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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데이트가 끝난 것을 가늠하며 "다녀왔어!" 하고 크리스는 코우타의 집 문을 연다.


소파에서 몸을 내던지고 있는 코우타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한 눈에 알 수 있다. 무엇이냐 하면, 여친과 큰 진전이 있었던 것이다.


몇 순간 뒤에 코우타는 '어서와'라고 말한다.


로퍼를 벗어던지고 크리스는 소파에 앉는다. 작은 소파라 앉는 것만으로 코우타와 붙게 된다.


"집 데이트 어땠어?"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니 그 볼이 약간 홍조를 띠었다.


크리스가 가까운 탓이 아니라 그가 여친과의 데이트를 회상했기 때문이다.


'아, 응……' 이라고 코우타는 분명치 않게 대답한다.


"지시는 무척 도움이 되었어. 잘도 저리 정확하게 메모를 해놨구나."


"왜냐하면 나는 코우타의 동맹자니까."


"동맹자……"


"코우타를 잘 안다는 거야"


지시 메모를 두는 것은 간단했다. 코우타의 성격, 취향, 여친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필연적으로 그의 행동 패턴이 도출된다.


덧붙여 히사메의 정보도 호즈키로부터 입수가 끝난 상태이다.


히사메는 어떤 인테리어를 선호할까.좋아하는 간식은 뭘까? 궁극적으로 반에서 그녀에게 들릴 수 있도록 딸기맛 슈크림가 맛있음을 역설해 둔 것이다.


성격이나 기호사항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으면 초능력이 없어도 쉽게 조종할 수 있다. 문제는 두 사람이 어디까지 진행됐느냐인데.


크리스는 맹장지를 열었다.


"어라...?"


일본식 방에는 신품의 더블 침대를 배치하고 있었다.그것이 사용된 흔적이 없다.


"코우타, 침대 안 썼어?"


침대!? 하고 코우타는 갑자기 괴상한 소리를 질렀다.,


"어머멋, 침대까지 쓰라고-!"


"뭘 상상해? 침대에서 같이 TV보라고 지시했잖아."


"뭐? 그런 쪽지는 없었어.어디다 뒀는데?"


"맹장지에 붙여 두었는데… 벗겨졌나봐."


크리스는 그렇게 결론지었다.


(침대까지 도착하지 못했다면, 그의 '진전'은 간접 키스라는 것이네.)


조금 안심했다.


침대까지 갔다면 키스할 분위기가 됐을 것이다.


만약 두 사람이 거기까지 갔더라면- 하고 상상하고, 크리스는 선 채로 움츠러들었다.


아프다. 마음이 따끔따끔 아파 금방이라도 수그려 앉을 것만 같다.


(왜 그랬을까? 내가 동맹자가 되겠다고 마음먹었는데다 자기가 짠 작전인데.


이렇게 마음이 술렁거려 가슴이 괴로울 줄은 생각지도 못했어.)


"이봐, 크리스" 코우타의 목소리로 정신을 차린다.


"이 방 다시 돌려놔.어쩐지 불편해."


"……그러지 뭐."


고개를 끄덕인 크리스였지만


"아, 코우타. 침대만 남기지 않을래? 나 이불이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거라면 남겨도 되는데"


해냈다, 하고 크리스는 침대에 눕혔다.부드러운 매트리스에 몸이 가라앉는다.


코우타를 엿보자 그는 크리스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소파에 몸을 맡긴 그는 꿈에서 깨어나지 못한 듯 아득한 표정을 짓고 있다.


가슴의 통증이 커졌다.


크리스는 가까이에 있던 하트 모양의 쿠션을 끌어안는다.YES라고 쓰인 쪽이 보이도록 말이다.


"코우타"


내 작전은 완벽해. 상정 외의 일은 일어나지 않아.


하지만, 만약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난다면--


그걸 일으키는 건 크리스의 마음이다.


"더블 침대니까 코우타도 같이 잘 수 있겠네."


알아. 이런 말 하면 분명 그는 화낼거야.


아니나 다를까, 코우타는 퍼뜩 이쪽을 보았다.


"왜 너랑 같은 침대를 써야 하는데."


"농담이야."


항상 말하는 대사로 상황을 넘긴다.


툴툴거리며 크리스는 웃었다. 괜찮아. 그는 내 목소리가 떨리는 건 웃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니까.


"농담인 게 당연하잖아. 하여간 코우타는 정말 바보라니까!"


