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7월 27일 지프를 타고 본부를 나서고 있는데 갑자기 라디오에서 ‘긴급 임시 뉴스’가 흘러나왔다. 잠깐 차를 멈춰 세우고 볼륨을 올렸다.
‘긴급 임시 뉴스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오전 판문점에서 휴전협정이 조인됐습니다.’ ···(중략)··· ‘
뉴스를 듣자마자 불과 사흘 전에 개마고원 일대로 침투시킨 2개조 30여명의 대원들의 걱정에 눈 앞이 캄캄해졌다. 이번 작전은 큰맘 먹고 이전보다 많은 수의 대원들을 투입했었다. 윗분들과 미군 고문관들은 이 날이 이렇게 빨리 올 줄 예상하지 못했단 말인가? 우리는 왜 정세 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했을까?
이젠 침투조에게 더 이상 보급품을 투하해줄 수도 없었다. 그들을 철수 시킬 방법조차 없었다. 만약 침투일을 며칠만 늦게 잡았더라면.... 36시간만 늦게 투입했더라면.... 이제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았다. 7월의 태양이 작렬하는데도 뜨거움을 느끼지 못했다. 두 손을 지프차 문짝에 올려놓고 나의 무능을 탓했다.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그 길로 지프를 되돌려 무전실로 뛰어갔다. 무전실은 이미 완전히 초상집 분위기였다. 워키-토키식 무전기를 지급받은 침투 대원들은 적지에서 계속 전문을 보내오고 있었다.
‘본부, 본부 나와라. 우린 어떻게 하란 말이냐? 퇴출방법을 알려달라!'
처음에 보내온 무전은 최소한의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뒤로 오는 다른 전문들은 시작부터 욕지거리였다.
야. 이 개XX들아, 본부에선 미리 알았을 게 아니냐? 일이 이렇게 될 줄 모르고 우리를 이런 산간벽지에 투입했단 말인가? 왜 우리를 사지로 몰아넣은 것이냐? 이 개XX들아, 우릴 여기 버려두고 너희끼리 휴전한단 말이냐?’
그 뒤로도 버림받은 공작대원들이 보내오는 저주 어린 육성 무전이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하지만 우리들은 한마디도 대꾸할 수 없었다. 그날 저녁은 아무도 밥을 먹지 못했다. 술도 넘어가지 않았다.
우리는 미군 고문관들에게 찾아가서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그들은 아무 대답도 해주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우리의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 그리고 가버렸다.
이윽고 미군들은 모든 무전 시설을 폐쇄했고, 자신들도 짐을 싸서 철수해버렸다.
- 'KLO의 한국전 비사' 中,
ㅜㅜ
언제 봐도 참 슬픔
저거 앞부분만 오려낸것임. 후반부 보면 그 상황에서 어떻게 노력했고 그래서 어떻게 절반이나마 구했는지에 대한 부분이 나옴.
오.., - dc App
애당초 저 단락의 제목이 [51. 날벼락 같은 휴전협정 체결과 적지의 대원 구출작전] 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