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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월 06일.


해가 쨍쨍히 뜬, 그러나 뿌옇게 먼지가 오른 창문 너머로 그저 회색 커튼이 펼쳐져 있을 뿐인 하늘 아래 반지하의 책상 앞에서 이 리뷰를 쓰다.





카와하라 레키는 라이트노벨에 조금만 관심이 있더라도 자연스레 듣게 될 수밖에 없는 이름 중 하나이다. 그가 집필한 소드아트온라인, 일명 SAO는 현존하는 게임 판타지 라이트노벨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대세작 중 하나이며 그보다 덜한 주목을 받고 있는 엑셀 월드 또한 충분히 사랑받고 있고, 인기작이라 불러 손색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SAO 이전에 썼었던 해묵은 원고를 들고 왔다. 바로 이번에 리뷰하게 될 절대적 고독자가 그것이다.




본격적으로 내용을 소개하기에 앞서 나는 언젠가 이 라이트노벨 갤러리에서 본 리뷰에서 다룰 작품과 동일한, 절대적 고독자의 리뷰를 본 적이 있다. 사실 그 리뷰를 보고 흥미가 생겨 사서 읽은 것이다.


왜 이 일을 언급하냐면은, 그 리뷰에서 눈에 띄는 문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라이트노벨스러운 작품'이다.




라이트노벨스러운 작품. 이 말은 여러가지를 동시에 뜻한다고 볼 수 있겠다. 내용의 수위가 가볍거나, 해당 장르에 맞는 방향성을 지녔거나, 이들 판매 전략에 어울리는 상업성을 띄었거나, 정말로 무게가 가볍거나 등등. 아무튼 정말 갖가지의 이유가 라이트노벨스러움을 자아낸다 볼 수 있겠다.


그리고 해당 리뷰의 본문에서는 그것을 '한 권 안에서의 완결성'으로 분류했다. 요컨대 절대적 고독자는 한 권 안에 내용을 보다 깔끔하고 주제에 맞는 뚜렷한 형태로서 내용을 끝낸다고 받아들이면 되겠다. 적어도 필자는 그렇게 이해했다.


따라서 그것이 흥미를 이끌어낸 바, 필자가 읽으면서 주목하는 부분도 그 점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견은 없었다.




허나 굳이 사족을 덧붙이자면 만족감이 빚어낸 침묵은 아니었다. 말하자면 삐진 아이의 기분이라고 할까. 절대적 고독자는, 늘 카와하라 레키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심심한 재미와 함께 상업적 소설의 위대함과 베테랑의 노련함을 다시 한 번 증명해 보일 뿐이었다.



무엇이 문제였느냐.


가장 심플하면서도 가장 심오한 질문이다. 무엇이 진정 잘못되어 이 모든 오류들이 생겨났는지 이 세상의 단 한 사람이라도 전부 아는 자가 있었다면 적어도 우리는 무결점의 오락을 한 가지라도 얻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허나 여태껏 없었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허나 그럼에도 필자가 절대적 고독자의 한 사람에 대한 실패라도 언급하고자 한다면, 그건 다름아닌 캐릭터성에 있겠다.



항상, 카와하라 레키는 그렇다. 소아온을 십몇 권 읽을 동안 내내 받았던 느낌이 이곳에서도 빠지지 않는다. 바로 적재적소에 지나지 않는 캐릭터다.



있어야 할 위치에 캐릭터가 있다. 이보다 더 담백하고 안타까운 말이 있을까. 소아온에서는 언뜻 보기에 장점이었을지 몰랐던 요소가, 절대적 고독자에선 너무나 확실하게 안 좋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주인공은 어렸을 적에 불행한 사고를 겪었고, 그로 인해 소중한 사람을 잃고 현재까지도 그 아픔에 시달리며 산다.

작품 내내 그의 갈등이 구구절절 읊어지고 그의 방황과 내면의 묘사를 위해 상당히 많은 양의 내용이 소모되지만 정작, 내용이 끝날 때까지도 그 캐릭터가 성장하는 일은 없다. 마치 고집불통의 아이를 보는 느낌이다. 중요한 건 그게 주인공이란 것과, 이제 다 큰 17살이라는 것이다.



어쩌면 카와하라 레키가 절대적 고독자의 탈고 이전에 에반게리온을 뒤늦게 정주행한 게 아닐까 살짝 의심이 들기도 한다.


