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야의 하늘, UFO의 여름 - 그라운드 제로
학교에 가는 게 싫어. 그렇다면 학교 따위 가지 않으면 돼.
하지만 수영장에서 헤엄치고 싶어. 그렇다면 몰래 숨어들어서 헤엄치면 돼.
8월 31일 오후 6시 37분. 불스아이 방위 040, 거리 20NM(노티컬마일) 지점에서 이리야는 긴급사태 발생을 보고했다.
――기체 후방에서 폭음, 양쪽 엔진의 퓨얼플로우(연료유량)가 이상증가, 화재 경고, 오버히트 경고, FLCS에 에러 발생, 자세제어용 하이드로(유압) 3계통 모두 페일. 오토 파일럿을 디스엔게이지(해제). 스틱을 최대로 당겨도 수평비행 유지할 수 없음. 현재 FBA(공력비행) 중.
전부 거짓말이었다.
「아―아, 이거 야단났네」
이리야의 바로 뒤에서 에리카가 키득키득 웃는다.
「모처럼이니까 엔진이 떨어져 나갔다든가 날개가 부러졌다고 해도 됐을텐데. 제이미나 엔리코였다면 몰라도, 네 말이라면 믿을거야, 분명」
또 터무니없는 말을 하네, 라고 이리야는 생각했다. 직후 소노하라 기지의 발령소로부터 전신이 보내져왔다. ――미션을 어보트(중지)하고 즉시 RTB(귀환)하라. 언에이블(불가능), 라고 이리야는 대답한다. 선회할 수 없다, 진동이 심하다, 스틱 입력과 관계없이 진로가 우방향으로 휘어지고 있다, FBG(중력비행) 허가를 바란다.
――중력비행은 허가할 수 없다. 에어 브레이크를 매뉴얼(수동)로 비대칭으로 조작해서 진로를 변경할 수 있는가?
해보겠다.
――라져. 현재, 미카게와 이치하라의 모든 활주로 사용가능, 긴급차량 전개중. 헤딩(진로) 060을 가능한 최대로 유지하라.
라져.
이리야는 침착하게 속도를 좁혀서 기체를 부드러운 하강기동으로 이행시켰다. RWR에 의하면, 만타는 현재 세 군데의 레이더사이트에 감시당하고 있다. 급강하해서 그 레이더의 추적을 뿌리치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회복 불가능한 비상사태를 연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거의 배면이 될 때까지 좌측 롤을 걸어서 스스로가 말한 트러블이 정말로 일어났다면 이렇게 됐겠지 싶은 자세로 기체를 유지한다. 기분 나쁜 방향으로 걸린 G에 에리카가 들뜬 목소리를 냈다. 내동댕이쳐진 돌맹이처럼 고도가 떨어져간다.
이리야의 광학시야 한가득 해질녘의 하늘이 펼쳐졌다.
커다란 난층운이 아로새겨진, 붉고 푸르고 하얗고 검은 여름의 하늘.
소리없이 고도가 떨어져간다.
지금은 연기지만, 언젠가 정말로 격추당해서 죽게 될 때도 틀림없이 이런 식으로 떨어지겠지.
그리고 어차피 죽을 거면 이런 하늘이 좋다고 생각한다.
오늘이랑 똑같은, 여름의 해질녘의 하늘이 좋겠어.
「있지, 역시 수영장은 관두고 말야」
에리카가 말한다.
「이대로 진짜 죽어버리는 건 어때?」
그것도 좋을지도 모른다, 라고 이리야는 생각한다.
「――그치만, 죽으면 어떻게 되는데?」
「뻔하잖아. 천국에 가는 거야.」
「천국은 어디? 먼 곳이야?」
「엄청 가까워. 바로 코앞이야. 불스아이 방위 270 거리 40NM 고도 30. TACAN 채널은 110.55」
그렇게나 가까운 거구나――하고 이리야는 생각했다. 중력비행하면 눈 깜짝할 사이다.
「――역시 수영장에서 헤엄친 다음에 할래」
「뭐야, 재미없게」
그렇게 말하는 에리카의 목소리에도 약간 웃음기가 섞여 있었다.
「그럼 슬슬 고개를 들어야지. 그리고 GPS 좌표 확인. 제1후보지점까지 얼마 안 남았어」
기수를 올린다. 강렬한 G, 주날개에 어마어마한 베이퍼(수증기)가 달라붙는다. 갑작스러운 다이브(급강하)와 레이더 아웃(반응소실)에 당황한 발령소가 뭐라고 외치고 있었지만, 이리야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는다. 사실은 에러 따위 하나도 뱉어내고 있지 않은 FLCS가 이대로라면 현재 로드되어 있는 플라이트 플랜에서 벗어나게 된다고 불평한다.
이걸로 된 거야, 라고 이리야는 정말로 입으로 내서 혼잣말한다.
나는 지금, 누구의 지시도 받지 않고 하늘을 날고 있는 거야.
