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가을날이었다.
나는 평상위에 앉아서 비 냄새를 맡고 있었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공기가 낙엽, 이끼 사이로 스며들어 묘하게 시원한 향이 났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비가 내리면 왠지 그런 냄새가 났다.
나는 코가 민감한 편이라 코의 피로를 풀어주는 듯한 그런 냄새를 좋아했다. 그래서 비가 내리는 날이면, 특히 내 취향의 비가 내리는 날이면 이렇게 바깥에 나와서 그 냄새를 맡곤 했다.
“앞으로 세 시간은 더, 어쩌면 내일 아침까지 비가 내리겠지.”
그런 기분 좋은 중얼거림을 내뱉은 순간, 다른 냄새가 끼어드는 것이 느껴졌다.
과장이 아니라 정말로 느꼈다.
방금도 말했듯이 나는 코가 민감한 편이라 원치 않아도 그런 걸 느끼고 만다. 산속에는 산속의 냄새가 있고, 산속에서 사는 것이라면 조그마한 다람쥐에게서도 산의 냄새가 난다. 이런 것까지 파악하는 건 나도 못한다. 하지만 산의 냄새가 아닌 마을의 냄새가 들어오면 싫어도 알 수밖에 없다.
안방에 웬 강아지 한 마리가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아있으면 싫어도 알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것과 같은 논리다.
“어떻게 들어왔지?”
나는 누가 보는 것도, 듣는 것도 아닌데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그 정도로 의아했다.
“길을 잃었나.”
이런 산중 깊은 곳에 들어올 만한 이유는 그 정도밖에 없긴 하다.
“길을 잃었다고 쉽게 들어올 수 있는 곳은 아닌데.”
혼자서 중얼중얼 거리고 있으니 어지간히 한가한 듯 느껴져 자리에서 일어났다. 실제로 한가하긴 하니 오랜만의 손님을 마중이나 가면서 한가함을 줄여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 생각은 5초도 가지 않아 사라졌다.
신기하게도 상대 쪽에서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거리가 꽤 되는데도 마치 여기를 알고 있는 듯이 똑바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거야 말로 말이 안 되지.”
자랑은 아니지만 친구도 없고 친구가 아닌데 찾아올 만한 곳에 집을 지은 기억은 없다.

