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핑까좀


세상에서 가장 재밌는 게 뭘까?

흥미진진한 게임? 알콩달콩한 연애? 스릴 넘치는 서핑?

어떤 미친놈은 공부가 제일 재밌다고 할지도 모른다.


‘이해가 안 가.’


그런 사람들을 생각하며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로서는 정말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인간군상이었다.

대체 그런 게 뭐가 재밌다는 거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것.’


그건 생각할 필요도 없이 돈이었다.

빡빡이 스님이나 예수님을 제외하고는 다들 그렇지 않을까.

거의 모든 사람들은 넘칠 정도로 많은 돈을 가지고 싶어한다.


‘대체 왜?’


그것 또한 나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게임은 지면 열이 받고, 연애는 헤어지면 빡치고, 서핑은 물에 빠지면 개같고.

돈이 넘칠 정도로 많아봐야 내가 지금 얘기한 것들을 할 수 있을 뿐인데.

결국 하나같이 따분하기 그지없는 것들 아닌가.


‘다 필요없어.’


전부 하면 하고 아님 말고의 일들일 뿐이었다.

허나 그 사실에 절망할 이유는 조금도 없었다.

내게도 엄청나게 재미있는 게 있으니까.


“이지은!”


침대에 누워서 목청을 높여 여동생의 이름을 불렀다.

언제나 그렇듯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나는 개의치 않고 한 번 더 불렀다.


“이지은!!”


그러자 대답이 들려왔다.


“왜!”

“잠깐만 와 봐.”

“무슨 일인데.”

“그런 게 있어. 오면 말해줄게.”

“아, 싫어! 지금 얘기해.”

“안 돼. 와야 할 수 있는 이야기야!”

“됐으니까 그냥 얘기해!”

“안 된다니까!”

“아악! 진짜..!”


항상 그렇듯 승자는 나였다.


쾅.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는 소리가 들렸다.

펜을 내려놓는 소리도 함께 들리는 걸 보니 공부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벌써부터 내 입꼬리가 씩 올라가기 시작했다.

짜증이 가득한 발소리. 투덜거리는 목소리.


끼익.


“뭔데, 하려는 말이.”


여동생이 날선 표정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나는 미소를 띠며 얘기했다.


“불 좀 꺼 주라. 자려는데 형광등이 너무 환해서.”

“장난하냐?”

“응?”

“불 정도는 오빠가 끄라고! 오빠는 손이 없어! 발이 없어!”


지은이는 씩씩거리며 쏘아붙였다.

항상 있는 일이었지만 오늘은 유독 발끈한 거 같았다.


“둘 다 없는데. 이불속에 들어가 있어서.”


기가 찬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여동생.

나는 빙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알잖아. 이불 밖은 위험하다고.”

“나는! 공부하다가 오빠때문에 불 끄러 와서 집중력 다 흐트러진 나는..!”

“에이, 그건 핑계지. 오빠는 학교 수업만 들어도 전교권인데? 가만 보면 신기해.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는데 중위권인 거 보면……”


말하다 말고 나는 이불 속으로 얼굴을 감췄다.

지은이가 못 참겠다는 표정으로 바닥에 떨어진 베개를 주워서 걸어왔으니까.


팡! 팡!


“죽어! 오빠 그냥 죽으라고!”


물론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나는 이불속에 숨은 채로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죽으라는 건 너무 심한 거 아니야? 오빠한테.”

“허! 네가 오빠야? 어떤 오빠가 여동생한테 그렇게 말하냐? 내가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알면서!”

“아니까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지.”


다시 배게세례가 이불 위로 쏟아졌다.

오빠가 힘들까 봐 안마까지 해 주는 착한 여동생이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지은이는 배게를 내려놓고 말했다.


“나 이제 진짜 공부할 거니까 부르지 마. 부르면 진짜 가만 안 둬..”

“알겠어. 공부 열심히 해. 불은 끄고 가고.”

“안 말해도 끄고 갈 거거든!”


쾅.


그렇게 지은이는 쿵쾅거리며 방으로 돌아갔다.