애초에 수영장에 숨어드는 걸 제안한 것도 에리카였고, 이 탈주계획을 세운 것도 에리카였다. 거슬러 올라가길 한 시간 정도 전, 이리야는 자기 방에서 에리카와 이마를 맞대고 이렇게 할지 저렇게 할지 의논하고 있었다.
어떻게 경비를 빠져나갈까.
어떻게 기지를 빠져나갈까.
하지만 이렇다 할 아이디어는 결국 무엇 하나 떠오르지 않았다. 에리카가 제안한 것은 「무기와 차를 뺘앗아서 게이트를 강행돌파하고 뒤쫓아오는 녀석은 전부 죽인다」라는 터무니없는 것 뿐이었다. 네바다에 있던 시절에는 기지를 빠져나온 적도 몇 번인가 있었지만, 과거에 사용했던 수법이 또다시 통용되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데다가, 그 시절과 지금은 기지 안의 상황도 주변부의 상황도 전혀 다르다. 거기다――
무엇보다도, 그 시절의 이리야에게는 동료가 있었다.
고작 혼자서 기지에서 빠져나간다는 건 절대로 무리다.
한순간이라도 꿈을 꾸게 되어버리면, 그것이 엎어졌을 때의 낙담도 어지간한 게 아니다.
「누구 적당한 녀석에게 미인계로 부탁하는 건 어때? 다른 기지로 운반하는 시체 자루 속에 숨는 건?」
에리카는 현실성 제로인 계획만 쉴새없이 제안했다. 굳이 따지자면 조용하고 침착한 성격이었던 에리카는, 죽은 걸 경계로 초인적인 수다쟁이로 변했다. 천박한 농담이나 난폭한 말도 태연하게 입에 올리게 된 데다가, 어떤 종류의 패턴에 빠지게 되면 몇 시간이고 끊임없이 떠들어대기도 한다. 그렇게 되면 대화도 성립하지 않게 되어버린다. 한동안 내버려둘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면서, 침대 위에서 둥글게 몸을 만 채로 담요 안에서 팔만 내밀어 손으로 더듬으며 수화기를 들자,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발령소의 오퍼레이터가 새로 실장한 센서 시스템 데이터를 얻기 위해 지금 바로 비행할 준비를 하라고 말한다.
이럴 때 이리야는 처음부터 일단 포기한다.
명령의 내용에 상관없이 「라져」라고 대답하고, 쓸데없는 질문은 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거기서 「어째서 사전에 예고도 없이 테스트 비행 따위를 하는 거냐」고 수화기에 따져봤자 제대로 된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제4에이프런 근처 산속에 죽치고 있던 멍텅구리 중학생 약 2명이 간신히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시작했다는 것도, 그 덕분에 에노모토가 날조해서 내리고 있던 기밀유지경계태세 중 몇 가지가 근거를 잃고 해제되어버렸다는 것도, 그 덕분에 질리지도 않고 계속되었던 스컹크로부터의 독촉이 마침내 정치역학적인 댐 붕괴를 일으켰다는 것도, 그 덕분에 여름 내내 쌓일 대로 쌓여 있었던 이리야의 숙제 거의 전부에 일제히 그린 라이트가 내려졌다는 것도, 이리야 본인에게 알려질 일은 영원히 없다.
아무튼 이리야는 포기하고서, 「라져」라고 대답하고, 쓸데없는 질문을 하지 않았다.
언제나 있는 일이였다.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져 있었다.
담요 안에서 팔만 내민 채 수화기를 되돌려놓은 순간,
「그거야」
이리야가 무심코 담요로부터 얼굴을 내민 건 「뭐가?」라고 되묻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수다쟁이 모드에 빠진 에리카가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오는 건 엄청나게 드문 일이었다.
「절호의 찬스야. 딱 안성맞춤이잖아」
「――무슨 의미?」
에리카는 대담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올라가기만 하면 이쪽 마음대로란 거야. 하늘은 우리들의 세계잖아?」
이 탈주계획에 있어서 최대의 문제점은, 소노하라 기지의 발령소가 상시 100 채널 이상의 회선을 사용해서 블랙 만타의 상황을 모니터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다시 말해 구두로 이상사태 발생을 보고하면서 비틀거리며 비행해봤자, 실제로는 그것이 이리야가 조작한 대로 기동하는 것 뿐이라는 사실이 곧바로 들통나버린다. 그쪽에서는 어떤 식으로 보이는지는 모르지만 조종할 수 없는 건 없는 거라고 우기는 방법도 없지는 않지만, 발령소에는 외부 커맨드로 만타의 오토 파일럿을 강제적으로 엔게이지(기동)한다는 비장의 수단이 남겨져 있으니까, 최종적으로 기지로 끌려오게 된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외부 커맨드를 포함한 모든 신호를 커트하고서 발령소의 모니터에 더미 정보를 흘려보낼 수만 있다면 이리야의 거짓말은 들키지 않는다. 외부에서 오토 파일럿을 조종당해서 기지로 억지로 끌려오는 일도 없다. 그러기 위한 바이러스를 에리카는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작성해줬다. 에리카는 거기다 정규 응답신호에 고유의 암호수열 대신 「선생님 배가 아파요」라는 아스키(문자열)을 덧붙여서 송신하도록 프로그램을 변경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만둬 그런 건, 틀림없이 들켜버릴 거야.
