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전에 썻던 라노벨 초반부 - 라이트 노벨 갤러리

대충 이거랑 이어짐.

대충 소울 시리즈랑 코드 베인, 엔더 릴리즈처럼 소울라이크스러운 세계관으로 쓰려고 했던 거임.

일단 올리는 건 여기까지. 못 쓴 글 보느라 고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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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둑어둑한 밤하늘은 비를 여전히 쏟아내고 있었다. 땅은 질척이는 진흙과 물웅덩이로 보행자의 짜증을 유발했다.

토독토독.

영원은 우산에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를 음악 삼아 퇴근 중이었다. 창문에 그의 모습이 비쳤다.

이 지역 사람들의 특징인 흑발이 짧고 시원하게 잘 정돈되어 있었다. 연한 눈주름, 날카로운 눈매, 그 안에 어두운 갈색 눈동자가 흐릿하게 자리했다. 뚜렷한 이목구비가 묘하게 웃는 상이었다. 검은색 바지와 마이, 붉은색 셔츠를 입은 그의 몸은 옷을 벗지 않아도 균형 있게 잘 단련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새 제복을 입은 그는 철 담뱃갑에서 궐련을 꺼내 입에 물었다.

담배 연기 사이로 가로등과 6층 이하의 아르누보 양식의 건축물들이 거리에 즐비해 있었다. 관리만 잘 되었다면 고풍스러웠을 테지만, 지금은 곳곳에 이끼가 끼고 금이 가 을씨년스럽기 그지없었다. 비가 와서 더더욱 그랬다. 거리 곳곳에 위치한 향 항아리는 비에 젖어 연기가 피어오르지 않았다. 영원은 연기를 내뿜으며 주변을 둘러봤다. 어느 방향을 바라봐도 즐비한 건물들 끝에 있는 건 벽이었다.

요새의 사람들을 회귀가 득실거리는 바깥으로부터 지켜주는 방패. 검은 증기 요새의 벽이었다.

광장에는 증기기관차 모양의 조각상이 세워진 분수대가 있었다. 깨끗하게 관리되기는 했지만, 안에 고인 물은 오직 빗물 뿐이었다.

“정말 아닙니다.”

“거짓말하지 마!”

어딘가에서 빗소리를 뚫고 격양된 남성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너 나한테 주술 걸려고 했잖아!”

“아닙니다!”

“애초에 네가 왜 이 시간에 이런 곳에 있는 거야? 뭔 개짓거리를 꾸미는 건데?”

“회귀병을 퍼뜨리려는 거냐? 어?!”

목소리는 건물과 건물 사이의 골목에서 들리고 있었다. 영원이 향한 그곳에서는 로브 쓴 자를 두 남성이 막아서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이 주먹을 치켜들었다.

“너희한테 위협받으면 죽여도 되는 거 알지?”

그때, 영원이 달려가 힘이 실리기 직전의 주먹을 잡았다.

“뭐야, 이 새….”

남자는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영원을 본 남성들의 표정에는 당혹감이 서렸다.

“회귀부대원이잖아?”

목소리도 표정을 따라 불안하게 흔들렸다.

“네, 맞습니다. 제2 회귀부대원입니다. 여기서부터는 제가 맡을 테니 집에 들어가시죠. 비도 오는데 집에 있을 밀주도 좀 드시고요.”

영원은 웃음기 섞인 유쾌한 어조로 말했지만 웃고 있지 않았다. 남자들은 뭐라고 항의하려 했지만, 이내 포기하고 골목을 벗어났다. 그러면서 영원에게 닿지 않으려고 몸을 움츠렸다. 마치 병이 옮지 않으려는 것처럼. 영원은 그들의 뒷모습을 싸늘한 눈으로 쳐다보다가 로브를 쓴 남자에게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케인 씨.”

로브를 쓴 자, 케인도 그에게 허리를 살짝 숙였다.

“안녕하세요, 영원 씨.”

