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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훈이라는 작가가 있지. 강간 페티쉬가 있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소설에 자기 욕망을 극단적으로 배출하는 사람임. 최근에는 좀 줄었다고 하는데 역으로 필력이 쇠퇴해서 오히려 인기가 떨어졌다는 소리를 들었음. 그 홍정훈의 강간 페티쉬가 정점을 찍었다는 더 로그와 월야환담 채월야는 홍정훈의 작품 사이에서 명작으로 칭송받는 글. 여기서 우리는 홍정훈과 그러나 죄인은 용과 춤춘다의 작가 아사이 라보의 공통점을 엿볼 수 있음. 그들이 종이에 자신의 욕망을 쏟아낼 때마다 필력도 같이 솟구치는 정액처럼 잔뜩 쏟아져 나온다는 거다.


처음 그죄용춤을 읽었을 때 느낀 생각은 불쾌하기 짝이 없는 책이었지. 뭐, 시발. 주식? 마가츠시키? 거슬리는 고유명사는 흑인 자지 솟아오르듯 한도 끝도 없이 생겨나는 데 한술 더 떠서 문체는 가히 나스 기노코의 뺨따귀를 후려갈길 정도로 장황함. 전투신의 묘사는 딱히 알고 싶지도 않은 화학식으로 범벅인데다 씨발 아무튼 존나 존나 좆같았음 ㅋㅋㅋ


1권을 끝까지 읽고 당장 소각장으로 보내버릴까 고심하다가 꾹 참고 이제 2권으로 들어갔었지. 1권의 내용이 주인공들의 단편적인 사건을 한 권 안에 담아 놓은 내용이라면 2권은 단권 완결의 라이트노벨 속성을 부각한 본격적인 이능배 전개로 넘어간다. 병렬적으로 제시되는 사건과 1인칭 주인공의 시점으로 보이는 사건의 파편들. 이게 하나 둘씩 짜 맞춰지면서 사건의 보스가 드러나더라. 이후 보스를 어찌해서 고생 끝에 때려잡고 다음 권의 떡밥을 남기며 끝!


내가 이렇게 써두니까 존나 2권이 별거 아닌 것 같지? 아니더라. 2권은 1권에 비해 놀랄만한 장족의 발전이 있었음. 손잡잤 1->2권으로 넘어가는 과정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엄청난 발전이 있었다. 내 말 구라 아니다. 여전히 짜증나는 화학식과 고유명사가 속출했지만 문체는 1권에 비하면 확실히 읽어볼 만했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그죄용춤 1권과 2권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해답은 간단하다. 그죄용춤 2권은 작가가 쓰고 싶은 이야기를 썼기 때문이다. 뭔 소리냐고? 여기선 NTR과 강간이 나온다. 쓰고 싶은 소재를 쓰는 작가의 열정은 실로 무서웠다. 혹자는 번역가가 1권과 2권 사이에 장족의 발전을 이루었다고 말하는데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건 바로 작가 탓이다. 1권이 손잡잤 1권이라면 2권은 스즈미야 1권이다.


다음 편에서 작가는 상편과 하편으로 나누어진 한편의 대 드라마를 연출한다. 그리고 이 대 드라마에는 저번에 나온 NTR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혁신을 보여준다. 임신! 보통 임신이 아니다. 자신을 두고 떠난 연인의 아이를 밴 소녀가 괴물에게 능욕당해 괴물의 DNA를 주입받고 반인 반괴물의 아이를 낳는단 말이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괴물의 아이를 낳았다고 울부짖는 소녀는 “엄마가 나를 거부하면 엄마를 죽일 거야!” 라며 불꽃패드립을 날리는 자식을 아스팔트 위에서 자기 손으로 낙태시킨다. 자기 손으로 사랑하는 이의 아이를 죽이고 깔깔거리고 환호한다는 말이다. 당연히 필력은 두말할 것도 없이 장족의 발전을 이룬다. 실로 강간은 위대하다.


그리고 역사적인 8권에서 이 책은 정점을 찍는다. 8권은 실로 감탄이 아니 나올 수 없었다. 대단하다. 전 권에서 나왔던 낙태와 강간은 그저 맛뵈기였을 뿐이다. 무슨 내용이 나오냐고? 직접 봐라... 소돔 120일 이후로 오랜만에 꼬추가 조이는 내용이었다. 물론 필력에 관해서는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라고 사료되고.


내가 이 책을 리뷰하면서 작가의 이상성욕적인 소재에 초점을 맞춘 이유는 작가의 열정이 소설을 어떻게 바꿔나가느냐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을 토로하고 싶었기 때문임. 1권에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던 작가가 장족의 발전을 이루었던 건 다름 아닌 쓰고 싶은 소재가 눈앞에 있었기 때문이다. 1984의 빅 브라더가 어째서 국민들의 성욕을 통제했는지 다들 알지 않나? 성욕. 그리고 이상성욕은 위대함. 명을 내리소서의 올리비아라는 인물이, 작가의 이상성욕의 배출구가 없었더라면 과연 명을 내리소서는 명작으로 남을 수 있었을까? 그죄용춤에서 작가는 온 힘을 다해 열정을 쏟아 붓고 자기 자신을 증명했다. 자신은 연인이 NTR당하는 것을 보면서 발기하고, 자기 손으로 낙태하는 것을 보면서 딸딸이를 치며, 로리의 보지 속에 주먹을 쳐넣고 난소를 터뜨리는 것으로 사정하는 변태임을 증명했지. 변태는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