――괜찮다니까, 들킬 리 없다고.
바이러스가 연출하는 비상사태는 지극히 복잡하면서 심각한 내용이다. 하지만 그 내용을 전부 파악하고서 구두로 반복할 필요는 없다. 파일럿이 보고하는 상황과 발령소가 모니터하고 있는 상황이 다소 어긋나는 정도가 오히려 리얼하다고 에리카는 말한다. 아무튼, 발령소를 완전히 속여넘길 수 있다면 이 계획의 절반은 성공한다. 거기서부터는 스피드 승부. 다이브(급강하)로 레이더를 뿌리치고, 눈에 띄지 않도록 산과 산 사이를 초저공으로 무음비행해서, 미리 점찍어둔 후보지점 중 어딘가에 도달하기만 한다면, 남는 건 담력승부.
――역시 그만둘래, 다음 번에 할래.
――다음이라니 언제? 수영장에서 헤엄치고 싶지 않아?
헤엄치고 싶었다.
운도 이리야의 편을 들어줬다. 타올이나 갈아입을 옷을 채워넣은 배가방을 콕핏에 가져왔을 때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얼굴에 드러났을 테인 불안과 긴장을 평소의 무표정과 구별하는 건 누구에게도 불가능한 일이었던 데다, 시스템 기동과 동시에 감염된 바이러스는 프리플라이트 체크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이리야가 비행 슈트 아래에 아직 명찰을 붙이지 않은 학교 수영복을 입고 있다는 사실은 하느님과 에리카밖에 모른다.
「제1후보지점까지 직선등속으로 앞으로 3분」
MFD에 표시된 GPS 정보를 에리카가 읽어내린다. 이리야는 광학시야에 모든 신경을 집중해서 지면을 기어다니는 듯한 저공비행을 계속한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납작한 산과 경작지의 연속이었고, 농사길 위를 가는 차의 종류를 무배율로도 또렷하게 구분할 수 있었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고도경고의 합성음성은 마치 말하는 자명종 시계 같았다. 엔진을 계속해서 무음구동시킨 탓에 실속 직전까지 속도가 떨어져 있었지만, 이 정도로 고도가 낮으니 속도감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였다. 마치 순항 미사일이라도 된 기분이다.
「이제 곧 보일 거야」
보였다.
두 줄기의 용수로 사이에 V자 모양으로 끼여있는 광대한 목초지.
광학화상과 지형정보를 대조하고 한층 더 GPS 좌표를 맞춰본다.
틀림없다. 제1후보지점이다.
「마지막으로 확인할게. 우선 바이러스는 그대로 내버려둘 것. 77의 커트도 오토 파일럿 기동도 바이러스가 해줄 테니까. 만타가 발령소의 신호에 유도될 동안은 계속해서 더미 정보를 흘려보내다가 착륙해서 대기속도가 50노트 이하가 되면 플라이트 레이더의 로그(기록)을 모조리 삭제해서 자기소멸하는 구조야」
응, 하고 이리야는 중얼거린다.
「다시말해, 만타가 무인으로 날고 있다는 사실은 마지막까지 들키지 않으니까, 그 사이 너는 추격자를 신경쓸 것 없이 돌아다닐 수 있다는 거야. 만타가 소노하라 기지에 착륙해서 콕핏 안이 비어있다는 게 들킨 시점에서 처음으로 네가 탈주했다는 게 발각돼. 그 다음은 네가 노력하기 나름이야」
응, 하고 이리야는 중얼거린다.
「그리고 있지, 조금 더 상승해서 고도를 붙이는 편이 좋다고 생각해. 대기속도는 250노트 정도가 베스트일까. 턱을 당기고 등을 펴고 머리를 제대로 고정해」
세 번쨰 대답은 할 수 없었다. 입 안이 바짝바짝 말라 있었다. 헬멧 안에서 반사되어 들리는 스스로의 호흡 소리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에리카는 그런 이리야의 불안을 웃어넘기듯이,
「뭐, 그 정도는 말 안해도 알겠지. 그야 결국 나도 베일 아웃(탈주) 같은 건 경험해보지 못했으니까 말야. 그치만 뭐 상관없잖아, 실패해도. 천국의 좌표는 아까 말한 대로니까. 그럼 나는 먼저 돌아가 있을게」
이리야는 들릴락 말락한 목소리를 냈다. 에리카는 이리야가 모르는 곳으로는 갈 수 없다. 처음부터 에리카는 여기서 돌아갈 예정이었던 데다가, 이리야도 그 사실은 납득하고서 이 탈주계획을 시작했을 테다. 하지만 막상 닥치게 되니, 혼자 외톨이로 남겨지는 건 역시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무섭다.
에리카는 이리야를 바라보며, 조금 쓸쓸한 듯이 웃었다.