케인은 구릿빛 피부에 흑발을 가진 이국적인 외모의 남성이었다. 그의 이마에는 원 안에 삼각형, 그 안에 특이한 문자들로 이루어진 문양이 찍혀 있었다. 영원이 그에게 우산을 씌워줬다.

“이 시간에 여기에 계시다니, 오늘 팔티시패스인 인권단체 활동은 없었던 걸로 아는데.”

“그게…. 군청에 들를 일이 있었습니다.”

“혹시 제가 들으면 안 되는 건가요?”

케인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상관없어요.”

“그렇군요.”

영원은 담배꽁초를 향 항아리에 꽂고 말했다.

“그럼, 가면서 들을까요?”

“가면서라니요?”

“팔티시패스인 구역으로 에스코트해 드리려고요. 혹시, 남자한테 에스코트 받는 거 싫어하시나요?”

영원의 농담에 케인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아니요. 그건 아니지만, 정말 괜찮으십니까? 당신의 집은 반대 방향이잖습니까.”

“괜찮아요. 아까 작전 중에 죽었다 살아나서 오늘 활동 별로 안 했거든요. 재활로 산책 좀 하는 겸이죠.”

“정말 감사합니다.”

둘은 우산을 반씩 쓰고 거리를 걸었다. 길거리에서 마주친 사람들은 거리를 벌려 그들을 피했고 몇몇은 수군거리기까지 했다. 케인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지만, 영원은 불쾌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누구 덕분에 살고 있는 건데.”

회귀부대는 요새 밖에서 수행되는 작전 외에도 요새 문 지키기, 요새 비상 상황 시에 제일 먼저 투입된다. 영원이 지금 상황에 불만이 있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쏴아아아.

비는 그칠 기색이 없었다. 주변에 사람들이 줄어들자 케인은 한숨을 쉬고 입을 열었다.

“제가 오늘 군청에 왔던 이유는 실종신고였습니다.”

“그렇군요. 아시는 분인가요?”

“네, 로잘린이 사흘 전에 실종돼서요.”

로잘린, 의외의 이름에 영원은 눈을 크게 떴다. 로잘린은 케인이 속한 ‘팔티시패스인과 불완전 회귀 인권단체’의 회장이었다. 그녀와 케인이 속한 단체는 줄여서 ‘인권단체’로, 이름 그대로 팔티시패스인들과 불완전 회귀의 인권 향상 운동을 하는 단체였다.

“딸만 남기고 어디로 간 건지. 부디 무사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딸만…말입니까?”

“저희 세계 사람들이 실종되는 건 늘 있는 일입니다만, 한 단체의 회장이 사라진 건 처음이니까요.”

음울한 말은 어느덧 한탄이 되어있었다.

“아시다시피, 저희 팔티시패스인들을 향한 증오범죄와 살인은 전부터 계속 일어나고 있죠.”

영원도 잘 알고 있는 얘기였다. 케인의 얼굴에는 괴로운 기색이 역력했다.

“압니다. 이쪽 세계 사람들에게 저희는 원수나 다름없다는 것을요.”

그는 회귀가 쏟아지는 차원문 너머에 있는 ‘팔티시패스’에서 온 사람이었다.

“하지만! 저희도 회귀병에 걸려 우리 세계에서 쫓겨났습니다. 아니! 회귀병에 걸리지 않았더라도 누명을 쓴 경우가 많습니다!”

영원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에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리고 다른 팔티시패스인들도…! 그런데 우리는 이런 취급을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신세 한탄은 주변의 이목을 끌었다. 케인을 증오스럽게 쳐다보는 시선들을 영원은 똑같이 맞받아쳐 돌리게 했다.

“케인 씨, 그만.”

영원이 케인에게 눈치를 주자 목소리를 낮췄다.

“아이들도 두려움에 떨며 지내고 있어요….”

아이들이라는 단어에 영원은 한숨을 쉬었다.

