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침묵》
도시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감정은 통제 대상이 되었고, 침묵은 일종의 시민 의무가 되었다.
“감정은 사회적 병입니다.”
전광판이 반복적으로 경고를 쏟아내는 회색빛 도시. 무표정한 시민들이 고개를 숙인 채 걷는다.
아스루는 침묵 상담사였다. 매일같이 입에 테이프를 붙이는 의식은 이제 그의 일부였다.
오늘도 상담이 시작된다. 그는 말하지 않는다. 대신 손짓과 눈빛, 종이에 적는 메모만이 존재한다.
“저… 잠깐 웃어도 되나요?”
그는 반응하지 않았다. 아니, 반응할 수 없었다. 기록지엔 간단히 적힌다.
— 미약한 감정 반응. 이상 없음.
그날, 이상한 소녀가 상담소에 들어섰다. 기록엔 존재하지 않는 이름이다.
아스루는 소녀를 보자마자 머릿속이 어지러워졌다.
그녀는 종이에 단 한 줄을 적었다.
"나, 기억해요."
기억? 그럴 리가 없다. 감정도, 기억도 지워졌을 터였다. 하지만 그녀는 입모양으로 속삭였다.
“당신, 울었었죠?”
아스루는 흔들렸다. 그는 시스템 기록을 열어 과거의 상담 영상을 재생한다.
"엄마가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해도 되나요?"
과거의 레안이었다. 그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하지 못했다.
결과는 참혹했다. 레안의 어머니는 감정 억제 실패로 사망했고, 레안은 격리 처분과 함께 기억을 소거당했다.
그녀가 돌아왔다. 기억을 되찾은 채로. 그리고 묻고 있었다.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느냐고.
“그 말을 꺼내는 순간, 내가 더 무너질까봐… 무서웠어.”
그녀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래서 아무것도 안 했군요.”
레안의 손끝에서 붉은 침묵이 피어오른다. 그녀의 감정이 발현되고 있었다.
붉은 빛이 점점 확산되고, 시스템이 경고를 울린다.
— 10분 내 억제 실패 시 전 도시 감염.
아스루는 선택의 기로에 선다. 그녀를 제거하면 도시를 지킬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입을 열었다. 조용하고 단단하게.
“미안해. 너무 늦었지…”
레안은 웃었다. 붉은 침묵은 그녀 안에 머물렀고, 더는 퍼지지 않았다.
“말해줘서 고마워요. 늦었지만.”
감정은 도시를 파괴하지 않았다. 감정은 그녀에게만 남았고, 조용히 사라졌다.
시스템은 사건을 이렇게 정의했다.
— 침묵 억제 성공. 전파 없음.
그녀는 기억 소거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소거되었다.
아무도 그 일이 있었다는 걸 기억하지 못한다. 단 한 사람, 아스루를 제외하고는.
그는 오늘도 상담소로 돌아왔다. 입에 테이프를 붙이지 않았다.
새로운 상담자가 들어와 조용히 앉는다.
“선생님… 혹시 누굴 잃어본 적 있어요?”
아스루는 멈칫했다. 입을 열까 말까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으며 메모를 적는다.
그녀는 마지막까지 울지 않았다. 내가 울었고, 그녀는 웃었다.
나는 이제야 이해한다. 말은 감정을 살리진 못한다. 하지만 누군가는 기억은 한다.
도시엔 여전히 같은 문구가 울려 퍼진다.
“감정은 사회적 병입니다.”
거리의 사람들은 여전히 말이 없다. 그러나 상담소 앞, 한 사람이 아스루를 바라본다.
그리고 입모양으로, 조용히 묻는다.
“괜찮아요?”
아스루는 웃으며 대답했다. 입모양으로.
“응.”
《붉은 침묵》
-끝-
가독성이 좀 씹창 났긴 했는데 처음이라 이해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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