「――어쩔 수 없는 걸. 내 세계는 하늘 뿐이니까 말야」
그리고 에리카의 기척은 콕핏으로부터 사라졌다.
외톨이가 되었다.
앞으로 한순간이라도 망설였다가는 두 번 다시 용기를 끌어모을 수 없게 된다.
무음구동을 해제, 애프터 버너 점화. 연료를 꿀꺽 삼킨 엔진이 거대한 추력을 발생시키자 만타는 로켓처럼 급상승하기 시작한다. 턱을 당긴다, 머리를 고정하고 등을 편다, 사출시의 충격은 20G였던가, 아니면 30G였나, 괜찮아, 무사히 후보지점에 착지할 수 있을까, 틀림없이 괜찮을 거야, 바람에 휩쓸려버리면 어쩌지, 턱을 당긴다, 머리를 고정한다, 등을 편다, 틀림없이 틀림없이 괜찮을 거야, 손으로 더듬는다, 노란색과 검은색이 섞인 레버, 양 다리 사이에 있는 레버, 턱을 당긴다, 머리를 고정한다, 등을, 250노트, 틀림없이 틀림없이 틀림없이, 레버를, 있는 힘껏,
당긴 순간 의식이 날아갔다.
사출좌석에 의한 탈출이란 건 일반적으로 여겨지는 것만큼 안전한 물건이 아니다.
소노하라 기지의 통계에 의하면, 작전 중에 실시된 탈출 중 살아서 지상에 도착한 예는 전체의 약 70 퍼센트. 그 중 다시 파일럿으로 복귀 가능한 자는 50 퍼센트를 밑돈다.
블랙 만타의 탈출 시스템은 공화국 계열의 기술을 바탕으로 비용이란 비용은 전부 도외시해서 개발된 더없이 최첨단인 물건이다. 하지만 그 최첨단인 시스템을 가지고도 고속으로 비행하는 기체로부터 맨몸의 인간을 내던져서 파라슈트로 생환시키는 일이 지극히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레버가 당겨진 순간 블랙 만타 3호기는 콕핏 시트를 사출, 이리야는 여름의 하늘에 28G로 내던져졌다.
이리야가 사출된 직후 에리카의 바이러스가 오토 파일럿을 기동, 만타는 오른쪽으로 브레이크해서 사출된 시트가 만에 하나라도 휘말리지 않도록 거리를 벌렸다. 한층 더 선회하면서 상승, 발령소로부터의 지시신호를 따라 소노하라 기지로 향하는 귀로에 오른다.
이게 만약 고고도에서의 탈출이었다면 이리야는 공 모양의 콕핏 캡슐째로 사출되었을 테다. 이 캡슐은 저온이나 산소결핍이나 급감압 같은 가혹한 환경으로부터 파일럿을 지키는 역할을 한다. 발루트를 전개해서 속도를 제어하며 낙하해가고, 이윽고 저고도 탈출용 시퀀스에게 제어를 넘겨주게 된다.
하지만 이리야의 경우는 처음부터 저고도에서의 탈출이었다.
충격으로 실신한 이리야를 태운 채 콕핏 시트는 공기저항으로 감속하기 위해 한동안 자유낙하를 계속했다.
3호기의 시트는 이리야의 체형에 맞춰서 설계되어 있다. 고도가 지나치게 낮은 것 이외에는 거의 이상적인 조건에 가까운 탈출이었으니 모든 것이 설계한 대로 움직인다면 시트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비행할 터였지만, 현실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았다. 시트는 세로 방향으로 격렬하게 회전하면서, 녹색의 대지로 빨려 들어가듯이 낙하해간다.
이 시점에서 시트에 탑재되어 있는 프로세서가 해야 할 일을 시작했다. 이리야에게 비상용 산소를 공급, 하네스의 상태를 확인, 고도와 속도를 계측. 우선 시트의 회전을 억제하지 않으면 안 된다. 프로세서는 드로그(유도 낙하산)를 방출할 타이밍을 노리며 마이크로세컨드 단위로 초읽기를 개시한다. 3, 2, 1, 마크.
실패했다.
회전을 억제하기도 전에 드로그가 시트에 말려들어 휘감길 뻔 했다. 즉시 케이블을 잘라낸다. 예비는 앞으로 두 대. 3, 2, 1, 마크.
이번에는 잘 됐다.
시트의 회전이 멈췄다. 드로그의 공기저항으로 낙하속도가 한층 저하, 낙하궤도도 거의 수직으로 변한다. 비상용 산소의 소비량에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시트의 회전이 멈췄을 때의 충격으로 실신해 있던 이리야가 눈을 뜬 것이다. 프로세서는 최후의 초읽기를 개시한다. 드로그를 절단, 메인 파라슈트의 방출, 모든 코드에 걸린 힘을 개별적으로 계측해서 산개 상황을 감시――허용범위내.
마크.
모든 하네스의 록이 해제되었다.
시트가 완전히 떨어져 나간다.
그리고, 이리야는 하늘 한복판에 있었다.
