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아라 노블레스 분석 자료 (1)욱이, 30회까지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fantasy_new&no=2013674
조아라 노블레스 분석 자료 (2)대수림, 30회까지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fantasy_new&no=2013677
조아라 노블레스 분석 자료 (3)올스텟 슬레이어, 15회까지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fantasy_new&no=2013683
조아라 노블레스 분석 자료 (4)폭딜어쌔신, 15회까지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fantasy_new&no=2013686
조아라 노블레스 분석 자료 (5)블랙필드, 15회까지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fantasy_new&no=2013690
1. 서론
얼마전 폭딜어쌔신이라는 작품의 성교 장면이 모 갤러리에서 회자 되면서 많은 논란을 일었다. 단순히 '못 쓴 소설'이라면 그런 논란은 없었을 것이다. 그 작품이 월 수 백만원의 수입을 올렸다는 사실이 그런 논란에 불을 지폈음은 틀림없다.
이것은 모순적이다. 왜 모 갤에서는 짤방으로 희화화될 정도의 작품이, 어떻게 그런 수익을 올릴 수 있는가? 그렇다. 이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팔리는 작품이 좋은 소설인지 어떤지는 몰라도, 분명 어떤 종류의 재미를 창출하는 작품인 것이다. 단지 우리는 그 작품들이 주는 '재미'가 무엇인지 모르고 있기 때문에 공감할 수 없다.
이것은 한 장면에 대한 모 갤러들의 비웃음을 바탕으로 하는 생각이 아니다. 필자는 노블레스 작품을 살피면서 일련의 작품들이 하나같이 '잘 쓰지 못한' 작품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떤 작품은 기초적인 맞춤법이 미흡했으며(폭딜어쌔신), 어떤 소설은 내용의 전개가 너무 루즈했고(욱이), 어떤 소설은 너무 게임적으로 과장되어 있었다(블랙필드). 구성적인 문제가 엿보이거나(올스텟 슬레이어) 개연성이 타 작품보다 미흡한 작품(대수림)도 있었다. 각 작품은 지적된 부분 많고도 '잘 쓴 소설'이 가져야할 미덕을 가지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잘 쓴 소설이 잘팔리고, 재미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를테면 귀여니와 같은 작품은 소설이 응당 가져야할 고전적 문장미를 완전히 파괴한 실험적 소설이었다. 그럼에도 10대 소녀의 로맨스 장르가 가지는 마스터플롯으로부터 내러티브를 전개해 많은 독자의 호응을 얻었다. 너무 극단적인 예시라고 생각되면 퇴마록의 문장이나 드래곤 라자 구성을 살펴봐도 좋다.
필자는 이 소설들이 잘 쓰지 못한 것에 대해 탓할 생각이 없다. '인터넷 연재 소설'이라는 장르는 필연적으로 '잘 쓸 수 없다'. 독자는 기다리고 필요한 분량을 쓰는데 걸리는 시간은 너무 짧다. 많은 연재 작가들은 다소의 비축분만을 가지고 별도의 퇴고 없이 작품을 연재해나간다. 이것은 문단에서 한 작가가 한 계절에 한 단편 정도를 게재하는 것을 생각하면 대단한 차이다. 일반적으로 문단의 작가는 수 년 동안 한 권의 책을 만든다. 소설에 대한 완성도는 적어도 그정도까지 추구할 수 있다.
다시 돌아와서, 미흡하지만 상위권에 위치한 다섯 작품의 초반 15편(통상 200KB 내외, 단행본의 반 권 분량)을 보고 그것을 바탕으로 조아라 노블레스의 최근 경향성을 알아보고자 한다. 이 경향성은 현재 '레이드물' 또는 '헌팅물'이라고 불리는 조아라 노블레스의 주류 장르에 국한 될 것이며, 초반 15편인 관계로 그 시작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다섯 편의 데이터는 적고 그리 할 말은 많지 않다. 이런 조잡한 자료를 통해 알아볼 수 있는 것은 기실 조아라 노블레스에 대한 인상일 뿐이라고 생각하지만, 우선은 그것에 만족하기로 한다.