“영원 씨, 만약에 말입니다. 작전 중이시거나 원주민 지역에서…이 세계에 처음 온 팔티시패스인을 보신다면 꼭 명면씨에게 데려다주세요.”

“명면씨요?”

영원도 아는 사람이었다. 명면은 팔티시패스인 및 불완전 회귀 거주 구역 내 광산주였다.

“네. 로잘린이 사라진 지금, 저희 단체의 차기 회장으로 추대받고 계십니다.”

“네? 그 사람은 팔티시패스 사람이 아닌데요?”

“상관없습니다. 명면씨는 저희를 진심으로 위해 주시니까요.”

케인의 목소리는 확신에 가득 차 있었다. 영원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케인의 말대로, 명면은 팔티시패스인들에게 많은 투자를 하고 있었다. 부모 없는 아이들을 위해서 자택을 보육원으로 리모델링. 노후한 팔티시패스인 거주 구역 내 집 보강 및 재건축과 그들을 위한 신축 아파트를 짓기 시작한 것 등. 같은 원주민들은 명면에게 손가락질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뭐, 제가 팔티시패스 사람이었어도 좋아했겠죠.”

“하하….”

솨아아.

빗줄기가 점점 더 거세졌다. 낡은 성벽. 낡은 철장으로 이루어진 문은 마치 감옥 같았다. 그 앞에 군인들이 경계근무를 서고 있었다. 그들은 빗줄기를 뚫고 다가오는 거수자 둘에게 총을 겨눴다.

“정지! 정지!”

“예.”

그들 중 한 명이 거수자에게 다가가다가 총구를 거두고 경례했다.

“필승!”

그 한 명이 회귀부대원 제복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병사의 경례를 대충 받고 손을 내렸다.

“네, 고생 많아요. 제2 회귀부대 최영원입니다.”

경계병은 그의 옆에 선 케인을 좋지 않은 눈빛으로 쳐다보며 영원에게 물었다.

“무슨 일로 오신 겁니까?”

“아, 인권단체 부회장님 바래다주려고요.”

“그렇습니까.”

경계병은 철장으로 이루어진 대문을 곁눈질했다. 철장 너머에는 팔티시패스인 대여섯 명이 서 있었다. 그들은 케인을 보고 무거웠던 표정을 누그러뜨렸다.

“부회장님! 무사히 돌아오셨군요.”

“다행입니다! 큰일이라도 겪으신 줄 알았어요!”

“케인 씨도 로잘린 씨처럼 사라진 거 아닌가 회원들 다 걱정하고 있었어요!”

인권단체 회원들이었다. 영원은 그들을 진정시키는 케인에게 손을 흔들었다. 회원들 중 케인과 마찬가지로 구릿빛 피부를 가진 남자가 영원에게 인사했다.

“오! 영원이 아니냐!”

“뭐야, 테디 씨도 나와 계시네요!”

“그렇지! 내 친구가 안 돌아오니까 걱정돼서 잠이 안 오더라!”

테디의 손이 철장의 틈새로 넘어오자, 영원은 그의 손을 잡았다.

“그렇군요. 그래도, 여기 케인 씨를 대령하였으니 이제 안심하시고 주무실 수 있겠네요!”

“맞지! 네가 내 수면제를 찾아줬어! 저 녀석의 이상론을 들어야지 잠이 오거든! 하하!”

둘은 호탕하게 웃으며 맞잡은 주먹을 흔들었다.

“어이, 테디. 무슨 말이야? 내 말이 뭐?”

“수면제. 수면 마법보다도 효과 좋은 수면제.”

호탕한 동료가 말을 바꾸지 않자, 케인은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양쪽 입꼬리는 위를 향한 채였다. 영원은 손을 놓았다.

“다음에 뵙죠.”

“그래! 다음에 또 보자고! 그때는 고기라도 썰자!”

“제가 사야겠네요?”

“물론이지! 내가 돈이 어디 있겠냐? 이 거주지역에 사는데.”

둘은 서로 장난스럽게 경례했다. 그런 다음 영원은 케인에게 허리를 살짝 굽혔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우산은 이제 못 씌워드려서 죄송하네요.”