(농담일 리가 없잖아. 코우타는 언제 내 마음을 눈치챌까?)


분노의 창끝을 잃은 코우타가 한숨을 내쉰다.


쿠션을 꽉 안은 채 크리스는 계속 웃었다.즐거운 목소리가 집안에 울려 퍼지고 있다.


괜찮아. 눈에 눈물이 맺혀있는 것도, 그는 분명히 착각해 줄거야.




4장 거짓말쟁이가 넣은 설탕



일요일이라고 해도, 아르바이트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코우타의 아침은 빠르다.


낮부터는 카페 아르바이트가 있기 때문에, 집안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오전 중 뿐이다.


"좋아, 이것으로 대부분 끝났군."


세탁기를 돌리고, 목욕물을 청소하고, 주방에서 현관까지 청소기를 돌린 코우타는 이마를 닦는다. 그리고는 슬쩍, 하고 방을 쳐다보았다.


맹장지가 닫혀 있어서 안이 보이지 않는다.


"크리스 일어나 있어?"


맹장지를 향해 코우타는 말을 던진다.


……답장은 없다.


일본식 방 청소는 크리스가 하도록 결정했다. 청소기를 실내에 두기 위해 코우타는 살며시 맹장지를 연다.


일본식 방 중앙에는 더블 침대가 자리잡고 있다. 그 아래 다다미에 뭔가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면,


"내 앨범이잖아"


그것은 영락없는 코우타의 유치원 시절 앨범이었다. 크리스가 벽장을 열고 발굴했겠지. 보고서 그대로 꺼내두다니 정말 그녀답다.


쭈그리고 앉아 코우타는 앨범을 주웠다.


유치원 시절이라니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기억나는 것은 매일, 라멘가게 놀이를 하던 정도로---


"좋은 아침, 코우타"


"우와아아악!"


느닷없이 말을 걸어, 코우타는 외쳤다.


파자마 차림의 크리스가 침대에서 몸을 내밀어 이쪽을 보고 있었다. 자고 일어난 그녀는 머리를 묶지 않아 조금 어른스럽다.


"깜짝 놀랐네 코우타. 내 침실에서 도대체 뭘 할려 한거야?"


"아무 짓도 안 했어! 청소기를 놓으러 온 거지"


문득 그녀의 눈이 앨범에 멎었다.


"어머, 코우타도 그거 봤어?"


"넌 멋대로 남의 앨범 봐놓고 찔리지도 않냐?"


"그냥 봐도 되잖아. 코우타는 옛날부터 눈이라든가 분위기라든가 변하지가 않네. 덕분에 10년 만에 만나도 금방 알 수 있었어."


크리스는 앨범을 들자마자 즐겁게 책장을 넘기 시작한다.


어? 하고 코우타는 고개를 갸웃했다.


"10년 만에……"


"그 모습을 보니 역시 기억이 안 나나 보네? 10년 전 고산지 라멘집에 우리 아빠가 갔을 때 다섯 살 난 나도 함께 있었는데."


"으음..."


"아빠가 사업 얘기를 시작했을 때 아이인 난 심심하니까 밖에서 놀려고 가게 밖으로 나왔어. 거기서 라멘가게 놀이를 하고 놀던 게 코우타"


"에엑!?"


"코우타의 권유에 나도 같이 소꿉놀이를 했어. 그 사이 우리의 약혼은 결정된 셈이지."


"그럼, 우리들은 10년 전에 만났던 건가……전혀 기억나지 않아…"


"나도 라멘집에서 나온 아빠가 바로 코우타가 약혼자라는 말을 듣지 않았으면 잊어버렸을 거야."


"아악, 내 쪽 아버지는 너무 허술해!"


코우타는 이마를 짚었다. 데츠지의 라면에 거는 열정은 존경할 만하지만 다른 일엔 대부분 어설프다.


크리스는 당시를 그리워하는 듯 눈을 가늘게 뜬다.


"소꿉놀이에서 코타는 라멘 끓이는 담당이었지?"


"담당이라고 할까, 가게 주인 역할 말이지.그 놀이 자체는 잘 기억하고 있어."


라멘가게 놀이란, 코우타가 생각한 일종의 소꿉놀이다. 한 명 한 명 역할이 있다.필요최저인원은 3명이다.


라면 끓이는 가게 주인 역.


식사하는 손님 역.


그리고 가게 주인을 서포트하는-


"아"


코우타는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생각났다. 라멘가게 놀이에는 가게주인을 지원하는 '아내 역'이 있었다!


