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은 내가 빨랐다. 그 일이 있던 다음에 나는 아침까지 울고 조금 자고 일어나서도 계속 울고.
다시 밤이 될 무렵에야 간신히 회복했다.
모두와 떠나버린 날 밤부터 둘째 날 아침인 일요일.
오랜만에 내 방에서 잠든 나는 모두가 사준 커다란 토끼인형을 옆에 두고 침대에서 일어난다.
창문을 열면 좋은 날씨. 정말 좋은 아침!
"코가 군, 좋은 아침~!"
예전에 받았던 열쇠를 이용해 남자친구의 방에 들어간다.
코가 군은 좌탁 앞에 앉은 채로 한숨도 자지 않은 모습이었다.
이틀 연속 자지 않은 것 같았고, 눈 밑에는 엄청난 다크서클이 있었다.
그리고 얼굴도 홀쭉해졌다. 뭐, 당연하지. 이 사람은 누구보다도 그 다섯 명을 보물처럼 생각했으니까.
코가 군은 그날 밤부터 줄곧 넋이 나간 폐인 같은 상태가 되어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그래도 내가 울고 있을 때는 비록 말이 없어도 계속 옆에서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는데. 좋은 남자친구가 생겼구나, 라고 다시 한번 생각했다.
"아침 밥 만들러 왔어! 오늘은 빵이랑 베이컨 에그야. 코가 군이 마시는 따뜻한 우유에 맞춰서 양식으로 해주는거라고? 기쁘지."
".................."
"먼쩌 따뜻한 우유 만들어줄테니까 조금만 기다려줘."
".................."
"흥~♪ 아, 있잖아, 연말에는 본가에 가거든? 나 섣달 그믐날의 텔레비전을 좋아하는데, 만약 돌아가지 않는다면 같이 보자."
".................."
"자, 따뜻한 우유 됐어. 마실 수 있어?"
"..... 게."
"어? 뭐라고 한거지! 뭐야?!"
"... 어떻게 그렇게.... 기운차게 있을 수 있지?"
───────────────────────── 뭐라고 하는거지?
내 얼굴을 본 코가 군이 "아." 라고 작게 목소리를 냈다.
"... 미안. 방금은 못 들은 걸로 해줘... 정말, 미안해."
"... 아냐, 괜찮은데?"
이렇게 금방 상대방의 눈치를 채고 사과해주는 건 코가 군의 미덕이다.
이제 우리 둘 뿐인데 이런 걸로 싸우고 싶지 않다. 표정에 나와버린 걸 깊이 반성하며 나는 미소를 짓는다.
"아, 오늘 날씨도 좋고. 기분 전환하러 잠깐 나가지 않을래?"
코가 군은 특별히 싫어하지도 않는 대신 행선지도 묻지 않았다.
대신 나도 갈 곳 같은 건 없다. 솔직히 알아볼 기운도 없다.
점심이 지나서 나온 우리는 일단 전철을 타자고 이야기했다.
그래도 내릴 역은 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대로 종점까지 가버린 탓에 마지막 역에서 내렸다.
그 곳은 해안가의 적막한 무인 역이었고 내리는 사람도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고지대의 무인 역 승강장에는 벽도 없어 이따금 강한 바닷바람이 몰아친다.
겨울의 얼어붙는 공기를 머금은 그 바닷바람은 사정없이 차가웠다.
"바다가 있는 것 같은데 어떡하지? 걸어볼래?"
"... 아니, 여기 있자."
코가 군은 벤치에 힘없이 주저앉았다. 집을 나서기 전에 조금 쉬게 했지만 역시 이틀 연속으로 잠을 자지 않던 그에게는 걸을 기운도 없는 것 같다.
나도 코가 군 옆에 앉았다. 나란히 앉은 우리 눈 앞에 커다란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어느새 하늘은 먹구름으로 뒤덮여 있어 결코 예쁜 광경이라고 할 수 없다.
회색에 어두컴컴하고 흐리멍텅했다.
... 친구를 모두 잃고, 그래도 어떻게든 연인을 계속 이어나가는 우리들 같다.
"아, 코가 군. 저거 봐."
회색의 먹구름이 흰 눈을 떨어트려왔다. 여느 첫 눈과는 달리 펑펑 내리며 시야는 순식간에 하얀색으로 가득해졌다.
이 정도면 쌓일 수도 있다는 것에 나는 기뻤다.
비록 초라한 우리들이지만 이 눈이 모든 걸 하얗게 물들일 것 같아서.
