 지역 내 상황에 대한 모든 것들이 클럽에서 논의됐다. 일종의 '싱크 탱크' 같은 곳이었지만, 인원 중 절반이 무언가에 취해 있었고, 모두가 무장하고 있다는 특징이 있었다. 권총, 소드 오프 산탄총, 나이프, 미니 수류탄 등, 온갖 무기가 이곳에 다 있었다. 클럽은 보통 떠들썩했으며, 얼마나 많은 팀이 현장에 나가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긴 했지만 보통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오늘 밤 우리는 추모식을 열고 있었다. 두 팀이 사실상 전멸했다. 한 팀에서는 미군 대원 한 명과 몽타냐드 몇 명만이 살아남았고, 그들을 구출하기 위해 투입됐던 브라이트 라이트 팀의 대원 몇 명도 전사했다. 두 번째 팀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들은 LZ에 내린 직후 '팀 OK' 보고를 보낸 뒤로, 4일 동안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비상 무전도, 조난 신호도, 아무것도 오지 않았다. 그들은 사라졌고, 죽은 것이었다.
우리는 월맹군이 우리를 생포했을 경우 '즉각 심문' 후 즉시 처형하라는 명령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우리를 끔찍한 방식으로 죽이는 것을 선호했다. 우리는 놈들에게 피해를 주고 병력을 묶어두는, 걸어 다니는 유령이자 부기맨이었으니까 말이다.
전사한 대원들은 친구들이었다. 그리고 실종된 팀은 두 번째 파병을 수행 중인 베테랑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들은 운이 다했거나, 뭔가 새롭고 독특한 위협을 맞닥뜨렸을 것이었다. 그들은 결코 부주의하거나 서투른 대원들이 아니었다. 설상가상으로 이 사건은 우리 모두가 작전을 수행하는 아샤우 북쪽에서 발생했다. 그래서 우리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조각을 맞추려 애쓰고 있었다. 하지만 정보가 턱없이 부족했다. 그들은 그냥 증발해 버렸다.
1-0였던 월트는 나이 많고 경험 많은 베테랑이었다. 내가 '나이가 많다'라고 말한 건 그가 40대 초반이었기 때문이다. 임무는 젊은이들의 게임이었으며, 나이 많은 사람들이 임무를 수행하는 경우는 보기 드물었다. 물론 빌리 워 원사 같은 몇몇 예외가 있긴 했다. 나는 월트를 좋아했다. 그는 조용하고 신중한 사람이었고, 우리 둘 다 목공을 좋아했다. 나는 입대하기 전에 가구 제작 교육을 받았고, 그는 노스캐롤라이나에 목공 작업장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나무를 다루는 일, 작업장의 냄새, 나무를 사포질하고 모양을 다듬을 때의 느낌, 나무가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기분,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 얼마나 깨끗하고 정직한 일인지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혼을 구원하는 목수였고, 우리는 영혼을 저세상으로 보냈으니, 참 기묘한 비유였다.
우리 중 몇몇은 둘러앉아 그들의 실종에 대해 들었던 정보를 공유하며, 당시 브라이트 라이트 팀이었던 RT 맘바의 1-0인 로저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로저는 팀이 투입됐을 때 TOC에서 코비와 팀의 교신을 듣고 있었다. 팀은 LZ에서 약 1km 정도 이동한 뒤 RON를 설정했다. 다음 날 아침에 코비가 다시 돌아와 목표 지역 상공을 비행했지만, 팀으로부터 어떤 무전도 받지 못했다.
코비는 AO를 가로질러 비행하며 엔진 RPM을 높여 자신이 상공에 도착했음을 팀에게 알,리려고 했다. 만약 주 무전기가 고장 났더라도 대원들 모두 비상 무전기를 휴대하고 있었기 때문에 누군가는 교신을 시도했어야 했다. 만약 RON에서 기습당해 전멸했다 하더라도, 월맹군이 브라이트 라이트 팀을 유인하기 위해 몽타냐드 대원인 척하며 무전을 시도했을 것이었다. 이렇게 한 팀 전체가 사라진 것은 기이한 일이었다. 이 사건은 푸바이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것에 대한 내 불안감을 더욱 증폭시켰다. 그곳은 징크스가 있는 것 같았다. 더 위험한 목표가 있더라도 차라리 꽝찌로 가는 것이 훨씬 나았다.