의식이 서서히 또렷해진다. 자전거로 언덕을 내려갈 때 정도의 귀를 스치는 바람소리가 들려온다. HMD의 바이저를 밀어올려 두 눈을 대기에 노출시키자 해질녘의 태양빛이 머리 밑바닥까지 스며들어온다. 커다란 구름의 연쇄에 부드럽게 반사된 태양빛을 받으며, 파라슈트는 마치 부채꼴의 골격을 가진 거대한 해파리처럼 보였다.
8월 31일의 하늘.
커다란 난층운이 아로새겨진, 붉고 푸르고 하얗고 검은 여름의 하늘.
마음이 빨려들어갈 것 같은 하늘이었다.
――해냈다.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탈출에서 살아남았다.
이리야는 고도계의 수치를 확인한다. 후보지점의 목초지로부터 상당히 서쪽으로 벗어났지만, 어떻게든 될 거라고 생각한다. 가장 위험한 고비는 이미 넘겼으니까. 파라슈트 강하만이라면 훈련으로 몇 번이나 해본 적 있다. 눈 앞의 광경에서 시선을 헤매며 착지하기 적당한 평지를 찾는다.
이리야가, 여름의 하늘에서 지상의 세계로 떨어져간다.
*
훗날의 조사에 의하면, 이리야가 탈출한 지점은 불스아이 방위 115의 거리 33NM의 고도 3――시키시마쵸 오오카와 지구의 상공 3000피트 부근으로 추정된다. 콕핏 시트의 잔해도 근처의 산림에서 회수되었지만, 메인 파라슈트와 거기에 부속된 장비 대부분에 대해서는 마지막까지 발견되지 않은 채로 남았다. 어딘가의 호사가가 가져갔을지도 모르고, 불법투기된 쓰레기인줄 알고 누군가가 처분해버린 걸지도 모른다.
코우노 미츠히로는 오오카와 근방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호랑이 영감으로, 당뇨병 악화를 이유로 철도회사의 차장직에서 은퇴하고 현재는 농업에 종사하는 52세다. 8월 31일 오후 7시경, 작업을 끝내고 차로 귀가하는 도중이었던 코우노는 양배추 밭 한가운데를 비스듬하게 횡단해서 걷고 있던 소녀의 모습을 목격했다. 나이는 13인가 14살, 머리카락이 길고, 무늬 없는 티셔츠에 얇은 팬츠라는 복장으로 소노하라 기지의 병사가 가지고 있을 법한 커다란 가방을 손에 들고 있었던 모양이다. 수상하다고 생각한 코우노는 차를 멈추고 창문에서 몸을 내밀며 「밭에 들어가지 마라」라고 큰 소리로 주의를 주자 소녀는 무척 당황하며 달아났다고 한다.
와타나베 마코토는 오오카와 도로변에 있는 슈퍼마켓 「마하 이치노세」의 점장으로, 통신강좌로 배운 공수도 초단 실력을 가진 서른세 살이다. 오후 7시 10분경, 화장실에 숨어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와타나베는 주차장 방향에서 들려오는 버저 비슷한 소리가 이모빌라이저의 경고음이라는 사실을 눈치챘다. 110번 신고를 받고 달려온 경찰순사가 조사해본 결과, 범인은 일단 주차장에 세워져 있던 원동기 스쿠터를 훔치려고 했다가 실패하고,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하자 당황해서 근처에 있던 자전거를 타고 도주한 모양이다. 도둑맞은 자전거는 이틀 뒤, 도로를 3킬로 정도 남하한 근처에 있는 버스 정류소에서 발견되었다.
아즈마 쇼우코는 소노하라 교통버스 주식회사의 유일한 여성운전수로, 멜론과 생햄의 조합을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스물일곱 살이다. 8월 31일 밤, 아즈마가 운전하는 버스가 종점인 「소노하라 역앞 버스터미널」에 도착한 것은 정각대로 오후 7시 45분. 늘 보던 면면들이 차례로 내리고 나서, 마지막 한 명은 커다란 가방을 손에 든 낯선 소녀였다. 중학생 정도에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카락, 복장에 대해서도 전술한 코우노 증언과 거의 일치한다――다만 아즈마에 의하면 수수하면서도 나름대로 브랜드 물건으로, 그러면서도 미묘하게 사이즈가 커서 마치 누군가가 준비해준 옷을 아무 생각없이 입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소녀는 1만엔 지폐의 환전을 요구했고, 거기에 응한 아즈마는 소녀가 손목에 리스트 밴드 같은 것을 차고 있는 것을 분명하게 목격했다.