2. 본론
조아라 노블레스 다섯 작품은 공통된 부분이 있었다. 공통된 부분은 다음과 같다. 필자는 왜 그러한 공통점이 있는가에 대한 가설을 세워 조아라 노블레스 작품이 어떠한 재미를 주고 있는지에 대해 유추할 것이다. 이하는 공통점 열 개와 그에 대한 코멘트다.
1) 현실 배경
왜 현실 배경일까? 이것은 과거 인터넷 연재 소설, 대여점 판타지 소설과 같은 작품들의 '배경' 변천 과정을 짚어보면 흥미로울 것이다.
최초의 대여점 작품들은 대부분 '이차 세계 판타지'였다. 이것은 톨킨의 '반지의 제왕'으로 대표되는 '다른 세계에서 다른 인물들'들의 모험을 다루고 있었다. 한국에는 '드래곤라자', '룬의 아이들'과 같은 작품들이 있을 것이다. 그와 멀지 않은 시기 '퓨전 판타지'도 등장했다. 이것은 각 '세계를 넘나드는 이야기'로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나 미하엘 엔데의 '끝없는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현실 세계의 인물이 다른 세계로 가서' 겪는 모험을 그린다. 이와 같은 한국 작품은, 너무 많으므로 생략한다.
이후 한국은 여타의 해외 판타지 작품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모두가 알고 있는 '게임 판타지'의 등장으로, '사이버세계'를 다루는 것은 사실 SF의 연장선이지만('옥스타칼니스의 아이들'), 한국에선 판타지의 연장선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 다음 세대에 한국 대여점 판타지에서 등장한 것이 바로 현실 판타지, 레이드물이다.
이러한 '배경의 변천'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소설 속 배경은 '소설과 독자와의 거리'를 만들어낸다. 낯선 환경은 그만큼 독자를 낯설게 만들고 공감 능력을 저하시킨다. 낯선 세계에서 독자는 스스로가 세계에 뛰어들어야 하는 것이다. 즉, 낯선 세계를 독자를 능동적으로 만든다. 당연하지만 익숙한 세계라면 독자는 수동적으로 변한다. 덜 극적이겠지만, 좀더 편안한 위치에 있는 것이다.
2) 3인칭
다섯 작품을 골랐는데 모두 3인칭이라는 사실은 다소 의외였다. 통상적으로 1인칭이 보다 독자가 소설에서 '공감'을 하기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필자는 개인적인 가설로, '조아라 독자는 소설을 통해 대리만족한다'고 가정했기 때문에 더 당황스러웠다. 이에 대해 다른 가설(1인칭이 3인칭보다 쓰기 어렵다 등)을 세울까 했으나 미덥지 않았다. 사실이 그렇다면, 이미 알고 있는 내용에서 이해를 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다. 조아라 노블레스 독자들은 소설 속 주인공에게 '이입'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해서 대리만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럼 노블레스 독자들은 어떻게 소설 속 인물에게 대리만족을 느끼는가? 이 물음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노블레스 작품들이 '게임화'되어 있음을 의식해야한다. 즉, 노블레스 독자들은 소설 작품으로서 작품을 읽기 보다는, 게임 작품으로서 작품을 '플레이'한다. 정확히는 독자는 '플레이어는 작가'이고 독자는 '플레이를 지켜보는 사람'이다(아프리카의 게임 방송을 생각하라). 독자는 수동적으로 게임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3) 에스컬레이트식 성장
이른바 에스컬레이트 전개라고 불리는 것은 일본 소년만화에서 대단히 흔하다. 사실 대부분의 전투가 있는 매체(게임을 비롯해서) 이런 에스컬레이트 과정을 그린다. 숙련이 되며 좀더 강한 상대를 만나는 것이, 보다 높은 난이도에 도전하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게임이 아닌 소설에서 이런 방법은 '당연'한 것일까? 과거 뷁커드빠의 '스칼라물과 능력자물'이라는 게시물(fangal.org에서 볼 수 있음)을 보면 이런 에스컬레이트 전개를 '드래곤볼Z'로 대표되는 스칼라물로 보며, 마냥 강해지기 보다 각 능력자의 능력이 가위바위보처럼 상관 관계를 이루는 것을 '죠죠의 기묘한 모험'를 대표작으로 보는 능력자물로 보았다. 이런 능력자물은 소설에 와서 라이트노벨 '어떤 마술의 금서목록'을 비롯한 다수의 작품으로 나타났으므로, 에스컬레이트식 성장이 전투가 있는 매체의 필수 요소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 '초능력자'또는 '헌터', 혹은 '슬레이어' 등으로 나타나는 레이드물 작품 속 초인들은 왜 '에스컬레이트식 성장'만을 하는가? 이것은 레이드물이 뷁커드빠가 말한 두 경향과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일견 스칼라물로 느껴지는 이들 작품은 주인공들의 능력이 파워 지표인 '스칼라(레이드물에서는 통상 마나와 레벨)'에 국한되지 않는다. 마치 PC RPG처럼 돈을 벌어 아이템을 수집하고 레벨을 올리고 스킬을 늘려가는 모습이며 그것을 기록하는 과정이 소설 전개의 중심을 이룬다.
