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부터 시작된 스리랑카 내전에서 스리랑카 정부군은 타밀족 반군(LTTE)의 게릴라전에 20년이 넘도록 고전함. 스리랑카는 애초에 적국이 없어서 군대가 별로 필요 없던 나라였고, 그나마 있던 부대들도 그냥 국방부가 직할로 통제해도 될 정도로 규모가 작았음. 만약 필요하다면 임시로 야전 사령부를 구성하는 편제였음.  게다가 1960년대에 쿠데타 시도가 있었는데, 이 때 정부가 군부 힘 빼놓는다고 아예 육해공군을 해산 시켜버리기도 했음.


이렇다보니 스리랑카군에는 전문적인 군인이 거의 없었고, 그냥 무식하게 정규연대를 정글에 축차투입 시켜 소모하는 형태로 싸워 옴. LTTE는 정부군이 오기 전에 목표를 타격하고 재빠르게 빠져 나가서 매번 피해만 입고 작계는 실패하는 일이 반복됨. 스리랑카 정부는 이걸 유지하려고 징병제로 2천만명 살짝 넘는 인구에서 40만명 가까운 병력을 유지함


특수전에 대한 개념은 거의 없었음. 그나마 최상위 제대인 기갑군단 소속으로 정찰수색 임무를 하는 부대가 하나 있었고, (주: 남아공의 도움을 받아서 육성했다고 함) 이 부대가 어느정도 성과를 내긴 했으나 내전의 방향을 바꿀 정도는 아니었고 상부에서도 그냥 와일드카드 정도로만 여기고 제대로 써먹지 않았음



무엇보다, 대신 진압해준다고 왔던 인도군한테 전작권을 넘기면서 '인도가 다 알아서 해줄 거야'라는 마인드로 안일하게 믿고 따르기만 함.  그러다가 1990년대 초에 인도군이 철수하게 되자 비로소 단독으로 싸우게 됐는데, 지난 10년간 배운거라곤 개뿔도 없는 상태라 그냥 인도군처럼 또 한번 무식하게 병력을 들이 붓는 식으로 싸우게 됨. 문제는 인도군은 적어도 화력이라도 널널했는데 스리랑카군은 믿을게 오로지 인력 밖에 없었음.


그리고 2001년에 북부 지역에서 사단급 작전을 벌이던 스리랑카군이 LTTE한테 정글에서 개쳐맞고 와해 당하는 사태가 발생함. LTTE는 기세등등하게 휴전을 요청했고 작전역량이 박살난 스리랑카 정부는 어쩔 수 없이 휴전협정을 맺게 됨.  위의 정찰수색대도 이 시기에  LTTE 수뇌부 타격을 준비했다가 동네 경찰들한테 체포 당해서 개망신을 당하고, 심지어 얼굴사진 다 찍혀서 공중파에 노출되는 수모를 겪게 됨. 스리랑카 군부는 자신들의 뻘짓을 무마하려고 이 인원들을 강제 전역 시켜버렸고, 이들은 나중에 LTTE한테 보복 당해서 상당수가 사망했음.



단순히 이것 뿐만 아니라  LTTE한테 해군 전력의 1/3을 격침 당하고 공군 기지가 털리는 등 온갖 굴욕은 다 맞봤음.


최종적으로 기존 스리랑카 군부는 패전 책임을 지고 싹 다 물갈이 당함. 이후  지휘권을 잡은 이들이 대부분 내전 초기 초급장교로 임관해서  개같이 굴렀던 이들이었음.  이들은 자국군의 병폐를 실감 해본 세대라서 하나같이 '이런 식으로 싸워선 절대 못 이긴다!'며 대대적인 개혁을 단행함. 



