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뻔한 이야기를 적는 이유 - 새겨진 불안
학교 다니면서 사람은 누구나 다 특별해지고 싶어 한다고 배운 것 같은데, 묘하게도 살아온 세상은 정반대로 모두 같아지려 한다. 왜 그럴까? 가만 생각해보면, 사람은 누구나 세상에 하나뿐인 고유한 존재라고 하더라. 여기 기대본다면,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탐한다고 하니, 얼핏 이해가 갈 법도 한 현상일까? 독특함은 이미 가지고 있으니, 이제 전형성을 가지고 싶다는 심리인 게지…… 라고 생각하는 건 세상을 너무 비관적으로 비꼬아 바라보는 걸 거다. 그냥 진실은 <특별해짐>의 공포 탓일 테지.
특별해진다는 게 뭘까? 기본적으로 그건 <정상>에서 벗어난다는 얘기다. 그럼 그 정상이 뭐냐고? 핵가족-유치원-공통국민교과과정-고등학교-대학-취직-결혼 순서로 이어지는 그런 서사들이, 현시대에 우리가 생각하는 <정상>이다. 아니면 우리가 자본주의에 살고 있으니, 2014년 도시근로자 월평균 소득(2인 기준) 387만원이나, 혹은 2015년 2인 가구 최저생계비가 105만원을 벌 수 있느냐 마느냐에 문제로 치환해볼 수도 있겠고. 어쨌거나 어떤 순서나 기준이 정산되는 게 곧 <정상>이다. 이 계산의 주체가 누구냐고? 글쎄, 그건 너무 추상적인 답변이 예상되는 질문이다. 두루뭉술하게 세상이나, 문화, 권력, 혹은 좁게는 큰 남근을 가진 아버지라고도 볼 수 있겠고…… 여기엔 갖다 붙이고 싶은 각자의 답을 가지면 될 문제다. 어쨌거나 그들의 공통점은 내가 바란 기준이 아닌, 외부로부터 주입되는 성격을 지닌다는 것일 테니까. 중요한 건 이러한 정상의 성격이다.
여기서 벗어나면 어떻게 될까? 암흑이다. 인생이 암울해진다는 의미에서는 암흑이 아니라, 그냥 아무도 그 인생을 읽으려들지 않는다는 점에서의 암흑이다—물질적으로 불우해지고 말고는 암흑의 두 번째 국면이다. 너희들에게 물어보자. 중학교중퇴생의 인생에 대해서 아는 바가 있는가? 수능을 거부한 고교생의 미래에 대해선? 기초수급자의 대학생활에 대해선? 미디어에 나온 뻔한 이미지들 말고, 그들의 삶에 대해서 아는 바가 있나? 이건 미약한 존재에 대한 애정 어린 눈길 따위를 운운하는 물음이 아니다. 그냥 문제 그대로 그런 삶들을 읽어보려 했는가에 대한 물음이다. 동정이나, 분노 같은 건 <인식> 이후의 문제니까. 순서대로 하자구.
글 쓰는 놈들 중에 하도 인생이 기구한 팔자들이 많으니, 위에서 질문한 바로 저 인생들을 살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그냥 일반적으로 잘 모른다. 왜냐고? 크게 두 가지 이유인데, 그 중 하나는 그냥 그런 사람들 자체가 눈앞에 잘 안 보인다. 공간은 구분의 가장 뚜렷한 현현이다. 우리 주위에 외국인노동자들 잘 안 보이잖아? 왜냐하면 그 사람들에겐 우리가 당연스럽게 여기는 커피집이나 맛집, 시민체육시절, PC방, 당구장 따위의 같은 것들 전혀 당연하지 않거든. 권력이나 법적인 문제를 떠난다면, 그냥 유유상종(類類相從) 같은 말을 떠올려도 되겠다. 그림 좋아하는 놈이 수학 좋아하는 놈의 관심사에 대해 알려고 하겠는가? 명절날 취업에 실패하고 결혼도 못한 40대 삼촌의 과거나 현재, 혹은 미래에 대해 얘기하는가? 가십성의 뒷담 말고, 그냥 그 사람의 인생이 궁금한가? 전혀. 가십은 가십이지, 서사가 되지 못한다. 가십의 근본은 서사에서 입맛에 맞는 사건 하나만 추려내 신문 앞면에 대문짝만하게 거는 오도와 과잉에서 비롯되니까. <정상>에서 벗어난 사람들의 인생?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암흑이다. 아예 읽히지 않는다. 다른 말로 번역하자면, 인식되지 않는다. 잡히는 게 없으니 막연한 이미지들만 떠다닐 뿐이지…… 이른바 카더라방송식의 유언비어들.「들었니? 문둥이는 아기를 잡아먹는데!」
그게 무슨 이유가 됐던 간에 사람은 비슷한 이들끼리 뭉친다. <정상>은 그들끼리 모이지, 그 밖의 요소에 대해선 그 본성상 배척한다. <정상>이 갈구하는 <특이함>이란 거? 오해하지마라. 그건 진짜 특이한 걸 선망하는 의식이 아니다. 말하자면 정상들 사이에서의 권력자라고 할까나? 정상들 위에 우뚝 서서 그들을 지배하는 정상-전제군주. 말장난 좀 치자면, 정상(正常) 중의 정상(頂上)이 그들이 말하는 <특이함>이다. 정상이 아닌 <특이함>들은 <괴상함>이나 <불우함>의 딱지가 붙은 채로 철저히 소외된다. 집단으로부터 괴리, 군집동물이 가진 본능적 본능이 이를 멀리하려고 한다. 이게 <정상>에서 벗어난 이야기들이 읽히지 않는 두 번째 이유다. 보이지도 않고, 구태여 찾으려 하지도 않는다. 그런 거 원하지 않는다—자발적인 금서화.
