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음 날, 종업식까지 앞으로 이틀.
혼자 보내는 점심시간. 평소의 일상이 돌아왔다.
이제는 완전히 익숙해진 비상계단에서 츠나빵과 우유로 간단한 식사를 끝내고, 스마트폰으로 소설의 뒷내용을 쓰다가 타이밍을 계산하여 교실로 돌아간다.
야나미와 함께 보내는 점심시간이 종료되고 고작 하루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빛바랜 추억인 것만 같다. 정말로 나와 야나미는 함께 점심시간을 보냈던 걸까?
나는 혼자서 종이 울리는 시간을 신경 쓰면서 자리에 앉았다.
반에서 친구와 즐겁게 이야기 나누고 있는 그녀를 곁눈질로 엿보았다.
"왜 그래? 눗 군. 왠지 기운 없어 보여~"
나만의 고독에 끼어든 것은 야키시오였다. 허리를 숙이고 내 책상에 팔꿈치를 붙여 나를 올려다본다.
"안심해. 나는 원래 평소부터 기운이 없거든"
야키시오여. 미안하지만 난 지금 고민하는 중이니라. 네가 아무리 귀엽다 할지라도 일일이 상대해줄 수는──
"흐응. 그런 것 치고는 시선이 누구 씨에게 콱 박혀 있는 것 같은데?"
……이 녀석. 교실에서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말문이 막히는 내 모습에 야키시오는 햇볕에 그을린 얼굴로 웃음을 띠며 일어섰다.
"잘 모르겠지만, 제대로 이야기해 보지 않으면 후회할 거야"
"……후회?"
앵무새마냥 같은 말을 반복하는 내 등을 팡 두들긴 야키시오는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는다.
"이 선배님께서 해주는 충고야"
실감이 느껴지는 무거운 한마디였다.
◇
그날의 방과 후. 나는 인기척 없는 복도를 휘적이면서 부실로 향하고 있었다.
야나미와의 점심시간이 끝나고 깨달은 것이 있다. 학교에서의 하루가 묘하게 길게 느껴지는 것이다.
어제까진 아침부터 점심에 대해 생각하고, 점심이 끝나면 점심때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에 비하면 오늘의 나는 빈 껍데기 같다고 해도 좋다.
"……아니, 내가 밥 받아먹는 개도 아니고"
나에게 한 가지 남아 있던 학교에서의 예정은 방과 후의 부활동이다.
코마리에게 욕을 먹으러 가는 거나 마찬가지지만, 신발장의 혼잡함을 피하는 데는 도움이 된다.
부실의 문손잡이를 돌려 보니 문은 잠겨있지 않았다. 늘 가장 먼저 오는 것은 나나 코마리 중 한 명이다.
그 녀석이 벌써 와 있는 건가. 망설임 없이 문을 연 나는 무심코 굳어버리고 말았다.
"야나미 씨"
거기에 있던 것은 야나미 안나.
선반으로 뻗은 손을 되돌리며, 감정을 읽을 수 없는 눈동자에 나를 담는다.
"아, 누쿠미즈 군. 오랜만이야"
어제는커녕 아까까지 같은 교실에 있었으니 오랜만이고 뭐고. 하지만 그런 생각과는 달리 입 밖으로 낼 말을 고르지 못하고 헤매고 만다.
"와 있었구나. 오늘 부활동, 할 거야?"
"오늘은 책을 반납하러 온 것뿐이야. 친구랑 약속도 있으니 그만 가볼게"
야나미는 눈을 피하면서 가방을 어깨에 걸친다.
부실을 나가려는 야나미의 뒷모습. 그것을 바라보던 나는 문득 깨달았다.
도리나 이치가 아니다. 이유 같은 걸 설명할 수도 없다. 하지만 나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지금 아무런 말도 못 하면, 그녀와는 두 번 다시 관계를 맺을 수 없다.
"야나미 씨, 잠깐 괜찮을까?"
"……왜? 친구가 기다리고 있으니 짧게 해줘"
야나미는 돌아보지 않은 채로 조용히 대답한다. 그 말투에 나는 무심코 겁을 먹었다.