“아닙니다. 오늘 고마웠어요, 영원 씨. 제 신세 한탄도 들어주시고….”

“비슷한 신세끼리 도와야지요.”

영원은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손 위로 올리고! 들어가!”

뒤에서 병사들의 외침이 들렸다. 영원은 걸음을 빨리 옮겼다. 그는 요새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적힌 비석을 보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비문은 ‘팔티시패스인 및 불완전 회귀 거주 구역’, 비문 내용 그대로 저 철장 너머는 팔티시패스인과 불완전 회귀가 사는 지역이었다.



어느덧 집 주변에 도착한 영원. 그가 지나가던 건물 2층 창문이 열렸다.

“회귀부대 형아다! 안녕하세요!”

창가에서 소년이 영원을 내려다보며 손을 흔들었다. 영원도 걸음을 멈추고 그에게 손을 흔들었다.

“안녕, 꼬마!”

“꼬마 아니라니까! 진수라고요! 이진수!”

그를 올려다보는 영원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저녁은 먹었어?”

“네! 엄마가 옥수수수프 해주셔서 맛있게 먹었어요!”

“그래? 난 고기볶음 먹었는데.”

“우와!”

영원은 순수하게 자기를 바라봐주는 소년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다음에 기회 되면 사줄게!”

“정말요?”

그때, 진수의 어머니가 아들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그녀는 경악에 찬 표정으로 영원을 내려다보다가 아들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회귀랑 대화하지 말랬잖니!”

“왜요? 좋은 형인데!”

“언제 돌변할지 몰라!”

그녀는 말을 더 이으려다가 그만뒀다. 영원이 미소를 거두고 싸늘한 표정으로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서둘러 창문으로 손을 뻗었다.

“형! 다음에 봐요!”

“응, 잘자!”

창문이 닫히자, 영원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는 1, 2층 주택이 즐비한 주택가에 발을 들였다. 그가 집 주변 거리 모퉁이를 돌았을 때, 자기 집 앞에 누군가가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뭐야?”

영원은 쓰러진 사람에게 달려갔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그자의 키가 성인이라기에는 작다고 생각했다. 둘이 가까워졌을 때 영원은 자기 생각이 정답이었음을 깨달았다.



바닥에 쓰러져있던 건 작은 소녀였다.



상처투성이에 온몸이 더러웠다. 영원은 우산을 내던지고 그녀를 안아 들었다. 그때, 그녀의 왼손에 새겨진 문양을 발견했다.



케인의 이마에 있던 것과 같은 낙인이었다.

그제야 소녀가 입은 팔티시패스 복장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2. 소녀를 줍다


“으응….”

소녀가 눈을 천천히 떴다. 그러나 눈에 빗물이 들어가서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가 떴다. 다시 눈을 반쯤 뜬 채 천천히 시선을 움직이며 주위를 둘러봤다. 물이 고인 바닥, 비에 젖은 거리, 물을 쏟아내는 하늘.

그리고 자신을 내려다보는 남자.

소녀의 눈망울이 커졌다.

갑작스러운 몸부림에 영원은 그녀를 놓칠 뻔했다.

“잠깐만! 왜 그래?”

“놔!”

이대로라면 사람들의 이목이 끌리고 만다. 팔티시패스인이 늦은 시간 거주지역 밖을 돌아다니는 건 위험하다. 성인도 아닌 어린 소녀라면 더더욱. 그는 그녀의 입을 막았다.

“으읍…읍!”

몸부림치는 소녀를 안고 서둘러 집에 들어갔다. 신발을 벗을 새도 없이 방안으로 향했고,

“으으읍!”

저항은 더욱 거세졌다.

“잠깐만! 멈춰 봐!”

그의 부탁에도 몸부림은 멈추지 않았고 손을 물기에 이르렀다.

“윽.”