미사와 슌지는 주로 막노동 계열 아르바이트를 생업으로 삼은 프리터로, 남자 독신 생활에 필요한 라이프라인은 「전기 수도 가스 AV」라고 굳게 믿는 스물네 살이다. 미사와의 아파트로부터 가장 가까운 렌탈 비디오 가게는 하천 건너편의 상업지구에 있는 「미디어 드림」으로, 카와후지 대교를 건너서 바로 오른쪽에 있는 파친코 가게 주차장을 가로질러 가는 게 가장 가깝다. 신작 여교사물을 두 권 빌려서 귀가하던 도중, 미사와는 당초 자신의 10미터 정도 전방에서 자신과 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던 소녀를 조금도 신경쓰지 않았다. 하지만 미사와와 소녀가 카와후지 대교를 중간쯤 건넜을 때, 전방으로부터 다가온 순찰차의 모습을 목격한 소녀는――미사와의 말을 그대로 인용한다면――「놀라 멈춰서서」, 「주위를 둘러봤지만 다리 위에는 숨을 장소도 없었기 때문에」, 「차도에서 등을 돌려 얼굴을 숨기고」, 「순찰차를 지나치자 곧바로 달려 그 자리를 떠났다」라고 한다. 긴 머리카락과 커다란 가방 이외의 소녀에 대한 자세한 특징을 미사와는 기억하고 있지 않다.
요네다 나오미는 맹장염을 앓고 요양휴가중인 WAC(여성자위관)로, 이시카와 병원의 맛없는데다 양도 부실한 식사를 견디지 못하고 밤이면 밤마다 탈주 행위에 몰두하는 스물두 살이다. 오후 8시경, 가까운 편의점에서 군것질을 마친 요네다는 소노하라 중학교 부지를 따라서 놓인 도로를 지나가던 중, 운동장 서쪽의 통행문 앞에 멈춰 서있는 정체불명의 사람 그림자를 목격했다. 그림자는 아마도 여성이었고, 머리카락이 길고, 부지와 도로를 가르는 펜스 너머로 소노하라 중학교의 목조 건물을 가만히 올려다보고 있는 듯했다. 도로에는 가로등도 없고, 이 세상의 존재가 아닌 듯한 분위기에 겁을 먹은 요네다는 뒤로 돌아서 왔던 길을 되돌아가려고 했지만, 그 순간 등 뒤에서 메미 울음소리가 들리는 바람에 놀란 요네다가 뒤를 돌아봤더니 그림자는 홀연히 모습을 감췄다고 한다. 또한, 이 때 요네다는 안경을 쓰고 있지 않았고, 시계 종류도 몸에 지니고 있지 않았다. 때문에 그림자의 자세한 복장에 대해서도, 가방의 유무에 대해서도 요네다는 증언할 수 없었고, 오후 8시라는 목격시각 역시 병원에 돌아간 뒤 본 텔레비전 방송의 내용을 근거로 하는 대략적인 추정에 지나지 않는다.
아사바 나오유키는 소노하라 중학교 2학년 4반 출석번호 1번으로, 8월 31일이 됐는데도 숙제에 손도 대지 않은 열네 살이다.
아사바는 학교 미공인 신문부에 소속되어 있었고, 신문부의 여름 테마는 UFO였다. 아사바는 신문부 부장과 함께 UFO 기지라는 소문이 떠도는 소노하라 기지의 뒷산에 틀어박혀서 쌍안경으로 감시하거나 항공무선에 귀를 기울이거나 너구리에게 먹이를 주거나 한창 왕성한 커플의 차에 폭죽을 던지거나 하면서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을 하루도 남김없이 써버리고 말았다. 철수작업을 끝내고 뒷산에서 내려온 것이 오후 5시경, 부장과 헤어져서 홀로 자전거를 타고 귀로에 오른 아사바는, 눈 앞에 닥쳐온 2학기와 등 뒤까지 바짝 쫓아온 숙제로부터 도피하기 위한 하나의 모험을 떠올린다.
밤의 학교 수영장에 숨어들어서 헤엄치겠어.
그건 아사바에게 있어서, 소노하라 기지의 뒷산에 송두리째 잡아먹혀 사라진 여름방학을 되찾기 위한 행위였던 것이다.
북쪽 통행문을 뛰어넘는다. 부활동 건물 뒷편을 빠져나가서 소각로 그늘에 숨은 것이 오후 8시 14분. 어둠에 잠긴 목조건물, 평소보다 늘어나서 소란스러운 순찰차 사이렌, 밤하늘을 등지고 서있는 불단 가게의 광고탑. 수영장에 붙어있는 탈의실 입구에 뛰어든 뒤, 거기서 아사바는 자신이 수영복 같은 걸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간신히 깨닫는다.
생각해보면, 그게 최후의 찬스였던 걸지도 모른다.
여기에 이르기까지 다른 길은 얼마든지 있었던 것이다. 뒷산에 틀어박혀서 UFO 찾기 따위 거절해버리면 거기서 끝난다. 차마 거절하지 못했다고 해도 숙제를 하다못해 절반이라도 해뒀다면 그 뒤의 전개도 달라졌을 테다.
수영복 바지 없이 수영장에서 헤엄칠 수는 없다고 단념하기만 했다면, 그 순간 이 여름은 숨통이 끊어지고, 아사바 나오유키는 그 뒤에도 일상 쪽에 머무를 수 있었을 테다.
그렇지만 아사바는 학교 지정 체육복 반바지를 입고 헤엄치기로 결단했다.