"할 말이 없다면 난,"
"기다려줘, 야나미 씨"
마음을 전하지 못했던 야나미와 야키시오. 그 망설임과 후회.
"요즘 계속 도시락을 같이 먹었잖아. 역시 난 그걸 엄청나게 기대하고 있었던 것 같아"
전해지지 않으리란 것을 알면서도 전했던 코마리. 그 강함.
"그러니까──"
"그러니까?"
내 말을 덮어버리는 듯한 야나미의 말.
그러니까……?
물론 우리들은 연인이 아니다. 친구──라 부를만한 사이도 아니다.
빌려준 돈으로 묶여 있었을 뿐인 어렴풋한 관계
"나도……즐거웠어. 그것만은 꼭 전하고 싶어서"
두 사람 사이에 필요한 시간이 모두 지나갔을 무렵.
"……그래"
억양 없는 말투로 그렇게 말하며 조용히 문을 여는 야나미.
복도에서 쏟아지는 역광 속에서 이쪽을 되돌아보는 그녀의 표정은 나에게 보이지 않았다.
"그럼── 난 가볼게"
◇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 채로 맞이한 다음 날. 종업식은 내일로 다가왔다.
교실은 여름방학을 목전에 두고 어딘지 모르게 근질근질한 분위기다. 아마나츠 선생님이 착각해서 HR에서 통지표를 배부하려던 것도 애교다.
지금은 학기 최후의 점심시간. 비상계단에서 시간을 때우는 것이 완전히 습관이 된 나는 운동장을 바라보면서 카레빵을 입에 물고 있었다.
최고기온이 35도를 넘는 탓에 점심 연습은 금지. 멋대로 달리고 있던 야키시오가 체육 교사에게 연행되어 가는 것이 저 멀리 보인다.
"저 녀석, 뭐 하고 있는 거야……"
운동장으로부터 메마른 바람이 불어와 고개를 숙인다. 빵에 묻은 흙먼지를 털고 있자, 밑에서부터 발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저도 모르게 등줄기를 곧게 폈다.
"여, 여기에 있었구나"
무언가를 기대하는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코마리 치카. 거침없이 내 옆에 나란히 앉는다.
"코마리, 어쩐 일이야?"
"너, 너잖아. 여기서 먹으라고, 말했던 게"
그랬었지. 과거의 나도 참 쓸데없는 짓을.
"게, 게다가. 누쿠미즈가, 차, 차였다고 들어서"
도저히 못 참겠는지, 무심코 히죽 웃는 코마리.
"뭐, 뭐랄까, 꼬, 꼴 좋다고 생각해서. 못 참고 와, 버렸어"
"네가 어떻게 알고 있는 건데"
"부, 부실에서 그러고 있으면, 당연하지"
"그보다 애초에 나랑 야나미 씨는 그런 거 아니거든"
"체념, 할 줄 모르는, 녀석이네"
코마리는 종이봉투에 손을 찔러 넣더니 버터 롤을 우물우물 먹기 시작했다. 슈퍼에서 6개 얼마에 파는 그거다.
"아, 아무튼 누쿠미즈만 행복해진다든가, 거, 건방져"
"아아~, 넌 요전번에 차였으니 말이지"
"시, 시끄러워!"
그나저나 옆에서 보면 그게 연애 사건으로 보이는 건가.
그런 게 아니라, 그건── 그건── 도대체 뭘까. 나는 쓴웃음을 머금는다.
……애당초 나는 야나미에게 있어 아무것도 아니다. 빚이 제로가 돼서 일시적인 연결마저 끊어진 것이다. 그저 그뿐이다.
그 사실을 되새기며 완전히 식욕을 잃은 나는 카레빵을 봉지에 집어넣는다.
"너, 점심밥 그게 다야?"
코마리를 보니 눈썹을 찌푸리며 2개째 버터 롤을 먹고 있었다. 이 녀석, 마실 것도 없는 건가. 무심코 자판기에서 샀던 우유를 내민다.
"이거 마셔. 목 메이겠다"
"누, 누쿠미즈는, 괜찮아?"
"난 수통 갖고 왔거든. 그거 마시면 돼"
"저지방, 우유……"
눈을 반짝이며 빨대를 꽂는 코마리를 보고 있자니, 들고양이를 먹이로 길들이는 듯한 기분이 느껴졌다.
