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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SF에 크게 관심이 가지게 된 계기가 언제인지 잘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

아마 고등학생때 TV를 틀었다가 언뜻 눈에 들어왔던 한 영화때문이었던 것만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매트릭스의 짝퉁 취급을 받으며 국내 많은 평론가들이 혹평을 쏟아냈던 영화였습니다.


여기까지 말하면 아! 하시는 분들이 꽤 많겠지요.

그 영화가 나옴으로 인해 우리가 알고 있는 건카타 개념이 확립되기도 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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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퀼리브리엄입니다.

어렸을 때 봤던 이 영화는 당시 저에겐 개쩌는 총기 액션만 있는 영화였습니다.

그런 영화로 머릿속에 남아 잊히고 기억 한구석으로 쫒겨나 한동안 의식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러다 군대에서 글 쓰는 것에 취미를 붙이고 이런 저런 책들을 읽기 시작하면서

우연히 부대에 있던 1Q84를 보게되고, 그 뒤로 1984를, 그리고 다시 멋진 신세계와 화씨 451를 알게 됩니다.


SF라는 장르는 당시 저에게 이런 장르가 아니었습니다.

풀메탈패닉, 건담, 마크로스 같은 메카물을 SF로 취급하고 있던 저였기에 

당시 이런 소설은 저에게 상당히 어려웠어요.


아직도 위에 나열된 소설들을 풀어내라고 하면 솔직히 자신이 없고,

그렇기에 이퀼리브리엄과 후술할 하모니 역시도 잘 써낼 수 있을까 싶어 조금 두렵기도 합니다.


아무튼 이런 흐름을 겪고 나서 깊게는 아니더라도 관련된 어느정도의 얕은 지식을 알게 된 후

군대를 전역하고 할일없이 지내던 와중에 OCN 채널에서 우연히 이퀼리브리엄을 다시 보게 됩니다.


세계 3차 대전으로 피폐해진 인류는 전쟁에 대한 두려움으로

다시는 그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통일정부를 내세우고 

감정은 폭력을 부른다는 이데올로기 아래 많은 사람들이 방송으로 세뇌당하고

감정을 억제하는 약물을 복용하며 살아가는 세계


그리고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들.

책, 음악, 그림, 동물 기타 등등은 사회적으로, 법적으로 금지되며

약물 복용을 거부하거나 하지 않았을 경우 사형에 처하는 극단적인 세계


그러나, 악으로 보여지기 위한 영화적 장치를 제외하고 보면

분명 그 세계는 유토피아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는 곳입니다.

개개인의 감정으로 유발되는 모든 분쟁과 폭력이 배제된 

그곳은 평화롭기 그지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유토피아상에 거부감을 느끼는 것은 

거기에 '우리'만 있을 뿐 '너'와 '나'는 존재는 존재할 수 없음을 

무의식적으로 깨닫고 마는 것이겠죠.


모두의 유토피아는 결국 개개인의 디스토피아라는 이 아이러니함은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인가 하는 질문을 떠오르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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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재앙 후의 소중한 아이들. 나도 저 아이도 공공적 신체의 소유자이기에 절대 상처를 입어서는 안 된다.>


세기말 하모니는 그 이전 작품 '학살기관'에서 일어난 사건을 '대재앙'이라 부르며

그 핵의 축포를 쏘아올리던 혼란의 시기에서 반세기가 지나 2060~207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각종 방사능 오염으로 돌연변이 질병이 만연한 시기를 지나온 인류는 '대재앙'의 반동으로

박애주의 혹은 인도주의가 극단적으로 치달아 '생명주의'라는 이데올로기를 가진 사회상을 하고 있습니다.





<기쁜 일은 다함께 기뻐하자. 슬픈 일은 모두 나누자. 서로를 사랑으로 지탱하며, 하모니를 연주하자.>


인간은 사회에 귀중한 인적 리소스(자원)으로서 모두가 모두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사회

개개인 하나하나가 사회에 귀중한 자원이기에 '건강'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는 사회

때문에 이퀼리브리엄에서는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사회적 해악으로 여겼다면





<그게 이 사회에서 어른이 된다는 것이었다.>


하모니에서는 '건강'을 해치는 모든 것.

