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읽는 소설가
역사란 무엇인가? 막연히 국어사전의 정의인 <인류 사회의 변천과 흥망의 과정, 또는 그 기록>이라는 말로서 정의되는 걸까? 뭔가 수사학적으로 아쉬움이 있다면 사학과의 역사학개론 강의에서나 만나볼 법한 E.H.카의 <역사는 현재와 과거와의 끊임없는 대화다>라는 경구로 그럴싸하게 포장해볼까? 종종 맞닥뜨리는 문제지만, 이 <역사>란 것도 여러 가지 정의가 존재한다. 케케묵은 랑케의 이름이나, 반쯤 고고학자에 가까웠던 아날학파들, 그리고 전세계적으로 사고하고자 하는 세계체제주의자들…… 아, 물론 여기서 유서 깊은 마르크스의 후예들인 유물사학을 빼놓을 수도 없겠고. 그래서 어떻게 할까? 또 이중에 마음에 드는 걸 골라잡자는 식의 냉소적인 결론? 워워, 진정하자. 나에게 냉소주의는 태도일 수는 있지만, 결코 결론이 적은 없으니까. 정확히 역사가 무엇인지 정의하는 건 사학자나 혹은 헤겔이나 푸코 같은 애들한테 던져주도록 하고, 소설 쓰는 우리는 자유롭게 개념들을 노닐어보자.
기본적으로 나는 역사란 <과거의 변천을 통해 역사를 움직이는 보편적 법칙을 이끌어낸다>라는 목표를 지향하는 학문이라는 고전적인 통념을 받아들인다. 여기서 세계에 필연적 법칙은 없고, 일정한 개연성만 어렴풋이 존재하는 것이라 꽥 하고 소리를 지른다 해도, 결국엔 그 개연성이 무엇인지에 집중하는 게 역사란 학문이 아니던가? 역사법칙의 오류를 공격하는 것 역시도, 올바른 무엇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숨겨진 어떤 법칙성을 지향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아니면 푸코식으로 권력이 역사란 도구적 방법을 통해 지금의 법칙이라 믿는 것들을 창안해냈다는 식의 견해도 마찬가지겠고.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니고서야, 역사는 늘 앞날에 대한 예측을 지향한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는 <인과관계>의 구축에 극도로 집중한다. 가령 <연산군은 왕이 됐고, 혁명이 벌어졌다>라는 문장보다는 <연산군은 왕이 되어 폭정을 일삼아, 혁명을 야기했다>는 문장이 좀 더 역사적이다. 왜냐하면 역사적 사료로서, 폭정을 일삼으면 그에 대한 저항이 일어나기 마련이라는 증명된 개연성이 개입됐으니까. 따라서 모든 역사적 인과관계는 단순한 연표의 나열이 아닌, 그 사건이 왜 벌어졌는가에 대한 끊임없는 인과사슬의 묶음이다. 또한 이런 이유에서 역사를 기록하는 역사가가 자신이 관철하고자 하는 의도를 위해 과거를 배열한 것이 곧 역사라는 견해가 유효하지는 것이고. 무엇을 역사의 법칙으로 만들어볼까?「모든 역사적 판단의 기초를 이루는 것은 실천적 요구이기 때문에 모든 역사에는 <현대의 역사>라는 성격이 부여된다. 서술되는 사건이 아무리 먼 시대의 것이라 할지라도 역사가 실제로 반영하는 것은 현재의 요구 및 현재의 상황이며, 사건은 다만 그 속에서 메아리칠 따름이다.」
이쯤에서 소설얘기로 돌아오자—어쨌거나 여기는 <웹소설 갤러리>니까. 작품을 만드는 이유가 다다이즘이 아닌 이상에야, 소설가들은 역사를 배워야만 한다. 세계의 진리에 봉사하기 위함이 아니라, 거기서 작법의 모든 요소들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곧 역사가다. 단순히 과거 자체가 곧 역사가 되는 것이 아닌, 역사가가 적는 기록이 역사로 남게 되는 것처럼, 소설가 역시도 사건을 나름대로 배열한다. 그게 직접적인 연결고리를 지향하든, 아니면 은은한 상징으로서의 연결을 지향하든, 어쨌거나 그 사건들은 소설가가 바라는 나름의 개연성으로서 묶이기 마련이다. 개연성 있는 서사를 쓰고 싶다고? 역사를 읽어라. 백날 서사론이니, 작법서 같은 것들을 읽어봐라. 공허한 개념 외에 거기서 얻을 건 하나 없다. 서사의 기본을 배우고자 한다면, 또 다른 의미의 서사인 역사를 읽어라.「이런 의미에서 이야기가 역사에 많이 기대어 있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역사가 이야기에 많이 기대어 있는 것일 겁니다.」
그리고 어떤 역사가 주장하는 서사배열 그 자체가 역사의 법칙성을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그게 곧 주제의식이다. 소설가 역시 마찬가지다. 각 인물이 말하는 대사나 주제의식을 내포한 행동들은, 아주 짧은 콩트가 아닌 이상에야 나름대로의 서사 속에서 구체화된다. 서사를 벗어난 문장에 주제의식이 담길 수 없으며, 그런 게 있다면 아주 못 쓴 삼류소설이다. 소설가는 이 점을 역사로부터 배울 수 있다. 역사론들의 수많은 투쟁들을 관망해봐라. 얼마나 다양한 주제의식을 가진 자들이, 자신의 말이 옳음을 증명하기 위해 하나의 과거를 몇 번이고 들이 엎으며 새로운 해석들을 시도하고 있는지. 소설가들도 하나의 세계 속에서 수십 만 가지 해석들을 끄집어내고 있지 않던가? 좀 더 매끄러운 소설적 <끄집어냄>을 위해 옆동네 역사를 기웃거리는 것만큼이나 매력적인 일은 없다. 끝.
작가는 곧 역사가다. 되게 유익한 글이네. 굳굳 닉값하는구먼!
오늘도 잘 읽고 갑니다 추처ㅕㄴ
ㅊㅊ
'반드시'는 아니지.
판타지나 시대극 쓰려면 작가의 배경지식도 어느정도 있는게 좋은거 같음 배경지식 채우기엔 역사만큼 좋은 게 없지 정성&추천임
잘 읽어줘서 감사함.
그렇지, 모든 일이든 <반드시> 통용되는 건 없다고 본다. 그냥 경우에 따라 적용될 때도 있고, 안 그럴 때도 있고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