그렇긴 해도 들고양이에게 무책임하게 먹이를 주는 건 안 좋은 일이다. 적당히 거리를 두거나 책임지고 키워야 할 일이다.
내 시선을 깨달은 코마리가 경계하는 기색으로 이쪽을 본다.
"도, 돌려달라 그래도, 이미 늦었거든"
……그러고 보니 떠올랐다.
우리 집은 애완동물 금지다.
◇
예상대로 코마리와 나누는 대화에 생기가 도는 것도 아니라, 나는 점심시간이 반쯤 지났을 때 구교사를 뒤로 했다.
뭐, 오늘은 코마리에게 비상계단을 양보하도록 하자.
"누쿠미즈, 여기 있었구나. 한참 찾았다고. ──아, 야, 잠깐 기다리라니까!"
한순간 나에게 말 걸어온 줄 모르고 무시할 뻔했다.
나에게 말을 걸어온 것은 야나미가 짝사랑하는 상대, 하카마다 소스케였다.
"어……왜?"
허, 참. 오늘은 왜 이렇게 나에게 참견하는 녀석이 많은 걸까.
"미안, 남들 앞에선 좀 그렇고, 이쪽으로 좀 와줄래?"
말하는 대로 따라가니, 그곳은 인기척 없는 구교사 뒤뜰이었다.
……이 흐름은. 그렇구나. 분명 그거다.
"누쿠미즈, 미안해. 이야기라는 건 다름이 아니라──"
나는 조용히 지갑을 내밀었다.
"지갑은 왜 내밀어?"
"뭐? 아, 아니. 그런 흐름이라 생각해서"
나는 재빨리 지갑을 집어넣는다. 착각했다. 이 흐름이 아니었나 보다.
"누쿠미즈는 바보짓 하는 캐릭터였구나"
말하면서 웃는 하카마다 소스케. 바보짓으로 받아들여서 다행이다.
자, 그럼 무슨 용건이려나. 하카마다는 조금 말하기 거북한 것처럼 주변을 둘러본다.
"누쿠미즈 너……요즘, 안나랑 만나고 있지?"
안나. 아~, 야나미 말하는 건가──
"──엥?! 아니, 그랬었나?"
당황하는 나를 보며 하카마다는 표정을 일그러뜨린다.
"숨기지 마. 구교사에서 결혼해 달라든가 단둘이서 뭘 어떻게 하자든가 그런 소릴 하는 커플이 있다고 제법 소문났다고"
엥──, 뭐야 그게. 오해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아니 아니, 아니거든. 그게, 전부 틀린 건 아니지만 근본부터 틀렸어"
"부끄러워하기는. 어느새 그런 사이가 된 거야?"
애초에 그런 사이도 아니거든. 그보다 이 녀석은 왜 날 불러낸 거지?"
즉 그거냐. 내 소꿉친구에게 손대지 말라든가, 그런 전개야?
하카마다는 체육 시간에도 유달리 눈에 띄는 스포츠맨이다. 거친 일이 벌어진다면 나에게 승기는 없겠지. 하지만 나도 남자다. 2초 정도는──
"안나를 잘 부탁해!"
갑자기 고개를 깊이 숙이는 하카마다.
……허? 뭐야 이거. 난 도대체 뭘 부탁받은 거지?
"잠깐만! 여러모로 많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그게 나도 기뻐서 말이야. 안나에게 좋아하는 녀석이 생긴 거라면 나도 응원하고 싶어"
"아니, 그러니까……"
이 녀석은 왜 사람이 하는 말을 안 듣는 거야? 혹시 이 자식 난청인가? 주인공이냐.
"미안해. 너에 대해 잘 모르니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어"
"아, 응. 그건 상관없는데"
애초에 야나미는 하카마다에게 차였으니 이런 착각쯤은 아무래도 상관없을지 모른다.
그렇긴 해도 이 개운치 못한 느낌은 도대체 뭘까.
하카마다는 악의의 티끌도 없는 미소로 나를 보았다.
"괜찮으면 이번에 넷이서 어디 놀러──"
"아니, 그러니까 내 말 좀 들어 보라니까"
"아, 미안. 갑자기 나만 떠들어댔네"
미안해할 부분은 거기가 아니야.