스리랑카 신군부가 전훈 연구를 위해 지난 전쟁의 패배요인을 찾아보다가, 마지막 공세 실패 후 LTTE의 영토였던 정글을 뚫고 생존해 돌아온 병사들을 인터뷰 해봤음. 이들은 하나같이 10명 이하의 규모로만 다녔고 밤에만 이동했으며, 적과 조우하면 절대 교전하지 않고 조용히 우회해서 정글을 통과했다고 증언함. 이에 스리랑카 군부는 숫적 우위에 근거한 포위전이 아니라, 소규모로 구성된 보병부대를 적 전선 후방으로 잠입 시켜 LTTE가 하던 것처럼 사보타주를 벌여보자는 쪽으로 가닥을 잡음. 이를 위해서 마침내  LRRP 개념의 부대를 대량으로 창설했고, 기존 기갑군단 소속 정찰부대 인원을 빼와서 기간병력으로 씀. 그리고 기존 보병연대 병력에서 나름대로 정글전에 노하우가 있던 인원들을 뽑아서 중대마다 수색소대를 구성함. 스리랑카군에서는 이를 SIOT(Special Independent Operations Team)라고 부름. 그리고 GWOT를 벌이고 있던 미국의 도움을 받아 CAS의 개념도 받아들임. 이들을 가르쳤던 SFG 고문단은 스리랑카 군인들이 계급을 막론하고 자신들의 실패담을 공유하며 원인을 분석하고 적극적으로 해결법을 연구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고 증언함. 군부 역시 현장 지휘관들의 재량권을 넓히고 자신들은 책상 머리에서 결재만 찍어주는 식으로 자신들의 개입으로 작전이 틀어질 가능성을 최소화함 



약 5년간 뼈를 깎는 고통 끝에 체급을 개선한 스리랑카 정부군은 2006년에 휴전을 파기하고 다시 공세에 나서서 그동안 양성해온 특수전 자산을 총동원하여  LTTE를 줘패기 시작함. 기존의 특수전 부대뿐만 아니라 SIOT도 활약함. 이들은 정규 연대의 작전시 선봉 4km~10km 내외에 투입되어  최대 일주일 이상  LTTE 게릴라들과 조우전을 펼침. LTTE로서는 기존에 자신들이 우위를 점했던 전술적 이점을 다 빼앗기게 됨.

  

비단 이거 뿐만 아니라 국제 정세가   LTTE한테 불리하게 돌아갔고 스리랑카 정부가 외교전을 펼쳐서 자금줄도 다 끊어버렸음.  2008년 말이 되자 LTTE의 영토는 눈에 띌 정도로 줄어들었고, 스리랑카 군부는 이스라엘의 기술지원을 받아 전화 도청으로 LTTE 수뇌부들의 위치를 파악해내서 DA 해버리는 수준에 도달함. 결정적으로 2009년, LTTE의 지도자였던 벨루필라이 프라바카란(Velupillai Prabhakaran)을 CAS로 폭사시켜 버리면서 내전의 종지부를 찍는데 크게 기여함.


스리랑카군은 시간이 지날수록 수색정찰부대의 중요성을 인정하며 그 규모를 점점 늘려갔고, 전쟁 후반부에 가서는 전방부대의 1개 보병중대 전체가 수색소대들로만 구성된 기형적 구성도 있었을 정도임.


다만 SFG 고문단이 봤을 땐 그 규모에 비해 통신장비의 보급이 따라가질 못했고, 모든 대원들이 야간투시장비를 간절하게 원했으나 거의 10개 팀에 1개 팀 꼴로만 1~2개 지급 받았다고 함. 특히 작전 반경은 좁은데 각 팀끼리 상호 연락할 수단이 없어서 작전 도중 자신들끼리 교전하는 일도 잦았음.



내전이 끝나고 스리랑카 정부는 군대 규모를 줄이지 못해서 10년을 넘게 개고생을 하다가 코로나 기점으로 축소에 들어갔음. 이때 양성됐던 전역자들도 중동-인도 일대 외국으로 퍼져나가 민간 보안업체 등지에서 일하거나 범죄자의 길로 빠지기도 함. 최근에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스리랑카 출신들이 양측에 간간히 발견된다고 함. 

 


https://www.benning.army.mil/infantry/magazine/issues/2013/May-June/Welch.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