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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나의 어사일럼.


국내 라노벨 중에서는 꽤 특이한 작품이라 해서 읽어 보려고 샀다가, 구입한지 한 달이나 지난 지금이 되어서야 꺼내어 읽었다.


먼지만 쌓여 가던 책을 펼치니 도입부부터가 심상치 않다. 확실히 그 말 그대로다. 국산 라노벨들 중에서 저렇게 특이한 몇 줄 글로 도입부를 시작하는 작품이 있을까.



도입부는 흥미를 꽉 잡아 당겼다. 오오 무슨 내용일까 하고 기대감이 들게 했다.


근데, 정작 내용은 그다지.



국산 라노벨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지만, 우리나라 작가분들 정말 상상력 대단하다. 그런 소재를 다룰 생각을 하고, 이런 발상을 한다는 게 참... 이런 게 작가고 이런 게 비범하다는 거구나 싶다.


당신과 나의 어사일럼도 그렇다. 서양 영화 중에 땅 밑에 갇혀서 주인공 혼자 탈출하려고 몸부림 치는 영화가 있다고 하는데, 그거랑 마찬가지다. 이 작품에는 등장인물이 단 3명밖에 등장하지 않고 나머지는 모두 주인공의 회상 속에서만 간간히 언급되는 게 다다. 행동 범위도 감금된 방과 그 주변이 다다. 나머지 사건의 전개는 다 대화로서 이루어진다.


그럼에도 작품은 흥미진진하고 알차게 진행된다. 수발을 들고 대화를 나누는 게 끝이지만 사건은 기승전결 완벽하게 딱딱 갖춰 진다. 앞서 말했듯이 정작 주인공은 그냥 방 안에 갇혀있을 뿐이지만.



소재 자체는 좋다.


발상도 참 좋았다고 본다.


이 작가 필력도 정말 대단하고 보고... 칭찬이 아깝지 않다.




하지만 내용은 별로였다.



소재 자체는 매우 무거운데 정작 글의 분위기는 가볍다 못해 날아갈 정도다. 라노벨스러움을 너무 추구한 끝에, 작품의 특성이자 아이덴티티라 할 수 있는 '기존의 라노벨과는 다른' 요소들을 완전히 깎아먹었다.


고문광이자 무자비하고 성격에 뭔가 문제가 있으신 은사자 님은 후반부로 갈수록 히로인A에 지나지 않게 된다. 현실로 치자면 살인을 즐기는 미친놈씨가 점점 데레데레하게 변해 가는 모습 같다고 할까.


뭐, 그럴 수도 있지.


근데 보는 사람은 좀 거부감이 든다. 윤리관이라는 게 그렇다. 법을 충실히 지키지 않는 사람이라도, 모범 시민이 아니더라도 살인마가 데레데레해져서 히로인으로 전락한 다음 주인공이랑 쿵짝쿵짝 하는 거 좋아할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살인마는 살인마다.


죗값을 치루고서 뭘 하든가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지 않을까?


죄인을 히로인 포지션에 넣으려면 적어도 고해성사는 치룬 다음이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누군가를 죽인 살인마가 이유도 없이 구원받고, 그러면서도 단지 얘는 성격이 꼬였고 가정사가 불쌍해서 살인을 저지른 거예요. 이러쿵 저러쿵 사연이 있으니, 또 이제부턴 그런 짓 안할 테니 우리 히로인으로 만들어드리죠? 하면 누가 옳소! 하겠는가.



윤리관이란 게 그렇다. 지극히 합리적이다. 이 윤리관이라는 거 자체가 인간 스스로가 불합당한 대우를 받지 않기 위해 지키는 거라서 이성적이고, 또 논리적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점에서 거부감이 든다.



그리고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한 건, 당연하겠지만 스토리도 포함 된다.


당신과 나의 어사일럼은 1. 현실 회상 2. 소환된 이후 감금된 방 이 두 개로 나뉘어서 진행되는데, 사실 이럴 필요가 있었나 싶다.


두 개로 나누는 바람에 가뜩이나 얇은 책이 두 개의 이야기 전부를 반만 보여 주게 되었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도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조금 더 이야기를 늘려서 개연성을 탄탄하게 하려고 했어도 나쁘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작가가 추구한 방향이 어떨지는 나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지만, 회상편은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있는 중학생이 공책에 써 갈긴 설정 정도에 지나지 않는 내용의 깊이밖에 되지 못했다고 본다. 모든 것이 나에겐 이런 일이 있었고 그렇게 되었다. 식의 설명으로 시작하고 끝난다. 일기를 읽는 느낌을 주려고 했다면 성공적이겠지만, 일기를 읽고 희열하거나 엄지 척을 하거나 팬이 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있다면 그 일기가 안네의 일기 급으로 파급력을 지닌 거고.



