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요즘 라노벨답지 않게 사실상 4권부터는 단권완결적이기보다는 쭈욱 스토리가 이어지는 형식인 점은 괜찮았음.

캐릭터도 꽤 잘 뽑고, 능력자 배틀물답게 전투씬도 잘 쓰고, 세계관도 독창적이고 주인공들의 대립 구도도 취향이라서 마음에 들긴 함.


근데 짜치는 점은...

1. 거창한 세계관이랑 배경설정에 비해서 분위기가 너무 가벼움.

2. 남주인공의 행동원리에 공감하기가 어렵고 캐릭터성을 잘 모르겠음.

3. 주인공들의 서사랑 전혀 상관없는 방향으로 스토리가 흐르고 있음.

4. (개인취향) 너무 작위적인 클리셰 상황이 많이 나옴

1+2+3+4 -> 정교한 정치극과 유치한 캐빨물 사이에서 오묘한 미스매치가 일어남.


1. 분위기가 가볍다는 게 뭐냐면, 100년 동안 대립해온 과학국가 vs 마법국가의 블랙옵스가 메인 스토리인데 아무도 안 죽는 건 좀 너무하지 않음?

주인공 일행이야 그렇다 쳐도 무슨 악역 조역도 뒤통수쳐서 기절 엑스트라 병사도 뒤통수쳐서 기절이라니 뭔 불살런함?

심지어 폭발에 휘말린 엑스트라 운전사도 안 죽고 중상 입는 걸로 끝남 ㅋㅋㅋㅋ


2. 남주인공 이스카의 스탠스는 괜찮음.

"난 천제국이 냉전에서 이기길 원하긴 하지만 그건 천제국 주도 하의 평화협정을 바라는 거지 멸절전쟁을 바라지 않는다."


근데 왜 이런 철학을 가지게 되었는지 설명이 없다 보니 얘가 상부에 반발하면서 독자행동할 때는 그냥 순진한 애새끼가 트롤링하는 걸로밖에 안 보이고, 뭣보다 그 철학을 진지하게 관철하는 것도 아님.

왜냐면 자기 철학을 표출하는 독자행동도 1~3권 정도에서만 나오고, 주요 메인스토리가 진행되는 4권부터 주인공은 대장 성문가리개 얻으려고 의뢰받고 움직이는 용병 신세라서, 신념이 도전받을 기회조차 사라지니까.


심지어 교묘하게 천제국 동료들과 충돌을 피하는 식으로 스토리가 전개되니까 별로 반항아 같지도 않음.

그냥 어쩌다보니 적국 황청의 정치싸움에 휘말려서 상부의 의중과 다소 다른 행동을 하는 캐릭터 1일 뿐.

사실 글 쓰면서 느낀 건데 지금 남주뿐 아니라 남주팀 전체의 행동원리가 좀 이해가 안 가긴 하는데 뭐 그건 일단 넘어가자.


3. 위랑 연결된 건데, 너나성전의 메인 목표는 결국 남주 이츠카와 여주 앨리스가 평화를 이룩하는 거 아님?

처음에는 전장에서 적으로 만났지만, 서로에게 공통점이 있다는 걸 이해하고, 그러다 보니 호감을 느끼고, 사랑의 힘으로 성장하게 되는 거.

이스카는 이스카대로 "아 100년간 쌓인 증오가 말 몇마디로 풀리는 게 아니구나, 어떻게 하지?" 고민하면서 해답을 찾고.

앨리스는 앨리스대로 "우리 황청이 천제국을 정복해봤자 또 똑같은 비극이 반복될 뿐이구나" 고민하면서 해답을 찾고.

그렇게 해답을 찾아서 '소통을 통한 평화'를 이루는 게 기동전사 건담 때부터 이어져온 진영대립물의 정석이잖아.


근데 4~8권까지 너나성전의 메인 아크는 이런 거랑 좆도 상관없음.

천제국 상층부와 황청 내부의 배신자가 손을 잡고 뭐 이상한 실험을 해서 신의 힘에 다가간다, 뭐 이런 게 핵심 떡밥임.

쿠데타나 납치나 암살작전 같은 블랙옵스는 그런 승천계획의 일환으로 이루어지는 거고.


오해하면 안 될 게, 나 이런 구도 좋아함.

믿을 수 없는 아군 상층부가 주인공도 모르게 음모 꾸미고, 국가 내부에도 여러 파벌이 있어서 적국과 야합하기도 하면서, 수많은 파벌들이 각자 꿍꿍이를 가지고 움직이는 군상극.

그리고 실제로 작가가 이 군상극을 꽤 잘 써서 되게 재밌음.

문제는 이스카나 앨리스나 양쪽 다 이 음모의 "관전자" 라는 거.


이스카는 휴가나와서 천제국 전투서열에서 열외된 상황이고, 앨리스는 블랙옵스의 메인타겟이 아님.

그래서 뭔가 조역들이 재밌어 보이는 짓은 훨씬 많이 하고, 주인공 팀은 그냥 뒤치닥거리밖에 못함.

뭐 9권부터는 달라질 수도 있는데 킹무갓키로 슬쩍 스포 본 걸로 봐서는 딱히 달라질 거 같지는 않음.


4. 클리셰 떡칠은 뭐 라노벨이면 나오는 여름바다, 비키니, 무릎베개, 동침소동, 질투하는 정실 등등이 안 빼놓고 나온다는 거?

나는 그런 거 별로 안 좋아해서 휙휙 넘기는 터라 마이너스였는데 뭐 좋아하는 사람이면 괜찮을지도.


결론

좀 아쉬움. 세계관이나 설정은 되게 취향이고 캐릭터도 잘 만들었는데 좋은 재료를 가지고 요리를 잘 못했달까...

역시 코노라노 무관은 무관인 이유가 있다는 걸 느낀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