마른 체형인데 저런 소리가 나는 것도 신기하단 말이지.


“크크크.”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팡. 팡.


나는 누운 채로 이불을 마구 걷어찼다.

너무 즐겁다. 너무 신난다. 너무 짜릿하다.

여동생을 놀리는 건 왜 이렇게 재미있는 걸까.


‘빌드업을 하는 과정부터 여동생의 반응까지.’


어느 한 순간도 즐겁지 않은 시간이 없다. 심지어 질리지도 않는다.

몇 번을 놀려도 항상 새롭다고 해야 하나.

그래. 눈치챘겠지만 내 삶에 있어서 가장 즐거운 건 ‘여동생 놀리기’이다.

나라고 다른 즐거운 걸 찾아보지 않은 건 아니다.

게임도 다양하게 해 봤고, 짜릿한 놀이기구를 타 보기도 했다.


‘재밌는 것도 잠깐이지.’


별로 재미있지도 않았을 뿐더러 금방 실증이 났다.

연애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호감이 없는데도 일부러 고백을 받아서 여러번 사귀어 본 결과.

앞서 말한 것들보다도 가장 최악의 경험이었다.


‘더럽게 귀찮았지.’


기념일은 안 챙기냐, 어디 놀러 안 가냐, 사진 찍자, 뭐 하자, 이것도 하자, 저것도 하자...

그래. 이거까지는 어떻게든 이해할 수 있다.

나름 남녀 사이에서 연애라는 관계가 성립된 거니까.


‘근데 왜 그렇게 눈치를 봐야 하는데.’


누구랑 사귀든 무슨 말 하나를 하더라도 눈치를 봐야 했다.

나도 그렇고, 상대도 그렇고.

하고 싶은 말을 하면 ‘내 생각은 안 해?’라고 말해온다.

반대로 내 눈치를 보며 얘기하는 상대의 표정을 보는 것도 무척 불편했다.

몇 시간 연락이 안 됐다고 마음이 떠났냐고 화를 낸다.


‘애초에 마음이 없었으니 떠났다는 게 성립이 안 되지만.’


가장 황당했던 건 작년 이맘때였다.

황지현이라는 애한테 고백을 받아서 사겼다가, 얼마 못 가서 그 애가 내게 이별을 고했다.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더이상 못하겠어. 우리 헤어지자.”


나름 슬픈 표정으로 대답했다.


“알겠어.”

“.. 안 잡는 거야?”

“뭘 잡아?”

“나.”


먼저 헤어지자면서 안 잡냐고 묻는 건 대체 무슨 심보란 말인가.

그래서 황당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내가 널 왜 잡아?”

“.. 나쁜 새끼!”


짜악.


그러니 갑자기 그 미친 여자는 내 뺨을 때리고는 돌아섰다.

믿기는가? 그건 폭행죄가 성립될 수 있는 엄연한 폭력이었다.

나도 뺨을 때려줬어야 하는데, 너무 황당한 나머지 그러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도 이상하단 말이지.’


사귀자고 해서 사겼고, 헤어지자 해서 알겠다고 했다.

하자는 대로 다 해 줬는데 뺨을 얻어맞았다.

그야말로 선행을 베풀고 얻어맞은 격이었다.


‘집에 우환이 있었던 건가?’


차라리 그렇게 생각하는 게 그 미친 행동을 이해하기 편할 거 같았다.

어쨌든 연애에서 즐거움을 찾으려는 내 행위는 그렇게 끝이 났다.

손바닥으로 뺨을 맞으면 얼마나 아픈지에 대한 교훈만 남기고.


‘.. 생기려나.’


아직은 잘 모르겠다. 아니, 솔직히 안 생길 거 같다.

여동생을 놀리는 것만큼 재미있는 게 생길지.

연애와의 차이점은 확연했다.


‘눈치 볼 필요가 없어.’


여동생을 놀릴 때는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

이성적인 관계가 아니니까 말이다. 단지 즐거움을 얻을 뿐이었다.

나는 다시 목청을 높여 여동생을 불렀다.


“이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