갈아입기를 끝내고, 벗은 옷을 가방에 쑤셔넣고 탈의실의 어둠으로 발을 내딛는다. 샤워도 소독장도 그냥 지나친다. 예전에 거기서 넘어져서 피투성이가 됐던 친구가 있었던 걸 아사바는 문득 떠올리고 혼자 웃는다. 태평스럽기도 하다――웃고 있을 때가 아닌데도.
스윙도어를 밀어젖히고, 밤의 수영장 가장자리로 나왔다.
*
목숨 간당간당하게 간신히 도착한 밤의 수영장은 생각보다도 상당히 좁았고, 생생한 염소 냄새가 났고, 밤하늘의 별과 어둠을 비춰서 바닥이 보이지 않았다.
이리야는 왠지 타원형의 수영장을 상상하고 있었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검은 수면은 비현실적일 정도로 정확한 직사각형이다. 페인트가 벗겨진 미터 표시에 의하면 세로 방향으로 25미터. 가로 방향은 15미터 정도일까. 수영장 가장자리의 콘크리트가 거칠거칠해서 발바닥이 아프다. 등 뒤에는 땅딸막한 탈의실 건물과 거기에 나란히 설치된 형태로 두 대에 파이프 여섯인 급수설비가 있다.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합성수지 벽에는 「준비운동은 빠짐없이」「수영한 뒤에는 눈을 씻자」「수영장 가장자리를 달리지 않는다」라고 일본어로 쓰여진 패널이 걸려 있었다.
전체적으로 놀이장소라기보다는 일종의 훈련시설 같은 느낌이다.
수영장 가장자리에서 옷을 벗어던지고 수영복 차림이 되었다.
머리카락을 가지런히 모은 뒤 가방에서 수영모자를 꺼내 빈틈없이 쓴다. 조금 주저하면서, 손목 보호대도 벗어서 내던졌다. 낯선 장소에서 수영복 하나만 걸친 채 서있다는 너무나도 무방비한 상황에 등골이 오싹한다. 소리없이 심호흡, 한번 더 심호흡, 천천히 수영장 경계로 다가가서, 시커먼 수면을 내려다보고,
무섭다.
단숨에 용기가 꺾였다.
무릎이 후들거린다. 서 있을 수 없어서 옆에 있는 손잡이에 매달린다.
가까이에서 본 시커먼 수면은 어떤 다른 차원의 산물 같았다. 깊이도 100미터 정도는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무의식으로 도움을 요청해서 주위를 둘러봤지만, 암흑으로 에워싸인 수영장에서 이리야는 혼자였다. 준비운동은 빠짐없이, 수영한 뒤에는 눈을 씻자, 수영장 가장자리를 달리지 않는다――하지만, 구체적인 헤엄치는 방법에 대해서는 어디에도 쓰여 있지 않았다.
――헤엄치고 싶어.
――헤엄칠 수 있게 되고 싶어.
다시 한 번 용기를 쥐어짠다.
눈을 뜬다. 찰랑찰랑하게 가득찬 검은 물을 들여다보자 그 순간 몸이 움츠러든다.
기지를 빠져나와서 수영장에 숨어들기만 하면, 그 다음은 어떻게든 될 거라고 아무런 근거도 없이 생각하고 있었다.
낯선 밤의 수영장이, 어둠 속의 대량의 물이 이렇게나 무서울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하다못해.
하다못해 에리카가 있어줬다면, 하고 생각한다. 사막에서 자란 밴디트-1 중에서 유일하게 헤엄칠 수 있었던 건 에리카다. 만약 여기 살아있던 시절의 에리카가 함께 있어줬다면, 겁먹은 자신을 격려하며 헤엄치는 법을 하나부터 가르쳐줬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치만, 지금의 에리카는 다르다.
지금의 에리카는 애초에 이 장소에 오는 게 불가능한데다, 만일 지금의 자신의 모습을 본다면 손가락질을 하며 큰 소리로 웃은 뒤 틀림없이 이런 말을 할 테다――
――차라리 뛰어들어서 죽어버리는 게 어때?
「아――,」
그 순간, 이리야의 뇌리에 하나의 이해가 스쳐지나갔다.
지금의 에리카는 틈만 나면 「죽는 게 어때」라고 권해온다.
그 에리카가, 헤엄치고 싶다면 밤의 수영장에 숨어들라고 자신을 꼬드겼다. 어째서일까.
제이미는 사막에 떨어져서 공원이 됐다. 딘은 최초의 「전사자」였다. 그 뒤 엔리코가 9밀리탄으로 스스로의 머리를 날려버렸고, 마지막으로 남았던 에리카는――계속 함께 있어 주겠다고 약속했을 터였던 에리카는, 출격한 뒤 돌아오지 않았다.
어째서일까.
어쩌면, 딘에게는 제이미의 유령이 보였던 걸지도 모른다.
그리고 엔리코에게는 딘의 유령이, 에리카에게는 엔리코의 유령이 보였던 걸지도 모른다. 격리되어 있을 터였던 엔리코가 어디서 권총을 손에 넣었는지는 마지막까지 수수께끼였고, 에리카의 마지막 출격은 「미귀환」이라는 형태로 끝났다.
