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씹덕 추리물은 잘 나가는데(뭐 초창기 우라조메 덴마처럼 씹덕실격인 작품도 있었지만...) 탐정물 라노벨은 츠레카노 작가가 한번 써서 성공시킨 거 빼면 영 평이 안 좋을까? (그 작가도 다음작인 셜록 아카데미는 말아먹은 걸로 알고)


이유는 간단하다. 그 새끼들은 (라이트 노벨이 항상 그렇듯이) 재밌는 부분만 쓰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재밌는 부분이란 탐정이 트릭을 간파하고 자신의 지성을 뽐내는 부분이다.

즉 탐정의 지성과 통찰력을 캐빨하는 소설이 탐정물 라노벨인 것이다.


문제는 미스터리 장르는 자조에 익숙한 장르라는 데서 나온다. 

(괭갈은 이 문화를 미스터리 장르 밖으로 가져가려다 좌초되었다.)


추리 소설에서 추궁당한 범인들의 18번 대사를 생각해 보자.


"아주 추리 소설을 쓰시는군요."

"추리 소설을 너무 많이 읽으신 거 아닙니까?"


모두가 잘 알고 있다. 탐정과 트릭이란 비현실적이고 우스꽝스러운 개념이다.

그걸 쓰는 작가와 읽는 독자도 정상인이 아니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명탐정의 규칙으로 작품, 작가, 독자를 모조리 웃음거리로 만든 것이 1990년대다.


미스터리 장르의 자조는 여러 방식으로 나타날 수 있다.

클리셰와 탐정특권에 기대며 안일하게 추리하다가 벽을 마주치고 허우적거리는 탐정을 향한 냉소든. (이게 2020년대 추리소설의 메인라인이다.)

아니면 작정하고 탐정을 웃음벨로 만든 뒤 그 위에서 '현실성 좆까고 놀아봅시다!' 외치는 해학이든.

물론 거꾸로, 그런 상황에서도 여전히 탐정과 미스터리 장르에 대한 사랑을 항변하는 작품도 있고, 그런 것도 고평가를 받지만 말이다.


그리고 미스터리 마니아 뿐 아니라, 라이트한 팬들한테도 이런 풍자는 퍼질 만큼 퍼졌다.

명탐정 코난이 범인 한자와 씨 스핀오프를 낸 걸 생각해 보자.

이런 상황에서 '탐정의 멋잇음'을 셀링 포인트로 잡은 작품을 보냐면 무슨 생각이 드냐면, 웃기다.


정통 미스터리에서는 바카미스(=작정하고 망가지는 개그소설들)에서나 나와야 할 인간상들을 그려놓고서 "자, 찬양해라!" 이러고 있으니 안 웃길 수가 없다.

멀쩡한 트릭에 드라이한 문체로 써도 피식거릴 텐데 트릭은 개판이고 문체는 오두방정을 떨고 있으니 웃음벨도 이런 웃음벨이 없다.

평범한 독자라면 유치하겠지만, 오히려 추리팬 입장에서는 너무 시대착오적이어서 오히려 재밌을 지경이다.


요즘은 그러면 클래식한 탐정소설 쓸 수 없냐고? 쓸 수 있다.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고 트릭과 필력으로 밀어붙일 자신이 있다면.

그게 아니라면 최소한 최신 추소메타는 따라가고 있어야 한다.


츠레카노 작가의 첫 작, 내가 답하는 너의 미스터리가 성공한 건 "추리를 추리해라" 라는 나름 2020년대 미스터리의 화두를 캐치했기 때문이다.

셜록 아카데미는, 뭐 내가 pdf 타이밍을 놓쳐서 할 말이 없고.


그럼 왜 탐정물 작가들은 수준에 어울리지도 않는 미스터리에 도전한 것인가?

짐작할 만한 이유가 셋 정도 있다.


1. 단간론파, 역전재판, 괭갈은 분위기 겁나 씹덕스러운데도 성공했잖아!

일단 역재는 정통 추리물이 아니다. 얘는 해답편 시작 시 공개정보로 모든 것을 알 수 없고, 계속 증거와 증거를 연쇄시키면서 진상을 추적하는 수사물에 가깝다.

단간론파가 이 중에서는 제일 정통 추리물인데, 얘는 트릭 수준이 겁나게 높다. 슈단 4챕 5챕 트릭은 어지간한 정통추소보다 명트릭이다.