다른 팀과 그들의 브라이트 라이트 팀 역시 푸바이에서 발진됐다. 그들은 아샤우 남쪽 끝에서 임무를 수행했고, 옛 화력 기지에 방어 진지를 구축하여 트레일과 강이 만나는 지점의 트럭과 강상 수송을 감시할 계획이었다. 그들은 중무장하고 투입되었고, 낡은 모래주머니 방호벽을 보강하고 이를 연결하여 언덕 위 요새를 만들었다.
옛 화력 기지들은 방어 진지로 쓰기에 완벽했다. 이 기지들은 몇 년 전 사단급 부대들이 이동하며 남겨진 곳들이었고, 사방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경사가 가파른 산 정상에 위치해 있었다. 보통 155mm 또는 105mm 견인포 포대를 중심으로 구축되었다. 참호와 벙커는 낡아 허물어지고 있었지만, 낮 시간만 충분하다면 미친 듯이 매달려서 10~12명 정도가 방어할 수 있는 요새로 만들 수 있었다. 더 중요한 점은 박격포와 중기관총을 가지고 투입될 수 있다는 점이었는데, 이는 전투가 벌어졌을 때 강력한 화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헬기들은 팀을 무사히 투입시켰다. 그들은 산 정상을 확보했고, 추가 헬기들이 모래주머니, 박격포와 탄약, .50구경 기관총과 다량의 탄약, 60mm 박격포 몇 문 등을 실어 날랐다. 그들은 이후 두 시간 동안 경계선을 구축하고, 박격포를 설치하고, 탄약을 안전한 곳에 배치하는 데 몰두했다. 그들이 작업하는 동안 날씨가 나빠지기 시작했고, 짙은 안개와 비가 계곡 바닥을 뒤덮었다.
이런 유형의 임무에서 중요한 점은 월맹군도 우리가 언덕 위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이었다. 몰래 잠입하여 엿보는 은밀함 따위는 없었다. 하지만 그 산 정상에 머무는 한, 관측 구역 내에서 움직이는 모든 것들을 저지할 수 있었다. 공중 지원을 호출하여 놈들을 박살 내는 것이 우리의 희망이었다. 만약 그게 안 되더라도, 적들은 우리를 산에서 몰아내려면 병력을 집결시켜야 했는데, 그때 적들을 떼거지로 죽이면 됐다. 그러고 나서 박격포를 비롯하여 값나가는 물건 중 헬기에 급히 실을 수 없는 것들을 파괴한 뒤 철수하는 것이 기본 계획이었다. 그리 정교하진 않았지만 효과적인 전술이었다. 싸이코 버틀러 대위와 레스 채프먼이 같은 전술로 호치민의 자식들 약 500명을 갈아버린 이후로 꽤 재미를 보고 있는 방식이었다. 그 다이나믹 듀오들에게는 경의를 표해야 했다. 적어도 혁신적이긴 하니까 말이다.
팀은 버틀러의 전술을 사용했다. 어둠이 드리워진 직후 적들의 수색이 시작됐고, 팀이 점거하고 있지 않았던 몇몇 벙커(과거 포병 부대가 구축했던 옛 경계선의 일부였다)로 월맹군 한 분대가 이동하는 것이 포착됐다. 팀은 문빔을 호출하여 스펙터를 요청했지만, 스펙터가 도착하기도 전에 날씨가 심하게 악화되었고, 팀은 큰 곤경에 처하게 되었다. 최소 대대 규모의 병력들이 압박을 가했고, 적들은 산 정상으로 박격포를 퍼붓기 시작했다. 모든 포탄들이 정확히 명중했기 때문에 적들이 산 정상을 사전에 표적으로 등록해 둔 것이 분명했다. 첫 번째 또는 두 번째 포격으로 292 안테나가 날아갔고, 팀은 일반 안테나로만 코비와 교신해야 했는데, 그마저도 기상 상태 때문에 엉망이었다. 0200시경 팀은 81mm 박격포로 조명탄을 쏘기 시작했고, 아래쪽의 안개가 걷히기 시작했다. 중대 규모의 병력이 이동하는 것이 보이자, 팀은 스펙터의 공습을 유도했지만, 또 한 번의 박격포 포격이 쏟아지며 박격포가 박살 나고 팀의 절반 정도가 쓰러지게 되었다. 그 시점에서 방어선을 유지하는 건 불가능했기에 팀은 대형을 좁히고 고지대로 물러났다.
