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전략기술국 지원팀(이하 STDAT) 158은 월남 전략기술국(이하 STD)에 자문과 지원을 제공하기 위해 1972년 5월 1일에 창설되었다. STDAT의 역사는 STD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STD의 기원과 발전 과정을 이해하는 것은 두 조직의 운영 이념을 파악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1954년 제네바 협정 이후 월남 내 공산군의 활동이 증가함에 따라, 1958년 월남 대통령 직속의 비밀 특수 정보기관이 설립되었다. 이 기관의 임무는 DMZ 북쪽의 공산군의 활동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월맹과의 공개적인 무력 충돌 시 파괴해야 할 전략적 목표물을 파악하는 것이었다. 1963년, 이 비밀 정보기관은 월남 특수부대 사령부로 개편되었다.
현재 전략기술국의 전신은 특수부대 사령부 내에 '특수지부'라는 이름으로 조직되었다. 특수지부는 국내 지원 부서와 해외 지원 부서, 이렇게 두 개의 부서로 구성되었다. 해외 지원 부서는 비밀 첩보 및 차단 작전 훈련을 받을 인원들을 모집했다. 그러나 자금 문제로 인해 해외 프로그램은 결국 폐지되었다.
1964년이 되자 월남의 상황은 매우 심각해져 특수지부는 급증하는 특수 작전 수요를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 이에 따라 특수지부는 특수부대사령부에서 분리된 독립 부대로 재편되었다. 1964년 4월, 특수지부는 공식적으로 특수공작국(Special Exploitation Service/SES)이 되었고, 합동참모본부의 지휘를 받게 되었다. SES 창설과 동시에 미국의 카운터파트 조직인 MACV-SOG도 창설되었다. MACV-SOG는 SES의 특수 및 비정규전 작전 지원 임무를 인계받았다. SES는 사이공에 본부를 뒀고, 다낭에 해안경비대, 롱탄에 공수훈련소를 두었으며, 그 외 지역에는 월남 공군 부대를 배치하는 형태로 조직되었다. 이 월남 공군 부대에는 나트랑에 주둔한 MACV-SOG 제1비행분견대와 긴밀히 협력하는 여러 특수 항공 승무원이 포함되어 있었다.
1964년 후반, 월맹군은 호치민 트레일을 통한 월남으로의 병력 및 물자 침투를 강화했다. 이에 대응하여 SES는 1965년 초에 규모를 확장했다. 1964년 4월 합동참모본부 산하에서 라오스와 캄보디아 정찰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창설된, 이전에는 독자적으로 운영되던 '연락부대'는 1965년 1월에 SES 예하로 배속되었다. 이후 SES는 STS(Strategic Technical Service)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이로써 월남의 대분란전을 지원하는 모든 특수전 및 비정규전 작전을 합참 예하의 하나의 기관이 총괄하게 되었다.
1967년 9월까지 STS는 규모가 상당히 커지게 되었다. 이러한 위상에 맞춰 전략기술국(Strategic Technical Directorate, STD)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STD 국장은 합동참모본부장에게 직접 보고했다. 당시 주요 예하 부대로는 연락부대(Liaison Service), 해안경비부대(Coastal Security Service), 특수임무부대(Special Task Force), 공수훈련소(Airborne Training Center), 조정연락파견대(Coordination and Liaison Detachment) 등이 있었다. 또한, STD 심리전 부서 역시 비정규전과 특수전의 증가하는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크게 확장되었다.
1970년 중반, 미군 제5특전단이 비활성화됨에 따라 STD는 월남 특수부대 사령부를 흡수했으며, 월남 특수부대 사령부는 특수임무부대(Special Mission Service, SMS)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위 사진에 나타난 바와 같이, 이 조직도는 1973년 3월까지 본질적으로 변함없이 유지되었다.
STD는 크게 두 개의 야전 부대, 즉 연락부대(Liaison Service/LS)와 특수임무부대(Special Mission Service/SMS)로 편성되었다. LS는 크메르 공화국과 월남의 접경 지역 남쪽에서 작전을 수행하는 임무를 맡았고, SMS는 라오스와 접경 지역 북쪽에서 작전을 수행하는 임무를 맡았다. LS와 SMS 팀은 일반적인 정보 수집 외에도 도청, 포로 생포, 도로 및 트레일 지뢰 매설, 그리고 고가치 표적에 대한 공습 및 포병 유도 훈련을 받았다. LS의 역량은 1972년 5월 *SCU(Special Commando Unit)의 전과확대 중대 및 경비 중대가 해체되면서 다소 약화되었다.
*SOG의 해칫포스 및 경비 중대를 말함
SMS는 5개의 작전 부대를 승인받았지만, 실제로 편성된 부대는 4개였다. SMS 작전 부대의 편성은 그린베레 ODA와 유사했으며, 월맹과 라오스에서의 비정규전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창설되었다.
1972년 초까지 STD는 월경 작전만을 담당했으나, 1972년 4월 월맹군의 공세로 인해 STD의 작전 방향은 월남군을 지원하기 위한 국내 전술 정찰 작전으로 전환되었다. 또한 부분적으로 미군 공중 자산의 손실과 1972년 5월 5일 월남 공군 제219헬기대대의 비활성화 때문이기도 했다. 이러한 사건들로 인해 월경 정찰 임무에 STD가 독자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은 상당히 약화되었다. STD의 전략적 역할은 현저히 위축되었으나, 군단 사령부를 지원하기 위한 전술 정찰 작전(200회 이상의 정찰팀 임무)은 월맹군의 침공에 대응하는 월남군의 노력에 필수적인 정보를 생산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는 LS와 SMS 정찰팀이 월맹, 라오스, 크메르 공화국에서의 정보 수집 작전이라는 주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높은 수준의 준비 태세를 유지하게 했다.
LS=Biet Kich Loi Ho, 뇌호부대
SMS=Biet Kich Hac Long, 흑룡부대
MACV 공개 보고서인만큼 실수는 별로 없겠지만 월남측 실상과 좀 다를 수는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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