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전개가 자잘헌 것 없이 무척 빨라서 마음에 들었음. 시작하자마자 액션 장면에 몇 쪽도 안지나서 새로운 위기가 찾아오는 점, 중간에 줄줄이 대략 망한 세계가 어쩌니 멜라늄이 뭐니 설명 늘어놓지 않는 점도 좋았고. 물귀신 틀딱의 정점, 황제를 비롯해서 주요 적대 인물이 셋이나 있지만 분량 및 역할 배분이 잘되서 읽다가 지겹거나 혼란스러운 인상은 별로 없었음.

하지만 중반까지 사건들이 얽히고 설키며 막장으로 치닫다가 폭발엔딩으로 대강 수습하고 후반 전개로 들어갈 땐 어리둥절했다. 분량 문제인가?

기대만큼은 주인공에게서 매력을 느끼지 못한 것도 아쉬웠음. 아예 없단 건 아니지만 딱 설정을 보고 느낄 수준? 입에 걸래 문 반쯤 돌은 년이라 감정선을 타기 힘든데, 그렇다고 지랄병 난 듯이 다 씹어대면서 전속전진하는 스타일도 아니었고. 병신같지만 멋지다고 느끼기엔 (설정말고) 작중에서 아주 대단한 일들을 벌이지도 않았음.
사실 황제가 더 돌은 놈인데다 나름 카리스마도 있어서 이 두 점에선 주인공보다 매력적임. 생각하는 수준이 딱 물귀신 틀딱만 아니었다면...

그리고 표지에선 찬밥 대접인 남자 주연의 성장 스토리도 이야기의 한 축인데, 내내 호구질 하는 것도 모자라 마지막까지 성장도 적당히 끝내지 않고 미완으로 흐려버림. 그래서 책을 덮고 나서는 뷔폐에 나서자마자 허기진 것 마냥 찝찝함이 남음. 아마 후속작들을 위해, 혹은 주인공 비중과 황제놈 위상을 위해? 미숙한 모습을 강조한 거겠지만, 들러리가 될 바엔 차라리 프리드리히 2세의 일화처럼 끝내는 것도..아니, 저, 내 말은 그게 아니라..흠흠.

여튼 조금 아쉬운 점들이 있지만 아주 재밌게 읽은 책이었음. 전개도 쫄깃하고 쥔공이랑 안드로이드랑 만담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도 재밌음. 무엇보다 지금 아니면 안 먹힐 패러디 코드들과 적이 틀딱이란 점이 우리 디씨 친구들을 위한 챠밍포인트가 될 거임.

근데 일러 퀄은 무지 좋지만 컬러 다섯, 흑백 다섯 정도 밖에 없어. 심지어 컬러 다섯 중 둘은 인물 소개란이고 하나는 표지 우려먹기. 하나는 인물보다 배경이 훨씬 크고. 다른 하나는 남자 주연만 나옴. 혹여 보다가 뒷목 잡지 말라고 미리 말해 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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