그런데 갑자기 이런 얘기를 왜 하냐고? 그냥 세상이랑 이야기랑 같은 것 같아서. 작가도 자기가 필요한 얘기만 하지 않는가? 그것에 맞는 인물과 사건들만 배열해서 이야기를 <통일적>이고 <유기적>으로 구성한다. 불필요한 부분들을 편집하고, 배제하는 것. 그것이 이야기의 본질이 아니던가? 아리스토텔레스도『시학』에서 지극히 불균형적인 인간의 삶과 비극의 차이가 바로 이 지점이라고 말했고. 또한 다른 철학자도 이미 비슷한 얘기를 하기도 했고. <이야기란 무대의 다른 부분은 어둡게 남겨놓은 채 어떤 부분만 밝게 한다는 의미에서 탐조등이나 각광脚光과 비슷하다. 무대 전체를 고르게 비추는 조명은 사실 쓸모가 없다. 결국 조명의 과제는 관객의 시각적·지적 소비에 적합하도록 무대를 <교정>하는 것, 인지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점점이 얼룩진 혼돈 상태로부터 몰입하고 파악하고 기억할 수 있는 그림을 창조하는 것이다.>
작가들은 뻔한 서사에 대한 거부감과, 혹독한 클리셰 비판, 그리고 기시감에 대한 강박증에 가까운 예민함을 가진다. 또한 그걸 추구해야하는 걸 기본적 미덕으로 여기는 존재다. 하지만 시중에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단행본-소설, 웹에 떠도는 수만 가지 전자책-소설들…… 이들 중에 과연 몇 명이나 이 미덕을 진정으로 지키는가? 단순한 노력과 재능부족이라고 말하기엔, 세상에 으깨지며 몸에 각인된 <특이함>의 공포가 너무 강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들에게 뻔함의 지루함은, 그와 비례한 안정감을 가져다주는 건지도 모르니까. 비뚤어진 심리치료로서의 서사공식이란…… 끝.
소설을 쓰지는 않고 작곡, 작사 쪽으로 방향 정했는데 대부분의 주제가 다 도움이 되는중.. 글읽을때마다 힐링된다 일시적이긴 하지만
뻔하지 않고, 정상에서 벗어난 범주의 이야기임에도 잘 팔리는 소설을 본 적이 많아서 이 글은 패스.
ㄴ빡대가리 새끼야.. 많다 적다라는 표현은 상대적이다. 네가 본 것들은 정상적인 이야기에 비하면 존나 적은게 사실이지. 그리고 그마저도 대부분은 정상중의 정상을 추구하는 글 일뿐, 특이함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또 이 글은 '특이함이 안 팔리는 이유'에 대해 쓴 게 아니라 '작가가 뻔한 이야기를 적는 이유'에 대해서 쓴거다.
ㄴ 니 애미 빡대가리 색기야. 원글쓴이는 분명 특이함은 독자가 안 읽어준다고 말했다. 십색기야. 안 읽어주고 관심 안 준다는 게 안 팔린다는 얘기지. 애미창녀색갸. '작가가 뻔한 이야기를 적는 이유'가 특이한 이야기를 쓰면 독자가 안 읽어주기 때문이라고 글쓴이는 적고 있다. 고로 뻔한 얘기를 써야 '읽어'주고 고로 '팔린다'는 얘기지. 십창 색기야. 너같은 병신 같이 웹소갤구원자 글이라면 마냥 헤벌레 다 좋아요~ 라는 색기가 무뇌아 색기야. 글을 읽고 판단해라 븅신색기야. 그리고 내가 읽은 소설의 9할은 안 뻔한 얘기였다 십색기야. 저번부터 계속 구원자글에 태클 걸면 지랄 떠는 색기 너 말야 ㅅㅂ넘아. 무뇌아 빠돌이 머저리 색기야.
14. 34 저 색기가 웹소갤의구원자와 동일인이라고 진지하게 추론해 본다.
어휴 빡대가리 새끼..글의 요점도 못잡는 독해 수준 보소. 밑 빠진 뇌에 글부어 모하겠노. 열등감은 뭐그리 많은지 댓글마다 느껴지네. 자존감좀 키워라.
121 개소리 하는 거 맞는데. 요점 파악을 존나게 못했넹.
난독잼
그러면 일부러 소설에 짤막하게 한두페이지정도 소설 전개와 상관없는 별개의 글을 써넣는다던지 하면 어떻게 될까 각 장 사이사이에
작곡 쪽 일하는 사람한테 도움이 될 줄이야. 일시적 위안 정도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최대치지. 고맙네.
여기가 요점파악하는 곳은 아니지만 서도..... 음, 흠, 으음. 아냐, 이건 각자 가지고픈 해석을 가지면 되는 문제다. 끝.
극단적인 사람이 보기엔 비겁한 타협이겠지만, 적어도 나한텐 그정도면 나름 괜찮은 해결책이겠는데? 근데, 이제 문제는 작가가 아니라 독자지. 과연 독자가 다소 산만해질 수 있는 그런 형식을 좋아할까..... 으음. 실험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