아침이 되었을 때는 생존자 모두가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미군 대원 세 명 중 두 명이 사망했고, 팀이 전멸하지 않은 유일한 이유는 스펙터가 산 정상 주변 반경 2km를 초토화시켜 그곳을 유일한 안전지대로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날이 밝고 기상이 호전되자, 브라이트 라이트 팀과 함께 패스트 무버들이 투입됐다. 산 정상은 마치 거대한 고양이가 할퀴어 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월맹군의 시신이 팀원들과 뒤섞여 있었다.
브라이트 라이트 팀은 생존자들을 구출하고, 전사자들의 시신을 수습했다. 그들은 테르밋 수류탄으로 .50구경 기관총을 파괴했지만, 애초에 총열은 타버렸고 파편이 리시버를 관통하여 못 쓰게 된 상태였다. 그때 브라이트 라이트 팀은 중국제 무반동총과 중박격포로 추정되는 공격을 받기 시작했고, 곧 그들은 철수했다. 너무 많은 병력들이 투입되었고 날씨마저 따라주지 않은 임무였다. 적들도 이제 우리의 수법을 알아챈 것이었고, 이제 우리가 진입하는 것이 보이면 즉시 우리를 공격하러 달려들었다.
우리는 병원에 가서 살아남은 미군 대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온 터비(Tubby)로부터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전해 들었다. 그 대원은 이제 미국으로 돌아갈 것이었다. 오른손이 손목에서 절단되었고, 수많은 파편상과 두 발의 AK 소총탄을 맞아 총상을 입었다. 살아있는 게 기적이었다.
듣자 하니 살아남은 몽타냐드들은 그가 있던 곳으로 후퇴해 그곳에서 최후의 보루를 구축했다고 한다. 그들은 최대한 몸을 웅크렸고, 그는 패스트 무버들에게 자기들 머리 바로 위로 폭,탄을 쏟아부으라고 말했다. 이 결정이 적들의 마지막 공세를 꺾어놓았다.
웨슬리가 들어왔다. 코비 비행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왼손에 미니 수류탄을 들고 있었다. "어이, 영웅 나으리들!" 그가 소리쳤다. 그는 수류탄을 들어 올리더니, 안전 손잡이를 날려버리고는 바닥으로 수류탄을 굴렸다. 즉각적인 공포와 충격이 클럽을 휩쓸었다. 8명이 담배 한 갑 뒤에 숨으려고 했고, 머피는 화장실로 달려갔다. 다른 한 명은 우리를 위로하러 온 군종 목사를 붙잡고 방패로 삼으려 했다. 그렇게 5초가 흘렀다. 폭발은 없었다. 우리는 하나둘 일어나기 시작했다. 누군가 수류탄을 찾았는데, 안전핀과 손잡이가 그대로 달려 있었다. 그 사악한 놈은 또 다른 손잡이를 손바닥에 숨기고 있다가 슬쩍 튕겨냈던 것이었다. 그래서 수류탄이 바닥에 닿았을 때 손잡이가 튕겨 나가는 소리가 났던 것이다. 모두가 웨슬리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는 당당하게 맞받아치며 소리쳤다. "영원히 살고 싶냐? 중대 구역 전체에서 너희들이 질질 짜는 소리가 다 들린다! 술이나 마시면서 그 친구들을 제대로 보내주자고!"
그러자 클럽은 훨씬 더 시끌벅적한 상태로 돌아갔다. 그의 말이 맞았다. 우리가 죽었다면 그들도 우리를 위해 똑같이 했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순간을 사는 존재들이었지만, 그들은 우리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있을 테니 죽은 게 아니었다. 한편 군종 목사는 자신이 방패로 쓰였다는 사실에 경악하며 격분하고 있었다. 그가 계속 짜증스럽게 굴자, 누군가가 그의 코에 권총을 들이대고는 문밖으로 쫓아내며 말했다. "구원받고 싶어 하는 영혼들을 위해 기도나 하러 냉큼 꺼지시지." 내 생각에는 지미 리브스인 것 같았다. 그는 사람 얼굴에 총을 들이댈 때마다 항상 시적 표현을 쓰곤 했다. 그는 또한 술버릇이 고약하며 성질이 불같은 레드넥으로도 유명했다. 그렇게 군종 목사는 자신의 의무를 다했다는 듯 밤 속으로 도망치듯 사라졌다.