영원은 예상치 못한 통증에 소녀를 놓쳤다. 기회를 잡은 그녀는 현관문 앞까지 달려갔지만, 다시 잡혔다.

“이거 놔!”

“사람 말 좀 들어.”

열려있는 현관문을 통해 그들의 목소리가 빠져나갔다.

“밖은 위험해.”

“놓으라고!”

“제발 내 말 들어줘!”

“싫어…! 놔! 놓으라고!”

그는 그녀를 붙잡은 채 현관문을 닫았다. 그러는 동안 손톱이 손등을 찢는 고통을 그대로 느꼈다.

“윽…! 부탁이니까 가만히 좀…!”

“싫어! 싫어!”

몸부림이 더욱 격해졌다. 그녀를 안고 창고로 들어가는 동안 발악하는 뒤통수에 코를 정통으로 부딪혀 코피가 났다. 안 쓰는 물건들이 즐비한 그곳에서 그는 밧줄을 주워 낡은 의자에 소녀를 앉히고 묶었다.

“아, 아파! 그만둬! 싫어!”

몸의 자유를 잃은 그녀는 몸부림치며 남은 발로 계속 발길질했다.

“이거 풀어! 빨리!”

영원은 물러나서 벽에 등을 기대고 미끄러지듯 앉았다.

“하….”

그는 소녀의 저항 결과로 흐르는 피를 보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속박당한 그녀는 얼굴을 찡그리며 외쳤다.

“왜 이러는 거야!”

빗물과 오물, 눈물과 콧물 그리고 땀 등이 뒤섞여서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그는 계속 소리치는 그녀를 말없이 바라보며 궐련에 불을 붙였다. 곧 창고 안은 담배 연기로 자욱해졌고 궐련 길이는 손가락 한 마디 정도로 줄었다. 계속되는 외침에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날카로운 갈색 눈동자가 그저 추태를 바라볼 뿐이었다.

소녀의 손에 있는 낙인.

케인과 테디, 더 나아가 이 세계에 사는 모든 팔티시패스인의 몸 어딘가에 찍힌 낙인이었다.

“야!”

그리고 소녀의 적대적인 반응. 회귀부대원을 대놓고 적대한다. 이런 행동은 이 세계에서 며칠 살아본 팔티시패스인들이라면 보일 수 없는 반응이었다. 회귀부대원 대다수는 비슷한 처지인 그들에게 우호적이니까.

“야! 야…! 뭐라고 말 좀 해봐!”

한 사람만의 침묵에 계속되자, 소녀의 말 뉘앙스가 어느새 바뀌어있었다.

“안 들려?”

대답 요구에 침묵으로 대답하며 영원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 어디 가냐고!”

그는 창고 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할 말 잃은 그녀는 방문을 잠깐 바라보다가,

“왜 이러는 거야! 날 놔줘!”

다시 울분을 토했다.

“돌아와! 뭐라고 말 좀 해 봐!”

갈 곳 잃은 목소리가 창고에 울렸다.

“야! 너 도대체 뭐야?”

아무리 외쳐도 변하는 건 없었다.

“…….”

창고가 잠잠해지자 영원이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소녀는 지쳐서 몸을 축 늘어뜨리고 있다가 그를 보더니 자세를 고쳐잡았다. 영원은 일상복으로 갈아입은 채였다. 코피가 흐르던 코도 막았고 다친 손에 붕대가 감겨 있었다. 멀쩡한 손에는 빵과 수프, 물이 올라간 쟁반을 들고 말없이 소녀를 내려다봤다.

“내 말 무시하지 마…!”

그는 손에 든 것을 바닥에 내려놓고 벽에 기대어 앉았다. 당당하던 목소리가 이제는 떨리기 시작했다.

“무시하지 말란 말이야….”

“무시하지 말라는 건.”

영원은 천천히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대화할 마음이 들었다는 거지?”

“그건….”

소녀의 머뭇거림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화 안 할 거면 네 말을 들을 이유가 없지.”

그가 다시 문으로 향하자 그녀는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불러 세웠다.