……아, 그렇구나. 지금 중요한 건 단 한 가지.
나는 정색하듯 강인하게 하카마다에게 다가섰다.
"……야나미 씨, 하카마다를 전부터 좋아했었잖아"
"뭐? 야, 갑자기 왜 그래?"
"알고 있었지? 야나미 씨가 널 좋아하고 있었다는 거"
어째서 야나미와 친구도 아닌 내가 그녀를 찬 남자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지.
하카마다는 당황한 기색으로 시선을 피하면서 쑥스러움을 숨기듯 콧등을 긁는다.
"그, 뭐냐. 그럴 거라고 생각은 했어. 그러니까 새롭게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으면 해서"
"그 녀석은 너를 지금도 좋아하고 있다고! 현재진행형으로! 오해로 그걸 덧씌우면 안 되는 거잖아!"
기세에 맡기고 떠들어댄 건 좋은데. 자, 그럼 이 대화의 착지점은 어디려나. 아, 맞다. 한마디 더 해야지.
"……그리고 나랑 야나미 씨는 그런 사이 아니야"
"그럼 어째서 같이 밥 먹고 그랬어?"
네가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야나미를 찬 데다 스테이크 세트를 먹어서 그런 거라고. 하다못해 야나미가 디저트로 우동을 먹지만 않았더라도.
그러니까 즉──
"두 사람이 너무 먹어서 그런 게 아닐까?"
"응?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또다시 대화의 착지점이 멀어져 간다.
"아니, 별 것 아니야"
그나저나 이 녀석 엄청 귀찮은 녀석이네. 러브코메디 주인공이 실제로 있다면 이런 느낌이려나.
자신에 대한 건 제쳐두고 그런 걸 생각하고 있자, 갑자기 하카마다가 얼굴을 딱딱하게 굳힌다
뭐야 갑자기. 마치 야생 곰이라도 만난 듯한 얼굴로──
무심코 하카마다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그 끝에 부들부들 떨고 있는 한 명의 여학생이.
"윽! 안나!"
"저기, 두 사람 다……아, 아까부터 무슨 이야길 하고 있는 거야?"
분노인지 수치인지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우리를 노려보는 야나미.
"야나미 씨, 어떻게 여기를!?"
"코마리쨩이 연락해줬어. 누쿠미즈가 꽃미남 양아치에게 트집을 잡혔다든가, 시츄에이션이 끓어 오른다든가 말하더라고. 혹시나 해서 와본 건데──"
하카마다와 내 얼굴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번갈아 본는 야나미.
"……그래서, 뭐 하는 거야?"
자, 지금 이게 어떻게 되먹은 상황이지. 나도 도통 모르겠다. 그리고 코마리가 무엇에 끓어올랐는지도 모르겠다.
"그보다 누쿠미즈 군. 너 지금 소스케에게 뭐라고 말했지──?"
"어─ 음, 저기─, 한정판 가리가리 군 초콜릿이 참 맛있지~, 그런 이야기를"
"……사실대로 말하자? 지금이라면 용서해줄게"
분명 거짓말이다. 나를 보는 눈이 암살자를 방불케 하잖아.
전부 들킨 것 같지만 여기선 결코 인정해선 안 된다. 나의 조국에선 솔직하게 죄를 인정하는 것보다 회피하다 나중에 들키는 편이 어째선지 죄가 가볍기 때문이다.
"기다려줘, 내가 억지로 캐물어서 그래. 누쿠미즈는 잘못한 거 없어"
나를 감싸려는 건지, 하카마다가 쓸데없는 소리를 지껄인다.
야나미의 다리가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전부?! 전부라니, 무슨 전부!?"
결국에 야나미의 떨림이 치와와를 뛰어넘어 위험수위로. 그걸 멈출 셈이었는지, 하카마다가 떨고 있는 야나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미안, 안나. 네가 새로운 사랑을 찾았으면 했거든"
"뭐?"
마침내 사정을 헤아렸는지, 야나미는 순식간에 얼굴이 새파래졌다.