코우타가 줄곧 주인 노릇을 했듯, 아내 역도 늘 같은 아이가 했다.


그 애의 얼굴도 이름도 이젠 생각이 안 난다.


다만 머리가 길고 예쁜 아이였다는 기억은 있다.


라멘집에서 놀이를 할 때면 꼭 그녀가 라면 그릇을 챙겨주었다.


"흠, 혹시 코우타, 첫사랑 같은 게 생각났어?"


"뭐!?"


알아맞히자 코우타는 움찔했다. 크리스는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코우타는 알기 쉬워. 하여튼 첫사랑 에피소드 알려달라고."


"하, 첫사랑이란 건... 그 아이와는 그저 유치원에서 함께 놀았을 뿐..."


"그냥 논 것뿐이라면, 뭐 말해줘도 상관없어."


코우타는 말문이 막혔다.


크리스는 승리한 듯 웃고 있다.


"코우타, 이 크리스티나 웨스트우드 님 상대로 숨길 수 있을 것 같아? 어떤 애였어? 사랑하게 된 계기는? 추억의 장소나 물건은?"


"아아아악, 알겠어 알겠다고!"


크리스의 추궁에서는 벗어날 수 없다. 코우타는 체념했다.


처음에 나는 걔랑 둘이서 라멘을 끓여서 놀고 있었어. 내가 담쟁이덩굴 같은 데서 면 같은 걸 만들고, 걔가 찰흙 같은 걸로 그릇을 준비해."


그것이 즐거웠기 때문에 코우타는 어느 때 말했던 것이다.


"앞으로도 같이 라멘 끓이자고 부탁했어……"


그것은 유치원생 나름의 고백 같은 것이었다.


"미소가 지어지는걸.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데?"


"아아, 유치원 졸업할 때까지 라멘가게 놀이를 같이 했어. 거기서는 반드시 내가 가게 주인이고 그 애가 서포트했지."


...그 말은 정확하지가 않다.


놀림을 받을 것 같아서 크리스에게는 말할 수 없지만, 고백의 대답은 확실히 받았다.


"그럼 코우 군, 결혼하자."


그게 그녀의 대답이었다.


코우타는 고개를 끄덕였고, 라멘가게 놀이에서 그 아이는 '아내 역할'이 되었다.


초등학교에 올라가니, 그 아이는 어느새 없어져 있었고, 코우타의 기억에서도 빠져 나갔다.


사랑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밋밋한 추억이다.


분명 그 아이도 코우타를 잊었을 것이다. 코우타는 라멘가게 놀이 얘기가 나오지 않는 이상 그 아이를 새삼스레 생각하지 않았다.


"그럼 코우타, 지금부터 라멘가게 놀이를 할 거야"


"어!? 지금부터?"


"코우타가 가게 주인, 내가 서포트역이야."


"응, 그래서?"


"만드는 건 아침이야!"


"예이 예이"



라멘가게의 정석, 볶음밥을 만들기로 했다.


점심부터 아르바이트라고 크리스에게 말했더니 점심도 되는 것을 주문했기 때문에 볶음밥이 되었다.


냉장고를 연 코우타는 기억에 없는 플라스틱 팩을 발견한다.


"이것은......와규인데, 어째서...!?"


깔끔한 칼집이 나있는 스테이크 고기다. 코우타네 형편으론 절대 살 수 없다.


왜 이런 고급품이 우리 냉장고에 있지? 하고 충격을 받고 있으면,


"아, 그거, 상가에 갔더니 정육점 아저씨가 준 거야."


크리스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말했다.


"줬다고!? 와규를!?"


"정육점 아저씨가 내 팬이래. 사인해줬더니 받았어"


"연예인의 삶이란 대체..."


"그거 볶음밥에 넣어버려"


"모처럼의 와규가 아깝지 않아...?"


"스테이크 하기엔 양이 적어"


크리스가 그렇게 말한다면야. 코우타는 사치스럽게도 스테이크 볶음밥을 하기로 했다.


볶음밥의 다른 재료를 꺼내다 보니까


"그래서 코우타, 난 뭘 하면 좋을까?"


의욕만만한 크리스가 주방에 서 있었다. 머리는 어느새 트윈테일로 묶었다. 앞엔 새 앞치마까지 하고 있고.


"좋아, 일단 양파를 다져줘."


"알았어."