“아니야! 말할게!”

회귀부대원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계획대로.’

그러고는 다시 그녀의 앞에 앉아서 관찰했다. 소녀는 영원과 음식을 번갈아 가며 쳐다봤다. 그러다가 자기 표정이 풀어진 걸 깨닫고 다시 인상을 찡그렸다.

“배고파?”

그 물음에 그녀는 고개를 획 돌렸다.

“…흥!”

그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자, 그럼. 서로 피차 궁금한 게 많을 거야. 그렇지?”

소녀는 시선을 피했다. 여전히 반항적인 태도였지만 영원은 개의치 않고 입을 열었다.

“그럼, 나부터 물어볼게. 우선….”

꼬르르르륵.

우스꽝스러운 소리의 범인은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를 획 돌렸다.

“배고픈가 보네.”

대답 대신 점점 붉게 물들어가는 소녀의 볼을 보며 그는 고개를 옆으로 비스듬히 끄덕였다. 그런 다음 접이식 책상을 펼쳐 그녀 앞에 놓았다.

“기다려.”

그 말을 남기고 나갔고 그녀는 문을 쳐다봤다. 그러다가 그가 돌아오는 인기척이 들리자,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렸다. 방으로 돌아온 그는 들고 있던 물이 든 세숫대야와 수건을 책상에 내려놓았다.

“먹기 전에 일단 씻어야 해.”

“풀어주면 혼자 할 수 있어!”

“내 손 봤으면 그런 말 안 할 텐데.”

물이 묻어 차가운 수건이 닿자 그녀는 몸을 움츠렸다.

“읏…! 하지 마, 변태야!”

영원은 크게 웃었다.

“변태라니? 난 동생들도 있었다고.”

“그게 무슨 상관인데?”

“네 몸에 관심 일도 없다고.”

“말이 안 되잖아…. 으앗, 진짜!”

소녀의 얼굴과 손을 닦아주고 머리를 말려준 영원은 감탄했다.

다른 아이들과 비교해도 큰 눈과 똘망똘망한 녹색 눈동자, 오똑한 코, 허리까지 내려오는 주홍색 머리카락과 새하얀 피부. 전체적으로 귀여운 얼굴이었지만, 이 지역 사람들과는 달리 이국적이었다.

“귀엽네.”

솔직한 감상에 소녀는 어깨를 움츠렸다.

“시, 시끄러워! 변태야!”

“이게 왜 변태인데.”

어깨를 으쓱한 그는 책상에 음식을 놓았다.

“잘 참았어. 그럼, 먹어.”

소녀는 분명히 배가 고팠다. 하지만 음식을 먹지 않고 눈앞의 남자를 노려봤다. 그는 한숨을 푹 쉬었다.

“미안.”

소녀를 묶은 밧줄을 느슨하게 했다. 그 덕에 팔을 움직일 수 있게 된 소녀는 빵을 베어 물었다. 온몸에 힘을 빡 주고 그를 째려보며. 경계심 담긴 시선에 그는 자리를 비키기로 했다.

“다 먹으면 불러.”

덜컹.

영원은 문을 닫고 어지럽혀진 신발장과 소녀를 씻길 때 사용했던 물건을 정리했다. 그 후 거실 전화기로 손을 뻗었다.

[네.]

수화기에서 잔뜩 잠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어, 나야.”

[콜록, 콜록!]

기침 소리에 이어 발신자는 영원에게 익숙한 목소리를 냈다.

[서, 선배? 이 시간에 어쩐 일이세요?]

미화의 호들갑스러운 말투에 그는 미소 지었다.

“그냥, 물어볼 게 있어서.”

[어떤 건가요?]

한숨과 동시에 그의 시선이 창고로 향했다.

“명면 그 사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그분이요? 선배도 아시잖아요? 좋은 분이시죠! 이세계 사람들이랑 우리 세계 사람들 안 가리고 챙겨주시니까요! 또, 거주 구역에 보육원도 만들고…사람들 챙기려고 다른 사람들은 기피하는 ‘거주지역’에서 사셔요.]

