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가 아라라기가 성장한다는 거임. 아라라기의 청춘은 잘못되지 않았다는 게 작품 테마구만.

그리고 막판에 오기랑 싸우면서 말하는 "나는 나를 구하는 거다"도 그냥 또또 궤변 늘어놓는 거잖아.


아니 오시노 오기가 아라라기의 자기파괴적 엄격함에서 비롯되기는 했어도 그래서 오기가 아라라기랑 동일인임?

아라라기의 지식을 주입받은 유사-클론이지 육체도 공유 안하고 기억도 공유 안하고 행동목적도 완전히 다른데 이러면 '타인'이잖아.

막판에 아라라기가 오기를 구한 건 지난 1년동안 그랬듯이 앞뒤 안 가리고 뛰어들어서 다시 타인을 구한 거고.


결국 아라라기는 하던 짓 한 거네 뭐.

근데 내가 개빡쳤던 점이 뭐냐면, 여기서 내면묘사만 좀 바꿨더라면 하던 짓은 하더라도 진짜로 아라라기의 성장을 그려낼 수 있었단 점이었음.


아라라기 이새끼 행동원리가 뭐임? 걍 전형적인 소년만화 주인공 행동원리잖아.

집단이 가하는 부조리를 싫어하고, 추상적인 대의명분 때문에 눈앞의 개개인이 다치는 걸 못 참고, 타인의 결점에 관대하고, 자기를 희생해서라도 남을 돕는 인간.

작중에서는 그걸 "대충대충" 이라고 부르는데, 작가가 말 돌려서 그렇지 이게 바로 유교에서 말하는 "어짊" 그자체 아님?


결국 모노가타리 시리즈 내용을 다 모아놓고 보면 그거잖아.

어진 아라라기와 그 스승 오시노 메메가, 혹독한 기성 사회의 법칙에 떠밀려서, 괴이화된(=타자화된) 소녀들에게 손을 내밀어 주고 그들을 다시 사회 안으로 당겨 주는 이야기.

여기서 아라라기가 꼴받는 점은 누가 샌드백 아니랄까봐 몸으로만 쳐맞는 게 아니라 논리로도 쳐맞고 있단 점임. 분명히 자기가 반박할 수 있는 길이 있는데도!


아니 ㅅㅂ. 아라라기가 하는 행동은 충분히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 행동들이라니까?

오히려 "자연적 질서에 어긋나는 괴이 따위 모조리 숙청이다!" 거리는 카게누이나, 뒤에서 사람 속여서 큰 그림 그리면서 "이게 다 마을의 평화를 위해서야~" 거리는 가엔이 또라이 파시스트고, 거기에 대항해서 "그건 좀..." 하는 아라라기가 정석적인 영웅상이지.


근데 아라라기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이건 위선이야..." "그냥 일시적 변덕일 뿐이야..." "자기만족에 불과해..." 식으로 자학만 하잖아?

그렇다고 걍 포기하는 것도 아니지. 할 건 다 해놓고서는 "이런 무른 걸로 괜찮을까..." 중얼거리고 있으니 사람 속이 터짐.

그래. 뭐 그럴 수 있지. 얼마 전까지 인간강도 타령하던 고딩이 뭔 대단한 신념이 있겠냐.

그래도 제목이 "끝 이야기" 면 여기서만은 좀 성장한 모습, 자신의 신념을 관철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거 아님?


아라라기 - 오기 구도는 구도만 놓고 보면 최종장에 걸맞음.

너그럽고 어진 아라라기는 이래도 되는 걸까 하는 자책감이 있었고, 그게 엄격하고 혹독한 원리원칙주의자 오기를 탄생시킴.

무르지만 무름에 대해서도 물러서 "무른 게 최선일까. 그래도 엄격함도 가치가 있지 않을까..."하는 회의를 하는 아라라기.

도리에 어긋난 걸 단죄하지만 자기가 제일 도리에 어긋난 괴이인 오기.


이 모순적인 존재들의 대면을 통해 아라라기는 성장할 수 있었음!

어떻게? 걍 원작에서 나온 대로 오기를 구해주는 걸로!

너그러움을 참지 못하고 뛰쳐나온 엄격함조차 포용하는 것만큼 너그러움의 궁극적 승리가 어디 있겠음?


근데 아라라기가 여기서 "너도 나야! 그러니까 널 구하는 건 자기만족이다!" 같은 소리 하면서 오기 구하는 거 보고 진짜 개쌍욕함.

아니, 니가 거기서 해야 될 건 승리선언이라니까?

"내 길은 틀리지 않았다. 그러니 나는 그 누구보다 지독한 위선자인 너도 구하겠다. 그게 내 길이니까."

하지만 아라라기는 이번에도 자기 행동의 올바름을 논증하지 않고 그냥 감성론에 기대서 퉁침.


마지막까지 자기 신념을 직시하길 거부하고 위선, 자기만족, 어리광, 이딴 소리로 도피하는 게 뭐가 성장임?

사랑 이야기에서 카이키랑 나데코 논쟁 보라고, 카이키도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못한 덜 자란 어른이지만, 그래도 절체절명의 순간이 오니까, 인생의 선배로서 나데코한테 자기 철학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해서 설득하잖아.

물론 내용을 곱씹어보면 좆논리인 부분도 좀 있지만 그래도 그건 카이키가 30년 넘는 인생을 쌓아오면서 정립한 하나의 가치관이었고, 그 가치관이 나데코의 상황을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으니까 나데코가 설복당한 거잖슴.


어른이 됐으면 자기 신념 정도는 당당하게 말해야 하는 거 아닌가?

언제까지 자기 행동에 대해 "이건 철없는 변덕이야" 같은 식으로 변명이나 하면서 도망칠 거임?

그건 겸손한 게 아니라 고2병이잖아. 네코 백에서 히타기가 말한 대로, 착한 짓을 하면 노려진다는 걸 아니까 일부러 나쁜 사람인 양 구는 어린애들 위악처럼.


파이어 시스터즈식 정의가 어른스럽지 않다는 건 당연함.

어른은 자기가 정의롭다고 떠벌러지도 않고, 자기 신념을 앞세워서 남한테 민폐를 주지도 않고, 세상이 흑백논리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는 것도 알고, 나쁜 사람들이랑도 악수하면서 잘 지내고, 다소의 부조리도 웃으면서 넘기고, 목표를 위해서는 이런저런 방편을 쓸 수도 있음. 그건 맞지.

하지만 결국 가슴에서는 뭐가 옳고 그른지를 명확히 정해두고 있고, 선을 넘었을 때는 '사람이 그래서는 안된다' 라고 단호하게 쳐내는 게 제대로 된 어른 아님?

근데 20권 내내 쳐 이러고 있으니 진짜 개빡치네.


난 솔직히 아라라기 이새끼도 좀 과거사 파헤쳐서 왜 이딴 성격 가지게 됐나 비설 풀어야 한다고 생각함.

자기 몸 갈아서 사람 구하는 건 좋아하는데 '어 나 너 구해준 거 아닌데. 이거 그냥 위선인데.' 같은 소리 하는 거 보면 진짜 뭐 부모가 '넌 평생 남들을 도우며 속죄해야 하는 대죄인이니 남들한테 찬양받을 생각 하지마' 같이 세뇌한 거 아닌가 궁금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