코우타는 크리스에게 양파를 건네주고 프라이팬을 집어들었다. 처음에 와규를 정육면체로 썰어 프라이팬에 볶고 있으면,


"코우타아아~~ 눈이 아파서 양파가 잘리지 않아..."


울음소리가 난다.


크리스가 주르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코우타는 황급히 불을 껐다.


"아, 양파는 좀 허들이 높았나..."


보아하니 크리스는 양파를 두툼하고 둥글게 썰었다. 아마 다지는 법을 잘 모르고, 칼질도 이상하다.


"그럼 계란이다. 사발에 달걀을 깨."


으응…하며 눈물을 닦은 크리스는 그릇을 집는다.


양파를 자르는 작업은 코우타가 회수했다. 탕탕 하고 시원한 소리가 주방에 울려 퍼진다.


그 와중에 흐느적, 불협화음이 새어나왔다.


코우타는 움직임을 멈춘다.


옆을 보니 크리스가 손을 달걀 투성이로 만들고 있었다.


"…"


"코우타아아~~, 계란이 잘 깨지지 않아..."


"...크리스, 너말야 "


코우타는 그릇을 집어들었다.


"요리해봤어?"


"나는 세계적인 크리스티나 웨스트우드야. 요리는 하는 게 아니라 먹는 거야."


"물어본 내가 바보지"


코우타는 크리스에게 요리시키는 것을 포기했다.


"달걀도 됐으니까 볶음밥 담을 접시 좀 꺼내줘"


그 정도는 되겠지.


코우타는 양파를 다시 다지기 시작했다. 달걀을 몇 개 깬 뒤 빠르게 풀면


'꺄악!' 소리와 '쨍그랑!' 소리가 겹쳐진다.


코우타는 고개를 돌렸다.


"코우타아아~~, 접시를 깨버렸어어..."


당황하는 크리스. 그녀는 허둥지둥 코우타 쪽으로 오려 했고,


"스톱. 움직이지 마"


코우타가 두 손으로 그녀를 멈춰 세웠다.


우뚝 선 크리스의 주위에서 코우타는 청소를 시작한다. 접시 조각이 남아 있으면 위험하다. 크리스가 밟아 다치면 큰일이다.


"코우타, 내가 뭘 하면...?"


앞치마 자락을 잡고 크리스는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그녀로서는 서포트 역할을 열심히 하고 싶었던 것 같다.


"크리스, 사람은 각자 알맞는 역할이 있어."


"?"


"배역 체인지. 넌 지금부터 손님 노릇 좀 해라."



쿵 하고 큰 접시를 식탁에 놓는다.


뜨거운 스테이크 볶음밥을 앞에 두고 크리스는 "와!" 하고 환호성을 질렀다.


"쌀이, 계란이 빛나고 있어...!"


츄릅하고 군침을 흘리는 크리스. 손님 역할로는 엄청난 리액션이다.


가게 주인인 코우타는 촉구했다.


"맛있게 드세요"


"잘 먹겠습니다!"


크리스는 힘차게 숟가락을 집었다.


아까부터 방에는 참기름의 고소한 냄새가 풍기고 있다. 크리스는 고슬고슬한 볶음밥을 떠서 입에 넣었다.


순간 그녀의 눈에 환희가 빛난다.


우물우물 씹어먹고 크리스는 꽃이 만개한 것처럼 웃는 얼굴이 되었다.


(아......)


"엄청 맛있어 코우타!"


"어, 아아... 뭐니뭐니해도 와규가 들어가니까."


겸연쩍어 눈길을 돌린 코우타에게, 크리스는 고개를 흔든다.


"그 때문이 아니야. 코우타는 요리를 원래 잘 하는 거야!


절묘하게 소금 간을 해서, 푹신한 계란. 기름 간장의 고소함, 양파의 단맛, 녹는 듯한 소고기의 감칠맛이 밥에 꽉 차있어서... 하아, 최고...."


"*계란탕도 끓였는데 먹을래?"

(*한국에서 볶음밥에 딸려오는 짬뽕국물 역할)


"당연히 먹지. 빨리 가져와."


두 사람 분의 수프를 준비하고, 코우타는 자리에 앉았다. 크리스는 국물을 한 모금 마시고 다시 웃음을 흘린다.


(그래, 이 얼굴이 보고 싶어서, 나는 라멘가게 놀이를 했었지...)