"맞다, 자, 이거."
방금 완성한 손뜨개 목도리를 가방에서 꺼낸다. 아이러니하게도 색깔은 검은색이었는데.
"좀 이르지만 내 크리스마스 선물. 방해되지만 길게 만들어 봤어."
옆에 앉아있는 코가 군의 목에 감아주고, 긴 목도리라 남는 부분을 내 목에 감아봤다.
"음, 이거 해보고 싶었어. 둘이 목도리 하나 쓰는 거."
"... 고마워..."
코가 군은 아직 정신 없어하는 얼굴이었지만, 제대로 감사인사를 해줬다.
"아직 추워?"
"... 으응."
"그래도 이렇게 하면 좀 따뜻하겠지."
나는 살며시 그의 어깨에 몸을 맡긴다. 코가 군도 나에게 팔을 돌려 살며시 안아주었다.
코트 너머에서도 코가 군의 따뜻한 체온을 느낀다. 단지 그것만으로 두근두근거린다.
"이대로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봄이 됐으면 좋겠는데..."
나의 그런 혼잣말에 코가 군이 작게 반응한다.
"... 그렇지. 봄은 다 같이─── 둘이서 꽃 구경이라... 좋을지도 모르겠네..."
코가 군은 지금 다 같이 라고 말하려고 했다. 근데 그건 이제 영원히 이루어질 수 없는 꿈.
"음... 그렇게 되면 좋겠다......"
미안할 정도의 그 말 아래 우리는 말없이 눈이 내리는 넓은 바다와 거리를 계속 바라본다.
두꺼운 구름 때문에 태양은 보이지 않지만 주위는 조금씩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분명 맑으면 아름다운 노을을 볼 수 있을텐데 우리는 그것도 할 수 없었다.
이윽고 어둠이 거리를 뒤덮고 만다.
짙은 어둠 속에서도 계속 내리는 하얀 눈과 민가의 불빛만은 마치 별무리처럼 깨끗하고 환상적이었다.
빛을 잃은 우리에게 용서하는, 우리에게 보기 힘든 아름다움이다.
그러다 문득.
"... 나는 말하려고 생각했어..."
그의 무릎 위에 눈물이 뚝 떨어진다.
"코가 군...?"
"언젠가 모두에게 제대로 사과하고 모든걸 말하려고 생각했어..."
그의 쏟아지는 눈물을 응시한채 공허한 눈동자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하지만 상황은... 더 끔찍하게 되어서... 너무 늦었어... 난 항상 늦었어. 그러니까, 항상, 늦지 않게...!"
그런 그의 얼굴을 본 나는. 어렴풋이 자신의 입가가 일그러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 비웃고 있었다. 얼마나 어리석고 귀여운 사람인가.
이 사람은 아직도 자기 탓이라고 믿고 있다. 이런 건 누구 하나 잘못한 게 아닌데. 다들 비밀을 안고 있다가 단번에 터졌을 뿐인데. 새삼스레 생각해버렸다.
나는 꽤 코가 군에게 빠져들었구나 해서.
"나한테는 이제... 나루시마밖에... 없어..."
그래 코가 군. 넌 이제 나밖에 없어. 나도 너 밖에 없어.
이건 내가 이상으로 삼았던 최고의 해피엔딩이다.
연애를 위해서라면 친구 따위는 얼마든지 잘라버린다.
나는 옛날부터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텐데. 설마하던 내가 진심으로 친구르르 아끼려고 했다니.
친구라니, 연애에 방해밖에 안 되는데.
정말이지... 이 우정 몬스터에게 정말로 빠져들었다.
"나는 또... 친구를 잃고... 이제 혼자가 되는 건 싫은데..."
아하하, 코가 군 슬퍼보이네.
"외톨이 아니야. 코가 군한테는 내가 있어."
"음... 나루시마만은, 계속 곁에... 있어줘......."
아, 얼마나 귀여운 사람인가. 정말 사랑스러워 죽겠다.
코가 군은 이제 내가 없으면 안된다. 그 사실이 참을 수 없이 유쾌하다.
후후... 친구들이 모두 없어지고, 이제 슬슬 결과가 정해진 느낌.
5명의 우정을 남길까? 죽을 때까지 다섯명으로 있을래?
그런 건 처음부터 안된다고 정해져 있다. 연애가 꼬인 시점에서 이미 끝난거다.
그렇게 남기고 싶다면 계속 입 다물 수밖에 없다고 나는 몇 번이나 말했는데.
