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사진의 주인공인 충 뚜 응옥(Chung Tu Ngoc) 소위의 얘기



1975년 3월 초, 특수 정찰 및 교란 작전을 위해 우리 팀을 포함한 SMS 정찰팀 3팀이 꽝남성 다낭 인근 산악 지대에 투입되었다. 투입 직후, 약 20명의 대원으로 구성된 우리 분견대는 통신도 두절되고 탈출로도 없이 완전히 고립되었다. 우리는 스스로 생존하고 이동해야만 했다.


이후 우리는 길을 잃었던 해병대원 18명을 만나 합류했다. 마침내 도로에 다다르자, 공산군이 우리를 포위하고 항복을 요구했다. 하지만 아무도 항복하지 않았다. 항복은 곧 죽음을 의미했기에, 우리는 교전을 벌이며 숲 속으로 다시 들어갔다.


적의 수는 압도적이었다. 약 30분간 끊임없는 전투를 벌였으나, 더 이상 방어선을 유지하는 건 불가능했다. 결국 우리는 적의 맹렬한 추격을 받으며 숲 속으로 후퇴하기 시작했다. 우리 부대는 빗발치는 총탄 속에서 뿔뿔이 흩어졌고, 얼마나 많은 전우들이 전사했는지 알 수 없었다.


후퇴 도중, 무전기를 맡았던 부사관이 근처에서 발생한 박격포 폭발로 등에 심한 부상을 입고 진흙탕에 쓰러졌다.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다는 걸 깨달은 그는 수류탄을 터뜨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우리 팀장인 소위도 중상을 입었다. 내가 그를 옮기려 했지만, 그는 거부하며 수류탄 두 개를 요구했다. "먼저 가. 나는 여기 남아서 적들을 처리하겠다." 그는 남아서 추격해오는 적과 싸울 테니 나에게 계속 가라고 말했다. "걱정 마. 놈들이 오면 내가 처리하지." 나는 전우에게 작별 인사를 고하고, 우리를 엄호해 주던 해병 두 명을 따라 숲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잠시 후, 우리가 수백 미터 정도 달려갔을 때쯤 뒤에서 폭발음이 들렸다. 적들을 막기 위해 수류탄을 터뜨려 자신을 희생한 것이었다.


우리에겐 단 16명만 남았다. 대원 9명과 해병 7명이 전부였다. 그날 밤 우리는 해안으로 가려고 했다. 배를 타고 철수할 계획이었다. 어느 한 마을에서 주민들이 무덤을 파는 것을 돕던 중 우리는 다시 공격을 받았다. 그때 마을 사람들은 다낭이 이미 함락되었다고 말해주었다. 더 이상 도망칠 길이 없어 우리는 항복했고 포로로 잡혔다. 포로로 잡힌 우리들은 이미 생포되어 있던 전우들을 만났다.





개인 사정 및 재검수 분량이 매우 많은 탓에 위 퓨 시리즈는 잠시 휴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