이는 스칼라물이 보다 강한 상대를 쓰러트리는 과정에서 성장하는 모습과는 차이를 보인다. 레이드물의 주인공은 초반 15편에서 계속해서 라이벌로 등장할 라이벌이나 거대한 주적이 등장하지 않으며, '성장 그 자체가 목적'인 것처럼 전개된다.
4) 게임화
앞서 살펴본 문항은 바로 이 게임화를 설명하기 위해서였다고 해도 좋다. '게임화'는 레이드물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이다. 우리는 앞서 1과 2의 속성을 통해 독자들이 '수동적으로 게임에 참여'하고 있으며 '에스컬레이트식 성장'을 즐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것은 앞선 세가지 속성 뿐만 아니라, 작위적이고 비장르 독자라면 쉽게 납득되지 않는 설정으로도 드러난다. '폭딜어쌔신'의 주인공은 느닷없이 주변에 PC RPG처럼 상태창이 뜨고 스킬을 '단축키'를 눌러 플레이한다. '올스텟 슬레이어'은 그런 경험이 모든 초능력자들에게 적용된다. 그렇지 않은 작품들도 죽은 '몬스터'의 사체가 사라지고 마치 아이템 드랍처럼 별도의 아이템을 떨구고 사라져버린다. '블랙필드'는 마치 게임의 상점을 이용하는 것처럼 게임을 통한 장비의 성장 과정을 작품의 초반부부터 설명하고 있다.
이런 게임화는 두 가지 유리함을 보이는 거 같다. 바로 직관성과 편리성이다. 게임에서 제시되는 구체적인 숫자들은 단순히 산수놀이가 아니라 명확한 실감을 가지고 있다. 특히 우리세대에 와서 그것은 더 강력한 실감이다. 우리세대, 조아라 노블레스를 읽는 세대는 게임을 통해 그것을 느끼고 경험했던 세대이기 때문이다. 각 작품에서 등장하는 포지션 탱커, 딜러, 힐러는 이미 익숙하다못해 지루하기까지하다. 하물며 '레이드'가 과거 MMORPG에서 비롯된 게임 용어인 것은 어떤가? 이런 직관은 독자가 이미 경험한 것에 바탕을 두고 있다.
편리성은 작가와 독자 모두에게 해당한다. 작가는 글을 쓰는데 있어 구체적인 디테일을 게임이라는 명목하게 빗겨나가므로, 질높은 글에 기대기보다 많은 분량을 쓰는데 집중할 수 있다(이것은 이후에 서술될 것이지만 중요한 부분이다). 독자들은 소설을 이해하는 과정을 어느 정도 생략해내는 것으로 소설에 진입하는 과정을 줄이고 있다.