놀이에서 진짜 식품은 내놓을 수 없다. 그래서 당시의 '라멘'은 꽃잎을 흩뜨리거나 풀잎을 담아내기 위주였다.


손님 역할이 놀라거나 기뻐하는 것이 코우타의 즐거움이었다.


내가 만든 것으로 누군가를 기쁘게 해 주고 싶다.그 마음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코우타 안 먹어?"


크리스는 코우타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린다.


나쁜 장난을 떠올린듯 그녀는 소악마스럽게 웃었다. 숟가락으로 볶음밥을 떠서 코우타에게 내민다.


"자, 아앙 ♡"


"어이......"


"농담이야"


크리스는 숟가락을 자기 쪽으로 돌리고 볶음밥을 입에 넣었다. '으으음~' 하며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고 있다.


"여친이랑 이런 거 하면 친해질 거야"


"또 허들이 높은 것을..."


"프러포즈에 비하면 휠씬 낮지...그래. 다음 작전은 이걸로 가자고."


꿀꺽, 하고 입안의 것을 삼키고, 크리스는 말한다.


"맛있는 도시락을 만들어서 점수를 따자!"


"아하. 나의 특기를 살리는구나"


"맞아. 내일 점심시간, 코우타는 그녀랑 함께 도시락을 먹는 거야.


그리고 코우타가 자기 반찬을 그녀에게 나눠줘. 그녀는 코우타의 요리에 감동, 둘 사이는 돈독해진다는 작전이야."


"히사메와 함께 점심이라..."


코우타는 그녀의 점심시간을 회상하며 떨떠름한 표정이 되었다.


"코우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


토죠는 항상 자기 자리에서 혼자 싸온 도시락을 먹고 있으니, 빨리 식사를 마치고 독서를 하고 싶은게 아닐까~하고."


"너 잘 안다"


솔직히 놀랐다. 크리스는 점심시간마다 다른 학생들에게 둘러싸여 학식을 먹는다. 교실 모습 같은 건 모를 텐데.


"나는 동맹자야. 코우타도 여친도 모두 꿰뚫어보고 있거든."


(그 말이 조금도 과장된 게 아니라서 무서운데)


지난 번 집 데이트에서 크리스의 무서움은 뼈저리게 느꼈다. 한편, 그녀의 작전대로 하면 틀림없다는 것도 실감할 수 있었다.


"히사메의 점심시간을 방해해서 불쾌해 하지 않을까..."


"아 진짜, 코우타는 애인이지!? 방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고!"


"사귀는 건 남들한테 비밀인데 히사메가 점심을 같이 먹어주겠냐?"


"물론 먹는 곳은 교실이 아니지. 단둘이 있을 수 있는 장소……뒷마당 같은 건 어떨까?"


"거긴 단둘이 있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니잖아"


코우타의 기억으로는 뒷마당은 화단이 있어 분위기가 좋은 곳이다. 날씨가 좋다면 인기 있는 점심 장소일텐데.


"할 수 있어. 내일 뒤뜰에는 아무도 안 올 거야. 세계적인 크리스티나 웨스트우드가 말했으니 틀림없어!


"그게 뭐야... 하긴, 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뒷마당으로 할까?"


"코우타는 내일 등교길에 그녀와의 점심시간 약속을 받아내. 그러면 교내에서 단둘이 있게 해줄게."


"오케이. 나는 정성 들여 도시락을 만들면 되겠네!"


히사메가 먹을 것이다. 어중간한 타협 따윈 없다.


"그러면 식단을 짜볼까. 아까 와규가 아직 절반 남았으니 내 특기 분야인 중국풍 도시락을 만들어야 하나-."


냉장고를 열고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뒤에서 한숨 소리가 들렸다.


"...내 볶음밥은 뚝딱 만들었으면서"


코우타는 돌아본다.


크리스는 볶음밥을 입에 우겨 넣고 있었다.


"코우타의 요리는 뭐든지 맛있으니까 괜찮아. 비록 콩나물 요리지만 말이야."


"...혹시 너 우리 저녁 콩나물밖에 안 나오는 거에 불만 있냐?"


"하아, 아냐"


어이없다는 듯 크리스는 고개를 흔든다.


'코우타는 뭐든지 만들어도 돼. 내가 내일 코우타 작전이 대박나도록 연출을 할 테니까'


"연출?"


그래, 하고 크리스는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최고의 연출을 보여줄게. 나한테 맡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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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봐도 히사메(현 여친)가 원래 아내 역할, 크리스가 손님 역할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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