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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핍진성>에 대한 파자풀이



<핍진성>이란 말이 있다. 한자로는 <逼眞性>, 영어로는 <Verisimilitude>인데, 우리는 한자문화권 살고 있으니 한자말을 풀어보자. 핍박할 핍[逼]자에 참 진[眞]자인데, 이어붙이면 <진실을 핍박하는 속성>정도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렇게만 풀면 좀 고루하니, 한 가닥만 더 세세하게 파자풀이를 해보도록 하자. 핍[逼]자는 쉬엄쉬엄 갈 착[辶]에 가득할 복[畐]자가 결합된 말로써, 상상력을 발휘해 이 부분을 참 진[眞]자와 엮어본다면, <느릿한 움직임으로써 가득함을 취해 진실에 다가가는 속성>이라고 볼 수 있겠다. 물론, 참 진[眞]자를 얄궂게 풀어서 말을 아예 비꼬아버릴 수도 있지만, 나는 그런 악취미는 없으니 그냥 넘어가도록 하자.


그런데 도대체 <느릿한 움직임으로써 가득함을 취해 진실에 다가가는 속성>이란 게 뭐냐? 좀 더 정확히는 그런 <느릿한 움직임>으로써만 가득함을 취할 수 있는 이유와, 그것이 빠른 움직임보다 진실에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여기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핍진성에 대한 대략적인 정의는 <문학 작품에서, 텍스트에 대해 신뢰할 만하고 개연성이 있다고 독자에게 납득시키는 정도>로서 이해되고 있음을 알려줘야겠다. 이 정의에서 핵심은 개연성이 아니라 <신뢰할 만한>이라는 독자의 납득정도에 찍힌다. 그렇다면 이 <신뢰할 만한>이란 무엇인가? 이는 여기서 내가 말로써 푸는 것보다는 다른 소설가가 한 말을 직접 인용하는 편이 이해를 더욱 도울 것 같다(그게 효율도 좋고, 나도 덜 귀찮으니까). 어느 칼럼에서 이기호가 말했다.


예를 들어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던 아들은 자라서 폭력적인 아버지가 된다>라는 이야기가 있다고 치자. 이건 개연성의 측면에선 별로 문제될 게 없는 이야기이다. 그 나름대로의 인과관계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핍진성>까지 갖추려면 이것으론 부족하다. 원인과 결과 이외의 것들, 그러니까 아버지한테 맞을 때 아들이 보았던 하늘빛이라든가, 저도 모르게 씰룩이던 입술,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나날 중 꾸었던 꿈들과, 비가 내리면 저도 모르게 어딘가로 뛰어가던 시간들, 그렇게 스토리에서 빼도 상관없는 묘사들, 그런 잉여들까지 세밀하게 포함되어야만 비로소 핍진성을 갖추게 된다. 그리고 그런 핍진성들이 허구를 사실보다 더 사실답게 만들어 준다.


이제 왜 핍진성이란 게 <느릿한 움직임>을 보여줄 수밖에 없는지 이해가 되리라본다. 핍진성은 단순한 개연성에 대한 문제가 아니며, 그보단 그 개연성의 두께에 대한 것이다. 이는 세련된 수사에 대한 것일 수도 있고, 무의식적으로만 어렴풋이 느끼고 있던 독특한 시점에 대한 것일 수도 있으며, 동시에 특정 현상에 대한 인간심리를 포착하는 다채로운 동사 구사력에 대한 것일 수도 있다. 그 양태는 굉장히 포괄적이지만, 본질은 그로써 읽는 독자로 하여금 공감과 고뇌에 대한 <가득함>을 취하도록 만들고, 이 과정은 필연적으로 <느릿한 움직임>을 보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같은 상황을 묘사하는 여러 문장의 덧칠은 그 개수가 많다는 점에서 독해가 느려지고, 밀도있는 단문이라면 그 짧음에 대한 해석에서 독해가 느려지게 되니까.


그리고 이 핍진성에서 비로소 작가의 허구적 이야기가, 독자의 가슴 속에서 진실[眞]이 됨은 두말할 나위도 없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그냥 중복해서 길게 쓰거나, 혹은 미문으로 덕지덕지 두르면 죄다 핍진성이 생기는 건가? 굉장히 냉소적인 사람이라면 그렇다고 대답하겠지만, 적어도 내 머릿속에선 그렇지 않다. 그런 게 하고 싶으면 언론으로 가라. 신문을 보면 그게 걔네들 전공이더라.


여기서 우리는 <핍진성>의 파자풀이에 다시 집중해야만 한다. 도대체 핍[逼]자에서 쉬엄쉬엄[辶]한 움직임으로써 가득하게[畐]하게 휘어잡아야할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당연히 그건 그 다음에 오는 말인 참 진[眞]자인 것이고, 이말인즉 묘사를 두텁게 해서 허구를 진실로 만들라는 뜻이 아닌, <원래부터 진실인 것을 문장으로서 더욱 두텁게 하라>는 의미가 된다. 만일 후자의 의미를 담고자 했다면 핍[逼]자가 아니라 지을 작[作]자를 써서 <직진성> 따위의 말을 썼겠지. 아니다, <어불성설(語不成說)>이라는 좋은 사자성어가 있으니 그걸 썼을 법하다. 어쨌거나, 핍진성에 대한 그릇된 이해를 한 자들이 헛된 언어로써 의미 없는 세상을 직조하려는 세상이다. 본말전도가 곧 주제의식인 자들의 글똥이 인기검색어를 누빈다. 글쟁이들은 문장이 아니라, 그 문장으로 담아내고자 하는 자신의 <참됨>이 무엇인지 들여다보길 바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