“그렇구나.”

영원은 궐련을 입에 문 채로 손에 감긴 붕대를 살짝 풀어서 확인하고 다시 묶었다.

“보육원은?”

[네?]

“보육원 평판은 어때?”

으음….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말 길게 늘어뜨림.

[잘 몰라요. 그래도 사람들한테는 평가가 좋지 않을까요?]

“그러냐.”

그는 연기를 내뿜고 천천히 퍼지는 모습을 바라봤다.

그때.

“다 먹었어! 안 들려? 다 먹었다니까!”

식사해서 그런지 더 힘찬 소녀의 목소리가 집 안에 울렸다.

[선배 혹시….]

“맞아.”

몇 초간 침묵이 흘렀다.

[어디에서요?]

소녀를 집 앞에서 만났다는 말에 미화의 목소리가 심각해졌다.

[네? 밖이 아니라 요새 안에서요? 그럼, 요새 안에서 차원문이…!]

“아니야.”

즉시 후배의 걱정을 끊어버리려는 선배였다.

“아마 하수도로 들어왔을 거야. 냄새가 딱 그렇거든.”

[하수도 경계병들이 농땡이를 피운 거네요.]

“그런가 봐.”

수화기 너머로 한숨이 들렸다.

[이러다 요새가 뚫리는 건데….]

팔티시패스 출신 마법사들이 협력하는 이상, 차원문이 요새에서 열릴 리가 없었다. 그들이 자신들의 요새 거주권을 걸고 차원문 거부 술식을 펼쳐놨기 때문이었다.

[요새는 사소한 계기로 뚫리는데…한 번 뚫리면 막기 힘들어서….]

냉랭해진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미화. 영원은 주위를 돌렸다.

“안경은 괜찮냐?”

[…아뇨! 도수가 약간 안 맞아요!]

다시 밝아진 목소리. 영원은 성공했음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래서 말인데…내일 같이 맞추러 가실래요?]

“뭐? 싫은데?”

[왜요! 같이 맞추러 가요! 요즘 ‘길 닦기’랑 차원문 때문에 일만 했잖아요!]

“싫은데.”

[네?]

계속 거절하는 것과 상반되게 그의 입꼬리는 올라가 있었다.

“농담이야…. 일 끝나고 맞추러 가자.”

[네! 약속하신 거예요! 새끼손가락은 못 걸지만 꼭 지켜주세요!]

“아니야. 새끼손가락 걸게. 내가 약속 어기면 가져가.”

[그런 말이 아니잖아요!]

후배의 반응에 영원은 진심으로 웃다가 방 쪽을 쳐다봤다.

“야! 일부러 무시하는 거야?”

‘시간을 너무 오래 끌었네.’

그는 아차 싶은 마음에 미화에게 말했다.

“이 애가 사람을 못 믿어서 묶어놨거든. 창고에 있는데 너무 불안해하는 거 같아. 일단 끊을게.”

[네. 내일 봬요, 선배.]

“잘자.”

[선배도요.]

전화를 끊은 그는 창고로 들어갔다. 음식이 있었던 접시는 깨끗하게 비어있었다.

“빨리 먹었구나. 더 필요해?”

“…안심시키려는 거지?”

여전히 적대적인 눈빛을 보내는 소녀. 영원은 한숨을 쉬었다.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야.”

“수프에 이상한 짓 한 거 아니지?”

“먹는 거로 장난치면 벌 받아. 너 지금 멀쩡하잖아.”

소녀가 고개를 푹 숙였다.

“…더 줘.”

빵과 수프가 다시 그녀의 앞에 놨다.

“다 먹으면 불러. 이번에는 문 앞에 서 있을게.”

“저기.”

문을 향해 걸어가던 영원은 소녀에게로 몸을 돌렸다. 소녀가 고개를 숙인 채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대화.”

“뭐?”

