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을 글로 나타내기?
저번 글에서 kia262가「진심을 글로 나타내기?」라는 물음을 제기했었다. 진심이라, 글 쓰는 사람으로서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다. 특별히 비뚤어진 사람이 아니고서는 글이란 건 최대한 진심을 지향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한다손 치더라도, 도대체 어떻게 그 진심을 담아낼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남는다. 사실 우리 일상의 수많은 비극들도 <내 마음은 그게 아닌데> 상대방이 자신의 말과 행동을 오해하는데서 기인하지 않던가? 우리들도 나비족처럼 머리카락을 연결해서 서로의 마음을 전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하늘의 사람들이 우릴 짓밟고, 그들이 원하는 것은 빼앗으려 하니, 함께 맞서 싸워야 합니다. 바람보다 빠르게 날아서 다른 부족에게도 알리세요. 토루크 막토가 부른다고! 나와 함께 싸웁시다, 형제들이여! 자매들이여!」
하지만 어쩌면 이런 논의는 전제를 해결하지 않은 선결문제의 오류인지도 모른다. 진심을 글로 나타내기 전에 우리들 스스로가 그 <진심>이 뭔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어야하지 않겠는가? 도대체 진심이란 게 뭔가? 범성애주의자인 프로이트는 인간행동의 모든 진실이 성충동으로 귀결된다고 부르짖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은 신의 은총을 받은 영혼의 고양됨이 진심이라고 설교했고, 니체는 끊임없는 자기극복을 지향하는 <힘에의 의지>가 인간의 본질이라고 했다. 베버의 분석이 정확하다면 프로테스탄트들은 <구원>을 향한 현세에서의 끊임없는 <노오력>이 인간의 본심을 구성한다고 본 듯하고, 음울한 순자(荀子)는 이기적인 악함이 인간의 근본이라 했다—하기야, 장평(長平)에서 40만이 생매장 당하는 걸 봤는데, 누가 성악설을 말하지 않을까? 아니면 본격 과학의 세기이니, 진화론이나 좀 운운해볼까?
이쯤에서 확실한 건, 인간의 진심이 무엇인지를 다룬 학설들이 넘쳐난다는 것 정도일 듯하다. 그럼 이 수많은 이론들의 범람 속에 우리는 그냥 상황에 걸맞은 얘기들을 취사선택하면 그만일까? 소위 말하는 <꼴리는 거 골라잡기> 일종의 처세술로서의 상대주의랄까?「나 지금 뭐래니, 나도 잘 몰라」아니면 지금 우리가 단순한 논의를 너무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이미 우리의 진심을 다 알고 있고, 또한 그거대로 행동하고 있음이 자명한데, 다만 그거에 대해서 언어를 붙이면 난해해지는 거다? 확실히 키르케고르가 이렇게 비웃기는 했다.「단순한 것이 아주 복잡해질 수 있다는 것은 단순한 것에 관련된 이상한 상황이다.」역사적으로 인간은 상황을 이상하게 몰고 가는데 유능했다. 그래, 확실히 무슨 원리인지는 알 수 없으나 어쨌거나 인간은 행동하고 있기는 하지. 하지만 그거에 대해 언어를 붙일 수 없다면, 도대체 어떻게 소설을 쓰단 말인가?
그냥 완벽한 <보여주기>로 소설을 정의해볼까? 소설가는 인간의 진심이 뭔지에 대해선 전혀 알 수 없으니, 그저 자신이 보고 들은 이약에 대해서 철저하게 <그런 일이 있었다……>식으로 3인칭 보여주기에 몰두해야하나? 하지만 kia262의 질문이 이런 식의 어물쩍한 답을 바란 것은 아닐 거다. 소설가가 보여주기로서 채택한 이야기 자체가 이미 전달하고자 하는 진심을 내포한다고 말할 수 있을 테니까. 취사선택만큼이나 의도를 확실히 하는 어법이 있던가? 따라서 철저한 <보여주기>에 기대는 것도 <진심이 무엇인가?>라는 골 때리는 질문을 피해갈 수 없다.