"……그런 거, 하지마"
방금까지의 살기가 사라지고 야나미의 모습이 한층 작아진 것처럼 보였다. 그것을 모르는지, 하카마다는 더더욱 야나미를 몰아붙인다.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나 같은 것보다 훨씬 좋은 녀석이──"
"그만──"
야나미의 몸으로부터 힘이 빠져나갈 것만 같았다. 그 순간, 몸이 멋대로 움직였다. 하카마다의 손을 붙잡고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든다.
"이제 그만해!"
알고 있다. 내가 끼어들 입장이 아니다. 내가 나설 자리가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들어봐, 하카마다! 차는 건 얼마든지 좋아! 야나미 씨든 누구든 얼마든지 자유롭게 팍팍 차도 좋긴 한데!"
……이번에야말로 야나미의 시선이 나를 죽이려 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야나미 씨의 마음을 멋대로 단정 지으면! 그녀가 널 좋아했던 게, 그 마음이 어디론가 가버리잖아!"
먹먹하기만 하던 마음이 말이 되어 흘러넘친다.
"행복해지길 바란다든가, 새로운 사랑 타령을 찬 네가 하지 말라고! 너만은 그런 말을 해선 안 되는 거잖아!"
……아아, 제길. 하카마다 녀석, 가까이서 봐도 멋있네.
겉모습만이 아니다. 상대가 누구라도 잘난 척하지 않으며 상냥하다. 지금도 다만 내가 멋대로 화내고 있는 것뿐이다.
나는 야나미와 알고 지낸 시간이 이 녀석과는 다르게 아주 짧다. 물론 특별한 존재는커녕 가까운 존재조차 아니지만.
그럼에도 나는 야나미의 눈물도, 강한 척하는 모습도── 바로 옆에서 보아왔다.
"친구로서 조용히 지켜봐 주라고! 찼다고 해서 자신의 죄악감을 그녀에게 밀어붙이지 마!"
익숙지 않은 큰소리를 낸 나는 무심코 기침을 했다.
하카마다가 걱정스러운 듯 내 등을 쓸어내린다.
"야, 괜찮아?"
"아, 응……괜찮아……"
……내가 생각해 봐도 기세만으로 꼴사나운 짓을 하고 말았다.
나도 이 녀석만큼 매력적인 남자였다면 야나미와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었을까?
돌연 몸에서 힘이 빠져나간다.
"……그렇구나. 누쿠미즈, 네 말이 맞아"
"뭐? 아, 응. 나야말로 일방적으로 떠들어서 미안해"
무심코 사과하자 하카마다가 손을 내밀었다. 나도 흠칫하면서 손을 내밀──
"내가 차였다는 타령 좀 그만해!"
외치는 목소리와 동시에 나가떨어지는 나.
"너희 둘, 뭘 좋은 분위기로 마무리 지으려는 건데! 멋대로 납득하지마! 머릿속에 타피오카라도 들어 있는 거야?!"
"어, 아─ 음"
야나미가 액셀을 마구 밟으며 우리에게 덤벼든다.
최초의 희생자는 하카마다였다. 야나미는 양손으로 녀석의 가슴팍을 붙잡더니, 꾹 얼굴을 들이밀었다.
"소스케를 계속 좋아했어! 지금도 좋아해! 마음 정리 같은 거 하나도 못 했어!"
"안나, 미안──"
"하지만 사과하지마! 내 다음 사랑이 어쩌니저쩌니 쓸데없는 참견이야!"
야나미는 커다란 눈동자에 12년간의 마음을 담아, 하카마다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아직도 널 엄청나게 좋아하니까! 그러니 히메미야 카렌이랑 행복해져! 마음껏 행복해지라구!"
울음 섞인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고는 한동안 그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나, 여기 있어도 되는 건가.
이탈하는 타이밍을 재고 있는데, 야나미가 하카마다의 가슴에서 얼굴을 들었다.
"나도 내 맘대로 널 좋아할 거고, 언젠가는 마음껏 다른 사람을 좋아할 거야!"
무언가가 그녀의 안에서 매듭지어진 것 같다. 야나미는 양손을 팟 놓더니, 하카마다를 밀쳐냈다.
다음 먹잇감을 찾는 것처럼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무서워.
"누쿠미즈 군! 어라, 너랑은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했더라!"