이런 '게임화'는 아즈마 히로키가 언급한 '게임적 리얼리즘'의 연장선에 있다고 볼 수 있다(그 책에서 언급한 것과 같지는 않다). 게임을 경험한 세대는 그 이전의 세대와 다르고, 따라서 리얼리티를 느끼는 방법도 달라진다(또는, 다양해진다). 이런 게임화를 단순히 장르 독자에 한정되는 작위적 장치로 볼 것인지, 환상문학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새로운 창작 방법으로 볼 것인지는 이견이 있을 거 같다. 하지만 필자의 생각에 이런 창작 방법이 나타난 것은 얼마 되지 않았고, 그 한계가 명확하게 탐구되지도 않았다는 점에서 그 결정을 유보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5) 경박한 문장
다소 오해의 소지가 있을 것 같은 소제목이므로, 특별한 설명이 있길 바라겠지만 별로 길게 할 말이 없다. 각 작품의 문장은 천편일률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유사한 모습이다. 깊이가 없고, 형용사와 꾸밈말을 반복해서 사용한다. 문장에 대한 깊이가 부족한 것은 사실 대단한 속성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블랙필드'는 다른 작품과 비교될만큼 문장이 안정적이었지만, 다른 작품들이 너무 안 좋았다.
6) 신데렐라 마스터플롯
마스터플롯은 일반적으로 이야기의 원형, 서사 구조 등으로 알려진 말과 동일하다. 유명한 것으로는 영웅의 12단계 서사 구조로 재활용 마크처럼 자신의 꼬리를 가리키는 화살표의 서사 구조를 이룬다. 당연하지만 신데렐라 마스터플롯은 구전동화인 신데렐라의 이야기 구조를 따르는 작품이 가진 이야기의 원형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슈렉'과 같은 애니메이션에서 변주되었고 한국의 아침드라마, 미국의 할리퀸 로맨스 등에서 많이 쓰인다. 가난한 이가 부유한 이를 만나 부유해져 행복해진다는 이야기는 너무나 익숙하므로 더 할 이야기가 없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그것을 꿈꾸고 있다는 것도.
마스터플롯이란 것은 그만큼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익숙하게 느끼는 서사 구조라는 말이다. 노블레스 작품을 비롯해 대여점 판타지들이 독자들을 고려해 이러한 구조를 가지는 것은 전혀 의아하지 않다.
7) 남성 판타지
이 작품은 유난한 작품과 전혀 없는 작품이 있어 선택을 망설였으나, 전혀 없는 작품은 그 이유가 있다고 생각되었다. 예를 들어 '대수림'은 작가가 성교 장면을 대단히 많이 의식하고 있다고 생각되었다. 거의 5화마다 규칙적으로 주인공은 섹스했다.
하지만 기타 작품은 그만큼 섹스에 열의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여성 관계가 노골적이라는 것은 사실이다. '욱이'에서는 여성과 고리타분한 로맨스가 있었고, '블랙필드'에서는 등장인물 중 하나가 여성 인물과의 관계와 관련해서 에피소드를 겪고, '올스텟 슬레이어'에서는 2편 이후에서는 별다른 이야기가 없지만 주인공의 과거가 각종 여성 편력을 겪은 플레이보이라는 설정이다.
다만 폭딜어쌔신은 15화 내에서는 예의 그 유명한 섹스신이 나오지는 않을 뿐더러 여자인물의 이름이 단 한 번 단 한 명 언급되었는데 그마저도 TV를 통해서였다.
8) 고유성
'폭딜어쌔신'의 주인공은 '번개' 능력과 더불어 자신의 능력치가 수치화되서 보이는 '게임'능력자다. 이러한 사실은 숨겨지고 특별하다. '욱이'의 주인공은 과거로 회귀한다. 다른 이들은 그 사실을 모른다. '대수림'의 주인공은 느닷없이 능력자로 선별되어 퇴폐적인 미모의 능력자가 된다. 아무런 개연성 없이. '올스텟 슬레이어'의 주인공은 튜토리얼 모드에서 남다른 강함으로 무장해 압도적인 무력을 선보인다. 이들이 가지는 능력은 모두 남들이 가질 수 없으며, 그 능력을 가지는데 있어 개연성이 부족하다는 특징이 있다. '블랙필드'의 주인공만이 이런 고유성과는 차이를 두고 있지만, 남달리 강한 능력자로 묘사된다.
