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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작과 남작은 중세엔 없다고 봐도 무방함

최대한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1. 공작
훈족으로 인해 게르만들의 대이동으로 서로마 멸망

이 과정에서 기왕 쳐망하는거
로마인들이 게르만 족장들에게 대장군(dux) 칭호를 내려주며 게르만들에게 싸우라고 종용함

이게 duke가 됐고
좀만 서로마 멸망후에  좆만한 부족장까지 다 대장군이라 내세우며 난립함
이게 통폐합되며 영토확장 통폐합하여
어느정도의 큰 공작령이 됨

이러던 와중 외부세력방어 등의 목적으로 그 공작중에서 좀 세력쎈 정도의 공작을 중심으로 왕이 옹립

사실상 공작정도면 영주를 넘어 왕에 가까운 개념이라 봐도 무방할만큼 자치권이 보장 됨

현대에도 공국(공화국 아님)이란 나라들이 존재할 정도
모나코 룩셈부르크 안도라 등
도시국가에 가깝지만 또 도시국가랑은 다르다



2. 백작
각자 난립한 대족장들과는 다르게 위에 말한 왕이 성립되고나서
중앙과의 연락 및 감시를 위해 왕이 파견한 관리가 시작
공작령의 연락 감시 행정 역할을 하려고 내려보내니 공작들도 귀찮아서 자기랑 같이 사는게 아닌
공작령에서 떨어진 곳에 따로 영토 내려주는걸로 시작



3. 남작
공작이 훈족 침략으로 생겨난 개념이라면
남작은 이슬람의 침략 바이킹의 해적질 그리고 기타유목민의 침략으로 시작 됨
왕이라고 해봐야 산적 해적 토벌에 보낼 병력 유지할 만큼 여유는 있지 않았고
공작들도 마찬가지
즉 각자생존이었으며 이 각자생존의 과정중 나온게 전문으로 해적 산적 유목민으로 부터 방어를 하는 이른바 자경단이 등장하기 시작함
이들은 자연스레 작은 도시 나 시골마을의 우두머리가 됐고
이 자체방어를

공작이나 백작이 인정해줄 필요가 있었다
아무리 인간목숨이 쓰레기인 중세에도
다 죽으면 누가 농사짓고 누가 세금 내겠냐

이런 시골의 우두머리들을 공작이나 백작이 인정해주기 시작한게 남작과 기사



그럼 후작과 자작은 무엇이냐?


4. 후작 = 변경백
양판소에서 매우 잘 못 알려진게 변경백이란 표현자체가 성립이 안 된다는 것
걍 후작이 변경의 백작임
아까 공작령에서 설명했듯이 백작 파견이 귀찮으니까 자기 영토에서 보통 먼 곳에 영지하사 했는데
이게 바로 변경백이란 특수한 사람들이 은근 많은 이유

공작과 백작의 차이로 공작령 구석탱이에 영지 떼어주던 것도 있지만
국왕이 변경의 국경수비 및 개척을 위해 직접 파견하는 경우도 있어서
이는 당연히 공작이 아니며 백작일 수 밖에 없는데 이를 변경백으로 부른데서 후작이란 작위가 성립

즉 백작이란거 자체가 파견하는 지위란거에서 벗어나지 않았단 소리

변경백과 후작은 같은 단어이며
특수하게 매우 잘디 잘은 공국이 엄청나게 많았던 독일에서만 후작과 변경백이 분리 되었었음
왜냐면 국경이 존나게 많으니까

후작이 백작보단 더 강하긴 해도 까놓고 보면 후작은 그냥 백작인데 힘쎈거란 소리
후작이 백작한테 소리 치고 하는건 그냥 불가능에 가깝다고 본다
이는 공작령끼리 전쟁하잔 소리나 다름없음

즉 후작이란건 중세엔 존재하지도 않았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냥 변경백 그 자체가 후작의 정체


5. 자작
후작은 변경백의 잘못된 좆본번역이었다면
자작은 중세 끝날때 생긴 직위임
무슨 의미냐면 준남작처럼 부백작 정도의 의미가 됨
일단 자작령이란건 중세에 존재하지 않았음
영어 표현도 vis-count로 백작의 총리 정도의 의미

백작이 부재한 특수한 경우에 대리백작을 한 아주 특수한 몇사례가 있었으며
나머지는 백작대신해서 영지순방하는 관리였던게 자작의 정체

자작이란 칭호도 제대로 된 칭호가 아닌데
자작령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
모종의 사유로 백작부재로 인해 자작이 대리통치를 하더라도
백작령이라고 표현했지 자작령이라곤 표현 할 수가 없었음
즉 남작령은 성립해도 더 위라고 봐야 되는 자작령은 없는 웃긴 상황




물론 제일 중요한건 이건 중세 기준임
대항해시대나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귀족칭호로 장사하려는 왕국들이
자작 후작칭호로 장사했기 때문에 더 세분화 된건 맞다

하지만 저때쯤의 귀족은 그냥 성이나 가지고 있으면 다행인 봉건제의 영주 개념이 아니게 됨

물론 귀족이긴하지만 굳이 영주의 개념이 아니게 됐단 말

귀족의 시작은 동양이나 서양이나 대규모 토지의 소유여부였으나 중앙정부가 강해지며 자치권 행사는 줄어들며
굳이 영토에 얽메이진 않는 명예직으로의 전환이 있었다

다 좆본새끼들이 번역 좆같이 해서 생긴 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