그런데도 아직도 전부 말하려고 했다는 말을 하게 되는거야?
아하하, 무리야. 그거 정말로 무리. 코가 군은 정말 어린아이.
정말로 허접하고, 바보인데다 귀찮아서. 하찮은 일에 의리를 내세우고, 무슨 일이 생기면 친구, 친구. 이제 정말 짜증나고, 구제 못하는 바보인데다, 언제까지나 어린애 같고, 정말 순수하고. 누구보다 친구 생각. 모두와 떠드는 걸 무엇보다 좋아하고... 나와 같은 위치에 서 있어주고... 처음으로 친구가 생겨서...... 정말 너무 즐거워서......
그러니까......! 그러니까 이런 코가 군은... 아니야!
"으...... 흐에에에에에엥~~~!"
나는 어린애처럼 울고 있었다.
"흐에엥! 울지 마, 코가 군. 울면 싫어! 흐에엥!"
"... 왜 나루시마까지......... 우는 거야...?"
"왜냐면...... 흐에에에에에엥~~~~~!"
알아버렸으니까. 내가 사랑한 코가 군은 친구를 무엇보다 아끼는 코가 군이라고.
그렇다면 처음부터, 나는 코가 군의 가장 큰 '적' 이었던 것이다.
모두에게 평생 입 다물자고, 히노코랑 한번 정말 사귀어보라고 말하고.
나의 그런 말들이 친구들을 보물처럼 생각하는 코가 군을 몰아붙이고 있었다는 걸 나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나는 사람의 마음을 모르는 괴물이었으니까. 옛날부터 사랑만 생각해 온 머리가 이상한 여자였으니까.
처음부터 나만 없었다면 그가 아끼던 그룹은 분명 이렇게 되지 않았을 거야.
"아, 으으으으으으 으으, 으으, 으으, 으윽~~~~~!"
"나루시마... 무슨 일이야... 왜 울고있는거야...?"
하지만 코가 군. 이것만은 믿어줘.
방법은 잘못됐지만, 내가 했던 이 사랑만은 틀림없이 진짜였어.
나는 정말로 너를 많이 좋아했었어.
그걸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코가 군의 양손을 꼭 움켜쥐며 말한다.
친구를 모두 잃고 폐인이나 다름없는 그의 눈을 똑바로 본다.
"내가...... 내가 꼭...... 흑!"
눈물과 콧물로 얼굴이 범벅이 되면서도, 나는 진실한 사랑을 담아 말했다.
"너의 소중한 친구를 꼭 되찾아 줄테니까.........."
그날 밤. 나는 코가 군의 방에 가지 않고 내 방에서 모두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다시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어]
그런 내용을 모두에게 개별적으로 보냈다. 하지만 읽은 것 뿐, 누구에게도 답장은 없었다.
아직 차단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일단 안심하고 그 날은 잤다.
참고로 눈은 결국 쌓이지 않았고, 세상은 평범하게 되돌아갔다.
다음 날. 등교일이라 일단 코가 군을 불렀지만, 아니나 다를까 거절당하고 말았다.
혼자 학교에 가서 모두가 오기를 기다린다.
1교시가 되어도 방과후가 되어도 아무도 오지 않았다.
다른 친구가 없는 나는 누구와도 이야기하지 않은 채 혼자 하교한다.
그대로 유일하게 집 위치를 알고 있는 히노코의 맨션으로 향한다.
맨션 입구에서 인터폰을 울리고 응대해준 히노코의 오빠에게 나의 친한 친구를 불러달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미안하다. 쟤 얼마 전부터 방에 틀어박혀 있어서. 나도 끌어내려고 했는데 지금은 아무하고도 얘기하기 싫은 거야. 싫을 수도 있지만 다시 와줄 수 있을까."
그 날도 나는 코가 군의 방에 가지 않고 내 방으로 돌아와 혼자 잤다.
다음 날도 나는 혼자 학교에 갔지만 역시 다들 당연하게 오지 않았다.
방과후에는 코가 군의 아르바이트 장소에 가보았다.
코가 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오늘의 목적은 그가 아니라, 이쪽.
"아, 어... 나루시마 씨, 그랬나?"
마에다 메구미. 그녀의 학교도 겨울방학 직전 단축 수업 중이라 점심시간이 지나면 이미 가게에 있었다.
코가 군과 소꿉친구인 마에다 씨로부터, 다나카 군에게 연락을 부탁했다.