아쉬운 점을 계속해서 말했지만, 오해하지 마시길. 적어도 이 작품은 내가 여태껏 샀었던 폐급 국산 라노벨들보단 훠얼씬 낫다. 필력도 저 아래에 깔린 지뢰들에 비하면 천상계 급이다. 필력 하나는 정말 좋다. 이 필력으로 다른 재밌는 작품들을 많이 써줬으면 좋겠다. 그럼 이 작품은 추가로 사지 않겠지만, 다른 작품들은 아마 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하나 더 좋은 점을 말하자면 바로 제목과 내용의 이어짐이다.



제목은 매우 상징적이다. 어사일럼. 정신병동을 의미하는 영단어다. 작중 내용과 정말 잘 맞는다고 본다. 내가 예전에 들은 바에 의하면 정신 병동에는 이런 방이 있다고 한다. ㅡ자로 길다란 방 안에 바닥, 양벽, 천장까지 녹색 스펀지로 되어있는 방이. (스펀지라서 머리를 부딪쳐 자해하거나 자살을 기도할 수 없다고 한다.) 그리고 그 방 안에 정신병을 앓는 환자를 넣고 문을 닫는다.


환자가 자력으로 그 방을 걸어서 나오려고 한다면 그 치료는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 방 안에서 안주한다고 한다. 바깥 세상에 대한 두려움, 무력감. 그런 나약한 의지 때문이다. 자신은 안 될 거라며, 나가봤자 아무런 의미도 없다며, 밖은 두렵다고 현실은 두렵다고 피하는 것이다. 오히려 그곳에서만 있으려고 하는 것이다. 적어도 거기선 아무도 자길 해치지 않으니까. 일시적인 평온함이라도 얻을 수 있으니까. 단지 귀를 틀어막아 얻은 고요함에 지나지 않지만.


마찬가지로 주인공이 감금된 장소는 딱 정신병동의 그 방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상황이 좀 다르다. 환자는 탈출하려고 하는데 외부 요인들이 막아선다. 정반대가 아닌가? 그렇지만, 따져보면 이는 사실 별반 다르지 않다.


정신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후천적이며, 외부적 요인으로 인해 압박받고 상처받고 그렇게 흠집들을 가득 새긴 끝에 무너지고 만 것이다. 누구나 처음엔 삶에 대한 의지를 지니고 태어난다. 태어나면서부터 절망하고 낙담하고 스스로를 낭떨어지로 매몰 정도로 자존감이 부족한 사람은 없다.


끝내 주인공은 그 방을 탈출한다. 앞을 가로막는 외부 요인들을 자신만의 수완으로 모두 물리치고서. 요컨대 그는 성공한 것이다. 두려움을 극복해낸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어사일럼 도입부의 문구가 또 특별하게 다가온다. 확실히 그렇다. 두려움이 다가온다. 허나, 물리칠 수 있다. 물리쳐야만 그 방을 나갈 수 있는 것이다.




끝으로,


이 작품의 제목은 '나의 어사일럼'이 아니라 '당신과 나의 어사일럼' 즉 2명의 정신병동인데, 이중 하나는 바로 은사자 백작이라고 본다. 은사자 백작 또한 갇혀 있다. 어사일럼 초반부에 주인공이 은사자에게 '너도 갇혀 있느냐'고 묻는데, 은사자는 부정하지만 사실 그 말의 대답은 Yes라고 본다.


한 명이 외부적 요인에 의해 갇혀있다면 (외부적 요인에 의해 낙담하고 폐쇄적인 환경에 놓이게 되었다면) 또 한 명은 내부적 요인 때문이다. 자존감이 부족하고, 자아정체성을 찾지 못해 확립된 자기 자신을 만들 수 없어 방황하고 혼란스러워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은사자' 즉 자신이 아니라 '백작' 이라는 칭호를 통해 자신을 빚어내고, 그것에 자신을 투영시켜 볼 수밖에 없다.


이건 마치 현 시대를 살아가는 학생들을 떠올리게 한다. 부모의 강요 속에서 학원에 가고, 자신과는 다른 '좋은 학생'을 흉내내는. 나는 궁금하다. 그들의 앞에 붙는 '학생' 두 글자를 빼면, 그들에게 있어 무엇이 남을까? 학생이 아닌 그들은 방황하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갈 수 있을까?


아니라면 은사자 '백작'처럼 이름 뒤에 붙는 몇 글자에 의해, 자신의 삶을 재단해 살아가는 건 아닐까?





생각할 거리가 있는 좋은 작품.


이상 리뷰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