**

말이 되든 안 되든 일어나버리면 그게 현실이고 내 마음은 어떠하든 그런 건 별로 중요치 않다.
그건 눈앞의 소녀도 마찬가지인 듯 했다.
그녀의 옷차림은 이런 날씨를 예상하지 못한 듯 얇아보였고, 그것마저도 비에 흠뻑 젖어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나를 보곤 자신감에 찬 웃음을 지어보이는 것이었다. 마치 사냥감을 발견한 사냥꾼 같았다.
그게 사실이라면 나에게 좋은 일 따위 하나도 없겠지만 나는 그녀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초라하게 와들와들 떨고 있는 그녈 보면 사냥꾼이 아니라 사냥감을 연상케 했기 때문이다.
“저 잠깐 비 좀 피하고 가도 될까요?”
하지만 표정만큼은 당당함이 넘쳐서, 그런 걸 싹 잊게 하는 그 자신감에 찬 웃음으로 소녀는 당돌하게 그렇게 말해왔다.
나는 그 표정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거절할 이유는 산더미처럼 있었지만 거절하고 싶은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가녀린 소녀였고, 길을 잃은 상태였고, 심지어 비까지 맞아 추위에 떨고 있었다. 오히려 그녀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면 내가 그녀를 먼저 들였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내심, 비가 그치면 그녀를 빨리 내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정이 있어 조용히 혼자 숨어사는 입장이다. 누군가가 찾아오는 것이 달갑지만은 않고, 같이 있다간 봉변을 당할 수도 있다. 빨리 내보내는 것이 그녀를 위한 일이다.
“저 더 있다 가도 되죠?”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쓸데없이 해맑았다. 방금 씻고 와서 몸에서는 미약하게 연기가 피어오르고, 젖은 옷 대신에 내 옷을 입고 있었다.
내 옷이 그녀에겐 헐렁해서일까, 그녀의 아까와 똑같은 표정이 약간 퇴폐적으로 보였다.
나는 시선을 돌려 하늘을 보았다. 아직 비는 한창 내리려는 모양이었다.
“어쩌면 내일 아침까지 내리겠지.”
오늘 그런 말을 했던 건 누구였던가. 비 같은 거 당장 그쳐버리면 좋을 텐데, 정말 눈치도 없지.
“비가 그칠 때까진 있어도 좋아.”
나는 자업자득의 한숨을 내쉬며 그녀에게 그렇게 말했다.
비 내리는 날에 몸을 피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해주고 기껏 몸을 씻게 해준 뒤 내쫓을만한 가학적인 성벽이 내게 없음을 원망해야 했다.
“고마워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내 몸을 밀어 넘어트렸다.
“고맙다는 말과 행동이 조금 다른 것 같은데.”
그녀의 밑에 깔려 본의 아니게 그녀를 올려다보는 자세가 되었다.
그녀를 올려다본다기보다, 그녀의 가슴을 올려다보는 자세가 되어있었다.
시선을 느낀 듯 소녀는 야릇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답례를 해야죠.”
머리로는 그것이 아까와, 기억을 더욱 거슬러 올라가서는 처음과 비슷한 표정이라는 것을 인지했지만 지금 당장 내 눈에 비친 그녀의 표정은 완전히 다른 것처럼 비춰졌다.
사냥꾼도 사냥감도 아닌, 사창가를 연상케 하는 표정이었다.
그녀가 손을 옷 안으로 집어넣는 순간, 좋지 않은 예감에 몸을 떠는 나였지만, 대신 튀어나온 것은 그녀의 가슴이었다.
내가 숨과 함께 침을 삼켜버린 것은 창피하지만 사실이었다.
그녀는 나를 깔고 앉은 상태에서 바지를 벗으려고 낑낑 거리더니 내 몸에 자신의 몸을 납작 엎드려서 바지를 벗어던졌다.
맛이 간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안 추워?”
그렇게 묻자, 그녀는 살살 허벅지로 내 허리를 쓸었다.
“괜찮아요.”
“감기 걸린다.”
“아저씨 고자에요?”
“오래 안 쓰긴 했지만 쓸 순 있을 걸.”
“그럼 해요. 제가 가진 건 이거밖에 없거든요. 아저씨 귀신 같이 잘 생겨서 해도 상관없어요.”
그녀의 찰팍찰팍 허리를 튀기는 소리가 빗소리마저 음탕하게 들리게 했다.
“누군가 볼 수도 있을 텐데?”
“이런 산속에 누가 온다구요.”
“네가 왔잖아.”
“우연이잖아요. 그건.”
여러 가지로 주장에 구멍이 많은 듯 했다. 그래도 알아들은 결론은.
“하고 싶다는 거지?”
“네. 해요.”
거절할 이유는 하나도 없었고 거절하고 싶은 이유도 하나도 없었다.

**

새벽에 문득 눈이 뜨였다.
바로 옆에는 전라의 여성이 누워있었다. 겸사겸사 나도 전라였다.
옆에서 누군가가 자고 있는 게 얼마만인가. 바깥에는 아직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여기 좋네요. 내 집 같아요.”
내가 눈을 뜬 것을 눈치 챈 건지, 아니면 그녀도 마침 똑같은 타이밍에 눈을 뜬 건지, 어느 쪽이건 간에 절묘한 타이밍으로 그녀가 말했다.
“네 행동거지는 처음부터 네 집 같아 보였어.”
“그래요? 그럼 그냥 눌러 앉아버릴까?”
이번에도 똑같은, 그러면서도 어딘가 쓸쓸해 보이는 미소로 소녀는 말했다. 달관한 것 같기도 하고, 포기한 것 같기도 했다.
그녀가 슬쩍 내 표정을 살핀 것을 나는 눈치 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것이 서로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가족은 없어?”
“네. 없어요. 고아에요. 저.”
“어디로 가던 길이었는데?”
“몰라요. 그냥 산 너머 어딘가로 가려고 했는데 길을 잃어서 여기로 와버렸어요.”
“그럼 여기서 나가도 갈 곳 없는 거 아니야?”
“몰라요.”정말 모르는 게 아니라 신경 쓰는 게 귀찮다는 눈치로.
나는 말 대신 손가락으로 방구석을 가리켰다.
“저기 서랍에 열어보면 한 달 정도는 돈 걱정 없이 생활할 수 있는 금이 있을 거야. 비가 그치면 그걸 가지고 가. 줄게.”
“금이요...?! 아니 잠깐, 누굴 창녀로 아는 거예요?”
그 말에 나는 피식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답례랍시고 허리를 흔들어 댄 게 누군데.”
그러자 그녀는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다.
“적어도 돈을 받고 허리를 흔들진 않았다구요.”
틀린 말은 아니지만 대가를 받고 허리를 흔드는 시점에서 창녀와 대동소이다. 그녀가 살기 위해서 선택한 방식이 그것이겠지만 세간에서 부르는 명칭은 변함없을 것이다.
“어차피, 가져갈 생각이었잖아.”
“어라, 들켰어요?”
“나한테는 필요 없고 너한테는 필요하니까 서로 좋은 게 좋은 거지. 가져 가. 아니면 나중에 두 말 못하게 숨겨버릴 거야.”
“아, 그럼 어쩔 수 없네요. 얌전히 받는다고 할게요. 하지만 그전에...”
그녀는 자신의 몸을 내 몸 위에 포개었다.
“돈 받은 값은 일해야겠죠?”
창녀 맞잖아.