그러니까 대표적으론 담배, 술.

균형적이지 않은 식단. 더 나아가서는 바이오리듬을 해치는 생활 그 자체를 해악으로 여깁니다.

감정이 격해지는 것도 몸의 항상성을 해치는 행위로 간주해 

렌즈 처럼 착용하는 오그로 즉각 시각화 되어 경고합니다. 





<같이 보여주자.>


이퀼리브리엄에서는 감정을 억제하기 위해 약물을 사용하지만

하모니에서는 건강을 관리하기위해 성인이 되면 워치미(Watch me)를 달게 되고

네트워크와 실시간으로 연동되 개개인의 건강상태를 감시합니다.





<우리는 어른이 되지 않겠다고 같이 선언하는 거야.>


이러한 워치미와 개개인의 건강상태를 바로바로 케어할 수 있는 메디케어 시스템을 통해

70~80살 노인네가 외관상으로 약 40살의 건강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곳.

사람들은 점점 일원화된 건강상태를 유지하고 그 건강을 유지할 수 있도록

서로가 서로를 적극 배려하는, 자애로 가득차 조화를 이루는 유토피아가 그려져 있습니다.





<list : item>

<i : 이 몸은>

<i : 이 젖가슴은>

<i : 이 음부는>

<i : 이 자궁은>

</list>


"모조리 나 자신의 것이라고 세상을 향해 조용히 외치는 거야"

-본문 中-





'나'는 이미 죽고 생명주의라는 이데올로기 아래 '우리'로서 존재하는 이 극단적 복지사회에서

최고의 저항은 자신의 건강을 최고로 해칠 수 있는 행위.

즉, 자살이라는 이름으로 자그마한 복수를 꿈꾸는 세명의 소녀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나'라는 존재가 사회적으로 죽어버린 이 유토피아에서

'나'라는 존재로 있기 위해 죽음을 택함으로서 그 사회 안의 '나'의 존재를 확립시키고

자유를 가지려는 아이러니함이 어찌나 흥미진진하던지.


결국 세명의 소녀 중 미하야라는 리더격 소녀는 죽고,

다른 두명의 소녀는 어른이 되어, 한쪽-투안은 작은 반항을, 한쪽-키안은 순종하며 살아가다가

투안은 13년만에 만난 친구 키안이 눈앞에서 자살함과 동시에 

같은 시각에 약 6500명이 집단 자살하는 사건으로 이야기는 파국을 예고합니다.


자신의 눈 앞에서 자살했던 키안의 작은 중얼거림은 

투안에게 13년 전 자살했던 미하야의 잔재를 어렴풋하게 느끼게 합니다.

그리고 투안은 13년 전 죽었던 미하야의 망령을 쫒기 시작합니다.


이 뒤 이야기는 스포일러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여러분들의 즐거움으로 남겨드리려합니다.



어떤 분들은 애니메이션으로 이미 작품을 보셨을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애니메이션보다는 책으로 읽는 것이 훨씬 작품을 이해하는데 좋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애니메이션은 하모니라는 작품을 절반도 표현하지 못한 졸작이었다고 느낍니다.


책을 읽고 나서 애니메이션을 보면 또 색다르지만

애니메이션만 보고 이 작품을 책으로 안보는 건 아깝다고 생각해요.

백합물로 취급해 읽지 않는 것은 상당한 손해라고 생각되는 작품이니까요.


이 작품은 이토 케이카쿠의 유작이라고 하지요.

건강이 상당히 안좋은 상태에서도 집필했기에 이토 케이카쿠가 '하모니'를 원한게 아닐까 싶어

작품을 다 읽고 재미있었으면서도 후기를 읽고나선 한편으론 꽤 착찹했습니다.

그랬기때문에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육체와 영혼을 달리 생각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어서요.


제가 왜 부재로 '조화라는 이름의 죽음'이라고 표현했는지 여러분도 꼭 느껴보셨으면 하는 '세기말 하모니'였습니다.