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병원 옥상 난간에 기대 밖을 내다보며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원래 환자들을 위한 힐링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어 금연 구역으로 지정된 옥상이지만 새벽 2시가 막 넘어간 지금, 이곳을 찾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옥상 곳곳의 조명도 이미 꺼진 상태였다. 그렇게 생각하며 새 담배에 불을 붙이는 순간 등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저기요......"
개미만 한 목소리였지만 혈액이 순환하는 소리 마저 들릴 듯한 이 조용한 공간에서 나는 명백하게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목소리로 미루어 봤을 때는 여성인 것 같았다. 나는 담뱃불을 재빠르게 소화 시킨 뒤 몸을 돌아섰다. 컴컴한 어둠 속에서 실루엣만을 얼핏 확인할 수 있었는데 환자복을 입고 있는 것 같았다. 여자의 옆에는 링거를 매단 바퀴 달린 긴 봉이 있었다. 다행히 병원 관계자에게 흡연을 들켜 벌금을 무는 불상사는 없을 것 같았다.
컴컴한 어둠 속에서 정체 모를 여자가 한 발짝씩 다가올 때마다 나는 지난주에 보았던 공포영화가 문득 떠오르면서 조금 공포심을 느꼈다. 그러다 여자는 일정한 거리에서 걸음을 멈추더니 공포심을 포함한 내 정신을 날아가 버리게 할 뜬금없는 고백을 하였다.
"저랑 같이 자살하실래요?"
"......네?"
정말로 뜬금없는 소리에 반사적으로 그렇게 대답해 버리고 말았다. 인생에서 여자에게 받은 첫 고백으로 들은 말이 같이 자살을 하자는 소리라니 허탈한 웃음만이 나올 뿐이었다.
"농담 좀 해봤어요. 방금 한 말은 잊어주세요."
여자는 그렇게 말하면서 돌아섰지만, 여자의 고백에는 진지함이 묻어나고 있었기에 이대로 보낼 수는 없었다.
"저기...... 무슨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혹시 힘들거나 그러시면 저와 대화 좀 나누실래요?"
나는 내가 이렇게 말하면서도 새삼 부끄러움을 느꼈다. 내가 왜 이런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자살을 진지하게 생각했던 예전의 나 자신을 이 여자에게 겹쳐보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그래서 가만둘 수 없었으리라.
나와 여자는 옥상 난간에 팔을 기댄 채 서로 2m 정도 떨어져 있었다. 서로의 얼굴을 알게 된다면 대화를 할 수 없을 것 같았기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런 행동을 취하게 되었다. 먼저 말을 꺼내 든 것은 여자였다.
"이상하게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지만, 혹시 자살을 진지하게 생각해 보신 적 있으세요?"
"네, 2년 전에 부모님이 돌아가셨거든요. 그땐 정말 힘들었죠. 학교도 안 나가고 술·담배나 입에 대고 매일 울면서 때 쓰고 세상을 증오하고......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부질없고 우스운 짓인데 말이죠."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절의 나는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원래 그런 상황에 빠진 사람들의 마음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일까.
"그런가요......"
여자의 목소리에는 가엽다거나 불쌍하다거나 하는 동정이 조금도 섞여 있지 않았다. 그저 사실을 납득한 듯했다. 정말이었다. 나는 여자가 굉장히 힘들어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혹시 무슨 일 때문에 힘들어하시는지 들어볼 수 있을까요?"
나는 여자의 힘이 돼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2년 전쯤에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어요."
시한부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이건 사실이기도 했다. 시한부 인생을 사는 사람에게 나는 무슨 말을 해주면 좋을까. 나는 나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지만, 답이 나오는 일은 없었다. 만약 답이 나왔다고 한다면 그것은 거짓일 것이다.
"그래서 지금 몸이 굉장히 쇠약한 상태거든요. 이대로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을 살아도 주위에 폐만 끼칠 거에요.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럴 바에는 차라리 자살을 해버리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해요.
여자의 목소리는 끝으로 갈수록 점점 흐릿해지고 있었다. 정말 몸이 쇠약한 것 같았다.
"그래도...... 그래도 희망의 끈을 스스로 놓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나는 생각을 정리하고는 말을 이었다.
"만약 가느다란 희망의 끈이 완전히 끊어져 정말로 며칠 후면 끝날 인생이라고 해도 남은 삶들을 조금은 이기적이게 살아보는 건 어떨까요. 만약 자살을 해버린다면 주위 사람들은 정말로 슬퍼할 거에요.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기뻐해 줄 사람이 있어요."
"그건 저도 알아요. 하지만 저는 너무 고통스럽다고요. 주위에 폐만 끼치고 얼마 살지 못할 인생이라면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리는 편이 나아요. 왜 이런 쪽으로 이기심을 부리는 건 안 되는 거죠?"
시한부 인생을 산다는 것은 분명 나 같은 보통의 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울 것이다. 의료 기술이 상당히 발달한 지금, 웬만한 병들은 의학의 힘에, 그리고 시간의 힘에 의해 치유된다. 그럼에도 시한부 인생을 산다는 것은 더는 의학의 힘이 통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뼈를 깎아 내려가면서까지 주사를 맞고 약을 먹고 그럼에도 한정적인 수명은 희망 고문만을 할 뿐이고 시간은 하염없이 흐르고 서서히 죽어가고......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은 모두 마지막이 있어요. 영원할 것 같은 저 밤하늘의 별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도, 너무나도 방대하여 크기를 잴 수도 없는 이 우주도, 분명 마지막이 있을 거예요. 영원한 건 아무것도 없을 테니까. 분명히 이 말이 속 편한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너무 절망 말고 남은 인생을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충실히 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말하면서도 나는 내가 한 말이 마음에 거슬렸다. 분명 당사자에게 위로가 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이 이것뿐이라는 것에 가슴이 쓰렸다.