연락처를 교환한 마에다 씨로부터, 밤이 되어 메시지가 도착했다.
마에다 메구미【미안. 내가 전화해도 신타로는 안받아.】
마에다 메구미【조금 더 연락을 계속해 보겠지만… 집 위치를 가르쳐줄까?】
그 셋 중에서 가장 나를 만나기 어려워할거라고 생각하는 건 분명 다나카 군.
그래서 집까지 들이닥치는 건 삼간다.
마에다 씨에게는 감사의 말만 전하고 그 날도 나는 혼자 잤다.
다음 날. 문화제에서 나와 세이란 군이 함께 밴드를 결성한 토키와 군의 반을 방문했다.
"오, 나루시마. 잘 지냈어? 요즘도 기타 잘 치고 있어?"
세이란 군이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걸 이야기하고, 한번 토키와 군에게도 연락해달라고 전했다.
"그래, 알았어! 잠깐만 기다려!"
토키와 군은 내 눈앞에서 세이란 군에게 전화를 해줬지만 역시 결과는 똑같았다.
"음...? 걔 안 받네. 뭐, 나도 끈질기게 문자 해볼게."
그리고 나도 세이란 군에게 문자를 보내봤는데, 이번에는 읽지도 않은 채 였고 마침내 나는 차단당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런 날들을 반복하는 동안 작은 사건도 있었다.
"근데 나루시마, 요즘 계속 혼자 있지?"
반 친구인 호리에가 갑자기 말을 걸어왔다.
"코가도 다나카도 미야부치도...... 그리고 히노코 까지인가? 전부 안보이네, 무슨 일 있어?"
그녀들은 전에 코가 군에 대해 나쁘게 말했기 때문에 솔직히 별로 이야기하고 싶지 ㅇ낳았다.
"아하하...... 음, 다들 단축수업을 귀찮아해서 안 올지도..."
적당한 변명을 떠올리며 얼버무리려 했는데.
"아니면 치정 관계로 여러가지 옥신각신 했다던가?"
...................
"그러니까, 아. 다나카랑 미야부치는 몰라도 코가는 말이야. 오각 관계 맞으려나."
"아, 히노코가 고백하고 차여서 상심이라는 패턴인건가?"
"아, 그런거 같아! 그 뒤에 같이 안 다니는 것 같고!"
"그러니까 남자랑 여자가 다섯 명이면 그렇게 되겠지. 코가도 처음부터 로맨틱 코미디를 노린 거 아니야? 다나카랑 미야부치가 같이 있으면 여자들이 모일 것 같고."
"아하하하! 그거 너무 바보같잖아! 그래서 나루시마, 역시 누가 누구를 좋아하거나, 있었어? 결국 모두 로맨틱 코미디를 목표로 해서─── 헉."
나는 호리에의 멱살을 거칠게 움켜쥐고 있었다.
누굴 바보로 아는거야? 아무것도 모르면서 우리를 바보 취급하지 마.
우리는 모두 진지하게 사랑을 했고, 모두 진지한 친구였어. 그래서 모두가 고통스러웠던 거야.
그 고뇌를 너희들의 가벼운 화제로 삼지 마. 게다가 코가 군까지 바보 취급하다니, 그건 절대 용서할 수 없어.
"너희 들이 코가 군의 뭘, 알겠어...? 다음은 정말로── 죽일지도 모르니까."
호리에를 들이받고 얼른 교실을 나가기로 했다. 억울한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았으니까.
"... 뭐, 뭐야 쟤... 정말 무서운데."
"... 너는 기억 못하는구나. 나루시마는 코가 좋아하잖아."
"... 어, 역시 그래? 저런 귀찮은 바보, 어디가 좋을까."
"... 뭐, 취미가 나쁘네. 그래서 그 다섯 사람의 관계, 좀 정리해볼까?"
억울했다. 정말... 억울했다...
결국 누구와도 연락이 닿지 않은 채 종업식이 되고 말았다.
이 날도 모두를 만나지 못한 나는 이제 최후의 수단을 쓰기로 한다.
종업식 뒤, 코가 군이 아르바이트 하는 곳을 향해.
"아, 나루시마 씨. 미안해, 신타로는 아직..."
배려하는 마에다씨를 만나 소식을 듣고, 눈에 띄게 몸집이 작은 여 점원의 이름표를 확인하고는 과감히 말을 걸었다.
"저기, 저 나루시마라고 하는데. 미야부치 세이란 군에 대해서 부탁이 있어요."
