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퀼레기아의 낙원

그는 죽었다. 그리고 다시 태어났다. 지구와 매우 유사하지만, 확실히 다른 세계로.

약소 귀족 가문의 둘째 아들 빌헬름으로서 두 번째 인생을 만끽하던 그는, 평화로운 나날이 갑자기 끝나게 된다.
늙어가는 제국은 어느 날 허망하게 붕괴되고, 귀족들은 생존을 걸고 음모를 꾸미고, 연합하며, 전쟁을 벌인다. 빌헬름의 고향 또한 원치 않게 혼란의 시대에 휘말리게 된다.
그리고 빌헬름은 깨닫는다. 원하는 삶은, 바라는 평온은, 스스로의 손으로 쟁취해야만 한다는 것을.

“국가를 만들자. 소중한 모든 것을 지킬 수 있을 만큼 강한 국가를 만들자.”

물려받은 가문 문장, 아퀼레기아 꽃 문장. 그 깃발 아래 낙원을 세우기 위해, 빌헬름은 길을 개척해 나간다.


아퀼레기아가 뭔지 궁금해서 검색해보니 메발톱꽃이라더라.

뭔 꽃인진 모르겠다~

프롤로그


<제1장 제국의 붕괴, 동란의 시작>

햇살이 부드럽게 내리쬐는 평화로운 시대, 고요한 강물처럼 평온한 나라. 그는 그곳에서 행복한 삶을 살았다. 물론 세상 어디에나 전쟁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지만, 적어도 그의 나라에서는 화면 속 뉴스에서나 볼 수 있는 먼 나라 이야기였다. 마치 다른 세상의 일처럼.

으리으리한 저택은 아니었지만, 늘 웃음꽃이 피어나는 따뜻한 집이었다. 부모님의 사랑 속에서 부족함 없이 자랐고, 좋은 옷과 맛있는 음식은 그의 일상을 풍요롭게 채웠다.

명문학교에서 수준 높은 교육을 받았고, 미술관과 음악회를 자유롭게 드나들며 예술적 감수성을 키웠다. 해외여행을 통해 다양한 문화를 접하며 견문을 넓힐 기회도 가졌다. 그는 이 모든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자라면서 그는 친구를 사귀고 꿈을 키웠다. 어릴 적부터 수많은 이야기를 읽고 감상하며, 언젠가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는 열망을 품게 되었다.

소년 시절, 서툴지만 열정적으로 창작 활동에 몰두했고, 곧 창작으로 세상에 발자취를 남기겠다는 꿈을 품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전문적인 기술을 배우는 길을 택했고, 밤샘 토론과 열띤 창작 활동으로 가득했던 뜨거운 청춘, 같은 꿈을 향해 달려가는 친구들과 함께였기에 더욱 빛났다. "이런 날들이 영원히 계속되면 좋겠다." 그는 종종 생각했다.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이 평범하고 행복한 나날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하지만 운명은 그에게 가혹했다. 평온했던 일상은 갑작스러운 사고로 산산이 조각났다. 굉음과 함께 덮쳐온 트럭은 그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갔다. 그의 젊은 생은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촛불이 꺼지듯 한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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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자 낯선 정적이 감돌았다. 몸은 깃털처럼 가볍고, 주변은 짙은 안개에 휩싸인 듯 몽롱했다.

고요한 공간 속에서 그는 지난 삶을 되돌아보았다.

행복했던 유년 시절, 꿈을 향해 달려가던 청춘,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모든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남의 삶을 관찰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깊은 안식과 평온함이 그를 감쌌다. 모든 감각이 무뎌지고, 생각조차 희미해졌다. 태초의 바다처럼 고요하고 신비로운 느낌이었다.

"그래, 나는 죽었어. 그때 분명히..."

"그렇다면 여기는 어디지?"

그는 생각하기조차 힘들었다. 나른하고 기분 좋은 감각에 몸을 맡긴 채, 몽롱함 속에서 부유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지금까지의 안락함에 대한 대가를 치르듯 끔찍한 고통이 몰려왔다. 격류에 휩쓸리는 듯 온몸이 격렬하게 흔들리고, 눈을 찌르는 듯한 빛이 그를 덮쳤다. 모든 것이 혼돈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는 다시 태어났다.