“으…! 대화하자고, 대화! 그러니까 여기에 있어!”

그렇게 외치고는 빵을 크게 한 입 베어 물었다.

오물오물.

그녀는 그를 노려보며 음식을 씹었다. 그 모습에 영원은 어딘가 아련한 표정을 지었다.

“의자가….”

영원은 먼지투성이 의자를 끌고 와서 소녀 맞은편에 앉았다. 잠깐 사이에 소녀가 먹던 빵은 크기가 훨씬 줄어있었다. 빵이 가득 들어서 빵빵해진 볼을 보며 그는 미소 지었다.

“나부터 이야기할까?”

“….”

대답 대신 수프 한 숟갈이 줄었다.

“난 최영원이야. 넌?”

“…안 말 할래.”

아까랑 달라진 말에 그는 기가막혔다.

“뭐?”

뭐라고 하려고 했지만, 그녀가 더 빨랐다.

“강제로 끌고 와서 묶었잖아! 날 어떻게 하려는 거야!”

“도와주려는 거야.”

“그걸 어떻게 믿어! 저항하지 못하게 하려는 거잖아!”

그 말에 영원은 고개를 살짝 비스듬하게 숙였다.

“저항하지 못하게…한 건 맞지.”

“그럴 줄 알았어! 너도 다른 녀석들처럼 날 이용하려는 거잖아!”

“다른 녀석들이라니?”

질문에 그녀는 입을 꾹 다물었다. 대답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지자 그는 더 캐묻지 않았다. 대신 책상에 붕대를 감은 손을 올려놓았다.

“내가 왜 널 묶어놨을까?”

“이건…네가 날 억지로 납치해서 그런 거잖아!”

“납치라니. 널 도우려는 과정에서 발생한 해프닝일 뿐이야.”

“이게 납치가 아니면 뭔데?”

영원은 머리를 짚었다.

“내가 널 납치할 이유가 뭔데?”

“다른 사람한테 나를 팔려는 거잖아? 그게 아니라면 나, 나한테….”

소녀는 우물쭈물하다가 눈을 질끈 감고 소리쳤다.

“나한테 야한 짓을 하려는 거잖아!”

말을 마친 그녀의 얼굴은 홍시처럼 붉어졌다. 당황한 영원은 최대한 천천히, 또박또박 말했다.

“나는, 가슴, 큰 게, 좋아. 껌딱지 꼬맹이한테는, 관심, 없어.”

“누, 누가 껌딱지 꼬맹이야!”

소리를 지른 소녀는 계속해서 입을 움직였으나 말이 나오지 않았다. 말이 꼬인 것이다. 그는 그 틈에 밀어붙였다.

“생각해 봐. 나는 꼬맹이 몸에 관심 없어. 그럼 내가 왜 음식을 줬겠어?”

“그건…말과 먹을 거로 안심하게 하고 괴롭히는 걸 즐겨서….”

소녀의 목소리가 서서히 작아졌다. 영원의 표정이 실시간으로 심상치 않아지자, 작은 몸도 목소리와 마찬가지로 움츠러들었다. 기어들어 가던 말은 허탈한 웃음소리에 완전히 끊겨버렸다.

“못 하는 말이 없네!”

영원이 갑자기 크게 외치자, 소녀는 어깨를 들썩였다.

“장난은 여기까지 하고 진지하게 얘기하자.”

그는 그녀의 왼쪽 손목을 잡아챘다.

“뭐 하는 거야? 이거 놔…!”

그녀가 팔을 빼려고 했지만, 아이와 성인 남성은 힘 차이가 명확했다.

“놓으라고…!”

“네 왼손에 있는 이 문양.”



케인과 같은 낙인.

회귀 낙인.



“너, 회귀냐?”

소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 속에 담긴 건 당황이었다.



“이건 그쪽 세계에서 회귀를 보낼 때 찍는 낙인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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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친구한테 커미션 맡겼던 캐릭터들


1. 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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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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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소녀(나중에 입는 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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