작품 속 인물이 특별한 인물이라는 것은 누구나 특별해지고 하는 것을 반영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꼭 특별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지 않나? 이야기의 시작은 평범하더라도 소설의 시작이 아니라 소설의 끝에서 특별한 인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9) 정치적 견해
5에서 8에 이르는 문항이 이전 대여점 판타지 소설과 공통된 속성이라면 이 9번은 현실 배경을 선택함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나타난 속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속성은 6번처럼 옅게 나타나는 작품 부터 깊게 나타나는 작품까지의 차이가 크다. 공통되게 등장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강하게 나타났던 작품은 '올스텟 슬레이어'로 주인공이 한전 직원이라는 독특함 때문에 유난히 눈에 띄었다. 하지만 타 작품이라고 해서 그 정도가 마냥 적지는 않다. '폭딜어쌔신'의 주인공은 어느 정도 보호가 필요한 상황에서 등록청이라고 불리는 정부 기관의 도움을 계속해서 받고 의지하지만 마냥 안심하지는 못한다. '욱이'와 '올스텟 슬레이어'에선 정부이나 법이 완전하지 못해서 만들어내는 부조리를 주인공이 타파하기 위한 노력이 에피소드로 등장한다. 하지만 마냥 작품 속에서 인물들이 정부 기관에 반하는, 즉 진보적인 것은 아니다. '폭딜어쌔신'과 '블랙필드', '대수림'은 사회적 문제의 기반을 국가 사이의 알력에서 발생한다고 본다.
10) 빠른 연재
서론에서 꺼냈던 이야기를 약간 마무리 짓고자 한다. 단편소설은 통상 100KB를 넘지 않는다. 그리고 문단에서 한 달에 한 편 이상의 단편소설을 쓰는 것은 대단히 무리를 하거나, 대단한 속도의 글쓰기라고 생각한다. 익히 알려진 것과 달리 단편 작가들은 그것을 퇴고를 거듭해 뜯어고치지 않는다. 다시 쓴다. 리라이팅이라 불리는 이 과정은 예로부터 고전 작가들이 애용한 글쓰기 방식으로 몇 번의 다시 쓰기 끝에 만족할만한, 또는 겨우 마감을 채울만한 작품이 된다. 이것이 단편을 완성하는 미덕이다.
그러나 조아라 노블레스를 비롯한 연재 소설의 미덕은 고전적인 단편소설 창작과는 다르다. 연재는 빠르면 빠를수록, 많으면 많을수록, 멈추지 않을수록 더 많은 인기를 얻는다. 이것은 단순히 작품의 노출 기회를 뜻하는 것만이 아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읽는 작품이 '끊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작품의 댓글에서 확인되는 독자의 반응은 작품의 연재 속도를 암시하고 있을정도로 또렷하다. 연재 내용보다 연재 속도에 독자들은 더 크게 반응하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단편소설뿐만 아니라 통상의 단행본 소설 모두와 차이를 보이는 점이다. 한 권의 책은 마지막 페이지가 존재하지만 연재소설의 끝은 어디인가? 계속해서 수익이 창출 가능한 작품이 있다면 작가는 그 소설을 과연 끝낼 것인가? 그럼 더이상 수익이 창출되지 않는, 재미없는 작품이 연재소설의 끝일까?
3. 결론
고작 다섯 작품의 1/4, 적게는 1/8만 보았다. 앞서 말한 것 처럼 소설책의 반권 분량으로 기실 이 글은 속단에 가깝고 그냥 어설픈 스케치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섯 작품에서 유사한 열 가지 속성이 보인다는 것은 눈여겨 볼만한 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첫 15편(또는 30편)'만을 보았음을 상기해주길! 나는 계속 노블레스 작품을 살필 생각이다.
판갤에 올렸던건데 마침 웹갤도 생겼으니 기념으로 올림
참고로 그 뒤편은 아직도 안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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