만약 그랬다면 혼나야 한다. 명작의 장점이 아니라 단점을 답습한 거니까.



두 번째는 쓰일 용도로만 쓰였던 조연들이다.


작중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전부 그 용도가 정해져 있다. 또한 상황에 맞게 그러한 용도로서 쓰인 후에는 나머지 재료를 망설임없이 쓰레기통에 처분하는 것처럼 사라진다.


너무 깔끔하게.


조연 중 하나인 같은 1학년 미노와 토모미를 보면 이 캐릭터는 정말 잘 쓰였다. 주인공과 악역 간의 전투 계기가 되는 동기를 이끌어 냈고, 주인공의 트라우마를 아주 조금이라도 극복할 수 있게 해주는 계기를 마련한다. 결국에 달라진 건 없지만, 아무튼 그런 일들을 해낸다.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근데 그게 끝이다.


카와하라의 고독자 세계에서 캐릭터가 띠는 역할성은 정말 간결하면서도 무결점의 완결성을 지녔다. 주인공을 도맡아 키우는 요시미즈 노리에도 마찬가지다. 이 캐릭터도 주인공의 트라우마 극복에 도움을 주고, 라스트 전투의 동기를 준다. 그게 다다. 적어도 절대적 고독자 1권 내에서 이러한 꽤 큰 지분을 가진 조연들이 가지는 어떠한 고뇌나, 그들 자신에 대한 갈등, 목적 외의 캐릭터성은 단 하나도 없다.


마치 이야기를 이끌어낸다는 수단만을 가지고서 태어난 작가의 마네킹 같다. 사도, 신의 부름을 받은 천사가 가장하는 모습 같다. 따라서 읽는 내내 아쉬움과 불만이 든다. 더 무언가를 할 생각은 없는 거야? 같은 식으로 말이다.


그네에 타서, 발로 땅을 박찼다면 그네는 뒤로 상승해 앞으로 솟아올라야 한다. 절반만 오른 다음 급제동을 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등장한 캐릭터들도 그렇다. 등장해서 한 지분을 차지했다면 무언가라도 보여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저 주인공이 활약하거나 곤란한 상황에 처하도록 유도하는 것 외에 말이다.




물론 본문에서 언급한 단점 외에도 장점이 있긴 하다. 바로 SAO에서도 자주 드러났던, 악역의 신념이다.


단순히 이 놈은 나빠, 그러니까 이런 짓을 한 거야 라는 식의 논리 구성 대신에 카와하라 레키는 히스클리프나 키쿠오카가 그러하듯 오히려 주인공이 가진 신념보다 더 그럴싸한 자신만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목적성은 선악의 관념을 떠나 인간 개개인이 가진 욕망과 완벽에 대한 추구심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당 캐릭터의 캐릭터성을 보다 뚜렷하게 만들어 준다.


그러한 장점은 절대적 고독자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고, 언뜻 보기에는 별 볼일 없는 악역 A에게 보다 깊은 매력을 느끼게 해준다. 이후의 내용은 스포가 될지도 모르나, 본 필자는 그저 목적만을 위한 수단에 불과할 뿐인 조연들보다 이 악역이 더 잘 와 닿았다.



필자가 느낀 바, 절대적 고독자의 1권 리뷰는 이렇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느낌을 간결하게 표현하자면 너무 외곬이 아니었나ㅡ다. 


주인공과 악역. 각각의 느낌은 어느 정도 살렸다. 전개도 깔끔했다. 하지만, 한 길만 보다 보니 주변이 휑하다. 마치 서부의 고속도로를 보는 느낌이다. 길은 잘 닦여 있다. 하지만 풍경을 보라. 황야에 거칠은 사막이다. 불모지다. 감탄 대신에 나오는 건 처량함에 대한 한숨이다.


적어도 횡단한다는 목적만을 가진 서부 도로는 그걸로도 족할지 모르나, 소설은 그렇지 않다. 가끔 주인공보다 더 사랑받는 조연이 등장하기도 하는 게 바로 창작이라는 분야가 아닌가.


단지 수단만을 위해 존재할 뿐인 인간은 사람이라 부를 수 없다. 생물의 단위로선 있을 수 있으나, 존재의 가치로선 취급되지 못한다.





고로.





카와하라 레키의 절대적 고독자 1권은


라이트노벨이며, 단지 라이트노벨이다.




이것으로 리뷰를 끝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