두 번째 탄생. 두 번째 삶의 시작이었다. 새로운 세계, 새로운 삶. 과연 그곳에서는 어떤 운명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까?

+1화


<제1장 제국의 붕괴, 동란의 시작>

이데나 대륙 서부를 지배하는 거대한 로베리아 제국. 인구 천만 명을 자랑하는 제국에서도 동쪽 끝, 북쪽 구석에 자리 잡은 플뤼네펠트 남작령은 고작 3천 명 남짓한 사람들이 사는 작은 영지에 불과했다. 농사 외에는 별다른 산업이 없는 평화롭고 조용한 시골 영지, 플뤼네펠트 남작령.

이곳 남작가의 차남으로 태어난 빌헬름은 다섯 살 어린아이였다. 하지만 그의 안에는 스물다섯 해의 기억을 간직한 영혼이 깃들어 있었다. 전생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초가을 어느 날 밤, 남작가 저택 거실에서 책을 읽고 있던 빌헬름은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어이, 빌리, 아직 안 자고 있었니?" 어이없다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내려다보는 사람은 현 플뤼네펠트 남작, 슈테판, 빌헬름의 아버지였다.

"또 그 책을 읽고 있니? 벌써 몇 번째냐?" 아버지의 물음에 빌헬름은 "재밌잖아요."라고 짧게 대답하며 읽고 있던 이야기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제국 역사상 위인들에 대해 쉬운 문장으로 짧게 정리한 이야기책은 분명 재밌는 읽을거리였다. 몇 번이나 읽어 내용은 이미 다 외웠지만, 이 저택에 있는 책들 중 지금의 빌헬름이 이해할 수 있는 책이 몇 안 되었기에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갓난아기였을 때부터 전생의 기억과 함께 자아가 있었던 빌헬름은 어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며 적극적으로 말을 익혔다. 작년부터는 부모님께 조르고 졸라 글을 읽고 쓰는 것도 배우기 시작했지만, 다섯 살인 지금은 아직 어른처럼 말하고 읽을 수는 없었다. 어린아이의 몸은 전생의 감각으로는 끔찍할 정도로 체력이 없었고, 자꾸 잠이 쏟아지는 데다 집중력도 오래 유지되지 못했다. 모든 것이 서툴고 답답하게 느껴졌다.

"독서는 좋은 일이지만, 너는 아직 어리니까, 많이 자면서 몸을 키우는 것도 중요한 일이란다. 책은 내일도 모레도 읽을 수 있으니, 오늘은 이제 자렴." 슈테판에 이어, 거실 소파에서 뜨개질을 하고 있던 어머니 레나테도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자, 빌리, 그러니까 아버지께 혼난다고 했잖니? 방에 가자꾸나." 일어선 레나테는 빌헬름을 안아 올리더니, 방 한구석에서 다가온 메이드에게 "오늘은 내가 데려갈게."라고 말하고, 그대로 빌헬름을 침실로 데려갔다.

레나테의 품에 안긴 빌헬름은 "어머니, 자기 전에 잠깐만, 딱 한 번만 하늘을 보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전생까지 합치면 이미 스물다섯 나 살았지만, 이번 생에서 어린아이로 5년이나 지내다 보니, 정신도 그에 맞게 어려진 모양이었다. 어머니에게 안겨 있으니 따뜻한 안정감에 휩싸여, 말투는 자연스럽게 어린아이처럼 되었다.

"알았다, 딱 한 번만이야." 레나테는 고개를 끄덕이며 침실 창문을 열어 주었다. 가을 냄새를 머금은 바람이 방 안으로 흘러들어와 빌헬름의 코끝을 간질였다. 은은한 낙엽 향과 흙냄새가 빌헬름을 포근하게 감쌌다.

빌헬름은 어머니의 품에서 몸을 내밀듯이 하며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너는 독서만큼이나 밤하늘을 보는 걸 좋아하는구나, 빌리."