"음~? 미야부 친구? 뭐든지 말해봐~?"
사야마 선배. 내가 알고 있는 것 중 토키와 군 말고 세이란 군과의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
이 사람에게 협조해달라고 하는 건 정말 꺼림칙하지만, 나에게는 더 이상 뒤가 없었다.
결과적으로 이 판단은 뜻 밖의 행운을 가져왔다. 사야마 선배한테 너무 좋은 정보를 받았다.
종업식인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 사야마 선배가 아는 클럽에서 큰 크리스마스 이벤트가 있어서, 거기에 세이란 군도 오라고 했다고.
그럼 거기에 가면 일단 세이란 군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루시마 씨도 올거면 미야부한테 말해둘까?"
정중히 거절했다. 오히려 연락은 하지 말라고 했다. 세이란 군이 그걸 들으면, 오히려 오지 않게 될지도 모르니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돌아가려는데 사야마 선배가 불러 세웠다.
"오늘은 코가도 아르바이트 왔어~ 지금 뒤에 있는데 조만간 나올거니까 만날래~?"
"어, 코가군이… 있어요?"
아르바이트도 계속 쉬고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구나... 코가 군, 제대로 오고 있구나. 요즘은 전혀 못 봐서 몰랐어.
조금 근황을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마음이 느슨해질까봐 그만뒀다.
조금만 기다려줘, 코가 군. 우선 세이란 군을 설득하고 올게.
사야마 선배가 가르쳐 준 클럽은, 모두 함께 불꽃놀이를 한 강가나 강변 근처에 있었다.
오늘 크리스마스 이벤트는 낮부터 하고 있는 데이 이벤트로, 나는 일단 집에 돌아와 교복부터 갈아입은 후, 3시 넘어서 상가 지하에 있는 그 클럽에 들어갔다.
클럽의 분위기는 유감스럽게도 결코 좋지 않았다.
아직 주류 제공은 없는 시간인데 왠지 술에 취해 너나 할 것 없이 껴안으려 하는 여자.
박스 석 소파 위에서 신발을 신은 채 펄쩍펄쩍 뛰며 크리스마스를 외치는 남자.
손님 대부분은 어른이 되고 싶어하는 고교생과 지금을 즐기려고 하는 대학생들로 곳곳에서 헌팅이 일어나고 있었다.
아마 음악같은 건 뭐든지 좋겠지. 뭐, 즐기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니까.
나는 별로 안 좋아하는 분위기인데.
뱃 속을 울리는 베이스와 신디사이저의 날카로운 금속음이 들리는 가운데 나는 세이란 군의 모습을 찾아 헤맨다.
어둠 속에서 눈을 반짝이며 대충 둘러봤지만 그를 찾을 수는 없었다....... 아직 안 온건가...... 정말로 오는걸까...
담배와 향수와 땀 냄새가 뒤섞이는 이상한 냄새 속에서 나는 게스트 DJ가 플레이하는 크리스마스용 믹스셋에 귀를 기울이며 조금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3시간 넘게 기다렸다. 데이 이벤트가 끝나고 미성년자의 퇴점을 안내하는, 형식뿐인 방송이 울려퍼졌고 지금부터 메인이라는 느낌의 분위기가 시작된 곳에서.
"...... 있다!"
어느샌가 들어와 있었는지 코트를 입은 채 카운터에 앉아있는 세이란 군을 발견했다.
빛과 소리의 샤워와 춤추는 군중을 헤치며 나는 세이란 군에게 다가간다.
"어머~ 나루시마씨! 역시 왔구나~!"
뒤에서 껴안아 온 여자가 플로어를 메우는 폭음에 지지 않으려고 말해 왔다.
사야마 선배였다. 양옆에는 경박해 보이는 인상의 남자들이 있다.
"뭐야, 뭐야? 너, 사야마 아는 사람?"
발랄해 보이는 갈색 머리의 남자가 나에게 안겨와 귓속말.
이렇게 하지 않으면, 큰 음량의 트랜스에 목소리가 지워져서 들리지 않는다.
그건 알고 있는데, 어떤 이유로든 코가 군 이외의 남자에게 안긴다는 건 있을 수 없다.
"혼자 온거야? 그럼 우리랑 같이 다른 곳에서 좋은── 커헉?!"
"와, 나루시마씨 굉장한데!"
남자의 뱃속에 주먹을 꽂아 넣은 뒤 그대로 지나가고 카운터의 세이란 군에게 말을 건다.
"세이란 군!"