"음─, 뭐, 나랑은 별로 아무것도 없는데"
"그치! 별로 아무것도 없지만!"
딱, 내 머리를 때리는 야나미. 아프다.
"으음─, 지금 내가 맞은 이유는"
"이유 따윈 없어!"
말도 안 돼. 내가 혼란스러워하며 멍청히 서 있자, 야나미가 내 가슴을 손가락으로 쿡 찌르며 기세 좋게 공격해 온다.
"있잖아, 네가 날 생각해서 그런 것 같은데! 누구랑 누구의 사이가 이렇네 저러네, 네 멋대로 정하고 폭주하지마! 사전에 제대로 콘센서스를 취해 주시라고요!"
"그치만 그게……말 걸면 안 될 것 같아서"
내 말에 야나미는 진심으로 질렸다는 얼굴을 했다.
"네 맘대로 말 걸면 되잖아! 하고 싶은 대로 하라구!"
"어? 그래도 돼?"
"학교에서 남이랑 이야기하는데 허가 같은 게 필요해?! 도대체 무슨 세계관이야?!"
그치만 멋대로 여자에게 말 걸면 위험한 거 아닌가……? 내가 살아온 세계선에선 완전히 길티다.
"그치만 내가 말 걸면……폐가 될 것 같아서"
"그런 건 내가 정하는 거거든! 게다가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런 건 나도 전혀 모른단 말이야!"
에─, 뭐어……그런 건가……그럴지도……
나는 확실히 거동이 수상쩍은 데다 외톨이긴 하지만.
누군가와 함께 있든 없든. 이야기를 나누든 말든. 어떻게 움직일 건지를 모두 내가 정해야 한다는 뜻인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어떻게 응하는지는 상대가 정하는 일이고.
"그러니까 즉, 내가 야나미 씨에게 먼저 말을 걸어도 괜찮……다는 뜻?"
"때와 장소에 따르지!"
그야 그렇겠지. 저도 모르게 입가가 풀리는 나를 야나미가 의아하다는 듯이 본다.
"엥, 왜 살짝 기뻐하는 건데. 극혐이야, 누쿠미즈 군"
"아니, 그냥 좀. 야나미 씨, 여러모로 고마워"
"……여전히 너에 대해선 잘 모르겠다"
야나미는 커다란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젓는다.
"아무튼, 두 사람 모두 반성해!"
""넵!""
목소리가 깨끗하게 겹쳐지는 좋은 대답. 하카마다와 마음이 통하는 순간이었다.
"자, 소스케. 누쿠미즈 군에게 제대로 미안합니다. 해야지"
왜 그렇게 되는데.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에게 꾸벅 고개를 숙이는 하카마다.
"누쿠미즈, 말려들게 해서 미안해"
아니 아니, 뭘 굳이 그렇게.
하카마다의 커다란 제스처에 왠지 모르게 미안함을 느끼는 나. 뭐야, 이 대화.
"자, 누쿠미즈 군. 나한테 미안합니다. 해"
"엉?"
점점 더 뭔 소린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시키는 대로 따르는 게 좋을 것 같다.
"미안해. 더는 멍청한 소리 안 할게"
"좋아. 용서해 줄게"
야나미는 팔짱을 끼면서 만족스럽게 수긍했다.
……문득,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야나미.
"그래서. 이 이야기는 어떻게 마무리 지을 거야?"
글쎄올시다. 셋이서 얼굴을 마주 본다. 점심시간 종료의 예령이 울린다.
야나미는 속눈썹에 맺힌 눈물을 닦으면서 우리에게 웃어 보였다.
"아무튼, 둘 다 교실로 돌아갈까. 자, 우향우!"
우리는 기세에 밀려 우향우한다. 그 등을 양손으로 있는 힘껏 두드리며 야나미는 우리 사이를 가로질러 달려나간다.
"어서! 두 사람 다 늦겠다!"
이쪽들 돌아보면서 손을 흔드는 야나미. 하카마다가 내 어깨에 손을 올린다.
"가자고, 누쿠미즈"
"아, 응"
쓴웃음이 떠오른 얼굴을 서로 마주 보면서, 우리는 나란히 야나미의 등을 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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