엔리코에게 권총을 건네준 것은 딘의 유령이었던 게 아닐까.
에리카에게 「천국의 좌표」를 가르쳐준 건 엔리코의 유령이었던 게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이리야는 다시금 세로 25미터 가로 15미터의 시커먼 수면을 바라봤다.
이것이 자신의 「죽음」인 것이다.
이리야는 납득했다.
더이상 두렵지 않다. 지금의 자신이라면 틀림없이 헤엄칠 수 있다고조차 이리야는 생각한다. 상상해본다――여름방학 최후의 밤, 인류 최후의 보루인 소노하라 기지의 근처. 어느 중학교 수영장에서, 밴디트-1의 최후의 생존자가 학교 수영복을 입고 수영모자를 쓰고서 천천히 물속으로 들어간다. 물은 따뜻하지도 차갑지도 않고, 마치 한방울씩 맺힌 어둠이 몇만 년에 걸쳐 모인 것처럼 부드러워서, 최후의 생존자는 천천히 천천히 계속해서 헤엄치다가, 수영장 한가운데에 도달한 순간 호흡과 고동이 멈춘다.
첨벙.
수영 모자가 검은 수면에 가라앉는다.
그걸로 끝.
검은 양복들이 아무리 찾아도 유해는 영원히 발견되지 않는 것이다.
나쁘지 않다고 이리야는 생각했다. 에리카에게 감사하고 싶은 기분이다. 살아가는 것도 죽는 것도 한참 전에 포기하고 있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기지를 빠져나와서 수영장에 숨어들어서 헤엄치는 정도는 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사형수에게도 최후의 담배 정도는 피우게 해주는 법이니까.
그리고 그 담배에 독이 발라져 있다니, 제법 나쁘지 않은 배려라고 생각한다.
이리야는 수영장 경계에 쪼그려 앉은 채, 손을 뻗어서 수면을 만져본다.
손가락 끝으로, 물을 살짝 휘젓는다――
――거 봐, 괜찮아.
더이상 아무 것도 무섭지 않아.
더이상 아무런 각오도 필요 없어. 그리고 이리야가 일어서려고 했을 때, 그 순간은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등 뒤에 누군가가 있다.
「저기,」
이리야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 놀라움이 모든 걸 뒤엎어버렸다.
무섭다. 그러니까 돌아보고 싶지 않다. 하지만 너무 무서워서 몸이 멋대로 등 뒤를 돌아보려고 한다. 회전하는 양팔의 기세를 이기지 못한 상체가 등쪽으로 젖혀지며, 그럼에도 간신히 체중을 버티고 있던 왼쪽 다리의 뒤꿈치가 미끄러진다. 비명을 지르지도 못했다. 양 다리가 완전히 공중에 뜬 채로, 오른손은 있지도 않은 지면을 허무하게 더듬는다. 고작 일 초가 미세한 파편으로 산산조각나며 시간이 끝없이 늘어난다.
그리고, 등 뒤에 있는 소년과 눈이 마주쳤다.
누구일까, 하고 한순간만 생각한다.
그 순간, 두 사람의 시계는 아직 맞물리지 않았다. 소년은 아직까지도 지극히 당연한 시간의 흐름 속에 있었고, 이리야의 몸에 일어난 사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입가는 말을 걸었을 때의 모양인 채, 오른손은 어중간하게 내민 채, 하지만 시선만은 이리야를 뒤쫓고 있다. 끝없이 늘어난 시간 속에서 이리야의 왼손이 천천히 소년 쪽으로 뻗어간다.
도와줘, 라고 이리야는 생각했다.
바로 방금 전까지 죽음을 각오하고 있었던 주제에.
IFF 커멘드(식별신호)에 응답하지 않는 오브젝트는 전부 적이라고 배웠는데도.
그렇지만 도저히 제 때 맞출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소년의 시계는 아직 이리야의 것을 따라집지 못했다. 앞으로 몇 순간 뒤 이리야의 엉덩이가 수면으로 떨어진다. 거울 같은 평면이 흐트러지고, 여름의 밤에 화려한 물거품이 튀어오르며, 차가운 물 속에 몸이 가라앉아 갈 것이다.
그런데도, 소년은 여전히, 어쩐지 얼빠진 느낌의 표정을 띄운 채 이리야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끝
하루 지났지만 UFO의 날 기념으로 단행본에 미수록된 단편소설을 번역해봤습니다,
20년 넘은 틀딱 라노벨이지만 지금도 충분히 읽어볼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카쿠요무에 1권 첫 에피소드가 올라와 있으니 관심이 생기셨다면 참고하셔도 좋겠습니다.
https://kakuyomu.jp/works/1177354054885579795


개추
헐 개추개추개추 이런게 있었음?? 미쳤다 - dc App
이거 재미있었음. 추억뽕인지 몰라도
추억뽕이라기엔 롱셀러 작품이라
애니 ost 바로 뇌내재생되네 - dc App
와
따흐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