괭갈은... 괭갈이 성공했는지는 둘째치고, 괭갈은 담론의 수준에서는 추리소설 최신메타를 모조리 섭렵하고 있는 수준이다. 아니, 어떤 부분은 "2010년에 이런 발상을 했다고?" 싶은 부분도 있다.


그리고 작가들이 착각하는 게... 얘들은 비주얼 노벨이다.

무슨 뜻이냐면, 놀 때는 놀더라도 진지해야 할 때는 브금 틀고 스프라이트 바꾸면서 빡집중을 시킬 수 있다는 거다.

니들 소설도 '애니화되면' 의외로 볼만할지도 모른다. 연출이랑 브금으로 분위기를 강제로 바꿀 수 있으니까.


2. 빙과, 소시민, 커피점 틸레랑 같은 코지 미스터리도 히트쳤고...

걔들 원작 소설 안 봤냐? 문체 겁나 드라이하다.

커피우유를 종이통째로 전자레인지에 데우니 마니, 누가 문화제에서 소동을 일으키니, 이런 사소한 사건을 가지고 독자가 몰입하게 만드려면 소설이 경박하면 안된다.


빙과 2권 사건 생각해보자. 진짜 좆도 없는 사건이다. 

그냥 영화 동아리가 지네 자작영화 감독이랑 연락이 안 되니까 트릭좀 풀어 달라 한 거다.

그걸 가지고 주인공 오레키는 '이건 나만 풀 수 있는 사건인가? 나 진짜 탐정에 재능 있나?' 고민하며 끙끙 앓고 작품은 웃음기 싹 빼고 그걸 조명한다.


오레키가 치탄다한테 럭키스케베하고, 눈치 없이 라노벨 인용하고, 씹덕 말버릇 있는 '요즘' 학원물 주인공이었다고 생각해 보자.

"재능 있는 자는 재능을 자각해야 한다는 그 말도 거짓이었습니까!" 라는 2권 말미의 포효가 반의 반이라도 울림이 있었을까?


(그리고 당연하지만, 다 추리 수준 높다. 특히 빙과는 1권은 추리소설로는 좀 그렇지만 2권 3권은 요네자와의 대표작으로 놔도 손색이 없다.)


3. 그럼 요즘 미스터리 소설에서 씹덕향 첨가한 근들갑 소설들이 히트치는 건 뭔데?

물론 요즘 추소계에서 그런 소설들이 히트치는 건 맞다.

한국에 정발된 것만 해도 그 가능성 시리즈, 영매탐정 조즈카, 시인장의 살인, 유리탑의 살인... 하여간 많다.

근데 조금 읽어보면 알겠지만, 얘들은 전부 기성 구조를 뒤트는 파격적인 소설들이다.


유리탑의 살인은 여탐정의 컨셉 자체가 저런 비현실적인 씹덕모에 캐릭터가 아니면 오히려 기괴해져서 그런 거고.

그 가능성도 이 작품의 정신나간 로직구조를 드라이한 문체로 서술하면 오히려 부조화가 오니까 차라리 씹덕으로 민 거다.

물론 시인장의 살인은 내가 봐도 굳이? 싶은 부분이었는데, 그래서 후속작에서는 씹덕향 꽤 뺀다.


중요한 건, 내가 봤을 때 얘들은 씹덕소설을 쓰려고 씹덕소재를 넣은 게 아니다.

파천황 전개를 하려면 분위기를 비현실적으로 잡아야 하니까 씹덕향을 뿌린 거지.

그게 아닌 유일한 작품은 우라조메 덴마 시리즈였고, 그래서 그 시리즈 1권 평은 진짜 최악이었다.

이후 권들은 좀 나아지는데 암튼 작가인 아오사키 유고도 그래서 그거 유기하고 다른 거나 쓰고 있고...


결론을 내리자면, 탐정이라는 소재 자체가 캐빨하기 좋아 보이지만, 캐빨물로 만들기는 어렵다.

탐정이 멋있는 건 트릭을 부수기 때문에 멋있는 거니까, 탐정을 만들고 싶다면 우선 트릭부터 짜고 거기에 어울리는 탐정을 넣어라.


P. S. 참고로 탐정 이미지의 대표주자인 홈즈도 L도 그렇게까지 성격파탄자 아니다.

홈즈는 기벽이 좀 있는 거 빼면 쾌활하고 사회성 좋은 신사고 L도 포즈랑 패션감각이 이상해서 그렇지 대인관계에는 문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