여자는 지친 듯 바로 뒤에 있는 기다란 벤치에 앉았다. 링거를 매단 바퀴 달린 긴 봉이 같이 움직이자 바퀴에서 끼 리릭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더불어 여자의 거친 숨소리도 들려왔다. 눈으로는 확인할 수 없지만 분명히 이 여자는 좀비라고 생각될 만큼 삐쩍 마른 몸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건 분명했다.
"그런데 여기는 무슨 일로 오신 거죠?"
여자가 물었다. 나는 환자복을 입고 있지 않았다.
"동생이 사고로 다쳐서 입원해 있거든요. 병문안이죠."
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동생에 대해서는 별로 얘기하고 싶지 않았기에 바로 화제를 돌렸다.
"그쪽 분이야말로 이 시간에 옥상에는 왜......"
"잠이 통 오질 않아서 옥상으로 나왔는데 설마 사람이 있을 줄 몰랐죠."
여자는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잠이 오질 않는다고 해서 홀로 힘든 몸을 이끌고 옥상까지 올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나는 오늘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여자는 침묵했다.
우리가 조용해지자 주위는 정말 아무것도 없다는 듯이 조용해졌다. 아마 이런 도시 한가운데서 이토록 고요한 공간은 찾기 힘들 것이다. 굳이 찾는다고 한다면 주택가의 반지하에 있는 집의 옷장 속일 것이다. 이대로 삶이 끝나버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이 조용한 공간에서 아무 고통 없이 삶을 끝낼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정신적 쾌락보다도 더 기분 좋은 일 일 것이다.
나와 여자는 그런 기분 좋음에 흠뻑 빠져있었는지 침묵이 꽤 오랫동안 이어졌다. 그리고 이번에도 먼저 침묵을 깬 것은 여자였다.
"아무래도 무리시겠지만, 혹시 내일도 이 시간에 여기로 나와 주실 수 있나요?"
"......"
나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답을 던졌다.
"네, 물론이죠."
나는 이 여자를 돕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건만 왜 이토록 고민했는지 의문이 들었다. 사실 고민거리라고 말할 것도 없었다. 단지 나는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내가 이 여자의 자살을 막을 용기를. 어쩌면 등 뒤에서 들려오는 여자의 간절한 마음속의 외침이 닿았는지도 모르겠다.
"정말요?"
여자는 굉장히 놀란 듯했다. 만약 몸이 멀쩡했다면 펄쩍펄쩍 뛰었으리라.
여자는 이 대화를 끝으로 돌아갔다. 나는 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웠다. 누워도 잠이 통 오지 않을 것 같았기에 밤하늘에 뜬 둥근 달을 바라보았다. 저 달도 언젠간 마지막이 있겠지...... 라고 생각하면서.
한 줄이라도 좋으니까 읽어 주면 감사하겠음. 평가도 해주면 더 좋고.
오...우.... 진지하네. 괜찮은 것 같음. 주제가 자살이라 그런지 이야기에 짜임이 느껴짐. 근데 라이트노벨 같진 않다. 좋게든 나쁘게든.... - dc App
아무래도 라이트노벨이면 여자 하나 나오면 외모 묘사를 하고 그러니까. 이런 주제로 쓰는데 꼭 그래야 한다는 건 아니다만. 그래도 이미지 연상을 위해 특징 몇 가지 서술하면 어떨까 싶음. - dc App
마지막으로 이건 어디까지나 내 주관인데, 도입부 문단이 빽빽하면 부담스러우니 좀 더 라이트한 걸로 하면 어떨까 싶다. 필력은 좋다고 생각한다. - dc App
훌륭한 것 같음. 문장들이 굉장히 입체적인데도 가독성이 떨어지는건 또 아님. 동생에 대한 의문점을 남겨 글의 견인력을 이끌어내는 기믹적인 부분으로 볼 때 완전 초보는 아닌 것 같은데 - dc App
좋은 문장 : 원래 환자들을 위한 힐링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어 금연 구역으로 지정된 옥상이지만 새벽 2시가 막 넘어간 지금, 이곳을 찾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ㅡ 공감대를 이용한 이미징이 훌륭하다. 복잡한 문장인데도 가지런하다. - dc App
NG 문장 : 여자의 목소리에는 가엽다거나 불쌍하다거나 하는 동정이 조금도 섞여 있지 않았다. 그저 사실을 납득한 듯했다. 정말이었다. 나는 여자가 굉장히 힘들어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ㅡ 1인칭 문장치고는 지~나치게 논리적이다. - dc App
몰입감이 상당히 좋음. 분위기도 잘 느껴짐. 어두운 밤이고 거리도 떨어져 있어서 여자에 대한 외형 묘사가 없는건 이해하겠는데, 오히려 외모가 확실하게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이용해서 여자의 외형을 주인공의 상상으로 해결하는 것도 재미있을듯.
독자가 주인공을 잘 모르는데 처음부터 과한 묘사가 있는것 같기도 함 그래도 재밌었음 약간 오글거리기는 하지만 넘어가줄만함 윗분 말대로 어두워서 묘사를 못했지만 목소리같은걸로 상상하면서 조금 정도는 묘사해주는게 어떨까 싶음 자연스럽게 녹이기는 힘들어도 잘만되면 히로인력도 높일수 있을듯 그리고 주인공 몇살임? 성인인가? - dc App
오 뭔가 하고 읽다가 나도 모르게 집중했어
퍄...
진짜 좋다. 근데 라노벨이라 하기에는 지나치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