폭음으로 울리는 트랜스에 지지 않으려고 귓가에 외쳤다. 뒤돌아본 세이란 군은 매우 놀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런 데서 얘기할 수 없으니까 억지로 팔을 당겨 일어서게 했지만 누군가에게 뒤에서 어깨를 잡혔다.
사야마 선배와 함께 있던 또 다른 남자, 모자를 쓰고 있는 남자였다. 뭔가 지껄이고 있지만 유감스럽게도 일절 들리지 않는다.표정부터 화내는 것 같았다.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목소리로 장황하게 말해도 끝이 나지 않는다. 그냥 시간 낭비.
마음이 들지 않는 남자의 옆구리도 꽂아넣고 세이란 군을 데리고 얼른 가게를 나왔다.
"어, 너 잠깐만. 아까 사람들은 비교적 유명한……"
"아무래도 상관없어. 잠자코 따라와."
때린 남자들이 쫓아와도 귀찮기 때문에 나는 세이란 군의 팔을 움켜쥔 채 강가 쪽까지 왔다. 제방길의 적당한 곳에서 세이란 군을 놓았다.
"…잠깐. 너 진짜 나루시마야? 괜히 힘도 세고 분위기도 완전."
"잠자코 들어. 나는 세이란 군에게 할말이 있어서 만나러 온거야"
손목을 아프게 문지르던 세이란 군을 응시한 채 얼른 본론으로 들어갔다.
"저기 세이란 군.다시 한번 다같이 만나서 이야기하자? 코가 군, 다나카 군이랑 히노코, 세이란 군이랑 나까지. 다섯 명이서 다시 만나서 얘기하고 싶어."
"...그럴 줄 알았는데."
세이란 군은 뒤통수를 벅벅 긁었다.
"하지만 무리야. 너 그날 밤 잊었어? 나 같은 건 아사기리나 쥰야에게 방해라고, 신타로는 실망했고... 이제 와서 만나자고 그러는거지."
"하지만 이대로라면 정말로...!"
"네 말대로야. 어차피 다 연락했잖아. 결과는 어때? 혼자라도 만난다고 했어? 너한테 연락해줬어? 아무도 안 했잖아. 그런 건 당연한 거야. 왜냐하면."
"그렇지. 다들 특히 나를 만나기 힘들어하니까."
"..."
세이란 군은 말문이 막힌 뒤, 또 뒤통수를 벅벅 긁었다.
"... 미안."
"아니, 사실이야. 히노코도 다나카 군도 세이란 군도 지금 가장 만나기 힘든 상대는 나야. 모두의 일에는 전부 내가 깊이 관여하고 있으니까."
세이란 군은 미안한 얼굴로 시선을 발밑으로 떨어뜨린다.
"그... 물론 나루시마가 나쁜 건 아니야. 단지 우리들은 떠난 쪽이니까……"
그런 거구나. 결국, 모두 사랑이 얽혀 있어서 만나기 힘들어.
친구 관계를 어지럽히는 요인의 대부분은 역시 연애감정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다섯 명도 그걸로 끝날까? 우정은 언제나 사랑에 질까?
아니라고 믿고 싶다. 우정과 사랑은 반드시 공존할 수 있다고 믿고 싶다.
그것이 진짜일수록…….
물론 내 입장에서 '다시 사이좋게 지내자' 라는 말은 결코 할 수 없지만. 하지만 그래도 적어도.
"코가 군까지.... 싫어졌어?"
"... 어?"
"나는 괜찮아. 세이란 군은 코가 군까지 벌써 싫어졌어...?"
"... 그렇지."
세이란 군은 뭔가 작게 중얼거리고,
"싫을 리가 없잖아...!"
그 커다란 몸을 떨며 두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놈은 중2때 외톨이였던 나를 구해준 최고의 친구야...... 쥰야 뿐만이 아냐... 신타로도 아사기리도, 물론 나루시마도... 이제 와서 싫어질 리가 없지! 너희들은 나에게 있어서 둘도 없는 친한 친구였으니까......!"
"그렇다면..."
"하지만 있잖아... 안돼... 싫어지면 안되겠지만. 이렇게까지 연애가 얽히면 이제 어떻게 생각해도 우린 끝이야..."
어째서 이렇게 되어버린걸까....... 모두 사실은, 친구를 좋아해서 그런거였는데...
그래도 사랑에 방해를 받아 결국은 멀어지게 되어버린다. 역시 나는 어쩔 수 없이 사랑이 미워진다.