이쯤 적으면 짜증난 사람 하나가 <그냥 작가가 진심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글로 적으면 되는 것>이라며 꽥 하고 소리를 지를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작가가 진심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진짜 진심이라고 어떻게 검증할 수 있을까? 증명이나, 반성해볼 수 있나? 뭐라고? 그건 작가 스스로에게 너무 자명한 것이기에, 검증을 거칠 필요가 없다고? 그러면 동양철학의 근엄한 말처럼 <……그러므로 그러한 것이다>라고 엄숙히 말하는 것으로 모든 증명 끝? 거참 대단한 스스로 그러함이군. 모두 외쳐,「道法自然」증명 끝.
이 글에 짙게 배인 냉소주의적 색체에 지루함이 느껴질 법도 한 시점이다. 하지만 나는 굳이 진심에 대한 <노답>을 말하고자 이렇게 시간과 문자를 할애하는 사람은 아니다. 정답이 회의주의로 나왔다면, 이렇게 글을 쓸 게 아니라 술을 마시는 게 좀 더 건강한 삶이겠지. 물론 내가 술을 마시고 그 술버릇으로 이런 글을 적고 있음에 대한 논리적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순 없겠지만, 어쨌거나 내 머릿속에 결론은 생각보다 긍정적이다.
인간의 진심을 고찰하는 방식이 여러 가지고, 또한 그 진리값이 하나라 할지라도 인간은 그것을 증명할 수 없다는 점에서 다양한 해석만이 존재할 수 있다면…… 어쨌거나 결론은 <인간은 복합적 존재>가 나올 것 같은데, 이런 인간을 가장 잘 구현해낼 수 있는 게 바로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자폐적 자서전을 쓸 게 아니라면, 등장인물이 여러 명일 테고, 바로 이점에 집중해서 인간군상의 복합적 모습을 다뤄내면 될 테니까. 독단은 고루한 짓이니, 그런데 취미가 있다면 철학을 하라. 혹은 조금 세기가 늦은 수학도 괜찮겠고. 소설가는 조금 느슨한 자의식으로서 온갖 모순적이고 다양한 이론, 경험, 목소리들을 찰흙덩어리 뭉치는 것 마냥 뭉쳐보는 게 중요하다. 물론 그 덩어리들 중에 뭐가 진짜 <진심>이냐고 묻는다면 딱히 할 말이 없겠지만, 그럼에도 그 덩어리들 중에 하나는 <진심>일 것이라고 변명해볼 순 있을 테니까. 아아, 아니다. 우리는 선대 소설가들의 물려준 아주 훌륭한 자기변호를 가지고 있지도 않았던가? 당당하게 말하자.「작가는 작품으로 말한다.」물론, 여기서 살짝 도도하게 다리를 꼰 채로 말하는 게 포인트란 건 잊지 말고. 끝.
내 짧은 질문에 이렇게 긴 답변을 주다니... 고마워 결국 진심이 무엇인지는 작가 본인조차 증명할 수 없으니 속에 담긴 많은 것을 토해내 그 중에 진심이 있다고 얘기할 수 밖에 없네 이 갤에 온 지 얼마 안 됐는데 소설을 써보려고 해 처음 소설을 써보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 무엇부터 시작해야 해?
와 님 개념글 몇개 읽고 왔는데 후덜덜하네요 이쪽으로 일하는 분?
좋은 글 잘 읽었어. 근데 저번에도 누가 한 말이지만, 구원자 선생님은 '문학'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문학에 담긴 철학'을 이야기하는 거 같다는 느낌. 물론 나는 사실 글쓰기 방법론에 대해서는 정답이 없다고 보니까, 이런 논의가 더 반갑지만 말야.
글쎄? 너무 질문이 막막한데? <소설을 처음 쓰는데 뭐부터 시작해야 할까?> 이 질문에는 답들이 너무 다양해서... 사실 그 사람 수큼 답이 있다고 봐도 무방하거든. 개인적으로 이것저것 습작을 하다보면 자기만의 감이 생기지 않을까... 한다.
내가 문학보다 철학을 먼저 배워서 그런지도 모르지. 그런데, 넓게봐서 문학과 철학은... 쥐뿔 다르지 않아.
「작가는 작품으로 말한다.」 이걸로 쫑이지
그럼 먼저 내가 하고 싶은 걸 해야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