"네. 밤하늘이 너무 좋아요. 마음이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아요."

"어머, 우리 빌리, 시적인 표현을 하는구나? 혹시 장래에 작가가 되려고 그러니?"

쿡쿡 웃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으며, 빌헬름은 보랏빛 눈동자에 하늘의 빛을 담았다.

처음 이 밤하늘을 본 건 갓난아기였을 때였다. 좀처럼 잠들지 못하고 계속 칭얼거리는 빌헬름을 안고 어머니는 정원으로 나갔다.

그때, 빌헬름은 이번 생에서 처음으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현대 일본의 밤하늘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선명하게 빛나는 별들. 마치 쏟아질 듯 무수히 박힌 별들의 바다 위에 떠 있는 푸르스름한 두 개의 달. 이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면, 여기는 전생에서 살았던 세계가 아니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세계로의 환생. 전생에서 접했던 수많은 이야기 속에서나 가능했던 기적. 고전적인 동화부터 현대의 오락 작품까지, 그 어떤 창작물 속에서도 이보다 더 놀라운 일은 없었다. 바로 그 기적이 자신에게 일어났다는 사실에 빌헬름은 전율했다.

"자, 이제 정말 잘 시간이야."

잠시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만족한 빌헬름은, 레나테의 손에 이끌려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었다.

"잘 자렴, 내 사랑스러운 빌헬름." 이마에 부드러운 키스를 남기고 레나테는 침실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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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남겨진 빌헬름은 눈을 감았다.

고요한 침묵 속에서, 지난 5년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처음 이세계에 눈을 떴을 때의 당혹감은 아직도 생생했다. 낯선 천장, 익숙하지 않은 냄새,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 모든 것이 꿈처럼 느껴졌다. 갓난아기의 몸은 마치 솜뭉치처럼 가볍고, 손가락 하나 움직이는 것조차 버거웠다. 팔다리는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았고, 눈꺼풀은 천 근처럼 무거웠다.

하지만 이곳이 현실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그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깊은 슬픔이 밀려왔다. 사랑하는 가족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따뜻한 어머니의 미소, 장난기 넘치는 아버지의 웃음소리, 그리고 항상 든든하게 곁을 지켜주던 형의 모습… 다시는 그들을 볼 수 없다는 사실에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

가슴 속에서 뜨거운 눈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지만, 빌헬름은 아무런 소리도 낼 수 없었다. 마치 목이 막힌 듯, 울음은 가슴 속에 갇혀 버렸다. 아기의 울음은 그저 배고픔이나 불편함의 표현일 뿐, 그 누구도 그의 진짜 슬픔을 이해하지 못했다.

계절이 몇 번 바뀌고, 해가 바뀌면서 빌헬름의 슬픔은 조금씩 옅어져 갔다.

이번 생의 가족들이 보여준 따뜻한 사랑 덕분이었다. 처음에는 낯설기만 했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형. 그들은 빌헬름에게 진심으로 애정을 쏟아주었고, 그들의 따뜻함 속에서 빌헬름은 조금씩 마음을 열었다.

"여기가 나의 새로운 집이구나."

빌헬름은 플뤼네펠트 남작령을 새로운 고향으로, 이 가족을 새로운 가족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전생의 기억은 마치 희미해져 가는 꿈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이세계로의 환생은, 새로운 삶을 살아갈 기회를 주기 위한 운명의 선물일지도 몰랐다.

이윽고 전생의 자신은 이미 죽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자,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 과거에 얽매이기보다, 이제는 앞을 향해 나아가야 할 때였다.

'이번 생에서는 반드시 꿈을 이루고, 행복을 만들어 갈 것이다.'

다행히 빌헬름은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비록 작은 영지의 차남이지만, 평민들보다는 훨씬 많은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빌헬름은 앞으로의 삶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슴이 부풀었다. 전생에서 이루지 못한 꿈을 떠올리며, '어떤 꿈을 꾸고, 어떤 삶을 살아갈까?' 무한한 가능성에 마음이 설레었다. 빌헬름은 미소를 지으며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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