"이 감정을 알아차린 이상, 나는 이제 너를 그냥 친구로만 바라볼 자신이 없어... 대체로 쥰야도 더 이상 우리처럼 친구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해..."
"어째서, 코가 군이......?"
"모르겠어... 나도 신타로도 쥰야의 여자친구를 원한 남자라고......? 보통은 그런 놈들을 곁에 두고 싶지 않잖아... 나도 마주칠 체면따윈 없고..."
".................."
"그러니까 끝이야 우리는... 연애 감정이 들어간 시점에서 이미 늦었고... 이제 그 때의 우리는 절대 돌아갈 수 없다고!"
눈물을 닦은 세이란 군은 달려가고 말았다.
"아, 세이란 군, 잠깐만."
안 돼. 불러 세워봤자 더 이상은 할 말을 찾을 수 없었다.
나는 그를 막을 수 없다. 나름대로 열심히 했는데... 역시 무리인거야?
연애가 끼어들면 친구는 항상 쉽게 깨지는거라고?
세이란 군의 말대로 코가 군도 더 이상 친구로 지낼 수 없는거야?
"... 큿...... 그렇지 않아... 절대란 건 없어..."
보통은 그럴지 모르지만, 코가 군만은 절대로 아니야.
왜냐면 내가 사랑에 미쳐있다면 그 사람은───!
"어디 가는 거야, 세이란."
"……아?"
세이란 군이 뒤돌아본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돌아서서 그를 보고 있었다.
심지어 믿을 수 없었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음… 아하하, 오랜만이네 요루. 그 세이란 군도...."
"… 우리에게 계속 연락을 주고 있었지. 무시해서 미안해..... 나루시마."
히노코와 다나카 군도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어색한 얼굴을 하고 있는 가운데, 그만은── 코가군만은 묘하게 평상시처럼.
"하하, 네가 오늘 어떻게든 클럽에 온다는 얘기를 사야마 선배한테 들었어. 이제 다같이 데리러 갈 참이었고."
왜 코가 군이 여기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왜 히노코와 다나카 군까지 여기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섯이 됐다. 여기 있는 것은 틀림없이 다섯이었다.
"왜... 너희들까지……여기에…?"
나도 듣고 싶었던 것을 세이란 군이 대변한다.
히노코와 다나카 군이 난처한 표정으로 코가 군을 바라보았다.
"음, 그건 준야군이… 그래."
"그, 뭐랄까... 약속 잊지마~ 라고 말하고, 나랑 아사기리를 억지로..."
약속? 코가 군은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다섯 명이서 크리스마스 파티 하는 거지?"
"──어?"
그 너무나 능청스러운 한마디는 이 긴장된 자리에 너무 맞지 않아서. 나와 세이란 군을 끌어들여 세계의 시간마다 멈춰버린다.
코가 군은 웃는 얼굴로 계속했다.
"아니, 어?가 아니잖아. 잠깐 세이란, 부탁했던 크리스마스용 플레이리스트 설마 안 만들었다는 말은 하지 않겠지?"
"…잠깐만 너 뭐라고 말해... 어? 플레이리스트...?"
"아, 역시 만들지 않았구나. 안심해. 내가 대신 준비해뒀으니까."
세이란 군은 아연실색하면서도 입꼬리가 조금씩 올라간다.
"하.... 하하, 너 바보야...? 그런 일이 있었는데 크리스마스 파티라니...?"
"하지만 약속은 약속이잖아."
기다려.... 자세히 보니── 떨리고 있었다. 코가 군은 계속 웃는 얼굴이었지만, 그 몸은 공포로 조금씩 떨고 있었다.
당연하지. 그런 건 당연한 거야. 누구보다 책임감을 느끼고 있고. 누구보다 자기가 배신자라고 생각하고.
누구보다 평소처럼 행동하는 것에 거부감이 있을 텐데.
"아무튼 다섯 명이서 크리스마스 파티다.크리스마스 파티라고. 그래, 그렇지...?"
그 과거의 경험으로 친구에게 거절당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무조건 이 사람인데.
코가 군은 지금, 도대체 어느 정도의 공포와 싸우고 있는 것일까────.
"..............."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나는 아직 코가 군을 잘 못봤으니까.
그가 워낙 귀하고 대단한 사람이었으니까.
떨리는 몸을 필사적으로 잡으려 해도 억지로 미소를 짓고 있는 그 모습에.
아무리 형편없어도 누구든 가장 꺼내기 어려운 말을 할 수 있는 그 담력에.