지미 존슨은 M-67 수류탄을 당구공으로 삼아 당구를 치고 있었다. 그는 어떤 신참에게 자기가 미시시피에서 제일가는 당구 선수로 알려져 있으니, 자신이 수류탄을 쓰는 핸디캡을 가지는 것이 공평할 거라고 떠들어대고 있었다. 하지만 수류탄 손잡이가 걸리적거리는 바람에 그는 아무것도 맞히지 못했다. 그때 누군가가 손잡이를 잘라내라고 제안했다. 어디에나 이런 기술적인 참견쟁이는 꼭 있기 마련이다. 신참은 이곳을 벗어나고 싶어 하는 표정이었다. 이곳에 오면 분위기에 동화되거나, 본인이 이 미친 행동들을 얼마나 견딜 수 있을지 금방 알게 되거나 둘 중 하나였다. 클럽 매니저가 오더니, 당구대 위에서 수류탄을 집어 들며 클럽 안에서 수류탄 장난은 이제 그만하라고 소리쳤다. "빵빵 터지는 장난감 가지고 놀고 싶으면 밖으로 나가."
캠프 북쪽에 있는 포로수용소에 M-79로 CS탄 몇 발을 쏘자는 논의가 오갔다. 그곳에는 월맹군과 베트콩 포로 약 1,500명이 있었는데, 우리는 수용소 생활이 너무 편해지지 않도록 가끔 가스탄 몇 발을 선물해 주곤 했다. 더 중요한 건 거기에는 사자-하이에나 관계와도 같은 우리의 앙숙인 헌병들이 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놈들이 하이에나였다.
우리는 포로 몇 명을 용병으로 포섭하기도 했다. RT 하부에도 한 명 있었는데, 그는 월맹군 공병 중대장 출신이었다. 그 역시 브루족이었는데, 이는 부족에 대한 충성심이 정치적 세뇌보다 더 깊다는 증거였다.
포로수용소 아이디어는 기각되었고, 대신 우리는 임질 협곡에 들러 그 도둑놈들과 약쟁이들 소굴에다 몇 발 던져줄까 고민했다. 그저 놈들을 괴롭게 만들어주기 위해서였다. 그 무렵 나는 신경이 날카로워졌고, 한 시간 전에 먹은 그린 호넷도 효과가 없었다. 나는 몰래 빠져나와 몽타냐드들의 막사로 가기로 했다.
나는 정찰 중대 구역을 가로질러 비틀거리며 걸어갔다. 바깥은 아름다웠다. 그리고 나는 몽타냐드 막사를 지나 해변을 마주하고 있는 벙커 라인으로 걸어갔다. 위에 감시탑이 위에 달린 벙커 중 한 곳에 경비 중대 소속 브루족이 두 명 있었다. 그들은 나를 보았고, 나는 탑에 몸을 기댄 채 바닥에 주저앉았다.
달빛이 다낭 만의 물결에 반사되었고, 나는 파도가 마치 은빛 담요처럼 물결치는 모습을 지켜보며 평온을 느꼈다. 그리고 나무를 다루고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던 기억을 떠올리며 꿈결 같은 상태에 빠져들었다. 그때 여러 사람들의 발소리가 들리더니 브루족 말로 대화가 오갔고, 부드러운 손길들이 나를 일으켜 세우고 옮기기 시작했다. 네 명의 몽타냐드들이었다. 벙커에 있던 브루족이 팀 막사로 사람을 보내 쿠만을 불러냈고, 그들은 쭝시 닉이 밖에 나와 있는데 좀 돌봐줘야 할 것 같다고 전했다. 그렇게 쿠만이 나를 데려오라고 팀원들을 보낸 것이었다. 그들은 나를 자기네 막사로 데려가 해먹에 눕혀주었고, 나는 몽타냐드 막사에서 밤을 보내게 되었다. 그들 중 한 명이 맥을 찾아가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줄 것이었다. 이곳은 안전했다. 그들은 모두 미소를 지으며 번갈아 가며 내 팔을 툭툭 쳐주고는 다시 카드 게임을 하러 돌아갔다. 이곳은 나에게 고향처럼 느껴졌다. 그들은 무언가를 요리하고 있었다. 항상 뭔가를 요리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이 지는 사람은 헬멧을 써야 하는 포커 게임을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다. 고향 같은 따스함이 시간과 불안을 작은 구체 속에 가두어주었고, 덕분에 나는 편히 잘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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