**

“아저씨, 또 와도 돼요?”
밤사이에 비는 그치고, 그녀의 옷도 생각보다 빠르게 말라 그녀는 원래의 옷차림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안 돼.”
“왜요, 아저씨라고 불러서요?”
표정에 드러났나.
“별로 와서 좋을 일도 없는 곳이야.”
“제가 가서 좋을 만한 곳은 어디에도 없는데요. 다음에도 하게 해줄 테니까요, 네?”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치맛자락을 손가락으로 잡고 살랑살랑 흔들었다.
“다음에도 오고 싶다면, 내 아이라도 데리고 와.”
그러자 그녀는 마지막으로 처음 만났을 때와 같은 자신감에 찬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번에는 어디에서도 살아갈 수 있을 법한 잡초 보다 강한 꽃 같은 느낌이었다.
“정말이죠?”
“그래.”
나는 그녀에게 작은 구슬 하나를 던졌다.
“이건 뭐에요?”
“여우구슬.”
“네?”
“나를 찾고 싶으면 그걸 들고 이 산으로 돌아와. 내 아이가 없으면 절대 못 들어올 테니까 명심하고.”
“네?”
“멍 때리지 말고 어서 가. 해가 저물기 전까진 마을에 도착해야지.”
“네...”
그녀는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재촉당해 어쩔 수 없이 저벅저벅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녀의 냄새는 점점 멀어져 사라져버렸다.
요괴와 인간 사이에서 아이는 잘 태어나지 않는 편이니까 아마 그녀를 다시 만나는 일은 없겠지.
그녀가 나중에 나를 기억한다면 그건 거짓말 같은 일이었다고 회상할지도 모르겠다.
비가 그친 하늘에 볼 일은 없어, 나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정말 기운 찬 아이였어.”
인간을 만나지 않은지 300년은 돼서 인간의 대한 기억은 흐릿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저렇게까지 특이한 인간은 없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가 마음에 든 것도 사실이었다. 첨언을 한다면 옛날에 나였다면, 이 산으로 들어오기 전의 나였다면, 이대로 보내지 않고 붙잡았을 정도로 매력적인 여자였다.
하지만 나 같은 게 없어도 저런 성격이니 어딜 가서도 꿋꿋하게 살아갈 것 같다. 운이 좋으면 어딘가 괜찮은 남자 하나 잡아서 아이도 낳고 행복하게 살겠지. 뭐, 그렇게 된다면 오늘 날의 일 같은 건 잊어버리는 편이 좋겠지만.
그러고 보니 인간 여자와 관계를 가진 건 300년 전에 인간에게 정체를 들켜 이 산속으로 숨어 들어온 이후로 처음이었지만... 간밤의 반응으로 보아 아직 내 기술도 죽지는 않은 모양이다.
“한 번쯤 더 만나줘도 상관없으려나.”
요괴든 인간이든 성욕은 들끓는 법이다.
아니, 정말로 임신해버리면 곤란하니 역시 만나지 않은 편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요괴보다 괴로운 건 요괴도 인간도 아닌 자식이니까.
그건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아는 일 아닌가.
그녀에게도 나에게도 어젯밤의 일은 가을날의 거짓말처럼 왔다가는 소나기인 편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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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누가 5천자 써와보라고 해서 써와봤다. 엿먹어보라는 심정으로 단편대회 하자고 설친 건 아니야. 글의 퀄이야 좋지는 못하겠지만 그거야 나는 늘상 있는 일이고 그냥 서로서로 놀아보자는 느낌이었는데 생각해보니 기분나쁠 수도 있다는 건 몰랐네. 생각 좀 해보고 올릴 걸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