무슨 일이 있어도 무조건 그 다섯명을 위하려는 그 강한 의지에.
나는 마음 속 깊이 감동해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공포에 항거하면서도 내뱉은 코가 군의 생각은 모두에게 전파된다.
"... 그, 나는 딱히, 괜찮지만... 아사기리랑 신타로는... 내가 있어도 되는 건가?"
"아니, 싫으면 처음부터... 근데 그거 내 대사..."
"나도 그... 모두가 있어도 좋다고 하면, 하지만..."
"... 으윽...... 으윽......"
모두가 이미 포기하고, 이미 잊고 있었던 약속.
사실은 누구나 원했을 다섯 명의 크리스마스 파티.
비록 아무리 마주치고 싶지 않아도, 코가 군만은 거기서 도망치지 않고.
부서져 버린 다섯 사람을 다시 모으고, 이렇게 전원을 모으고 말았다.
"... 으... 으... 흐에에에엥~~~~~"
자랑스럽다. 이 사람의 여자친구로 있을 수 있었던 것이 너무나 자랑스럽다.
이럴 수 있는 사람이 또 어디 있을까. 이게 코가 군이다. 내가 진심으로 사랑한 단 한 남자.
코가 쥰야───!
코가 군은 몰래 울고 있던 내 등을 툭툭 두드리더니.
"... 고마워."
작은 소리로 그렇게 말해줬다. 어떤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해서 모두가 모인 건 정말────
"찾았다, 얌마아아아!"
뭔가 왔다. 개조 엔진을 윙윙거리며 우리를 향해 달려오는 한 대의 검은 승합차
그 조수석 창문으로 상반식 째로 나와있는 남자가 화난 얼굴로 외치고 있다.
아까 내가 때린 사람이었다. 아마 보복을 위해 쫓아왔겠지.
우리 다섯 사람은 반사적으로 다가오는 승합차와는 반대 방향으로 도망친다.
"보, 보라고! 나루시마가 저런 짓을 하니까.........!"
"저런 게 뭔데?! 누군데 쟤네?! 왜 우리가 쫓겨다니느거지?!"
"미, 미안... 아까 내가 그 사람들을 마구 때려버려서..."
"에엣?! 요, 요루가?! 왜?!"
"그, 그런 것보다 어떡할래 이거~!"
그 검은 승합차는 제방 위를 필사적으로 달리는 우리 바로 뒤에 붙어 낮은 속도로 지겹게 쫓아온다.
"그, 그렇게 도망가지 말라고. 치어죽일거야, 이 자식아?"
"아, 그러지 말라고! 어이, 미야부, 넘어지지 마~"
뒷좌석에서는 사야마 선배도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코가 군이 뒤돌아보며 외친다.
"잠깐, 사야마 선배도 있어요?! 그만둬주세요 이거!"
"미안, 이 사람들 너무 화났으니까. 어떻게든 도망가~"
"아, 알겠어요! 그럼 도망갈테니까요?!"
제방길을 돌아 넓은 강에 놓인 큰 다리 한 가운데까지 달린 코가 군은 거기서 난간에 손을 댄다.
"잠깐, 잠깐 쥰야 군? 뭘 할 생각이야...?"
"다 함께 강에 다이브! 깊으니까 괜찮다고!"
"하, 하아? 그런 걸로 도망갈 수 있을리 없잖아? 아무리 그래도 지금 겨울..."
"크, 너 정말 바보구나. 모두들 스마트폰 꺼둬?! 나루시마도?!"
"...... 음!"
우리는 일제히 난간을 타고, 다리 건너편으로 날아갔다.
"미야부, 한바탕 하자고오오오~ 계속 사랑하니까아아아!"
뒤에서 들리는 사야마 선배의 기쁜 목소리에 눌리듯.
별무리가 흩어지는 밤하늘을 짊어지듯.
우리 다섯 살마은 크게, 크게 하늘을 난다.
어른의 상징 같은 코트를 휘날리며, 동심으로 돌아가는 아이같이 더 없는 최고의 미소로.
더 높이, 더 크게, 포물선을 그려라. 밤하늘의 별들까지 손을 뻗어라.
우리 다섯 명이 모이면 언제든 최강이고 무적이니까.
어디까지라도 날아갈 수 있으니까───!
"하하하! 해피 크리스마스~!"
세이란 군의 즐거운 목소리와 동시에, 강가에서도 풍덩 하는 소리가 났다.
개추
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